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의 요트는 어디에 있는가
프레드 쉐드 주니어 지음, 김상우 옮김 / 부크온(부크홀릭)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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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9] 고객의 요트는 어디에 있는가

- 프레드 쉐드 -


 고객의 요트는 어디에 있는가. 1920~40년대 월스트리트의 탐욕과 비이성을 풍자한 유쾌한 책. 이 책이 쓰여진 시점과 현재는 무려 70년 이상의 시차가 있지만 책에 묘사된 월가의 광경은 신기하게도 거의 변하지 않은 것 같다. 그 사이 증권거래는 객장에서 개인의 모바일 단말기로 이동하고 세계 대전을 겪고 여러차례 석유파동을 겪었으며, 전례없는 버블 붕괴로 전세계가 패닉에 빠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가의 브로커, 펀드매니저, 은행가는 여전히 부유하고 고객은 대부분 빈털터리다. 즉, 스스로 금융시장을 알고 항상 경계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증시에 투자한다는 것이 얼마나 허황된 일인지 명쾌하게 알려 준다. 작가는 월가에서 아마도 신통치 않은 실적을 내고 은퇴 했겠지만, 이 책만은 투자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으려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언제까지나 유용한 길잡이로 남을 것이다. 대학생, 직장인, 은퇴 자금을 굴리고자하는 노인, 누구라도 투자를 처음 시작하기 전이라면 이 책을 읽도록 권하고 싶다. 차티스트, 시세판독자, 그 밖의 미신이나 다름 없는 것을 신봉하는 사람들에 대한 풍자, 투자에 앞서 고려해야할 삶의 철학과 투자의 목적 등은 한번 증시를 접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할 것이고, 아직 경험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좋은 지침서가 될 것이다.


"투기는 적은 돈으로 큰돈을 벌기 위한 노력으로, 실패할 확률이 높은 행위다."

"투자는 큰돈이 적은 돈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한 노력으로, 성공할 확률이 높은 행위다."


저자의 투기와 투자에 대한 정의는 오늘 날에도 여전히 유용하며, 

빨리 부자가 되려하는 명백한 투기꾼들마저 스스로는 투자자라 생각하고 있음은 현재에도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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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읽을 것인가 - '모든 읽기'에 최고의 지침서
고영성 지음 / 스마트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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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6.09] 어떻게 읽을 것인가

- 고영성 -


 책을 다시 읽기 시작한지 1년 정도 되었다. 올해 목표로 했던 독서량은 아마도 채우지 못할 것 같지만, 근 10년 이상 잊고 지냈던 책을 읽는 즐거움과 이유를 다시 깨닫는 시간이 되었다. 한권 두권 읽어나가며 독서의 의미를 스스로 체감하기도 했지만, 무언가 더 체계적으로 '독서'에 대해 알고 싶었다. 다독가라 불릴 수 있는 기준은 최소 연간 50권 정도는  되어야 할텐데, 이 책의 작가는 어쩌면 우연한 계기로(2008년 금융위기) 경제에 관심을 가져 '갑자기' 연간 300권을 읽었다고 한다. 애초에 사람의 뇌는 말을 하는데에 최적화 되어 있으며, '읽는다'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준비되지 않은 것이라, 누구에게나 독서는 처음엔 낯설고 힘든 것이라 한다. 그런 쉽지 않은 일을 어느 날 갑자기 300권이라는 엄청난 volume을 채웠으니, 아마도 그 때 작가는 몰입의 경지에 있어 그 과정이 힘들기보다는 오히려 너무나 즐겁지 않았을까 싶다. 

 책을 읽는 방법은 다양하고, 또 인생의 시기에 따라 다르다고 한다. 작가는 뇌과학, 행동경제학, 심리학에 관심이 많은 사람 답게 그가 읽은 다양한 저서의 사례와 이론을 바탕으로 계독, 남독, 만독, 관독, 필독, 낭독 등 읽는 방법에 대해 설명한다. 한 권의 책을 쓰기에 앞서 얼마나 많은 책을 읽고 그것을 머리 속에 정리 해 왔을지 감탄스럽다. 순서대로 하나하나 따라가다보면 분명 누구나 독서에 일가견 있는 사람이 될 것으로 생각 된다. 

