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헤더가 몇 주 동안은 자기 집 남는 방에서 지내도 되니 거기서 앞으로 뭘 할지 생각해 보라고 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친절한 제안이었다. 나는 시카고가 좋았다. 시카고의 추위가 시카고의 익명성이 나는누구든 될 수 있었다. 컨버스 스니커즈를 신고 탄산화 생성물이 약간 포함되어 있는 듯한 까끌까끌한 보도를 따라 걸었다. 나는 폴짝 뛰었다.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바람둥이가아니라, 우울증 환자가 아니라, 우주적 정의가 실행되는 대상이 아니라, 고향에 행복한 가정이 있는 사람이. 그러나 헤더가 남자친구와 시내로 외출한 밤, 도시의 자주색 불빛이 창으로 쏟아져 올 때면 나는 그모든 것의 현실성을 무시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곤 했다. 내 인생에 생긴 공백을 내가 품은 희망의 빛이나를 더 따뜻이 데워줄수록 점점 더 차가워지기만 하는 그 공백을 말이다. 그래서였다. 나는 절박했다. 단순하게 말하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책에서 망해버린 사명을 계속 밀고 나아가는 이 일을 정당화하는 그 정확한 문장을 찾아내는 것이 내게는 절박했다.
나는 내가 희망을 품는 데 가장 도움이 되는 일을 하기로 했다. 술을 마시는 것. 레드와인이든 맥주든 위스키든 상관없었다. 나는 여전히 시카고에 머물러 있었다. 시카고에 온 지 두 달이 지나고 있었다. 어느덧12월이었다. 나는 프리랜서로 어떤 과학 블로그에 글을 쓰고, 할 수 있는 한 많은 라디오 대본을 써 보냈다. 귀뚜라미의 폭력에 관한 글을 보내고, 인간의 폭력에 관한 글, 진드기의 폭력에 관한 글을 보냈다. 헤더와 나는 매일 저녁 요리하고 영화를 보고 때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시간을 채웠다. 나는 모든 활동에 알코올음료를 꼭 하나씩 끼워 넣었고, 거기에 하나를 더, 또 하나를 더 끼워 넣었다. 아무 근거 없이 흡족함을 느끼는 건 아주 기분 좋은 일이었다. 나는 나의 웃음을 내 미소를 만들어주는 샘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이튿날 아침잠에서 깨면 역시나 세상은 더욱더 황량하게 느껴졌고, 물론 내 얼굴을 더욱더 부어서 정떨어져 보였지만, 나는 그냥 저녁이 되기를, 그 모든 걸 다시 탄산 거품이 터질 듯 보글보글 활기차게 만들 수 있게 될 그 시간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에이브러햄 매슬로, 에릭 에릭슨 같은 영향력 있는 심리학자들은 자기 기만을 정신적 결함이자 시각에 생긴 문제여서 치료로 교정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20세기가 기운차게 달려가는동안 임상심리학자들은 이상한 일들을 목격하기 시작했다. (중략) 기만이라는 용어는 긍정적 착각이라는 중립적 표현으로 바뀌었다. 1980년대 말에 이르자 약간의 자기 기만은 강한 정신력에 더 유익하다는사실이 널리 받아들여졌다. (중략) 현실에 대해 건강한 태도를 취하는 관점이 바뀌면서 심리학자들은 인간으로 산다는 건 가혹한 운명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우리는 세상이 기본적으로 냉담한 곳이라는 것을잘 알고 있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성공은 보장되지 않고, 수십만명을 상대로 경쟁해야 하며, 자연 앞에서 무방비 상태이고, 우리가 사랑한 모든 것이 결국에는 파괴될 것임을 알면서도 이렇게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작은 거짓말 하나가 그 날카로운 모서리를 둥글게 깎아낼 수도 있고, 인생의시련 속에서 계속 밀고 나아가도록 도와줄 수도 있으며, 그 시련 속에서 가끔 우리는 우연한 승리를 거두기도 한다.
오싹했다. 그 잔인성과 무자비함이 그 추락의 무지막지한 깊이와 파괴적 광란의 크기가 토할 것 같았다. 내가 모델로 삼으려 했던 자는 결국 이런 악당이었던 것이다. 자기 자신과 자신의 생각에 대한 확신이 너무나 강한 나머지 이성도 무시하고 도덕도 무시하고, 자기 방식이 지닌 오류를 직시하라고 호소하는 수천명의 아우성, ‘나도 당신과 마찬가지로 인간이요. 이 말도 무시해버린 남자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것일까. 숨어 있는 보잘 것 없는 것들에 몰두하고 관심을 기울이던 그 상냥했던 소년이 어떻게 바로 그 숨어있는 보잘 것 없는 존재들을 기꺼이 말살하려는 남자가 된 것일까. 그의 이야기 중 어느 지점에서 변한것일까. 그리고 왜. 데이비드의 정서적 해부도를 쫙 펼쳐놓고 볼 때, 가장 눈에 띄는 원흉은 그 스스로 상당히 자랑스러워 했던 두툼한 낙천성의 방패가 아닌가 싶다. 데이비드는 자기가 원하는 것은 다 옳은 것이라고 자신을 설득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쓴 루서 스피어는 그가 자기 자신에게 갖는 확신과 자기 기만과 단호함이 세월이 흐를수록 더 강화되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나는 살면서 내 인생의 많은 좋은 것들을 망쳐 버렸다. 그리고 이제는 더이상 나 자신을 속이지 않으려 한다. 그 곱슬머리 남자는 결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나를 아름답고 새로운 경험으로 인도해 주지 않을 것이다. 혼돈을 이길 방법은 없고 결국 모든 게 다 괜찮아질 거라고 보장해주는 안내자도 지름길도 마법의 주문 따위도 없다. 자. 이렇게 희망을 놓아버린 다음에는 무슨 일을 해야 하지? 어디로 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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