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터를 훔쳐라 - +3
하라 켄야 지음, 이규원 옮김 / 안그라픽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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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 켄야다운 깔끔한 글솜씨를 담은 수필집.

아니, 이 분은 도대체 못 하는 게 뭐랍니까ㅠㅠㅠㅠ

디자이너와 편집자는 전혀 다른 분야라는 고정관념이 있었다.

요즘 디자인에 관련된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처음과 끝이 맞물리는, 결국은 같은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디자인도 편집이고 편집도 디자인이다.

아마도. 이런 문장이 있었다.

'디자인을 언어로 드러내는 것은 또 하나의 디자인이다'라고. 정말 멋진 말이다.

누가 똑 부러진 말로 칭찬을 들을 때 칭찬을 듣는 쪽보다 칭찬을 하는 쪽이 더 훌륭해 보인다. 칭찬하는 자의 여유, 칭찬할 만한 내용을 발굴해 내는 뛰어난 안목, 그리고 무엇보다 남을 추어주기 위해 한 발 뒤로 물러서는 모습이 그 인격을 절로 높여 주는 것이다.

짧은 디자이너 경험에 비추어 우아함이란 관리하거나 강제하거나 계획하는 것만으로는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또 그것은 줄기차게 단련해서 도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갈고 닦는 것만이 아니라 때로는 둔화시키는 것의 의미도 알고 자기 문화의 강점을 속속들이 아는 상태에서 모종의 절제를 발휘할 줄 아는 지성을 말한다.

지식이라는 것은 자석에 끌리는 쇳가루 같아서 자력 없는 자석으로 아무리 모래밭을 헤집고 다녀도 아무 것도 들러붙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쇳가루가 많은 모래밭을 찾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자력을 어떻게 키울 것이냐 하는 것이다.

기왕에 내가 디자인한 책인 만큼 매장에서 크게 한자리 차지하는 책으로 자랐으면 하고 바라지만, 이거야 작가한테 달린 일이다.

상자쟁이 혹은 과잉포장전

타이왕국립고궁박물원은...특히 옥이나 상아 조각의 지귀하기 그리 없는 기교에서는 장안의 쾌락을 넘어선 감히 헤아릴 길 없는 원한 같은 것이 느껴져 압도당하고 말았다.

뭔가를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체력이다.

공장이라는 곳은 안에 들어가 눈앞에서 보면 참으로 짜릿해서 어지간한 모던아트는 눈에 차지 않을 만큼 감동적이다. 그것은 인간의 창조성이라는 선과 자연을 가공하고 어지럽히는 폭력성이라는 악이 똑같은 비율로 동거하는 상징적인 퍼포먼스다...대체 누가 이런 메커니즘을 생각해 냈을까? 나도 모르게 허탈한 웃음이 나올 정도로 교묘한 시스템을 통해 얇은 양철판은 선명한 꼴을 갖춘다. 그 모습이 꼭 기적처럼 보인다.

분명히 실수는 없없다...그러나 정말로 이 디자인으로 충분할까? 더 개선한 점은 없을까? 내 디자인에 대한 자신감을 엄청난 물량의 움직임이 한순간 어지럼증처럼 흔들어댄다. 하지만 기계가 맹렬한 속도로 돌기 시작하고 나면 더 이상 어찌해 볼 길이 없다. 만에 하나 내 디자인이 실패작이라면, 그 실패가 내 눈앞에서 엄청난 수로 불어나고 있는 것이다.
실패실패실패실패실패샐패실패실패실패......

매사 귀찮아하는 나를 역동적인 상황에 밀어 넣는 수단으로 오로지 여행을 이용하고 있다. 하기는 여행지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여행은 여행이다. 하루 종일 호텔방에 뒹굴어도 ‘아, 오늘은 충실한 호텔 라이프를 만끽할 수 있었구나.‘ 하고 납득할 수 있고, 낯선 땅의 비일상적 공간에 몸을 옮겨다 놓는 것 자체가 대단히 자극적이다.

아프리카 가봉산 목제 가면 한 깡. 파리의 한 벼룩시장에서 구한 물건인데, 원래는 두 개를 살 생각이 없었다. 값을 깎고 또 깎아 하나를 사기로 했는데 흑인 점원이 가게 안쪽에서 슬그머니 비슷한 가면을 꺼내 와서는 "이렇게 부부예요."라고 한다. 그런 말을 듣고 보니 하나만 사는 것이 죄스러워 하는 수 없이 두 개를 샀다.

내 전문분야는 커뮤니케이션이다. ‘물건‘을 만드는 디자인이 아니라 ‘사건‘을 만든다. 즉 사람 머릿속에 사건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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