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렸을 때 그림을 참 못그렸다. 미술학원도 다니고, 그 오랜시간 정규교육에서 미술을 배웠지만 미술 시간은 몇몇 소질있는 아이들이 설치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린이책을 읽으면서 미술을 이렇게 배웠더라면 적어도 지금까지 기분 내키면 스케치북을 펴고 이런저런 그림을 그리며 즐거워할텐데 하는 생각이 들고 있다. 내가 정규교육에서 잃어버린 것은 그리고 만드는 즐거움이다. 완성품의 성적과 상관없는 무에서 형태가 만들어지고 거기에 색깔이 입혀지는 그 과정 자체가 얼마나 놀랍고 즐거운지를 까맣게 잊어버렸다.
미술에 자신이 없는 엄마라도 집에서 조금만 열의가 있으면 미술을 가르칠 수 있다.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은 여러모로 유리하다. 일단, 나중에 화장을 할 때도(!)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유리하다. 눈썹을 그리는 것, 마스카라 칠하는 것, 색조화장하는 것... 그 실력은 다 미술시간에 연마하는 것이다.
먼저 추천하고 싶은 책은 다음의 낙서 그림책 3권이다.
이 세 권은 정말 즐겁다. 고미 타로가 그리고 쓴 <그림으로 생각키우기 1.2>권은 굉장히 유머러스하고 기발하다. 이 책을 자녀와 함께 하다보면 '내 새끼가 혹시 천재가 아닐까'하는 즐거운 공상(!)에 빠지는 부모들이 많다고 한다. 그만큼 자유롭게 펼쳐지는 아이들의 상상력은 어른들이 보아도 매력적이다. 또, 이 2권은 양도 굉장히 많은 편이라 연필, 색연필, 크레파스 등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서 접해야 할 필기도구와 그리기 도구를 자기 마음대로 쓰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뭐든, 양에서 질이 나온다는 것, 그림도 예외는 아니다. <... 그리기 100선>은 고미 타로의 책보다는 학습지적인 느낌이 든다. 종이 질은 <그리기 100선> 쪽이 조금 나은 편이다. 기본적인 컨셉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세 권 다 어느 정도 그려진 그림에 상상력을 덧붙여 완성시키는 형식이고, 아이들이 그림에 대해 전혀 부담을 느끼지 않으면서 선 그리기, 형태 그리기, 입체 그리기 등 자신의 생각을 그림으로 옮기는 과정을 익힐 수 있다.
아이에게 좀더 이론적인 것을 가르치고 싶다면, 이 책 세 권을 권해주고 싶다. 초등학교 중학년 이상은 되어야 읽을 수 있는 수준으로, 미술에 대해 기본기가 없다고 고민하는 엄마들이 읽어도 좋다. 미술을 공부할 때 접하는 이론적인 부분이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어린이책이라고 절대 우습게 보지 말 것. 좋은 어린이책은 상세함과 친절함을 고루 갖추고 있다. 모두 세 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번째 <어떻게 그릴까?>에서는 내가 눈으로 보고 있는 저 대상을 어떻게 스케치북에 옮길까를 가르쳐준다. 그림을 그리고나면 항상 자신의 눈을 의심한다. 저것이 과연 내가 그린 것이 맞을까? 이 책은 그런 서툰 사람에게 '천재도 훈련이 필요하다'고 잘라 말한다. 이런저런 그림 실력을 높히기 위한 스킬도 함께 들어 있어, 그림을 제대로 그리고 싶은 사람에게 필요한 정보가 많을 듯. 둘째권 <무슨 책을 칠할까?>에서는 색채가 상당히 감성보다는 과학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된다.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 미술 이론에 지겹게 쫓아다니는 빛의 삼원색, 보색, 채도, 명도 같은 것을 쉽게 풀어준다. 언뜻 보기에는 과학책에 더 가깝다. 세번째 권인 <무엇으로 그릴까?>는 소재에 대한 책이다. 소재는 미술전공자가 아니면 수채물감이나 아크릴 물감 정도에서 멈추기 쉽다. 그런데, 자신이 본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소재를 알고 있어야 된다. 이 책 세 권이면 정말 왠만한 미술학원이 안부럽다.