 내가 계독하고 있는 분야는, 전공이기도 한 경제/경영 분야이다. 작가는 계독만 해서는 오만에 빠지기 쉽다고 한다. 같은 분야의 책을 계속 읽다보면 어느 새 새로 읽는 책의 내용을 내가 대부분 알고 있다 느끼기도 하고, '다 안다'는 생각은 자기의 전문 분야가 아닌 곳에도 오지랖 넓게 아는 척 하는 부끄러운 결과를 낳기도 한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도 서구 사회가 스스로의 무지를 깨달았을때 드디어 세계의 중심이 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남독 함으로써 이런 오만을 깨고 겸손해 질 수 있다. 또한 남독은 창의력과 비판적 사고에도 도움이 된다. 저자가 예로 든 최고의 작가, 경제학자들마저도 심지어 자기 분야에서 다른 사람의 논리적 비판을 받기도 한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의 명저라 해도 완벽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비판적 사고를 기르는 핵심이 되는 것 같다. 무조건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나도 나름의 비판적 시각으로 책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관독' 파트는 책을 읽는 의미에 대해 가장 공감하게 만드는 부분이었다. 관점 취하기, 관점을 가지고 읽기. 두 가지만으로도 책을 읽는 다는 것은 인생에 엄청난 도움이 되는 중요한 일이라 생각 된다. 소설이든, 비소설이든,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어느 새 작가의 시각에 일치하여 작가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간이 된다. 혹은,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여러 책들을 읽다보면 그 책의 본래 주제와는 무관하더라도 내 생각에 도움이 되는 fact와 영감을 얻게 되기도 한다.

 이 책은 독서 자체에 대한 지식과 방법을 주고 의미를 일깨워주기도 하지만, 특히 만독 파트는 마치 아동/청소년 교육을 위한 서적처럼 느껴질 정도로 청소년의 성장과 학습에 독서가 주는 의미를 설명하는데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아직 자녀가 없지만 저자의 다음 저서인 '부모 공부'를 한번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든다.

 우리나라 초등학생들의 독서량은 연간 70여권에 달한다고 한다. 실제로 이렇게나 많은 책을 '평균적'으로 읽는다는 것이 잘 믿기지는 않는다. 나는 어릴적 굉장히 책을 많이 읽는 축에 속했는데도 일년에 저렇게까지 많은 책을 읽은 기억은 없기 때문이다. 아무튼 어린 시절의 다독에도 불구하고 성인의 평균 독서량은 그에 훨씬 미치지 못하고, 나도 대학 입학 이후로 오히려 책에서 손을 놓았다. 다시 책의 의미를 알고, 책을 읽어가는 과정에서 저자는 마치 미리 이런 과정을 거쳐간 좋은 선배이자 훌륭한 길잡이로 느껴진다. 고마움을 느낀다. 책으로 뭔가 이루겠다는 구체적인 목적의식이 없더라도, 책을 읽다보면 더 궁금한 것이 생기고 세상에 알고 싶은 진리와 지식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느끼며, 내가 진정으로 알고싶은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기도 할 것이다. '독서를 위한 책'이라는 것에 사실은 거부감이 있었는데, 이 책은 독서를 막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어보도록 권하고 싶을 정도로 좋은 책이다. 더 나아가, 책을 단순히 읽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머리 속에서 다시 꺼내어 보는 것, 때로는 머리가 조금 아플 수도 있지만 그 과정이야 말로 우리 뇌를 실제로 변화시켜 발전하는 과정이라 생각하면 오히려 즐거워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언젠가는, 내 장바구니에 있는 책들이 하나 둘 줄어들어서 더 좋은 새로운 책을 찾기 어려워지면, 읽었던 책 중 꼭 다시 읽어야 할 책들을 즐겁게 재독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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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의 미래 - 절대 피해갈 수 없는 "위기"와 "기회"의 시대가 온다
홍춘욱 지음 / 에이지21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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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파워블로그를 통해 알게된 이코노미스트 홍춘욱 박사님의 저서. 이 책 자체는 페이스북에 누군가가 쓴 호평의 서평을 통해 접하게 되었다. 환율과 경제에 대해 이보다 이해하기 좋게 서술한 책을 아직 보지 못했는데, 내가 경제학을 전공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사전 지식이 적은 사람도 찬찬히 읽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만큼 잘 쓴 책인 것 같다. 유시민 작가가 읽기 쉽게 쓴 글이야 말로 좋은 글이라 하였는데 여기에 꼭 맞는 글쓰기 실력이 아닌가 싶다. 

