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행복한 이유 워프 시리즈 1
그렉 이건 지음, 김상훈 옮김 / 허블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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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창, 김초엽 등 동시대 작가에게 영향을 끼친 마스터피스'라는 소개만으로 이 책은 보장되었다. 한번 페이지를 넘긴 이상 멈출 수가 없는 SF소설집 <내가 행복한 이유>. 테드창을 넘어 '그렉 이건'을 알게 되었으니 이제 웬만한 SF소설은 심심할 정도가 되었다.



어려운 하드 SF'라는 선입견 때문에 한국에 소개되지 않았다는 데 이제라도 저자의 작품들을 읽어볼 수 있어 무척 기뻤다. 30년 전 저자가 다룬 주제는 현시대에 무척 어울리는 주제이며 앞으로 먼 미래에서나 볼법한 기술까지 포함되어있었다. '자궁에서 보존된 혼수상태의 뇌', '수천 명의 데이터로 만든 의뇌' 등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것들로 가득한 이야기에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었다.


단순히 독특하고 재미난 SF소설이 아니었다. 진정한 '사랑과 행복'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저자는 더 깊이 색다르게 정의를 내린다. (그렉 이건, 그는 진정한 이야기꾼이다) 첨단 과학기술 속에서 우리의 인간의 존엄성과 정체성은 다양한 영향을 받게 된다. 그 미래를 미리 들여다본 느낌이라 내가 상상하고 있던 미래는 파괴된 기분이 들 정도이다.


흥미로우며 재미도 재미지만 이야기들을 하나둘 읽어갈수록 '살아가야 할 이유는 무엇이며, 인간의 존재와 인간의 자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사랑과 행복이 가득한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곰곰히 생각해보게 된다. 


SF소설을 읽으며 깊게 삶을 성찰해볼 줄은 몰랐다. 그렇기에 더욱 애착가는 소설집 <내가 행복한 이유>. 저자의 더 많은 작품을 한국어로 읽어볼 날이 꼭 오길 바란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불변의 미래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 간에 한 가지 확신하고 있는 일이 있다. 여전히 나라는 존재는 지금까지 줄곧 미래를 결정해 왔고, 앞으로도 줄곧 결정할 과정의 일부라는 점이다. 내게 그보다 큰 자유는 없다. 그보다 큰 책임도. - P71

내가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 어떤 관점에서 보자면 과거 28년 동안 나는 1마이크로초마다 계속 말살당하지 않았던가. ... 조금만 더 기다리면 영원을 상속할 수 있는데, 비참하기만 했던 지난 두 달 동안의 경험을 상실한다고 해서 뭐가 그리 아쉽단 말인가? 영원을 상속하는 것은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의 모든 것을 정의하는 것은 바로 그 비참하기만 했던 두 달이므로. - P261

"... 우리 모두는 그 이상의 것들을 보는 방법을 터득해야 합니다. 우리 조상들이 가지고 있었던 능력을, 잃어버린 힘을 다시 획득할 때가 온 겁니다. 신성한 환영과 악마와 천사를 볼 수 있는 힘. 바람과 비의 정령을 볼 수 있는 힘. <기쁨의 길>을 걸을 수 있는 힘을." - P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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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이 돌보는 세계 - 취약함을 가능성으로, 공존을 향한 새로운 질서
김창엽 외 지음, 다른몸들 기획 / 동아시아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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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터지기 전까지 '돌봄노동'은 존중받지 못한 노동이었으며, 관심조차 받지 못한 노동이었다. 과연 지금은 어떨까? '사회 서비스' 개념을 넘어선 '돌봄'에 대해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 책이 아니었다면 그냥 넘어갔을, 아니 알지 못했을 '돌봄'에 관한 현실적인 이야기는 놀라웠다. '그저 누군가를 돌봐주는 것'만으로 돌봄이 취급되어왔지만, 돌봄은 더 많은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총 열 가지의 키워드 - 질병, 장애, 권리, 노동, 의료, 교육, 젠더, 혁명, 이주, 탈성장 - 을 통해 보여주는 돌봄은 변화된 우리의 삶을 위한 새로운 질서를 제시했다.


'긴급 돌봄 사업', '돌봄SOS센터', '24시간 돌봄서비스' 등 코로나19로 인해 수많은 돌봄 서비스가 생겨났고 이를 통해 '돌봄 공백'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성공한 케이스도 있었지만, 실패한 케이스가 더 많았던 한국 사회의 돌봄 서비스. 이전까지 돌봄에 관한 가치와 가능성을 낮게 봤기 때문이었다. 물론 제도와 복지를 빠르게 개선하고 있지만, 사회적인 인식부터 달라져야 하는 게 우선이다.


