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집
손원평 지음 / 창비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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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의 작가 손원평의 첫 번째 소설집인 <타인의 집>. 장편소설만 써오던 저자의 첫 단편소설집이라 너무나 뜻깊었다. 단편소설만의 특징이겠지만, <타인의 집>은 유독 강렬한 내용들이 담겨있었다.



몽환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상황과 타인이지만 결국 함께하는 '믿음'이 총 여덟 편의 내용에 스며들어 있었다. 지나치게 솔직한 문장들에 뼈 때리는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아무래도 '상자 속의 남자'였다. <아몬드>의 짧은 속편인데, 아몬드를 읽은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눈치챌 수 있는 주인공이다. 이 이야기를 통해 '선택'의 옳고 그름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가장 마음에 남았던 건 '아리아드네 정원'이었다. SF장르였으며, 아무래도 가장 현실적인 주제 '고령화'에 대한 이야기였다. 과연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인간의 수명이 150세로 늘어난 시대를. 이토록 긴 노후를 위해 젊을 때 준비한 돈이 점점 떨어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니 참 아찔하기도 했다. 아마도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각기 다른 상황들과 사람들이 모인 여덟 편의 단편소설집이었지만, 한 호흡으로 길게 읽은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을 통해 타인을 쉽게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더욱 들었다. 또한 저자의 다른 책들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영화는 대체로 ‘집‘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묘한 전율을 느꼈던 것 같다. 그 전율은 척추 끝에서 시작해 등줄기로 뻗어올라가 머리를 달구는 동시에 팔뚝에 쫙 소름이 돋게 했다. 그 말은 그것이 지칭하는 뜻을 모두 담기엔 너무 깔끔하고 짧았다. - P68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런 건 시작이 될 수 없었다. 편입과 적응 그리고 순응으로 이어지는 생활 속에 내 삶을 맡기고 싶지는 않았다. 논쟁은 점차 본질에서 벗어났고 세상은 우리의 시선을 조금씩 비틀어놓더니 종내는 서로를 끝 간 데까지 이기적인 요즘 여자와 시대에 뒤떨어진 한심한 한국 남자로 결론짓게 만들었다. - P149

이제 규칙적이고 안전하며 정가겡 맞춰진 삶이 펼쳐질 것이다. 주인은 그 정각을 어김없이 지킬 것이다. 그래야만 가게는 매일 같은 시간 열릴 수 있으리라. 그래야만 열리지 않은 책방의 비밀스러운 시간을 혼자 누릴 수 있으리라. 그러므로 그는 기필코 그 시간을 지킬 것이다. - P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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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Chaeg 2022.7.8 - No.78, 합본호
(주)책(월간지) 편집부 지음 / (주)책(잡지)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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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든 진정한 월간지 <책 Chaeg>. 이번 합본 78호의 주제는 '어느 독서가의 여행 가방'이다. 벌써부터 낭만이 흐른다. 독서가의 여행가방엔 무엇이 담겨있을까?



여행을 가면 무조건 책 한 권을 가져가고, 여행지에서 무조건 책 한 권을 사는 사람으로서 이번 호의 주제가 참 좋았다. 특별한 여행사가 된 <책 Chaeg> 78호는 정말 다양하고 획기적인 여행상품을 소개한다. 여행상품의 테마는 바로 '소설 여행'! - 베트남, 러시아, 체코,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모로코, 미국, 멕시코, 호주, 일본, 북극 그리고 저 멀리 지구인을 위한 화성까지 - 작가와 예술가들의 시선을 그대로 이어받아 여행할 수 있었다.


(여행상품으로 소개된 책들 중 읽어본 책도 있고, 무심코 넘겼던 책들 중 글을 읽어보며 다시 생각이 바뀌게 된 책도 있었다. 그중 제일 읽고 싶은 책은 바로 <파리에서 길을 잃다>와 <북극 허풍담 1~4>이다.)  


그 어떤 주제보다도 '여행'을 통해 얻는 영감은 작품의 세계관을 넓혀주고 대중들에게 더욱 신선한 상상과 메시지를 전해주는 거 같다. 월간지 <책 Chaeg>은 원래부터 다양한 지식과 감성 그리고 힐링을 선물해왔다. 이번 78호는 나 자신을 깊게 유영할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해주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여행이 아닐까?


다음 호가 너무나 기다려진다. :)


*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다른 생활방식을 경험하는 일은 우리 마음을 활짝 열어줍니다. 타지에서 바라보고 생각한 무언가가 친숙한 장소로 다시 돌아온 뒤에도 끝없이 연결되어 새로운 생각을 탄생시키지요. 그래서 우리에게는 여행이 필요합니다. - P25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파리를 찾고 있다. 이들의 발걸음이 찾는 것은 유명한 건축물과 풍경이지만, 실은 오랜 시간 도시의 곳곳에 쌓인 사연들과 흔적들을 눈과 마음으로 더듬는 것과 다름없을 테다. - P86

혹독한 상황을 맞닥뜨리면 누구나 고독과 죽음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고립감이 일상이 되고 순간순간 죽음의 위협을 모면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선뜻 밝은 이야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들은 이러한 고난과 역격에 좌절하지 않고 유쾌하게 이겨낸다. 바로 여기서 그들의 멋진 모험담이 탄생한다. -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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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광의 여인, 비비안 마이어
가엘 조스 지음, 최정수 옮김 / 뮤진트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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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 마이어'에 관한 책과 다큐멘터리가 많아졌다. 카메라와 사진 찍는 걸 좋아한다면 그녀를 모를 수 없을 것이다. 그녀가 진정으로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떻게 사진을 배우게 되었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실 너무나 적다). 그녀는 오로지 사진만을 찍었을 뿐이었다.



