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여성적인 동양이 남성적인 서양을 만났을 때
이옥순 지음 / 푸른역사 / 1999년 2월
평점 :
참 자극적인 제목이다.
동양은 여성적이고, 서양은 남성적이라는 것. '여성적인 건 순종적이고 수동적이면서 감성적이며 연약한 존재라는 것, 남성적인 건 역동적이고 능동적이면서 이성적이며 강한 존재' 라는 이념이 바로 영국이 인도를 지배하기 시작할 무렵인 빅토리아 시대에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을 먼저 인식해야 한다. 지금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성의 영역에서 이분법적 사고관을 강조하는 사람이 있다면 구시대적 발상을 지녔다며 몰매를 맞을런지 모르겠지만, 빅토리아 여왕 당시의 영국에선 전-혀 이상하지 않았던 것이 성을 이분법으로 나누는 것이였다.(마치 우리나라 조선시대 처럼)
그리고 이러한 영국의 남성성을 강조하기 위해 그 상대적 타자가 필요했으니.!그것이 바로 인도였던 것이다. 1등이 빛나려면 2등부터 꼴지가 있어야 하고, 흰색이 돋보이려면 주변 바탕의 검정색이 있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국 자신의 남성성을 강조하기 위해선 자신들이 여성적이라 규정지어 놓은 인도가 있어야 했던 것이다. 당시 영국은 차의 수요가 급증하여 중국으로의 엄청난 은이 유출되고 있었다. 이에 인도를 통한 중국/영국/인도의 삼각 무역이(일명 Triangle Trade)시작 되었다. 은의 유출로 인한 재정의 보충을 인도에서 충당하며 영국은 인도와의 관계에서 정치적 개입을 하기 시작하며 점차적으로인도를 자신들의 식민통치 하에 두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식민통치를 정당화 하기 위한 방편으로 영국이 취한 정책은 여러가지가 있었다. 영어를 학습시키고, 종교를 전파하고, 인도의 전통 관습인 사티나 여아살해, 과부의 재가금지, 일부다처제 등의 제도를 철폐시키려 하였다. 물론, 이러한 제도가 생겨나게 된 인도 고유의 문화와 사회적 풍토는 이해되지도, 이해되려 하지도 않았다. 곧, 인도는 미개하고 여성처럼 약하고 감성적 존재이므로 남성적 영국이 인도를 구제해 줘야 한다는 것으로 인도 식민통치에 정당성을 부여한 것이다.
책에는 영국 제국주의의 피지배자였던 인도의 반응도 재미있게 나타나 있다. 영국의 남성성을 좇아 자신들도 남성적으로 변하길 원하는 모습들이 여러가지 예시를 통해 나타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인도 그들이 2세기에 걸친 긴 식민 통치를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모두 서양에 의해 잃어버렸다는 것은 아니다. 인도인들은 서구의 것을 그대로 수용하며 받아들이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강하게 반대하며 배척했던 것도 아니다. 그들은 중립적 모습을 지켜가며 나름대로의 새로운 인도를 재 창조해 낸 것이다. 서양이 규정지어 놓은 남성적 서양도 아닌, 여성적 동양도 아닌 자신만의 정체성을 지닌 인도로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