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정도 책을 손에 들지 못했다. 어머니는 무릎에 인공관절을 넣는 수술을 하고 한달째 병원에 계신다. 앞으로 한달을 더 병원에 계실 예정이다. 작가가 어머니를 만나러 요양원을 가듯 나 역시 며칠에 한번 병원을 찾는다. 물론 울 엄니는 치매는 아니지만. 휠체어에 앉은 엄마랑 옥상에 올라가 바람을 쐬고, 엄마가 부재중인 집에서 식물같이 지내는 아부지 흉을 좀 보고, 엄마가 돌보던 길고양이들의 근황을 전하고, 거동 불편한 병실 아줌니들의 잔심부름도 좀 하다가 돌아온다. 집에서 보던 엄마와 병실에 앉아있는 엄마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확연히 눈에 띄는 흰머리, 맛없는 병원밥에 대한 밥투정, 시간과 날씨에 대한 무감각... 귀가할 때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틈사이로 보이는 배웅해주는 엄마 모습을 보면 그렇게 심란할 수가 없다고, 동생이 말했다. 나도, 그러하다.

이 책을 읽으며 오늘도 병원 침상에서 뒤척이고 있을 엄마와 함께, 이십여년전에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났다. 할머니는 치매였다. 치매엔 착한 치매와 나쁜 치매가 있다는데, 할머니는 나쁜 쪽이었다. 할머니를 모시고 살던 숙모님은 자주 도둑년으로 몰렸다. 작고 힘도 없는 분이었는데 그렇게 분노증세가 솟을 땐 혼자선 도저히 막을 수 없을 정도였다. 치매를 앓은 기간이 상당히 길었는데, 나는 그때의 할머니가 기억나지 않는다. 마치 일부러 지운 듯. 내가 가진 할머니의 기억은 모조리 내가 아주 어린아이였을 때 뿐이다. 속바지 주머니에 꿍쳐둔 진득해진 알사탕을 쥐어주던, 재일교포였던지라 일본 전래동화 모모타로 이야기를 들려주던 그 할머니. 치매로 기억이 희미해진 할머니를 지키던 숙부와 아부지 심정이 어땠을지는 전혀 알지 못한다.

아부지가 나이가 들면서 건망증이 점점 심해지는데, 동생과 나는 혹시나 싶어 걱정이 되었다. 가족력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직소퍼즐도 사고 치매예방에 좋다는 걸 줄기차게 권했더니 아부지가 스트레스를 받으신 거다. 혼자 병원에 가서 치매 검사를 받고 오신 것. 문제 없다는 소견을 듣고 오신 뒤에야 그 사실을 우리에게 털어놓으셨다. 다분히 원망조로. 당신은 아직 괜찮으시다고. ㅎㅎ

가끔 상상한다. 부모님이 치매를 앓는다면, 내가 치매를 앓는다면. 기억이 희미해지고 순서가 뒤죽박죽이 되면 그걸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나는, 우리는, 괜찮을까. 이 책은 귀여운 필체 덕인지 그것도 나름으로 다행스러운 지점이 있다고 말해주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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