<역광의 여인, 비비안 마이어>는 시중에 판매된 비비안 마이어의 책들보다 좀 더 특별하다. 저자가 바로 프랑스 시인이자 소설가인 '가엘 조스'이기 때문이다. 비비안 마이어의 모계가 프랑스인이었기에, 저자는 그녀의 뿌리인 프랑스에서 흔적을 찾았다고 한다. 뉴욕에서 태어나 프랑스와 뉴욕을 오갔고, 행복과 암울을 넘나들었던 비비안 마이어. 그녀의 사진가적 재능은 이때 피어났다고 볼 수 있다.


그녀는 보모 일을 직업으로 삼아 스스로 돈을 벌었고 그 순간에도 카메라를 놓은 적이 없다고 한다. 가정의 불화와 폭력 속, 의지할 곳이 없었기에 그녀는 오로지 사진을 찍으며 자신만의 삶을 이어나갔던 것이다. 그녀는 그 새로운 삶에서 (카메라로) 공감과 유머 그리고 사랑을 담았다. 또한 그녀는 비평가이기도 했는데, 영화와 예술 그리고 건축 등 모르는 것이 없었으며 비범하고 지적인 여인이었다고 한다. 그녀의 시선과 담은 작품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더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책엔 그녀의 작품이 실려있지 않다. 그래서 그녀의 작품을 기대했던 사람들에게는 조금 아쉬움이 남을 수 있다. (아직도 그녀에 관한 미스터리는 완전히 풀리지 않았다) 하지만, <역광의 여인, 비비안 마이어>는 그녀에 대해, 그녀의 삶에 대해, 그녀의 작품에 대해 그 어떤 책보다도 더 친절히 이야기해주며, 그녀가 어떤 심정이었을지 유추해볼 수 있게 해 준다. 작품보다도 작가에 더 비중을 둔 것이다.


아직도 수수께끼로 남은 그녀의 작품과 삶. 그녀의 작품에 대해, 그녀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는 날이 오길 바란다. 비비안 마이어, 그녀는 진정한 역광의 여인이다. :)


*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그녀의 아낌 없는 시선은 소외된 사람들, 아무도 원하지 않는 사람들,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고 간신히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을 향한 비범하고도 혼란스러운 공감을 통해 기적들을 양산했다. 그녀는 그들에게 자신의 유일한 재산을, 자신의 보물을, 시선을 선물했다. - P39

오랜 세월에 걸쳐 그녀는 셀 수 없이 많은 수수께끼 같은 자화상 사진들을 통해 놀라운 솜씨로, 자신에 대해 만족하지 않고 특별히 심사숙고해서 구성한 프레임과 상황 설정을 통해 자신의 얼굴, 자신의 실루엣, 자신의 시선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 가장 아름다운 여자가 보이는 아름다운 거울 같은 것은 없다. 수수께끼, 그 자신들로만 작품을 구성하는 그 초상 사진들. 그녀가 세상에 존재했다는 증거들, 자취들, 체류의 표시들. - P129

그녀 개인의 삶에서는 모든 것이 소멸과 붕괴 주위를 회전하지만, 사진가로서 그녀가 찍은 사진들 하나하나는 순간의 힘을 기념하려는 저항할 수 없는 호소 속에서 사랑하려는, 삶의 풍부함을 말하려는 몸짓을 잘 보여주고 있다. - 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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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는 사람
베른트 하인리히 지음, 조은영 옮김 / 윌북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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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생물학자인데, 신기록 보유의 마라토너라고도 하면 사람들은 믿을 수 있을까? '현대판 소로'라고 불리는 저자 베른트 하인리히는 80세에 100킬로미터 달리기를 목표하고 있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달리고 또 달렸다. '뛰는 시간'이 곧 '생명의 힘'이라는 그에게 '달리기'란 어떤 의미일까?



숲을 관찰하고 달렸던 그의 80년 러닝 일지는 정말 대단했다. 울트라마라톤 대회 우승부터 쉬지 않고 24시간 달려 응급실에 가기도 했으며, 다양한 마라톤 대회에 참여하며 벌어졌던 에피소드까지 쉴 틈 없이 몰아쳤다. 단지 달리는 이야기뿐만 아니었다. 평생을 관찰해온 생명체에 관련한 연구결과까지 그의 이야기는 모든 게 다 하나로 이어졌다.