찰흙놀이는 아이들의 감성과 신체발달에 큰 도움을 준다. 흙을 만지면서 자연스럽게 손과 손가락의 근육이 자극을 받기 때문에 두뇌발달에도 영향을 준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것, 저런 것을 떠나서 찰흙놀이는 아이들이 무척 좋아한다. 그리고 집에서 손쉽게 할 수 있는 활동이기도 하다. 이 책은 반갑게도 국내 저자가 쓴 책이다. <흙동이와 찰흙놀이해요>는 초등학교 저학년, <흙동이의 유아 찰흙놀이>는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의 수준에 맞는다. 이 두 책의 경우 연령별로 세심하게 분류를 한 점이 특이하다. 찰흙과 조각도 정도가 필요한 재료의 전부. 찰흙으로 모양을 만들고, 그것으로 역할놀이도 해보고, 실제 생활에서 쓸 수 있는 물건도 만드는 등 전문가가 아니면 생각하기 힘든 커리큘럼들이 많다. 집에서 찰흙놀이를 시키고 싶은데 방법을 몰라서 못했다면 이 책으로 시작하면 좋을 듯. 무엇보다 다른 미술 활동 보다 찰흙놀이는 아이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는데 도움을 주는 것 같다. 무엇인가 짜증나고 잘 안풀리는 일이 있을 때(어른뿐만 아니다 애들도 그럴 때가 분명히 있다!) 신나게 찰흙을 반죽하고 뭉치고, 잘안되면 다시 뭉그러뜨리고... 이러다 보면 기분이 환해질 것 같다.
자 이제는 만들기다. 만들기는 재미있는 컨셉의 책이 많이 나와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책이 따로 재료를 구입할 필요없이 책 속에 있는 재료만으로 칼과 가위, 풀 등의 기본 도구만 갖추어 지면 만들어볼수 있는 것들이다. '한 장의 종이로 만드는 팝업북 31가지'라는 부제가 붙은 <메이킹북>은 부제 그대로 책을 만들어볼 수 있다. 아이가 모든 활동을 혼자하기는 힘들지만, 엄마가 도와주면 이야기를 이해할만한 정도의 유치원생도 신나게 만들기에 도전할 수 있다. 이 책의 미덕은 손이 가는 것에 비해 그럴듯하고 번듯한 결과물이 나와 아이들에게 성취감을 준다는 점이다. 일단, 만들기는 '뿌듯함'이 중요하다. <페스티벌>과 <나의 가족과 친구들>은 <메이킹북>의 저자가 만든 책으로 <메이킹북>보다는 조금 연령대가 높은 편. 하지만 기본적인 활동은 비슷하다. 카드, 입체물, 미니북 등 종이를 이용해 다양한 것들을 만들면서 지식까지 익힐 수 있는 책이다. <들쑥이와 날쑥이의 종이나라여행>도 즐거운 책. 이 책은 책을 읽는 과정이 만들기 과정이며, 만들기가 끝났을 때 새로운 책 한 권이 눈앞에 펼쳐진다는 희열이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은 2차원의 세계에 머무르는 인쇄된 이야기를 3차원의 입체로 끌어 올린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책을 읽는-만드는- 독자이다. <유아종이접기교실>은 거의 종이접기책의 고전이자 스테디. 종이접기를 아이와 함께 해보고 싶은 부모님들이 손쉽게 참고할 수 있고, 설명도 쉬운 편이다. <신나는 어린이 조형교실>은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에게 유용한 책이다. 이 책에는 111가지 만들기 실기가 실려 있는데, 이 정도만 알면 초등학교 미술 시간에서 하는 활동과 그 응용이 다 들어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다른 어떤 것보다 학교 미술을 잘하고 싶다면 이 책에 있는 만들기를 보는 편이 좋을 듯. 재미는 앞의 책들보다 떨어지지만, 성적을 무시할 수 없는 현실에 나름대로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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