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뿐일지 몰라도 아직 끝은 아니야 - 인생만화에서 끌어올린 직장인 생존철학 35가지
김봉석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학교를 다니며, 취업을 위해 소위 말하는 '스펙'을 쌓는다.

나는 이런 준비가 되어 있는 지원자라고, 한껏 자신이 가진 역량을 뽐낸다.

수준 높은 외국어 구사, 각종 툴 사용 가능, 해외 경험, 사회성 만렙….

하지만 수많은 능력 중, 사회생활을 하며 '잘' 지낼 수 있는 능력은 없는 경우가 많다.

상사가 무능할 경우, 거래처가 나를 미치게 만들 경우, 사장이 말만 잘하고 행동력은 0인 경우….

다양한 상황에 우리는 직접 부딪치며 이겨내는 수 밖에 없다.

신입딱지를 떼도 우리는 울며 회사를 다닌다.

마음과 뇌에 굳은 살이 박혀 어지간한 일에 무감해질 때까지 속상해하고, 힘들어하며 적응한다.

새로운 직장에 들어가면 재시작이다. 회사로부터 받는 스트레스에서 영영 벗어날 수 없을 것처럼 느껴진다.

그럴 때 읽어보면 좋은 책이 있다. 김봉석 작가의 <1화뿐일지 몰라도 아직 끝은 아니야> 다.

기자로 일했던 김봉석 작가는 현재 영화평론가이자 문화평론가로 일하고 있다.

글 쓰는 재주를 살려 기자를 시작했다는 작가는 총 11개 회사를 다니며 쌓은 팁을 공유한다.

사회초년생부터 일을 좀 해봤다, 하는 경력자까지.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이 에세이에 담겨 있다.


□ 만화 속 대사와 회사 생활

"과거는 상관없어. 아프긴 하겠지. 하지만 둘 중 하나야. 도망치든가, 극복하든가." <라이온 킹>

이 책의 재미있는 점은, 글이 시작하기 전에 꼭 애니메이션/만화 속 대사가 나온다는 것이다.

작가가 직접 경험했던 회사 이야기, 자신이 거기에서 대응했던 방법 등을 서술하면서 자연스럽게 만화 속 대사를 녹여 넣었다.

예를 들어, <1부 전투력: 물러서야 할 때 vs 싸워야 할 때> 중 <강철 멘탈을 뚫는 차은 언제든 들어온다. 그럼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에선 이런 식이다.

회사에서 좋은 상사를 만난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완벽한 상사는 없으며, 다양한 인간들 사이에서 상처를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런 상사를 만났을 때, 상사가 나에게 상처를 줄 때. 어떻게 해야할까? 무작정 퇴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럴 때마다 퇴사를 한다면 어디도 다닐 수 없을테니까.

저자는 무조건 이길 필요도, 그렇다고 일단 참고봐야 한다고 하지도 않는다.

다만, 지금까지 당했던 수모(?)는 모두 잊고, 앞으로 자신이 해야할 일을 침착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한다.

자신이 회사에서 버텨야 하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고 한다.

"과거는 상관없어. 아프긴 하겠지. 하지만 둘 중 하나야. 도망치든가, 극복하든가." 와 참 잘 맞아떨어지는 이야기다.

저자가 겪은 직장생활을 보며 공감하는 것도 좋았지만, 에피소드마다 등장하는 만화 속 대사가 재미를 더해줬다.

대사를 통해 대충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도 생각해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더러 좋은 대사는 '다음에 이 만화를 봐야지'하는 생각도 들게 했다.

​□ 3부 구성으로 알차게 전하는 직장인 생존철학

직장인이 갖추어야 할 3력 전투력 / 방어력 /결단력

전투력, 방어력, 결단력.

세 단어만 보면 어딘가 싸움을 하러 나가야만 할 것 같다.

그러나 이 세 가지는 직장인이 갖추어야 할 3개의 힘이다.

용사만 갖추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직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직장인도 이 힘들을 갖추어야 한다.

전략적으로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해 갖추어야 할 전투력

매일 내 멘탈을 깨부수는 회사에서 내 정신건강을 지키기 위한 방어력

인간관계부터 "이 다음"을 정하기 위해 필요한 결단력

이 힘들은 책의 큰 챕터다. 각각 1부, 2부, 3부를 담당한다.

