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포 워멀은 이미 국내에 그의 대표작이 2권 각각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그에 비해 이 <파란 토끼와 친구들 Blue Rabbit and Friends>는 그렇게 유명한 작품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읽는 즐거움이 있다. 무엇보다 엉크러진 것을 정돈된 상태로 이끌어가는 일종의 신화적 즐거움(혼돈->질서)과 아이의 자리는 미지의 것을 찾아가는 여행자라는 것을 은연 중에 알려주기 때문이다.

어지러진 방 안 여기저기에 장난감들이 처박혀 있다. 어두컴컴한 동굴(말이 동굴이지 장난감 블록이 쌓여진 공간이다)에 사는 파란 토끼는 왠지 지금 있는 곳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숲을 나온 토끼는 곰인형, 거위인형, 강아지 인형과 차례로 만난다. 그들 모두 한 눈에 어딘가 맞지 않는 공간에 놓여져 있다.

파란 토끼는 친구들과 함께 각각이 어울리는 본래 돌아가야 할 공간을 찾아간다. 강아지는 개집에, 오리는 연못에, 곰은 동굴에... 모든 것이 말끔하게 정리된 방에서 파란 토끼만이 갈 곳이 없다. 그리고 토끼는 스스로 깨닫는다. 자기가 가야할 곳은 바로 세상의 넓은 곳이라고, Adventrue!라고 외치며 자전거를 타고 가는 파란 토끼. 결말이 너무도 인상적이다.

모험이라면 비현실적인 공간과 비현실적인 인물을 상정하는 일종의 판타지가 되기 싶다. 하지만, 어린이의 공간에서 장난감과 함께 모험을 깨닫는 파란 토끼에게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지 않을 아이가 있을까? 장난감을 제자리에 놓는 것은 어느 집이나 일어나는 일상적인 일들, 하지만 이것이 이렇게 신나는 이야기거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처음 알게 되었다.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배경을 과감하게 생략하고 검정색 윤곽선으로 둘러진 존재감이 뚜렷한 장난감 캐릭터들도 이야기에 금방 몰입하게 한다. 바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는 듯한 현실감은 그림으로부터 눈을 결코 뗄 수 없게 한다. 배경색과 장난감들의 색깔이 어둡지만 기분이 가라앉지는 않는다.  거기다, 어른들이 합격점을 주는 파스텔톤의 색상대신, 이 책에 등장하는 색상들은 모두 강렬하다.

여기에 보이는 표지의 배경색은 흰색이지만, 내가 산 책은 표지 자체도 어두운 청회색이어서 쉽게 손이 가지 않는 책이었다. 하지만 배경색이 어둡기 때문에 도리어 그 속에서 움직이는 장난감들은 뚜렷하게 부각된다. 어른의 허리에도 미치지 못하는 유아들의 눈높이에는 방 장난감들이 이렇게 크고 친근하게 보일 것이다. 아이의 눈높이에서 장난감을 바라보는 듯한 일견, 평범해 보이는 접근방식이지만, 많은 그림책 작가들이 잊고 있는 덕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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