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도 이상문학상 작품집이 나왔다. 수상작은 김훈의 '화장'. 심사위원의 만장일치 찬성이라는 화려한 수식어구가 붙어있다. 대충 반정도 읽었는데, 참 문장이 아름답다. 어찌 이리도 유려하게 글을 쓸까. 하지만,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아직 이상문학상을 받기에는 좀 미진한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주옥같은 전대의 수상작들을 떠올리며 말이다.
중학교 2학년때부터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읽기 시작했다.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국어 시간에 읽었던 것. 그때부터 매년 이맘 때가 되면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기다렸다. 한국 문학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매년 이 작품집만은 무슨 의식이라도 치루듯 사서 읽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으리라 생각한다. 적어도, 이 책만은 읽어야 된다라는 묘한 의무감이 들게 하는 책이다.
90년대 후반까지는 좋은 작품들이 이 수상집을 통해 많이 소개 되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좋은 작품들이 참 많다. 양귀자의 '숨은 꽃', 윤대녕의 '천지간', 최일남의 '흐르는 북', 서영은의 '먼 그대'(아 이 작품은 지금도 가끔 꺼내서 읽을만큼 너무 좋아한다.), 오정희의 '저녁의 게임', 김승옥의 '서울의 달빛 0장' 등은 수상집으로 만난 좋은 작품들이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드는 삐딱한 생각은 이상문학 수상집마저 별로 재미가 없어진다. 취향이 변화때문일까? 아니면 한국 소설가들이 더 이상 독자들을 휘어잡는 소설을 쓰지 못해서일까? 어쨌든 2000년부터는 한번 읽고는 책꽂이에 꽂아둔다. 그전까지는 우수작들을 보면서 음.. 이 사람 작품집이 나오면 사봐야겠구나... 하는 나름의 품평회를 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냥 만사가 귀찮다. 무엇보다 작품 자체에 잘 이입이 되지 않는다.
아마 몇년 후에는 이나마도 잘 읽지 않을 것 같다. 시절이 변한건지, 내가 변한건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수상작품집을 볼 때마다 십몇년에 걸친 나의 한국문학 순례기를 떠올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