온갖 좋지 않은 회사를 통해 배운 물러설 때와 싸워야 할 때를 일러주는 1부 전투력

어떤 태도로 회사를 다니고, 동료를 대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 그로부터 익힌 내 정신을 다스리는 법을 다룬 2부 방어력

어떻게 해도 완벽할 수는 없는 회사 인간관계와 진로 결정을 하며 저자가 했던 고민과 생각을 담은 3부 결단력

이렇게 보니 알차게 구성된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나는 1부 전투력을 읽으며 많은 공감을 했다.

나는 고작 2개의 회사만 다녀봤지만, 그 속에도 다양한 인간관계가 있었고, 악질 보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매일 공수표를 날리 듯 허황된 미래만 다짐하는 보스 아래서 일하는 건 정말 끔찍한 일이었다.

묘한 가스라이팅으로 그곳을 벗어날 수 없게 만들곤 했으니 말이다.

어디 그뿐인가? 젊은 꼰대도 있었다. 사석에서는 언니라고 부르라며 자꾸 내 영역을 침범하는.

그 당시엔 말 그대로 병아리 신입이라, 어쩔 줄 몰라하며 스트레스만 받았던게 떠올랐다.

지금이라면 그렇게 나를 방치하며 괴로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을 읽었다면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멘탈이 무너진 채 일하지 않았을 것이다.

■■



알고 있다. 사회초년생일수록 회사생활이 더 어렵게 느껴진다는 것을.

무조건 YES를 외쳐야만 할 것 같고, 내가 이렇게 바보였던가 고민이 된다는 것을.

이해하고, 공감한다. 나 역시 그랬고, 지금도 그렇기 때문이다.

첫 직장을 다닐 때, 퇴근하고나면 "회사에서 멘탈 털릴 땐 이렇게 해보세요" 라고 이야기 해주길 바랐던 적이 있다.

가루가 된 멘탈을 추스를 수 없어 스포츠 애니메이션을 보며, 저 사람들은 저렇게 열정적으로 사니 나도 지치지 말아야지 다짐했던게 떠오른다.

지금 회사에서 괴롭다면, 혹은 이직이나 진로 변경을 앞두고 답답한 사람이 있다면.

<1화뿐일지 몰라도 아직 끝은 아니야>를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공감할 수 있는 문장 엿보기 👀

🖋 누군가는 실패라고 하지만 수많은 프롤로그들이 있었기에 지금 제대로 된 1화를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 퇴근하고 나서 회사가 남긴 찌꺼기 같은 감정, 회사에 대한 생각이 하나도 안 남는 직장이라면 나는 영원히 다닐 수 있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설의 순간들 - 박금산 소설집
박금산 지음 / 비채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4년간 글을 썼다. 특히, 소설을 쓰는 걸 좋아했다. 대학 시절 매일 밤을 불태워 글을 썼다. 당연히 미래의 나는 글로 밥을 먹고 살 줄 알았다. 슬프게도 현재 나는 글이 아닌 것들로 먹고 산다. 그러나 아직도 나에겐 소설에 대한 애정이 있고 글쓰기에 대한 작은 열정이 남아있다. 오늘은 작법서 같은(?) 소설 한 편을 소개하려 한다. 박금산 작가의 <소설의 순간들>이다.


  2020년 3월에 나온 이 따끈따끈한 신상 도서는, 소설이란 어떻게 구성되고 진행되는가가 궁금한 이들에게 매우 친절한 책이다. 흔히들 알고 있듯, 모든 글에는 기-승-전-결이 있다. 이를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로 알고 있는 이도 있을 것이다. 평소 읽어 본 소설은 모두 이 형식을 따르고 있었다. 사실 우리가 읽는 모든 글이 이 형식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소설의 순간들>은 조금 달랐다. 발단-전개-절정-결말로 이루어져 있기는 한데, 그게 다 한 편의 단편 소설로 나뉘어 있다.


  발단과 전개, 절정, 결말이라는 목차에 다양한 소설들이 수록되어 있다. "발단" 카테고리 아래엔 "발단"까지만 보여주는 단편소설이 있다. 흥미를 돋우고 이제 글이 어떻게 진행될까 궁금해질 찰나에 소설이 끝난다. "발단"의 역할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소설인 셈이다. 전개, 절정, 결말 카테고리도 동일하다. "절정"에 해당하는 소설들은 처음부터 눈을 사로잡으며 '자 이제 어떻게 해결이 될까!' 싶을 때 끝이 난다. 처음 읽었을 땐 '뭔가 개운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간 완결까지 숨 막히게 치닫는 소설을 보다가, 발단/전개/절정/결말을 따로 쪼개놓은 소설을 보니 익숙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어떤 단편소설은 "절정"에 나왔던 것이 "결말"에도 나오는 식이라 호기심을 채워주기도 했다.


