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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화요일 ㅣ 비룡소의 그림동화 84
데이비드 위스너 글.그림 / 비룡소 / 2002년 10월
평점 :
" 선유야. 텔레비전 많이 보면 엄마가 뭐 된다고 했지? " "바보"
"그럼 바보 안되려면 엄마가 어떡해야 한댔지?" "깨구이"
혀 짧은 소리로 깨구이라고 외치는 우리 딸의 깊은 속을 해석하자면 책을 읽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깨구이'란 데이비드 위즈너의 <이상한 화요일>에 나오는 날으는 개구리떼를 의미합니다.
최근 들어, 해가 질 무렵 연꽃 잎을 타고 마을을 온통 휘저으며 날아다니는 개구리떼에 흠뻑 빠진
우리 딸은 "오늘은 무슨 책 읽을래?" 하고 물으면 대답 대신
<이상한 화요일>을 들고와 엄마 무릎에 앉습니다.
글이라고는 딱 네 번, 그것도 개구리 습격 사건의 경과를 알리는 시간만 나오는 이 책,
식빵에 잼을 발라 야식을 먹는 아저씨네 창문을 지나가다가 손을 흔들고,
텔레비전을 켜놓은 채 잠은 할머니네 집 굴뚝과 창문으로 들어가
파리를 잡아먹던 날쌘 혀로 리모컨을 눌러대고,
깊은 밤 컹컹컹 짖어대는 개에게 달려들어 도둑 잡는 개를 도망치게 하는
대책없는 장난꾸러기 깨구이들의 생생한 그림들이
수십, 수백 개의 문장과 설명보다 아이에겐 더욱 실감나게 다가오는 모양입니다.
물론 실감을 배가시키기 위한 엄마의 개구리 성대모사와 할리우드 액션이 동반된 덕이
매우 크겠지만요 ^^
딸만큼이나 제가 <이상한 화요일>을 좋아하는 이유는 깨구이들의 만행도 만행이지만,
동이 터오자 개구리들은 자기네 연못으로 돌아가고
식빵 먹던 아저씨가 아무리 증언해도 간밤의 일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찰들 덕에
사건은 미스터리로 종결되는 당연한 엔딩 뒤에 뒷통수를 치며 덧붙은 반전 때문입니다.
어느 이상한 화요일의 일회적인 해프닝일 줄 알았는데
다음 주 화요일, 비슷한 시각에 또다시 하늘로 둥실 떠오르는 실루엣들.
그 실루엣의 정체가 중력의 속박에서 벗어나 나른한 미소로 하늘을 비행하는 돼지들이었음을
보여주며 돼지들은 또 무슨 엉뚱한 짓을 벌이려나, 다음 화요일에는 어떤 동물이 날아다니려나,
등등 상상력을 유발시키는 네버엔딩 스토리가 매력적입니다.
사실 네버엔딩 스토리, 네버엔딩 상상력의 구조야말로 데이비드 위즈너의 근원입니다.
<시간상자>나 <구름공항> <1999년 6월 29일>도 모두 이런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엉뚱한 상황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그것이 종결되어질 즈음
사건의 이면을 보여주거나 혹은 변형된 형태로 다시 발생하는 사건을
그것도 매우 절제된 방식으로 보여주어 이야기를 반전시키는 위즈너표 스토리텔링이
저는 너무너무 좋습니다.
과학과 상식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기에 모르는 채로 덮어둔 진실(혹은 엑스파일)을
혼자만 알게되는 것 같은 쾌감도 생기고,
눈에 보이는 것만 믿지 말고 이면을 보라는 작가의 속삭임이 귓가에 맴돌고,
무작위적인 것 같지만 사실은 돌고 도는 우리네 인생을 간결하게 보여준 것 같아
여운이 깊습니다.
우리 딸내미는 <이상한 화요일>을 왜 좋아할까요?
개구리를 비롯한 동물들이 많이 나와서?
엄마의 개구리 흉내가 재밌어서?
가끔씩 엄마가 <이상한 화요일>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기에
눈치 빠른 우리 딸이 그저 팬서비스 일환으로 깨구이 책을 들고 오는 게 아닌가 의심됩니다.
침을 튀고 오버 액션을 해가며 <이상한 화요일>을 읽어줄 때
"으아~ 깨구이 깨구이"~ 를 연발하던 녀석이
아빠가 눈치없이 켠 텔레비전 소리를 귀신같이 알아채고는
책이야 어찌됐든 상관없이 뒤도 안돌아보고 마루로 뛰쳐나가는 반전이 있을 때면 말이죠.
그리고는 "깨구이"보다 수천 수만배쯤 더 사랑하는 "뽀로로"를 틀어달라고 외친답니다. ^^
사족> 아, 원제는 그냥 심플하게 Tuesday란 사실을 지금 알았네요.
흐... 편집자님이 한국정서에 맞는 드라마틱한 제목을 원하셨나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