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1
강도영 지음 / 문학세계사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전 작품의 영화화!

강풀의 명성이야 익히 들었지만 굳이 그의 작품을 찾아보진 않았다.

한국영화는 대충 보는 편이지만 그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은 의도치 않게 보질 못했다.

남편이 회사에서 가져온 이 책을 읽게된 건

문자로 가득찬 책들도 딸 보여준다는 핑계로 이리저리 모아둔 그림책들도 싫증난 차에

단지 만화책이라는 이유였다.

그런데... 별 기대 없이 든 책 속으로 하마터면 빨려들어갈 뻔했다.

요새 그렇게 좋아했던 시시껄렁한 텔레비젼 프로그램들도 심지어 작품성 높은 영화들도

마다하고 오로지 미드에 빠져있던 난,

미드의 매력을 고스란히 갖춘 채

(속도감과, 풍부한 이야기, 그리고 모두가 주인공인 캐릭터들,

그리고 아무 상관없는 줄 알았던 사건, 사람들이 한날 한시 한공간에 모여 한판 붙는 구조)

우리의 가장 뜨거운 역사 광주를 이야기하는 <26년>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화려한 휴가>를 보고 난 애석했다.

분명히 흥행에는 성공할 것이다, 그리고 투박하지만 진정성으로 만들었다는 데에 동의한다,

하지만 고작 이 정도밖에 만들 수 없는걸까,

<살인의 추억> 이후 더 이상 한국에서 실화를 뛰어넘는 영화는 나올 수 없는 걸까...

워낙 드라마틱한 사건들이 많은 이 나라에서 실화를 영화 혹은 다른 문화 장르의 소재로

택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미 있는 실화에 영감을 받아서

예술작품으로 만든다면, 실화의 감동을 뛰어넘어야만 좋은 작품이 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화려한 휴가>는 실화의 비극성에 빚졌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26년>은 실화를 바탕으로 사건이 있은지 26년 후에 벌어지는 사건을

팩션으로 만든 그 출발점부터 좋은데, 거기에 피해자 뿐만 아니라 가해자까지 주인공으로

만드는 작가의 역량과, 시종일관 긴장을 놓지 못하게 하는 빠른 스토리텔링, 

그리고 피해자와 가해자를 단순히 이분법적으로 그리지 않고 피해자의 복수,

가해자의 부채의식 등 캐릭터의 입체적인 면모를 잃지 않은 점,

게다가 어설프게 악인을 선인으로 변화시키는 게 아니라

시종일관 악인이되, 그의 히스토리와 논리, 입장을 납득할 수 있도록 구사하여

악인조차 사랑하게 만드는 작가의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가 버무려져

그때 그 사건을 돌아보게 하고, 단지 그 실화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상황이라면, 혹은 다른 상황에서 나는 저 중 어떤 캐릭터의 태도를 취할지

여러가지를 반추토록 하는 최고의 작품이다.

강풀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도 영화화된다고 한다.

게다가 강풀 자신이 이 작품의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는 기사도 봤다.

사실 이렇게 풍부한 캐릭터들이 2시간 짜리 영화로 옮겨졌을 때

얼마나 알량해질까 걱정이 앞서지만, 그래도 작가 자신이 각색하는 만큼 

원작을 한 번 더 업그레이드시키길 기대해본다.

부디 재주없는 연출자가 붙어서 원작을 훼손시키지만 않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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