  <소설의 순간들>은 아주 친절한 작법서와 같다. "전개"는 이런 것입니다, 하고 말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스며들듯 알려주는 작법서. 목차를 읽고 수록된 소설을 읽다 보면 '아, 이게 전개구나- 이게 발단이구나.' 하고 알 수 있었다. 글이 쪼개어져 있는 느낌을 받기 때문에 글이 참 애매한 부분에서 끝난다고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이는 상상의 여지를 독자에게 주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이 이후에 어떻게 글이 전개될지 독자 스스로 상상하고 뒷부분을 연결해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에는 흥미로운 소재를 가진 이야기가 가득하다. "강물 속에 커다란 문이 있다"고 말하는 아내, 그녀의 말을 곱씹는 남편. 나 자신의 불륜으로 힘든 사람도 정신 상담을 받는지 질문하는 작가, "모든 선"에 예민한 이웃집… . 다양한 소재 중에서도 가장 내 기억 속에 남은 것은 < 소설을 잘 쓰려면> 이라는 단편이었다.


  나는 4년간 소설을 잘 쓰고 싶어 했다. 아니, 소설에 관심을 가지고 쓰고 싶어 한 것는 중학생 때부터였으니, 거의 10년이다. 나는 약 10년 동안, 어떤 글이 좋은 글이고 어떻게 써야 흥미로운 글을 쓸 수 있는지 고민했다. <소설을 잘 쓰려면>은 소설을 잘 쓰고 싶어 하고, 주변인들에겐 잘 쓴다고 인정받는 한 청년의 이야기다. 그중 내 기억에 남은 문장은 이것이었다.


자질구레한 디테일을 쳐내고 줄기만 남겼을 때 독자의 호기심을 끌 수 있어야 훌륭한 소설이다. -소설의 순간들, 박금산 (56p)


  내가 학부 내내 고민했던 것, 나를 괴롭혔던 것. 내 글은 호기심을 끄는 글일까? 이 고민은 학생이었던 날 며칠 밤을 새우게 하고, 늘 골머리를 썩게 했다. 어떻게 하면 흥미로운 글을 쓸까, 어떻게 쓰면 그들이 이 글을 궁금하게 여길까. 사회생활을 하며 잊고 있었던 치열한 고민이 떠오르는 문장이었다.


  앞서 나는 글의 구성은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로 이루어져 있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이 소설의 목차를 설명한 것을 읽었다면 눈치챘을 것이다. 이 책에는 '위기'가 없다. 왜 위기가 없을까? 이 부분이 궁금하다면 책에 수록된 해설, <소설을 이끄는 소설>을 읽어보길 바란다.


  이야기의 단계가 어떻게 구성되고, 이를 어떻게 해야 잘 이끌어나갈 수 있는지 궁금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일단 글을 써보고 싶기는 한데 어떻게 쓰면 좋을지 고민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 추천한다.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을 때, 어느새 당신에게 소설이 스며들어 있을 것이다.


자질구레한 디테일을 쳐내고 줄기만 남겼을 때 독자의 호기심을 끌 수 있어야 훌륭한 소설이다. - P5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알로하, 나의 엄마들 (양장) 여성 디아스포라 3부작
이금이 지음 / 창비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알로하, 나의 엄마들> 은 일제강점기 시절, 하와이로 간 세 여자의 이야기다. 가난한 양반집 고명딸 버들, 안부잣댁 딸 홍주, 무당의 딸 송화. 딸로 태어나 더 배울 수 없던 여자, 결혼 한 번 잘못 했다가 마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여자, 무당의 딸이라고 무시 당하던 여자. 어느 날 그들의 인생에 "사진결혼"이 들어온다. 신랑 될 사람의 얼굴 사진을 보고, 포와(하와이)로 결혼을 하러 가는 것이다.