막 달리다가도 자신의 눈에 들어온 생명체를 보며 잠시 쉬어가는 그의 모습이 그려지기도 했다. 생물학자들에게는 영웅 같은 존재라는데, 이 책을 통해서는 친근하게 다가올 수밖에. 생물학자답게 연구의 결과를 확인해야 하기에 자신을 실험 대상으로 삼기도 했다. '달리기를 많이 하면 타고난 한정된 심박 수를 빨리 소모하는 셈이니 일찍 죽을 수도 있다'라는 말에 의문을 품어 직접 시도했다. 또한 어떤 음식들이 달리기에 영향을 주는지 알아보기 위해, '초콜릿 아이스크림 - 맥주 - 올리브유 - 이유식 - 크랜베리 주스- 꿀 등등 몸소 연구 결과를 알려주기도 했다.


달리기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공감할 내용이지만, 자연과 생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더욱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경이롭고 아름다운 생명 그 속에서 마주하는 자연과의 알맞은 조화와 공존까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의 현대판을 알고 싶다면 꼭 읽어보시길 바란다. :)


*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발달 과정의 과도기가 되면 대부분의 동물이 부모에게 거리를 두고 흩어지면서 탐험을 통해 자신의 지평선을 넓혀가지만 자기 종족이 적응한 서식지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이에 비해 인간은 선택과 행동을 하는 데 마음이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좀 더 유동적이다. - P75

나는 열심히 훈련해왔고 달려야 할 길 외에 지켜야 할 약속이란 없었다. 어차피 그만둘 거라면 그게 언제든 차이는 없었다. 중요한 것은 다른 주자들을 이기는 것뿐이었기에 더 이상 계속 가야 할 이유가 없었다. - P168

큰까마귀는 공기를 가르며 화살처럼 곤두박질치고 검은머리솔새는 바람에 맞서는 대신 바람을 타고 날고 싶어 한다. 우리가 출발 신호를 기다렸다 내달리듯 바람의 신호를 기다리는 것이다. - 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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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레슨 인 케미스트리 1~2 - 전2권
보니 가머스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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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조트. 그녀는 독학으로 학사 과정을 마치고 연구소에서 '진화 이전' 분자의 비밀을 연구하는 화학자이다. 1955년대의 여자가 화학자라니.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이다. 연구소 동료들은 그녀를 무시했지만, 오직 단 한 사람 노벨과학상 후보 캘빈 에번스는 그녀를 알아보았고 그들은 '영구적인 화학 결합'을 이뤄냈다.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들은 오직 과학을 위해 결혼 없는 동거를 했으며, 캘빈이 사고로 죽자 비혼모가 된 엘리자베스는 연구소에서 쫓겨나게 된 것이다. 그녀는 연구를 포기할 수 없었다. 그녀는 이미 화학자이기에 집 부엌을 개조해 실험실로 만들고 연구를 이어갔다. 그러던 중 그녀는 홀로 딸을 키운 지 6년째 되던 해에 <6시 저녁 식사>라는 TV쇼의 MC가 된다.   


"매일 저녁 6시, 우리는 요리나 화학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이 될 수 있는지를 배워요." 엘리자베스는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슈퍼스타가 되었다. 사실 이 쇼는 존폐 위기를 겪기도 하는데 솔직하고 거침없는 그녀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쏟아냈기 때문이다. 그녀의 인생은 굴곡이 많았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당당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녀의 화학적 지식과 이야기의 결합은 동시대 여성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녀들은 야간 학위과정에 등록하거나 의대 예비과정에 입학하기도 했으며, 그녀들로 인해 스포츠 조정 클럽이 북적거리기도 했다.


소설이지만, 실제 있었던 이야기 같아 몰입감이 엄청났다. 저자는 올해 예순다섯 살 생일을 맞은 노장이라는데 고개가 끄덕여질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데뷔작이라니!) 저자는 '엘리자베스 조트'를 통해 전 세계 여성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아주 잘 전해지고 있다.) 우리가 실수를 해도 인생은 계속해서 흘러간다. 그 파도에 적응하기 위해 이젠 용기를 내볼 때가 된 거 같다. :)


*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엘리자베스는 평생 이런 감정을 느끼며 살아왔다. 자신이 이룬 일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행동에 따라 규정되는 삶을 이어온 것이다. - P85

"나는 과학자입니다. 그게 나다운 모습인데요." - P351

"어쩌면 여러분의 결혼은 공유 결합에 더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그런 분들은 운이 좋은 겁니다. 둘이 서로 합쳐지면 더 좋은 것이 만들어지는 강점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 P71

"자신에 대한 의심이 들 때마다, 두려움을 느낄 때마다 이것만 기억하십시오. 용기는 변화의 뿌리라는 말을요 화학적으로 우리는 변화할 수 있게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그러니 내일 아침 일어나면 다짐하십시오. 무엇도 나 자신을 막을 수 없다고. 내가 뭘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 더는 다른 사람의 의견에 따라 규정하지 말자고. 누구도 더는 성별이나 인종, 경제적 수준이나 종교 같은 쓸모없는 범주로 나를 분류하게 두지 말자고. 여러분의 재능을 잠재우지 마십시오, 숙녀분들. 여러분의 미래를 직접 그려보십시오. 오늘 집에 가시면 본인이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그리고 시작하십시오."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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