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내용이다 했더니 아예 같은 내용이었다. 《대화》에 실린 대담에 법정스님 열반 후 최인호 작가가 길상사로 문상을 다녀온 소회가 담긴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만 추가된 책이 《꽃잎이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네》다. 새로이 읽으면서 밑줄 그은 부분을 서로 비교해보니 겹치는 데가 별로 없다. 새로운 고민과 관심사를 반영하는가 싶다. 

법정
용서라는 말에는 어딘지 수직적인 냄새가 나요. 비슷비슷한 허물을 지니고 살아가는 중생끼리 누가 누구를 용서할 수 있겠어요. 용서라기보다는 서로가 감싸 주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관용 정신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개인적인 갈등이나 집단적인 대립도 이 관용 정신에 의해서 극복될 수 있습니다. 관용은 모성적인 사랑의 극치라고도 할 수 있어요.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최 선생께서는 용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최인호
...(중략)...
저는 `내가 미워하고 용서할 수 없는 저 사람이 하느님으로부터는 용서받은 존재이다`라는 것을 발견하는 일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용서라고 봅니다. ...(중략)... 그런데 여기에는 `나같은 사람도 하느님으로부터 용서받을 수 있는 존재로구나`라고 깨닫는 일이 전제가 되어야 합니다. 그게 바로 기독교에서 얘기하는 회개이겠지요. 뉘우침이 전제되었을 때 `나 같은 사람도 용서받았고 내가 미워하고 증오하는 저 사람도 용서받은 존재이니 서로 미워해서는 안되겠구나`라고 깨달을 수 있는 겁니다. 이때 우리에게 용서의 기쁨이 다가올 수 있죠. 이건 가능한 얘기입니다.

157~162쪽

법정
... 소수를 위해서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는데, 그건 행복일 수가 없어요. 행복에는 윤리가 전제되어야 해요. 저 혼자만 잘산다고 해서, 저만 맑고 투명한 시간을 누린다고 해서 행복이 될 수 없거든요. 남들이야 어찌되었든 아랑곳하지 않는 행복이란 진짜가 아니에요.

어지러울수록 깨어있으라 - 시대정신에 대하여
113쪽

법정
참된 지식이란 사랑을 동반한 지혜겠지요. 반면 죽은 지식이란 메마른 이론이며 공허한 사변이고요.

최인호
네, 스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참된 지식을 얻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요.

법정
우리에게 필요한 건 냉철한 머리가 아니라 따뜻한 가슴입니다. 따뜻한 가슴으로 이웃에게 끝없는 관심을 갖고, 그들의 일을 거들고 보살피는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박학한 지식보다 훨씬 소중하지요. 하나의 개체인 나 자신이 전체인 우주로 확대될 수 있어요. 그리고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냉철한 머리보다는 따뜻한 가슴으로 - 참 지식과 죽은 지식
135~1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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