삶의 돌파구가 전혀 보이지 않는 것 같았던 그녀들에게 '포와'는 낙원과도 같은 곳이었다. 그들은 새 삶을 살고 싶어 고된 뱃길에 올랐다. 포와로 갈 날을 기다리며 일본에 머물던 그녀들은 반짝반짝 빛이 났다. 누굴 책임질 필요도, 챙길 필요도 없는 그곳에서 버들, 홍주, 송화의 눈은 환한 미래를 향하고 있었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고 했는가. 가난 없이 교육받을 수 있으며, 손가락질하는 사람도 없을 것 같던 포와는 그녀들의 생각과 전혀 달랐다. 인생의 열쇠처럼 느껴졌던 남편들은 할아버지였다. 학식 있고 돈이 있는 것 같았던 그들에겐 아무것도 없었다. 그나마 사진 사기는 당하지 않은 버들 역시 배움의 희망이 꺾이긴 마찬가지였다.

열여덟살 짜리 소녀들은 그곳에서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백인들에게 눈에 띄는 인종차별을 받아도, 남편들이 가정을 지키지 않고 떠나버려도. 그들은 삶을 멈추지 않는다. 상황이 얼마나 최악이든 지켜야 할 자식이 있고, 자신이 있고, 기댈 수 있는 친구들이 있기 때문에.

꿈을 꾸는 여자는 위험하다

"둘 중 하나가 그만두어야 한다면 당연히 딸이었다." 알로하, 나의 엄마들 (11p)

조선에서 여성이란 집안일 잘하고 아들을 낳아 대를 잇는 존재였다. 무언가 가르칠 필요가 있다면 그것은 요리나 바느질이었지 학문은 아니었다. 설사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더라도 포기해야 할 상황이 오면 포기해야 할 0순위는 딸이었다. 요즘 시대야 딸 아들 할 것 없이 가르친다지만, 사실 현재에도 딸의 위치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희생의 위치에 쉽게 오를 수 있는 것은 딸인 경우가 많다. 맛있는 것, 좋은 것, 크거나 더 값어치 있는 것 앞에서 딸은 두 번째(혹은 마지막)이다.

왜 딸에겐 배움이 제한적이었을까? 이는 여성의 역할과 이어진다. 사회에서 여성은 사람이 아닌 도구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학습은 한 사람의 세계를 확장해준다.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다른 꿈을 꿀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알고 있던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 새로운 학문이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은 딸들에게 꿈을 꾸게 한다. 그리고 그것은 집안일과 자손을 늘리는 일에 걸림돌이 된다. 나는 그래서 여성들의 배움이 제한되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사회에서 여성을 스스로 밥벌이를 할 수 있고 생각이 있으며 가정을 지킬 수 있는 한 명의 사람으로 인정을 했다면, 여성으로부터 배움의 기회를 박탈했을까?

집안이 어려워지고, 오빠와 버들 둘 다 학교를 보낼 수 없어 배움의 기회를 양보해야 했던 건 버들이었다. 버들이 학교를 그만두고 집안일을 하는 동안 동생들은 커 학교에 갔다. 모두 남자 형제들이었다. 학교에 보내 달라는 버들을 보며, 나는 나의 외할머니가 떠올랐다. 초등학교에 다니다 말아 집에서 집안일을 배우던 우리 할머니. 아침마다 담장에 붙어서 학교에 가는 아이들을 보며 울었다던 할머니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렇게 배움의 기회를 박탈당했던 나의 할머니는 지금, 누구보다 배움에 열성을 가지고 매일 배우러 다니신다. 춤, 공예, 한글, 노래 교실…. 배우는 것 자체를 즐기는 할머니를 보며 나는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배움의 기회는 주어져야 하고, 누군가를 위한 희생으로 그 자격을 박탈당해선 안 된다고.

해외에서 동양인으로 산다는 것

"버들을 힐끗 본 부인이 얼굴을 찌푸리며 달걀을 빼앗아 바닥에 버렸다." 알로하, 나의 엄마들 (164p)

서구권 사회에서 동양인으로 산다는 것은 퍽 힘든 일이다. 내가 <알로하, 나의 엄마들> 사전서평단에 신청한 이유 중 하나도 이것이었다. 해외에서 동양인으로 사는 설움을 알기에, 더 깊이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이야 인종 차별은 나쁜 것이라는 인식도 있고, 인종차별을 하고 싶더라도 이를 겉으로 티 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절대 없지는 않다) 당장 나만 해도 해외에서 살며 대놓고 하는 인종차별부터 은근한 인종차별까지 다 당해보았다. 당연히 그 서러움은 말도 못 하게 크다.