인종과 계급 그리고 젠더 속에서의 돌봄의 가치가 이 책에 나온 방안을 토대로 바뀌길 바란다. 앞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수록 '돌봄'이 더욱 필요하고 중요해질 테니 말이다. 돌봄은 이 사회에 필요한 더 많은 것을 품고 있기에 그 가치가 꼭 우선시되어야 한다.


'경쟁에서 연대로, 독립에서 의존으로, 성장에서 돌봄으로!' 돌봄이 돌보는 세계가 되길 희망한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가 원할 수밖에 없는 게 정의로운 세상이라면, 어느 것도 타자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라는 가야트리 스피박 말처럼, "돌봄을 공기처럼 들이마실 수 있는"(조한진희) 사회를 함께 만들어가기 위해 힘을 모았으면 한다. 시대의 마지막 게토ghetto로 남아 있는 정신장애와 그것을 유지시키는 권력에 대한 공동의 투쟁은 지금 이곳에서 대안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 P56

이윤과 자본 축적의 가능성이 클수록 더 많은 자본과 자본가가 시장에 진입하고, 그 결과 시장은 커지며 상품화 경향은 강화된다. 많은 자본이 수익성 있는 요양병원이나 요양원 사업에 진출했다. 이는 다시 제도와 규범, 문화를 통해 장기요양서비스시장을 키우는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 P180

한국을 포함한 북반구의 경제선진국은 자국민의 돌봄받을 자격을 보장하기 위해 점점 더 많은 수의 외국인을 불러들이고 이들의 돌봄 능력에 의존하면서 사회를 유지한다. 하지만 정작 돌봄 이주자는 돌봄받을 자격이 없는 존재로 여겨진다. 코로나와 같은 전 지구적인 전염병 상황에서도 한국사회는 방역과 재난 구호체제에서 이주자를 배제하며 이들에게서 돌봄받을 자격을 빼앗았다. - P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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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타르트와 홍차와 별들
파니 뒤카세 지음, 신유진 옮김 / 오후의소묘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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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하게 계속 읽어보게 되는 그림책 <레몬 타르트와 홍차와 별들>. 저자 '파니 뒤카세'의 이야기가 곧 나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라고 이해되는 순간 이 그림책은 마법 같은 향연으로 다가오게 된다. 



(저자를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분명 독특한 그림과 제목에 이끌려 이 그림책을 집었을 것이다. 그리고 페이지를 넘길수록 엉뚱하지만 사랑스러움을 가득 담은 캐릭터들을 볼 것이다. '무스텔라'와 반려견 '몽타뉴', 옆집의 '쉐리코코'와 '할머니' 그리고 '꼬마 마법사'까지. 하지만 이야기는 왠지 모르게 '황당함'을 안겨준다. '이 이야기가 맞는건가?' 싶어 다시 한 번 읽어보게 될 것이다. 그림도 더 꼼꼼히 살펴보게 되고 강조된 단어들도 더 깊이 사유해볼 것이다. 그리고 깨닫게 되는 모험의 진가 - :)


무스텔라가 '자신만의 안전지대'를 넘어 새로운 세상과 존재를 만나는 과정 속 '기쁨과 우정'을 통해 우리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우리도 무스텔라처럼 우리만의 안전지대를 넘어 더 큰 세상, 더 큰 우주를 만나야 하는데, 막상 용기가 나지 않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무스텔라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쫓았고, 꿈꾸던 곳에서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기회를 살린 무스텔라!)


엉뚱한 전개 속에 담긴 삶의 지혜가 아름답고 독특하게 빛난 그림책 <레몬 타르트와 홍차와 별들>. 요 며칠 아름다운 그림과 무스텔라의 용기에 마음이 몽글해진 날들이었다. 파니 뒤카세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길. :)


*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무스텔라는 황당한 이야기가 나오는 어마어마한 책을 읽을 때면 제일 좋아하는 장면을 펼쳐놓고 오래 바라보곤 했어. 꼬마 마법사가 반짝이는 운석을 타고 우주를 건너는 장면이었지.

"찾으러 가자!" 무스텔라가 말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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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문장들 - 작가의 젊은 날을 사로잡은 한 문장을 찾아서
김연수 지음 / 마음산책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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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이 흘러도 청춘을 빛이 난다'는 것을 알려준 책 <청춘의 문장들>. 출간 후 수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이 책을 지금이라도 만날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했다. '청춘'이라는 단어와 조금씩 멀어지고 있는 이 시점에서 저자의 문장은 지나온 나의 청춘의 모든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이번 새로운 개정판에는 저자가 새로 쓴 산문 세 편을 더하고 <청춘의 문장들 +>에 실린 산문 일부도 옮겨왔다고 한다. 초판본 전체의 문장도 다듬었다고 하니 그 전의 문장들이 조금은 궁금하기도 했다. 저자만의 청춘이 가득 담긴 이야기였지만 읽다 보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이야기들은 '우리의 청춘'과 닮아있다고. 


