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그림자 1 잊힌 책들의 묘지 4부작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정동섭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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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장을 펴는 그 순간부터 덮는 그 순간까지, 아니 그 이후 지금까지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가면 실제로 잊혀진 책들의 묘지가 있을 것만 같은 착각에 빠져버리게 되었다. 바르셀로나의 회색빛 안개낀 도시의 느낌을 몸에 닿을 듯 표현해 낸 작가의 글귀 하나하나가 잊혀지지 않는다.

 원래 성장소설류는 별로였는데 중간의 지겨운 부분만 뺀다면 최근 읽은 소설 중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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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적인 동양이 남성적인 서양을 만났을 때
이옥순 지음 / 푸른역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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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자극적인 제목이다.

  동양은 여성적이고, 서양은 남성적이라는 것. '여성적인 건 순종적이고 수동적이면서 감성적이며 연약한 존재라는 것, 남성적인 건 역동적이고 능동적이면서 이성적이며 강한 존재' 라는 이념이  바로 영국이 인도를 지배하기 시작할 무렵인 빅토리아 시대에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을 먼저 인식해야 한다. 지금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성의 영역에서 이분법적 사고관을 강조하는 사람이 있다면 구시대적 발상을 지녔다며 몰매를 맞을런지 모르겠지만, 빅토리아 여왕 당시의 영국에선 전-혀 이상하지 않았던 것이 성을 이분법으로 나누는 것이였다.(마치 우리나라 조선시대 처럼) 

 그리고 이러한 영국의 남성성을 강조하기 위해 그 상대적 타자가 필요했으니.!그것이 바로 인도였던 것이다. 1등이 빛나려면 2등부터 꼴지가 있어야 하고, 흰색이 돋보이려면 주변 바탕의 검정색이 있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국 자신의 남성성을 강조하기 위해선 자신들이 여성적이라 규정지어 놓은 인도가 있어야 했던 것이다. 당시 영국은 차의 수요가 급증하여 중국으로의 엄청난 은이 유출되고 있었다. 이에 인도를 통한 중국/영국/인도의 삼각 무역이(일명 Triangle Trade)시작 되었다. 은의 유출로 인한 재정의 보충을 인도에서 충당하며 영국은 인도와의 관계에서 정치적 개입을 하기 시작하며 점차적으로인도를 자신들의 식민통치 하에 두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식민통치를 정당화 하기 위한 방편으로 영국이 취한 정책은 여러가지가 있었다. 영어를 학습시키고, 종교를 전파하고, 인도의 전통 관습인 사티나 여아살해, 과부의 재가금지,  일부다처제 등의 제도를 철폐시키려 하였다. 물론, 이러한 제도가 생겨나게 된 인도 고유의 문화와 사회적 풍토는 이해되지도, 이해되려 하지도 않았다. 곧, 인도는 미개하고 여성처럼 약하고 감성적 존재이므로 남성적 영국이 인도를 구제해 줘야 한다는 것으로 인도 식민통치에 정당성을 부여한 것이다.

 책에는 영국 제국주의의 피지배자였던 인도의 반응도 재미있게 나타나 있다. 영국의 남성성을 좇아 자신들도 남성적으로 변하길 원하는 모습들이 여러가지 예시를 통해 나타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인도 그들이 2세기에 걸친 긴 식민 통치를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모두 서양에 의해 잃어버렸다는 것은 아니다. 인도인들은 서구의 것을 그대로 수용하며 받아들이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강하게 반대하며 배척했던 것도 아니다. 그들은 중립적 모습을 지켜가며 나름대로의 새로운 인도를 재 창조해 낸 것이다. 서양이 규정지어 놓은 남성적 서양도 아닌, 여성적 동양도 아닌 자신만의 정체성을 지닌 인도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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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을 그린 남자 - 디에고 리베라 - 혁명적 예술가 1
마이크 곤잘레스 지음, 정병선 옮김 / 책갈피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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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기 불과1분 전까지만 해도 프리다는 알아도 디에고 리베라는 몰랐었다. 멕시코 근대가 낳은 벽화의 거장인 디에고 리베라를 아직도 모르고 있었다니. 책을 읽는 내내 디에고의 대단함에 마음속으로 박수를 치고, 지금부터서라도 알게된 것이 다행임을 느꼈다.