하물며 <알로하, 나의 엄마들>의 배경은 100년 전이다. 힘이 없어 국민을 지킬 수 없는 나라, 국제적으로는 목소리도 낼 수 없는 나라. 하와이에선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급여도 적으면서 죽어라 일은 열심히 하는 조선 사람들. 그들에 대한 인식이 어땠을지는 쉽게 상상해볼 수 있다. 하올레(백인)집에서 일하면 절대 마당 안으론 들어갈 수도 없고, 그 집 자식이 조선인 자식을 다치게 해도 보상받을 수 없다. 때리며 일해도 아무도 뭐라 할 사람이 없다. 이 암담한 현실 앞에서 얼마나 무력감을 느꼈을지, 소설을 읽으며 속이 참 쓰라렸다.

하올레(백인) 아이가 귀여워 달걀을 건넨 버들에게 아이는 눈을 찢으며 메롱을 한다. 그 아이의 어머니는 인상을 찌푸리며 달걀을 바닥에 던진다. 이 장면 하나로 하와이에서 동양인이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뿐인가? 내 자식 귀한 만큼 남의 자식도 귀하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러나 백인들에게 동양인은 "남"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사건의 발단이야 어찌 됐든, 하올레 아이가 동양인 아이에게 상처를 입힌 것을 항의한 대가는 해고였다. 제대로 된 항의 하나 못하고, 일자리도 빼앗긴 버들이 느꼈을 분노와 설움을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인간에게 급을 나누던 시절. 동양인은 서양인과 다르지 않게 눈코입 팔다리는 똑같이 있으나, 절대 존중은 할 수 없는 존재였다. 급이 낮고, 어딘가 모자란 것 같고, 기차는 탈 수 있지만 자신과 같이 일등석에는 탈 수 없는. 이러한 인식은 현대에도 알게 모르게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그런 보이지 않는 마음의 벽은 존재한다. 여전히 해외에서 사는 이들은 이러한 차별을 온몸으로 느끼며 살고 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소설 내내 등장하는 조선인이기 때문에 받아야 하는 차별과 설움이 섞인 순간들을 보며, 입안이 썼다. 나 역시 인종차별을 당하고 참고 넘겼던 일이 더 많았다. 그 순간에 오는 모멸감과 억울함을, 소설을 읽으면서도 느낄 수 있었다.

함께 손잡고 넘는 파도

"아배 없으면 우떻노? 우리 서이서 키우면 된다. 내, 공부 시켜 주꾸마." 알로하, 나의 엄마들 (316p)

버들, 홍주, 송화의 남편은 모두 그들을 떠난다. 밝은 미래를 꿈꾸며 결혼했는데, 남편들이 세 여자에겐 역경 중 하나가 되었다. 그들은 가정을 산산이 부수기도, 가정폭력으로 몸과 마음을 얼룩지게 하기도, 홀로 가정을 지킬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기도 했다. 수없이 많은 역경 중 남편의 부재란 세 여자에게 가장 큰 파도였다고 생각한다. 좌절하고 넘어지고 빈 껍데기만 남는 순간, 그녀들의 곁에는 항상 친구가 있다. 어진말에서 온 자매들이 있다.

소설 속에서 자식은 삶을 놓을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로 나온다. 하지만 혼자서는 오래 버틸 수 없다. 버들과 홍주, 송화가 큰 파도를 넘기며 오랫동안 삶을 버틸 수 있던 것은 그들 사이의 연대가 큰 작용을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제는 정말 기댈 곳이 없고 홀로 살아야만 한다는 생각이 드는 때. 그때 사진 신부들은 하나로 뭉쳐 거대한 파도를 함께 넘어선다. 서로를 불편해하던 때도 있었으나, 그들은 작게 쌓았던 마음의 담장을 허물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 노력한다. 모두가 모든 자식의 엄마가 되며, 서로가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준다.

여성들이 연대하며 살아가는 세상은 멋졌다. 어려운 이가 있으면 돕고, 함께 일하고, 내 자식 네 자식 할 것 없이 함께 어울려 키우고. 누구 하나 떨어지지 않게 교육을 하고, 서로의 미래가 더 나아지기를 빌어준다. 노동은 전과 다를 바 없이 고되고 힘들지만 왁자지껄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소풍 나온 것처럼 즐겁게" 살아간다. 홀로 버티기만 할 뿐이었던 하루하루가, 어느새 활기찬 삶의 현장이 된 것이다.

