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순간들 - 박금산 소설집
박금산 지음 / 비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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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4년간 글을 썼다. 특히, 소설을 쓰는 걸 좋아했다. 대학 시절 매일 밤을 불태워 글을 썼다. 당연히 미래의 나는 글로 밥을 먹고 살 줄 알았다. 슬프게도 현재 나는 글이 아닌 것들로 먹고 산다. 그러나 아직도 나에겐 소설에 대한 애정이 있고 글쓰기에 대한 작은 열정이 남아있다. 오늘은 작법서 같은(?) 소설 한 편을 소개하려 한다. 박금산 작가의 <소설의 순간들>이다.


  2020년 3월에 나온 이 따끈따끈한 신상 도서는, 소설이란 어떻게 구성되고 진행되는가가 궁금한 이들에게 매우 친절한 책이다. 흔히들 알고 있듯, 모든 글에는 기-승-전-결이 있다. 이를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로 알고 있는 이도 있을 것이다. 평소 읽어 본 소설은 모두 이 형식을 따르고 있었다. 사실 우리가 읽는 모든 글이 이 형식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소설의 순간들>은 조금 달랐다. 발단-전개-절정-결말로 이루어져 있기는 한데, 그게 다 한 편의 단편 소설로 나뉘어 있다.


  발단과 전개, 절정, 결말이라는 목차에 다양한 소설들이 수록되어 있다. "발단" 카테고리 아래엔 "발단"까지만 보여주는 단편소설이 있다. 흥미를 돋우고 이제 글이 어떻게 진행될까 궁금해질 찰나에 소설이 끝난다. "발단"의 역할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소설인 셈이다. 전개, 절정, 결말 카테고리도 동일하다. "절정"에 해당하는 소설들은 처음부터 눈을 사로잡으며 '자 이제 어떻게 해결이 될까!' 싶을 때 끝이 난다. 처음 읽었을 땐 '뭔가 개운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간 완결까지 숨 막히게 치닫는 소설을 보다가, 발단/전개/절정/결말을 따로 쪼개놓은 소설을 보니 익숙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어떤 단편소설은 "절정"에 나왔던 것이 "결말"에도 나오는 식이라 호기심을 채워주기도 했다.


  <소설의 순간들>은 아주 친절한 작법서와 같다. "전개"는 이런 것입니다, 하고 말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스며들듯 알려주는 작법서. 목차를 읽고 수록된 소설을 읽다 보면 '아, 이게 전개구나- 이게 발단이구나.' 하고 알 수 있었다. 글이 쪼개어져 있는 느낌을 받기 때문에 글이 참 애매한 부분에서 끝난다고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이는 상상의 여지를 독자에게 주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이 이후에 어떻게 글이 전개될지 독자 스스로 상상하고 뒷부분을 연결해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에는 흥미로운 소재를 가진 이야기가 가득하다. "강물 속에 커다란 문이 있다"고 말하는 아내, 그녀의 말을 곱씹는 남편. 나 자신의 불륜으로 힘든 사람도 정신 상담을 받는지 질문하는 작가, "모든 선"에 예민한 이웃집… . 다양한 소재 중에서도 가장 내 기억 속에 남은 것은 < 소설을 잘 쓰려면> 이라는 단편이었다.


  나는 4년간 소설을 잘 쓰고 싶어 했다. 아니, 소설에 관심을 가지고 쓰고 싶어 한 것는 중학생 때부터였으니, 거의 10년이다. 나는 약 10년 동안, 어떤 글이 좋은 글이고 어떻게 써야 흥미로운 글을 쓸 수 있는지 고민했다. <소설을 잘 쓰려면>은 소설을 잘 쓰고 싶어 하고, 주변인들에겐 잘 쓴다고 인정받는 한 청년의 이야기다. 그중 내 기억에 남은 문장은 이것이었다.


자질구레한 디테일을 쳐내고 줄기만 남겼을 때 독자의 호기심을 끌 수 있어야 훌륭한 소설이다. -소설의 순간들, 박금산 (56p)


  내가 학부 내내 고민했던 것, 나를 괴롭혔던 것. 내 글은 호기심을 끄는 글일까? 이 고민은 학생이었던 날 며칠 밤을 새우게 하고, 늘 골머리를 썩게 했다. 어떻게 하면 흥미로운 글을 쓸까, 어떻게 쓰면 그들이 이 글을 궁금하게 여길까. 사회생활을 하며 잊고 있었던 치열한 고민이 떠오르는 문장이었다.


  앞서 나는 글의 구성은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로 이루어져 있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이 소설의 목차를 설명한 것을 읽었다면 눈치챘을 것이다. 이 책에는 '위기'가 없다. 왜 위기가 없을까? 이 부분이 궁금하다면 책에 수록된 해설, <소설을 이끄는 소설>을 읽어보길 바란다.


  이야기의 단계가 어떻게 구성되고, 이를 어떻게 해야 잘 이끌어나갈 수 있는지 궁금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일단 글을 써보고 싶기는 한데 어떻게 쓰면 좋을지 고민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 추천한다.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을 때, 어느새 당신에게 소설이 스며들어 있을 것이다.


자질구레한 디테일을 쳐내고 줄기만 남겼을 때 독자의 호기심을 끌 수 있어야 훌륭한 소설이다. -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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