 에스파냐의 정복이 300년간 지속되었고 그 후로 100년 뒤 멕시코 혁명이 일어났다. 혁명동안 디에고는 외국에 나가있었는데, 혁명이 끝나고 국가에서 예술가를 불러들여 귀국하게 된다. 벽에는 멕시코의 역사가 그려졌고, 민중들은 외세로부터 짓밟힌 과거의 기억을 통해 서로 단결하게 된다. 벽화운동이 멕시코에서 가진 의미와 영향력은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20세기 라틴아메리카에 나타난 인디헤니스모운동의 일환으로서도 톡톡히 제 역할을 했던 것이다. 

 책이 얇고 글도 큼지막 함에도 불구하고 이전까지 멕시코의 역사에 대해서는 깊은 관심이 없었던지라 처음 읽을때는 모르는 것들이 많아 다소 읽기 힘들었다. 하지만 뒤이어 멕시코 혁명이나 벽화운동, 혹은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에 관련된 서적을 접하고 이 책을 다시 읽어보니 디에고의 생애를 전후로 하여 멕시코 역사를 간결하게 요약해 놓은 책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디에고의 벽화를 보면 가끔은 섬뜻한 기분이 들기도 하는데 아마도 우리네의 과거 또한 이들과 다를 것 없는 식민통치의 기간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인디오들과 우리의 피부색은 다르지만  뼈아픈 기억을 함께 공유한다는 것에 있어서 디에고의 벽화가 그저 하나의 벽화로만 보이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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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의 연애
심윤경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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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의 연애』라 해서 정말 단순하게 이현이란 사람이 연애하는 얘기이거니, 했었다.  하지만 그 연애가 보통의 연애가 아니라면? 여기서 보통이란 말을 쓰는 것은 좀 우습지만 '이현'이란 남자가 만나 사랑하게 된 여자 '이진'은 보통의 여자들과는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아니, 보통의 사람들과도 확실히 동떨어져 있다고 말해도 좋겠다.

왜? 그녀는 영혼을 기록하는 여자이니까.

  사각사각, 이진의 두 팔꿈치와 평범한 대학노트를 올려놓으면 더이상 빈 공간이 없는 좁은 책상에 앉아 하루종일 연필로 끝없는 영혼의 이야기를 기록 하는 것이 그녀의 일이다. 하루종일, 아니 그녀의 평생을 기록만 하며 살아가는 이진에게서 기록이 지니는 의미는 상당한데, 그것은 우리가 마치 밥을 먹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듯이 그녀는 기록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리고 그녀에겐 기록 이외의 모든 것들이 무관심의 영역이다. 그저 자신이 영혼을 기록하며 살아가는 것을 침해받지 않는다면 다른 욕심이나 불만을 갖지 않는 여자이다. 욕심이나 불만을 갖지 않는 것을 지나쳐 사랑이나 미움, 분노와 같은 여타의 감정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여자이다.  이현은 이러한 그녀를 사랑했으니..

 영혼을 기록하는 별난 여자 '이진'과 영혼을 기록하는 여자를 사랑했던 별난 남자 '이현' 의 별난 사랑 이야기.프롤로그를 읽는 첫장부터 이 둘의 별난 연애 이야기에 빠져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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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이레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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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슨 책을 볼까 고민을 하던 중 제목이나 표지나 별로 내키진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끌렸던 소설이다. 한 두편의 리뷰를 보고 오랜만에 가슴 아릿한 소설을 보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도 이유라면 이유. 한동안 이런류의 소설 보다는 그저 경쾌하고 밝고 개운한 소설들만 찾아왔었는데 오랜만에 만난 묵직하고 차분하면서도 아름다운 소설이였다.

조용한 새벽녘에 읽어서 였는지 만나는 글귀 하나하나가 가슴을 저릿저릿 짓눌러왔다.  '내 기억은 80분 밖에 지속되지 않는다.' 라는 글귀는 나올 때마다 가슴이 아려 왔고 눈두덩이가 뜨거워 지는 것이 반복되었다. 

'수학이나 숫자' 를 떠올리면 딱딱하고 차가운 느낌이 나는 법인데 수학을 전공한 박사에게서는 그저 오래되어 퇴색해버린 낡은 종이가 떠오른다. 원래는 빳빳한 모양의 네모난 종이였지만 어느순간부터 색도 바래고 시간이 지나 네 귀퉁이가 둥글게 변해버린 모습이다. 오래되어 빳빳한 힘은 없어져 버렸지만 오래된 멋을 간직한 종이와 같은 느낌을 주는 박사. 낡고 초라한 외모 속에서 뿜어내는 수학에 대한 정열과 그 정열로 뭉쳐진 세사람의 우정과 사랑은 실로 아름답다는 표현 밖에는 할 수가 없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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