조금씩 나아지는 딸의 세상

"내 딸은 좋은 시상에서 내보다 나은 삶을 살아야 한다." (알로하, 나의 엄마들 304p)

이야기 내내 엄마는 딸을 걱정한다. 엄마는 딸이 살아갈 미래를 안쓰러워하고, 본인들보다 나은 세상에서 살기를 간절하게 원한다. 생이별을 하더라도 자식이 나은 세상에 가서 살기를 바라고, 연을 끊는 한이 있더라도 손가락질받지 않고 살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딸들은 조금씩 더 나은 세상을 향해 분투한다.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적지는 않겠지만, 더 넓은 세상으로 훨훨 날아가기를 빌어주는 엄마를 보며 눈물이 났다. 부모라면 당연히 자식이 더 좋은 세상에서 살기를 바랄 것이다. 그렇지만 엄마와 딸, 그들이 온 마음으로 비는 "더 좋은 세상, 더 나은 삶"을 볼 때면 마음 한구석이 저려온다.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지만, 나 역시 그들이 어떤 마음인지 짐작할 수 있다. 내가 바로 그 "내 딸은 더 좋은 세상에 살기를 바라는" 엄마의 자식이기 때문이다.

남들처럼만 살 수 있기를 바라며 딸을 보낸 엄마와 할머니, 손가락질당하지 않고 내 아이가 더 나은 데서 살아 숨 쉴 수 있게 떠난 엄마. 공부가 하고 싶어서 타향으로 떠난 딸,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어 떠나고 싶은 딸. 엄마와 딸은 한 발자국씩, 천천히 앞으로 나아간다. 이 책을 읽으며 좋았던 것은, "엄마"로서의 희생이 강조되지 않아서였다. 한 사람의 여성이 어떤 생각을 하고,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가 설득력 있게 그려진다. 엄마의 희생으로 그려진 더 나은 딸의 삶이라고 표현하고 싶지 않다. 조금 더 잘 살고 싶어 최선을 다해 달린 여성이, 그다음의 여성에게 조금 더 넓어진 세상을 바통 터치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게 조금씩 딸들의 세상은 넓어진다. 비록 그들이 파도에 부딪혀 좌절하게 되더라도, 그래도 그들은 부딪칠 수라도 있길 바라며 날아간다.


오랜만에 막힘없이 술술 읽어내려갈 수 있는 소설이었다. 부산 사투리가 당장 귀에 들릴 것처럼 생생했다. 제목이 <알로하, 나의 엄마들>인 것을 보고 처음엔 '엄마의 희생과 과정의 슬픔'을 볼 것이라 예상했다. 책을 펼치자 그 속엔 강인한 여성들이 있었다.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있는 여자들이 있었다. 분명 활자로 이루어졌는데, 마치 영화를 보듯 몰입감이 굉장했다.

18살의 어린 여성들이 머나먼 하와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하다면,

치기 어린 질투, 정치적인 성향 등 많은 고비를 넘어 여성들이 어떻게 연대하는지 보고 싶다면,

여성 중심 가족은 어떻게 살아가고, 그들이 크고 작은 고비를 넘어가는 방법을 알고 싶다면,

<알로하, 나의 엄마들>을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둘 중 하나가 그만두어야 한다면 당연히 딸이었다. - P11

