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오스터 작품이라기 보다는 샘 메서의 화집에 폴 오스터가 찬조출연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촉촉한 느낌의 타자기 그림이 계속 이어지는데, 정말 타자기가 이야기를 하고 마음을 가진 존재처럼 느껴진다.

어떤 타자기 그림은 좀 삐져보이고, 어떤 것은 미소짓는 것처럼 보이고, 어떤 그림은 주인인 폴 오스터에 대해 조잘조잘 수다를 떠는 것처럼 보인다. 새침한 모습, 우울한 모습, 화가 난 모습... 수만가지 표정을 가진 타자기가 이야기를 건다. 글쎄 말이야.. 하면서...

틱틱 택택 경쾌한 파열음. 그리고 치지 않을 때는 조용히 생각이 떠오르기만을 관조하는 타자기의 모습은 백년 전 영국 집사와도 같다. 절대 수선스럽지 않게 조용히 모든 일을 처리하지만 존재감이 뚜렷한, 까만 양복에 하얀 셔츠, 그리고 단호한 표정을 가진 집사 말이다.

타자기의 제일 큰 장점은 조용함이다. 치지 않을 때는 완벽한 침묵을 지킨다. 혹자는 틱틱 택택하는 소리가 꽤 시끄럽지 않냐고 반문할지 모르겠지만, 워드 프로세스의 비인간적인 전자음,  불안스럽게 왜앵왜앵 거리는 컴퓨터의 하드 돌아가는 소리, 둔탁하거나 아니면 지나치게 경망스러운 키보드 소음에 비하면 타자기의 산뜻한 터치음은 기분좋은 타악기 음악과도 같다. 마치 머리 속의 생각들이 그 소리에 맞추어 착착 행진이라도 하는 느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