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권 사회에서 동양인으로 산다는 것은 퍽 힘든 일이다. 내가 <알로하, 나의 엄마들> 사전서평단에 신청한 이유 중 하나도 이것이었다. 해외에서 동양인으로 사는 설움을 알기에, 더 깊이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이야 인종 차별은 나쁜 것이라는 인식도 있고, 인종차별을 하고 싶더라도 이를 겉으로 티 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절대 없지는 않다) 당장 나만 해도 해외에서 살며 대놓고 하는 인종차별부터 은근한 인종차별까지 다 당해보았다. 당연히 그 서러움은 말도 못 하게 크다.
하물며 <알로하, 나의 엄마들>의 배경은 100년 전이다. 힘이 없어 국민을 지킬 수 없는 나라, 국제적으로는 목소리도 낼 수 없는 나라. 하와이에선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급여도 적으면서 죽어라 일은 열심히 하는 조선 사람들. 그들에 대한 인식이 어땠을지는 쉽게 상상해볼 수 있다. 하올레(백인)집에서 일하면 절대 마당 안으론 들어갈 수도 없고, 그 집 자식이 조선인 자식을 다치게 해도 보상받을 수 없다. 때리며 일해도 아무도 뭐라 할 사람이 없다. 이 암담한 현실 앞에서 얼마나 무력감을 느꼈을지, 소설을 읽으며 속이 참 쓰라렸다.
하올레(백인) 아이가 귀여워 달걀을 건넨 버들에게 아이는 눈을 찢으며 메롱을 한다. 그 아이의 어머니는 인상을 찌푸리며 달걀을 바닥에 던진다. 이 장면 하나로 하와이에서 동양인이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뿐인가? 내 자식 귀한 만큼 남의 자식도 귀하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러나 백인들에게 동양인은 "남"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사건의 발단이야 어찌 됐든, 하올레 아이가 동양인 아이에게 상처를 입힌 것을 항의한 대가는 해고였다. 제대로 된 항의 하나 못하고, 일자리도 빼앗긴 버들이 느꼈을 분노와 설움을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인간에게 급을 나누던 시절. 동양인은 서양인과 다르지 않게 눈코입 팔다리는 똑같이 있으나, 절대 존중은 할 수 없는 존재였다. 급이 낮고, 어딘가 모자란 것 같고, 기차는 탈 수 있지만 자신과 같이 일등석에는 탈 수 없는. 이러한 인식은 현대에도 알게 모르게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그런 보이지 않는 마음의 벽은 존재한다. 여전히 해외에서 사는 이들은 이러한 차별을 온몸으로 느끼며 살고 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소설 내내 등장하는 조선인이기 때문에 받아야 하는 차별과 설움이 섞인 순간들을 보며, 입안이 썼다. 나 역시 인종차별을 당하고 참고 넘겼던 일이 더 많았다. 그 순간에 오는 모멸감과 억울함을, 소설을 읽으면서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