저자가 수많은 감정과 상황을 겪은 청춘을 표현하는 방법은 바로 '한시, 하이쿠, 대중가요 등' 다양한 문장을 통해서였다. 저자의 글과 문장이 만나니 지나온 청춘이 새록새록 그려졌다. 사랑과 우정, 불안함과 예민함 등 모든 감정이 담담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문득 떠오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를 사로잡은 문장들은 무엇일까? 밑줄 친 이 책에도 있고, 아끼는 책에도 있겠지만 과연 나의 '젊은 날을 사로잡은 한 문장'이 무엇일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아직은 한 문장만 고르기 무척 어려워 다섯 문장 정도 적어보았다. 시간이 지나면 그 문장이 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된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내가 뭔가를 쓰게 됐다면 그와 비슷한 이유 때문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해, 이십대 초반의 나는 시간의 흐름을 견딜 만큼 강한 몸을 지니지 못했다. 그런다고 왜 이렇게 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바로 그런 이유로 나는 소설가가 됐다. - P69

사실은 지금도 나는 뭔가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이상하기만 하다. 그 모든 것들은 곧 사라질 텐데,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 여전히 나는 사춘기. 앞쪽 게르를 향해 가만-히 살핀다. - P158

내 인생이 반짝반짝 빛났던 순간 역시 마찬가지다. 사회적 성공이나 대중의 주목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었다. 오히려 그런 것들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곳에 있었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캄캄한 어둠 속에 나는 있었다. 현재가 막막하니 미래도 없었다. 더 이상 소설을 쓸 형편이 아니었는데, 그런 상황에서 나는 좀 더 나은 것을 생각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덕분에 몇 글자 더 쓸 수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내 인생이 조금 반짝거린 건. -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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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툰 시즌2 : 3 : 삶의 모든 순간은 이야기로 남는다 비빔툰 시즌2 3
홍승우 카툰, 장익준 에세이 / 트로이목마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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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간 70만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가족생활만화 <비빔툰>. 그 중 '시즌2'는 가족의 이야기를 넘어 새로운 이웃들과의 이야기를 담았다. '최고의 맛을 내는 비빔밥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감정도 비벼지고, 사건도 비벼지고, 인생도 비벼지면서' 이야기가 더욱 풍성해지는 <비빔툰 시즌2 : 3>을 통해 희로애락 인생을 엿볼 수 있었다.



만화를 보며 즐거웠고, 글을 읽으며 사유할 수 있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을 그대로 담았기에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이전 이야기를 보지 못했어도 괜찮았다. 등장인물들의 과거와 현재 이야기 모두 들려주기 때문이다. - 재택근무와 재택수업으로 자꾸 부딪히는 정보통 가족, 딸의 미대 진학을 위해 투잡, 쓰리잡 뛰는 직장인, 주한미군 아빠와 한국인 만화가의 미스터리를 캐는 원어민 영어교사 등등 - 언뜻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지만 결국 우리와 너무도 닮은 그들의 모습 때문에 재미와 감동을 한 번에 느낄 수 있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이야기 또한 영향을 받았다. 등장인물들은 강하게 버티며 희망을 품었고, 꿋꿋하게 삶을 이어나갔다.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모두를 대변하는 느낌이었다. 인생이란 너무도 복잡해 설명하기 어렵고 한 감정으로만 표현할 수 없지만, 두 작가는 120편의 카툰과 24편의 디렉터스 컷 그리고 24편의 짧은 이야기를 통해 유쾌하고 따스하게 풀어냈다. ('비빔툰'이라는 단어와 걸맞게 한쪽으로 치우친 것이 아닌 조화로운 책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카툰은 '87. 내가 가는 길이'였다. 8칸 안에 글과 그림으로 삶의 지혜가 담기는 것이 참 매력적이었다. 

'비빔툰 시즌2'의 이야기는 계속된다고 하니 어떤 이야기로 어떤 리얼한 생활로 그리고 어떤 삶의 지혜로 돌아올지 너무나 기대된다. :)


*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위험해졌다고 해도, 세상이 갑자기 우리를 삼키려 든다고 해도,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은 어떻게든 오늘 하루를 이어갈 뿐이다. - P17

우리는 끊임없이 나를 전하고자 한다. 우리 모두는 결국 혼자라는 것을 알면서도 누군가와 연결되기를 바란다. 내가 남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것처럼 남도 나를 알아채기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래도 누군가가 다가와 주기를 바라곤 한다. 때로는 바로 곁에 있는 이에게서 몇 만 년의 거리를 느끼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누군가에게 닿고 싶은 것이다. - P108

가족이란 서로에게 특별하지만 그 특별함을 서로에게 강요하기 시작한다면 타인의 시선보다 더 지독한 무언가가 되어버린다. 적어도 집에서는 평화롭다면 좋겠다. 적어도 가족끼리는 타인의 시선에서 해방되면 좋겠다. -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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