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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선형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영화 원작의 붐을 따라 지금 제목은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이지만, F. 스콧 피츠제럴드가 이 단편집을 처음 엮어 세상에 선보일 때는 “재즈 시대 이야기들(Jazz Age Stories)”이었다고 한다. 원제에도 분명하게 드러나듯이, 이 책에 수록되어 있는 개성적인 단편들을(도무지 공통점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하나로 이어주는 말은 ‘재즈 시대’다. 

재즈 시대는 미국의 꿈결 같은 호황기를 일컫는 용어로, 제1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세계 대공황 직전까지 10년이라는 짧디짧은 기간을 가리킨다. 제1차 세계대전 후 급격한 산업화로 유례없는 경제적 번영을 누린 미국 사회에서는 파티와 춤, 술로 이어지는 사교계가 화려하게 꽃피웠다. “하얀 플란넬 양복, 축음기를 타고 흐르는 재즈 음악, 로맨틱한 아르데코의 유행”(※옮긴이의 말), 그리고 무엇보다 신여성 플래퍼(Flapper)의 등장. 플래퍼는 이렇게 묘사된다. “짧은 단발머리, 팔다리가 드러나는 헐렁한 미니드레스, 진한 화장, 폭음, 줄담배, 자유연애”(※역시 옮긴이의 말)를 즐기는 매혹적인 ‘모던’걸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속의 단편들은 물질의 풍요로움이 개인의 정신적인 가치관을 압도했던 재즈 시대의 화려한 풍경들을 스케치한다. 그 풍경들은 거의 발랄하고 경쾌하게 그려지지만, 그 풍경 속의 인물들은 물질적인 향락의 사치를 주도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휩쓸린다. 돈과 부, 그로 인한 명예와 성공을 지향하는 남자들은 모던한 아름다움으로 유혹하는 플래퍼를 중심으로 부나비처럼 몰려들지만, 그곳에 실제로 있는 것은 덧없는 허망뿐이다. 파티가 끝나면 모든 꿈이 사라진다. 

표제작인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에서, 벤자민 버튼은 육체도, 정신도 모두 노인으로 태어나 아기로 죽는 운명을 타고났지만 그리 비운의 주인공은 아니다. 명문가에서 기함할 만한 출생 이력을 지니긴 했어도 그만하면 한평생 호시절을 누렸다 하겠다. 쭈글쭈글한 노인에서 건장한 청년으로 나이 들면서 좌절을 몰랐던 그가 다시 왜소한 아이로 더 늙어가면서 그 좌절을 잠시 맛봤지만 정신도 어려져 점점 아무것도 모르는 행운을 누린다. 그는 단지 자신이 느끼는 대로 인생의 순간순간을 즐기면 되었다. 급기야 자신이 점점 젊어지면서 그토록 아름다웠던 아내가 늙고 초라해 보이면 아내를 떠나면 되었다. 하지만 내가 중심이었던 인생의 화려한 파티가 끝나고 나면 내가 외면했던 가족의 몰이해와 냉대, 그리고 모든 기억의 상실만 남는다. 

하지만 물질적인 호사스러움조차 결국은 덧없음을 깨달아도 내 생애를 안락하게 보좌해 주고 화려하게 꾸며줄 부를 꿈꾸지 않기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늘 화려한 부와 성공을 열망했던 피츠제럴드의 갈망이 「리츠칼튼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에서 극대화되어 나타난다. 캐럿 단위로 계산하는 것이 무의미한, 리츠칼튼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 원석 덩어리 기슭에 각종 보석들과 금은으로 치장된 호화로운 저택이 들어서 있을 정도니, 이 단편에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사치가 구현되어 있다. 보석보다 유리구슬이 더 진귀한 곳이니 더는 할 말이 없다. 하지만 굳건한 부의 성채를 지키기 위해 그들이 치른 대가는 그들이 누린 행복을 압도하여 질식시킨다. 그리고 황홀하지만 위태롭기 그지없는 그들의 파티가 끝난 자리에는 무엇도 남아 있지 않다. 마치 그 모든 것이 신기루였던 것처럼. 

「메이데이」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나 「리츠칼튼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에 비해 지극히 현실적이다.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다양한 인간 군상의 메이데이를 어지럽게 펼쳐 보인다. 그들 가운데 고든 스터렛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예일대생으로 촉망받는 엘리트 화가였지만 전쟁으로 남루해진 고든은 부와 성공 대신 가난의 기색이 찌들자 더 이상 친구도, 연인도 남아 있지 않은 냉혹하고 매몰찬 현실을 깨닫고 자신의 파티를 끝내는 쪽을 선택한다. 눈부신 샹들리에 아래 환락의 여흥은 고든에게는 마지막 비루한 파티였다. 

그럼에도 피츠제럴드는 재즈 시대의 낭만을 간직한다. 「오, 적갈색 머리카락 마녀!」에서 매혹적인 카리스마를 자유분방하게 뿜어내는 팜므파탈, 캐럴라인은 ‘문라이트 퀼’이라는 서점에서 성실하고 우직하게 일하며 평생을 보낸 남자, 멀린 그레인저의 아름다운 환상이다. 지극히 평범하고 지루한 그의 인생에 꿈결 같은 순간들이 있었다면, 그것은 모두 캐럴라인과 잠시 스친 시간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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