"아배 없으면 우떻노? 우리 서이서 키우면 된다. 내, 공부 시켜 주꾸마." - P316

내 딸은 좋은 시상에서 내보다 나은 삶을 살아야 한다. - P30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끌림 - Travel Notes, 개정판
이병률 지음 / 달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여행 에세이를 읽는 목적은 다양하다. 여행을 가지 못하는 상황에, 여행하는 기분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고 싶어 읽는 사람이 있고, 본인이 여행을 다녀온 뒤 향수를 느끼고 싶어 읽는 이도 있다. 자신이 다녀온 곳을 다른 이는 어떻게 느꼈을까 궁금해 읽는 이도 있을 터다. 이 외에도 빡빡한 현실에 지쳐 숨을 돌리기 위하여 읽는 사람 등, 여행 에세이를 읽는 이유는 아주 많을 것이다. 수많은 이유 중 공통점을 찾자면, 독자 모두 책 속에 드러난 작가의 시선을 좇고 있다는 것이다. 이병률의 끌림은 무엇보다 작가의 시선이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작가 이병률은 시인이자 방송작가로, 199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좋은 사람들,그날엔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인이기 때문일까. 끌림에는 다른 여행기보다 더 진한 감성이 잔뜩 묻어 있다. 이 책에서 그는 사랑을 이야기하고, 청춘을 이야기하고, 꿈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등, 다소 두서없어 보일 정도로 다양한 주제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길에서 마주친 이들에게 시선을 두고 있고, 아주 작은 것에도 관심을 두고 골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병률의 끌림은 많은 독자로부터 사랑받은 책이다. 책 속에 나타난 작가의 감성이 독자의 마음을 건드렸기 때문일 것이다. 짤막한 글에는 누구나 한 번쯤 느껴보고, 생각했을 일들이 작가의 시선을 통하여 담담하게 이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면 이러하다.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봤음직한 것을 글로 풀어냈고, 글과 함께 배치된 여행 중에 찍은 사진은 함께 어우러져 독자의 마음을 흔든 것이다. 지나가며 생각해본 것을 글로 마주했을 때, 사람들은 더욱 크게 공감한다. 바로 이 점이 끌림이 많은 사랑을 받은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 책이 처음 발간됐을 때는 2005년이다. 이렇게 감각적인 사진과 함께 짤막하고 감수성이 돋보이는 글로 이루어진 여행 수필집은 없었다. 끌림이 나온 이후에, 이와 비슷한 형식을 지는 책이 많이 나오게 되었다. 독자들이 새로움을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이 외에도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이 책이 사랑받은 가장 큰 이유는 위의 두 가지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한다.

여행 에세이를 많이 읽어보진 않았지만, 내가 읽어 본 여행기는 모두 여행 중 에피소드를 통해 자기 생각과 감정을 그려내고 있었다. 그래서 당연히 이병률 끌림역시 에피소드가 가득 담겨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고, 책을 펼치자 보인 감성적인 사진과 짤막한 글은 나를 당황하게 하였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통일된 주제를 찾을 수 없었고, 파편처럼 쪼개진 스토리는 읽는 속도를 더욱 더디게 하였다.

기승전결을 찾을 수 없는 책은 낯설었다. 차례대로 읽을수록 더욱 흐름을 잡기 어려웠다. 어디를 펼쳐도 그 페이지부터 시작할 수 있고, 끝낼 수 있다는 게 책장을 더 넘기기 힘들게 만들었다. 흐름이 끊겼기 때문이다. 책을 여러 번 훑고 나서야 깨달았다. 이 책은 여행 그 자체라는 것을. 여행을 떠나기 전에야 계획을 세울 수 있다. 이 곳에 갔다가, 저곳에 가서 무엇을 먹고, 볼 것이라는 등의 계획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여행을 떠난 후에 그 계획은 무용지물이 돼버리고 만다. 여행에 기승전결은 없다. 언제 무엇이 시작될지 모르고, 끝이 날지 모르는 것이다. 이 책은 여행 자체를 닮아 있었다.

낯선 형식의 책을 보며, 나는 공감할 수 없는 문장들에 책을 읽는 것이 조금은 곤욕스러웠다. 그러나 이 짤막하고 쪼개진 문장에 위로를 받고 힘을 얻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책을 읽게 된 이유가 서평을 쓰기 위함이기 때문에 더욱 읽기 힘들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편안한 마음으로 읽을 때, 이 책의 진가가 발휘될 수도 있다. 또한, 책의 흐름을 중요시하는 개인의 취향 역시 이 책을 힘들게 읽은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여행 자체를 느끼고 싶고 순간순간 꺼내어 볼 수 있는 책을 찾으며 저자의 눈을 통해, 귀를 통해 느끼는 여행기를 읽고 싶은 사람은 이 책에 공감하며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발자국을 따라, 여행의 흐름을 느끼고 싶은 사람이라면 다른 책을 찾아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병률의 끌림이 여행 수필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이 책으로 인하여 여행 수필의 집필 방식이 좀 더 넓어졌고, 독자들은 더욱 다양한 형식의 여행 수필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끌림을 높이 사며, 앞으로도 이병률 작가의 섬세한 감성을 기대하는 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에픽하이 - 7집 99 - 32p 부클릿 + 스티커 + 땡큐레터 + 패밀리카드 + 에픽하이 로고 기타피크
에픽하이 (Epik High) 노래 / YG 엔터테인먼트 / 2012년 10월
평점 :
품절


기다렸어요ㅠㅠ 바로 주문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