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의 우주 - 디자인을 위한 상상력
나가하라 야스히토.미나토 치히로 외 9인 지음, 김남주 옮김, 이원곤 감수 / 안그라픽스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수많은 별이 가득하지만 텅 빈 공간이 더 많은 우주처럼, 거대한 정보를 읽었지만 머리는 오히려 텅 비어버린 것 같다.

현실 세계에서 대상을 볼 때 우리는 자신의 신체도 함께 본다. 자신의 신체가 보이는 것은 그 사람이 대상을 팍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평소 우리는 자신의 신체가 보이는 것에 대해 특별히 의식하고 있지 않다...물질 세계에서 행위하는 자기를 인식하는 것은 보고 있는 대상과 자신을 시각적으로 연관 지을 수 있게 한다. 그래서 대상을 보는 그 경험의 의미와 가치를 우리가 파악할 수 있게 도와준다. 이때 자신의 신체가, 보고 있는 대상과 자신을 대응시키기 위한 기준, 즉 존재하고 행위하는 자기를 ‘정위‘하기 위한 좌표축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공기‘ 속에 있는 ‘나‘는 ‘스크린‘ 속으로 들어갈 수 없다. 아무리 머리를 움직여봐도, 스크린 근처를 돌아다녀봐도, 스크린에 표시되는 ‘면‘으로 변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것은 ‘내‘가 있는 환경과 스크린공간이 ‘매질‘에서 불연속적임을 나타는다...즉 ‘나‘의 ‘신체‘가 자기와 대상을 연결하는 매듭이 ‘되지 못한다‘...‘자기 좌표계‘를 구축하기 어려운 것이다...‘자기 좌표계‘ 구축을 가능하게 하는 디자인은..우리 소프트웨어 사용자에서 또 하나의 ‘환경‘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21줄 바둑판이나 23줄 바둑판이 아니라 좀 더 과감하게 101줄이나 1,001줄로 바둑판을 넓히면 어떻게 될까? 원칙적으로 바둑판의 크기에는 제약이 없다...바둑판이 커지면 귀나 변에 비해 중앙의 비율이 점점 증가하게 되므로, 그 바둑판에서는 돌 수방 진지의 효율을 떨어지지만, 좀 더 자유롭게 둘 수 있는 중앙 지향적인, 바로 ‘초우주류‘가 되지 않을 수 없다.

디지털 기반 환경을 오픈 크리에이션을 추진할 수 있음과 동시에, 온라인이나 도시공간에서 가동하기 시작한 디지털 감시의 문제와 같은 폐쇄 시스템을 낳고 있다...이미 무의식적으로 사회에 내면화되고 있으며, 스스로의 안전을 위해서 시스템을 통해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상호 감시하는 움직임마저 일고 있다.

예를 들어 제가 키보드에서 타이핑한 문자는 다른 사람이 타이핑한 문자와 똑같습니다. 그런데 피아니스트가 피아노를 칠 때는 건반을 두드리는 방법이나 사람에 따라 소리가 전혀 다릅니다. 비록 컴퓨터라고는 하지만 사람이 만지는 순간 각기 다른 표현으로 실현될 수는 없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디지털에 대한 어떤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 자신의 생활을 디자인과 조화시키고 싶어요. 어떻게 해서든지 저 자신의 몸과 정신을 조화시키고 싶어요. 이는 타인이 해줄 리 만무하죠.

지금 당장 컴퓨터는 변하지 않습니다. 지나치게 어려워서 누구도 바꾸려고 하지 않지요. 저는 왠지 직감적으로 어떻게 하면 자기답게 바꿀 수 있을지 알 것 같기도 해서 존 마에다식으로 바꾸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이것을 때때로 다른 사람도 사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요.

어휘를 더욱 확대시키는 것이 예술의 본래 목표

이러한 배경에는 어린 시절 경험한 붓글씨 시간에서 기인한다. 글자 표본을 보면서 한 자 씩 연습한다. 그러나 표본대로는 쓸 수 없다...어떤 일정한 범위 내에서, 붓을 두는 위치가 흔들린다. (흔들려서 형태가 뭉개져도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은 문자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범위가 좁혀져서 어는 임계치에 다다르면 형태가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즉 정확한 곳에서 붓을 꺾지 않아도 붕개지는 범위를 확인하면 되는 것이다. 수긍이 갔다. 아무리 능숙한 단계에서도 우리가 쓰는 문자는 어떤 임계치 안에서의 우연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쓴 ‘아‘는 우연에 지나지 않는 ‘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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