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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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를 좋아해서 후속작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이번에도 프레드릭 배크만이 괴팍한 인물이 등장하는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들고 찾아왔다.

 

할머니가 손녀에게 들려주는 판타지(에서 슬쩍한) 이야기들이 액자 구성처럼 들어가는데,

많은 이야기들 가운데 179쪽에 등장하는 '싫다고 말할 줄 알았던 소녀' 이야기가 소설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갈등 없이 사이좋게 지내려고 '싫다'라는 말이 금지되었던 나라에

'싫다고 말할 줄 알았던 소녀'가 나타나

'싫다'라는 말로 그 나라의 권력을 무너뜨렸다, 는 이야기인데.

 

그러니까, 갈등은 나쁜 것이 아닌 거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인 세계에서 갈등이란 너무나 당연히 발생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갈등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문제인데,

어른들의 세계에선 효율을 중요하다보니 (이런 표현이 소설에 나온다)

갈등 자체가 일어나지 않게 봉합하려는지 모르겠다.

 

갈등은 중요하다. 갈등을 통해 타인을 이해하게 된다.

할머니는 책도 많이 읽고 똘똘한 손녀가 글줄이나 읊는 헛똑똑이가 되지 않기를 바랐는지 모르겠다.

책만 읽을 것이 아니라, 사람도 읽으라고 편지 전달이라는 미션을 내렸나보다.

엘사는 미웠던 사람들을 이해하게 된다. 미웠던 사람들을 더는 미워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

 

갈등은 중요하다.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는지는 더 중요하다.

그리고 그 열쇠는 제목에 있는지 모르겠다.

마지막 장을 덮고, '싫다고 말할 줄 알았던 소녀' 뿐 아니라

'미안하다고 말할 줄 알았던 할머니'가 있었다는 걸 기억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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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이 가는 책들만 정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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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 1~9 완간 박스 세트 - 전9권- 아직 살아 있지 못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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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
사사키 아타루 지음, 송태욱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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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가 된 부인
데이비드 가넷 지음, 이지은 옮김 / 문파랑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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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소설이지만,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준다.
데이비드 가넷과 안젤리카 가넷, 화가 바네사 벨과 던컨 그랜트, 블룸즈버리 그룹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 읽으면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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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알고 있다
르네 나이트 지음, 김효정 옮김 / 북플라자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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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은 미스테리 소설이다.

책의 표지를 보면 카메라 조리개가 한 여성과 아이를 피사체로 담으려고 하는데,

이 책의 중요한 소재가 몇 장의 사진인 점을 반영한 디자인으로 보인다.

구성을 보자면 한 장씩 교차해서 화자가 바뀌는 방식은 더 이상 신선하지 않지만,

그 구성을 스피디하게 활용한 면은 높이 살만하다.

아마도 극작가 출신이라는 경력이 속도감에 반영된 것이 아닐까 짐작하게 된다.

 

여기서부터는, 미리니름 주의

 

원제 disclaimer 는 상품에 붙는 주의문을 말하는데,

아마 작중 또 하나의 소설인 <낯선 사람> 의 안내을 뜻할 것이다.

 

'등장인물 중 살아있거나 세상을 떠난 특정 인물과 닮은 사람이 있다면 모두 우연일 뿐이며...'

 

하지만 <낯선 사람>의 작가는 특정 인물을 지칭하려는 의도로 소설을 썼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20년전 어떤 사건에 대한 복수 의도가 있었고,

그에게 복수심을 일으킨 것은 몇 장의 사진과 죽은 아내의 메모였다.

그가, 그리고 그가 접근했던 사람들이 사진 속의 인물의 표정을 읽는 방식이 변화하는 데서

이 작품의 반전이 싹튼다고 할 수 있다.

 

직사각형의 작은 사진 한 장을 보고 우리는 그 속의 인물과 정황을 쉽게 안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자신의 해석에 일말의 의심도 같지 않고?

번역서의 제목은 '누군가는 알고 있다' 이지만,

타인의 일을 안다고, 진실이 자기 손에 있다고 자신있게 말하기 전에 

한 번 더 의심하고 한 발 뒤에서 조망해야 한다는 것이 작가의 메시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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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
호시노 미치오 지음, 이규원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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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작가 김남희씨가 `책 읽는 밤`이라는 자리를 마련한 적이 있다. 그 자리에 대해 한국일보 칼럼에 적기도 했다. 거기 내가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한 권씩 손에 들고 있던 책이 바로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 였다. 김남희 씨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쓴 책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호시노 미치오의 이름을 들어 알고는 있었는데, 읽는 건 처음이었다. 같이 참석한 P가 내 대신 책을 주문해주었는데 배송이 생각보다 늦어지는 통에 책을 한 줄도 읽지 못하고 모임에 나갔지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김남희 씨가 꼽은, 혹은 참석자들이 꼽은 인상적인 꼭지를 선별해 한 사람이 소리내어 책을 읽었다. 누군가는 낭독 소리에 맞춰 시선을 글 위에 올렸고, 누군가는 온전히 소리에 집중하며 머릿속으로 이미지를 그렸다. 호시노 미치오의 글은 많은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힘이 있었다. 사진을 함께 실어서가 아니라, 글로 묘사하는 솜씨도 탁월하다는 뜻이다.

내가 이 책에서 뽑은 키워드는 `관계`이다. 좀더 부연하자면, 자연과 인간의 올바른 관계. 아마 책의 첫 부분에 등장하는 밥 율의 영향일는지 모르겠다. 그는 관계를 구체적으로 언급하니까. 그 외에, 고래 턱뼈를 바다로 돌려보내거나 무스의 머리 가죽을 숲으로 돌려보내는 행동들도 자연과의 관계 안에서 자연을 지배하는 것이 아닌 그 순리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모습들을 보여주었다.

모임에서 미처 못 읽었던 꼭지들까지 얼마전에야 마저 완독할 수 있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어짜면 그저 작은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그 작은 존재들이 이 자연의 관리자이자 지배자를 자처하고 있지만, 순리를 거스르는 행보의 끝이 과연 아름다운 결말에 이를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한계를 솔직하게 인정하지 못하는 세상 풍경속에서, 한계를 받아들이고 조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다시 한 번 이 세상의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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