 책에서 얻은 몇가지 지식을 기록하자면, 고정환율제도는 환율 안정이라는 하나의 성과를 얻기 위해 자주적 금융정책 등 많은 부분을 포기해야 한다. 달러와 고정된 안정성이 오히려 금융당국의 다른 정책을 무용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유로존 통합이 독일과 같은 강국과 그리스 등 상대적 약소국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게되었다. 독일은 저금리를 유지하면서 시장을 확장하였고 상대적 통화가치가 하락(달러/마르크 대비 달러/유로 환율 상승)하면서 지속적 호황을 맞았으나, 그리스는 금리가 급격히 하락하며 경기가 과열되었고(잠재성장률을 지속적으로 상회하는 실제성장률), 저축에 비해 과잉 투자가 일어나며 경상수지 적자가 지속되었다(y=c+i +x-m, y-c-i=x-m, s-i=x-m). 경상수지 적자 해소를 위해서는 자국통화 절하가 주요한 수단이나 유로화 사용에 따라 자체적 통화 관리권한을 상실되었으며 때마침 글로벌 경기 위축으로 그리스의 주력인 해운과 관광산업이 타격을 받아 재정까지 악화대어, 결과적으로 외환 보유고가 바닥나 채무 불이행의 지경에 몰리게 되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은 인플레이션이다! 채권 가격은 쿠폰을 시장금리로 나누어 산출하므로, 물가상승에 대한 기대감을 통해 시장금리를 높임으로써 부채를 탕감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환율은 기본적으로 1물 1가 원칙을 기본으로 한다. 이를 벗어나는 경우에는 상품가격 또는 환율을 조정하려는 힘이 작용한다. 예를 들어, 달러/원 환율이 1,000원일 때 미국에서 1달러인 상품은 한국에서 1,000원에 팔려야 적당하다. 만약 이 상품이 한국에서 2,000원에 팔리는 중이라면? 가격이 비싼 것이거나 환율이 낮은(원화 고평가) 것이다. 따라서 한국 소비자는 이 상품을 미국에서 직접구매하고자 할 것이며(경상수지 적자), 환율은 상승(원화 절하 압박)하게 된다. 두가지 움직임은 이 격차가 해소될 때까지 지속 될 것이므로, 실질실효환율을 주목하면 환율의 움직임을 보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보다 중요한 것은 달러 자체의 가치 변동일 것이다. 기본적으로 달러는 세계 경기의 불황기에 강세를 보인다. 여기에 안전자산 선호 등 기본적 이유가 있겠지만, 저자는 보다 근본적 원인으로서 채찍효과를 설명한다. 미국 소비자지표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경기 지표로서, 미국 경제 자체에서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으며(일반적으로 선진국일 수록 그러함) 미국경제가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아직도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채찍효과 발생의 원인은, 소비자는 소량으로 구매하는데 비해 공급자는 보다 큰 단위로 공급하는 점, 재고 관리의 목적으로 소비가 증가하거나 감소할 때 이보다 더 많이 생산/감산하게 되는 점 등을 이유로 들고, 이는 공급체인을 거칠 수로 승수효과를 얻는다. 한국은 공급체인의 끝자락에 있으므로 미국 소비 경기가 움직일 때 더 크게 반응하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올해 1분기 한국의 수출지표가 크게 감소하였는데 어느 영문 신문에서 한국의 수출지표를  '세계 경제의 카나리아'로 묘사한 부분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비단 중국의 부실 문제 뿐 아니라 채찍 끝 한국 경기가 크게 변동하기 시작 했다는 점도 주기적 불황이 가까웠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바로 이런 채찍효과가 달러 강세에 한국 주식시장이 하락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세계적 불경기가 도래하면 미국 달러화는 강세를 띌 것이며, 한국 주식은 하락한다. 그렇다면 저자가 제일 강조한 것과 같이 한국주식 보유비중을 조금 줄이고 달러자산을 보유하는 것이 좋은 대비책이 될 것이다. 시장의 움직임과 관계없이 주식을 보유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수익률이 가장 클 것이라는 말을 나는 믿는다. 그러나 언제 주식을 현금화 해야 할 지 모르는 불안정한 내 상태를 볼때는 달러 예금을 들어 놓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이 책은 분량도 적절해서 읽기가 어렵지 않았다. 한번 독파했으니 다시 읽는 것은 훨씬 수월 할 것이다. 시장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데 아주 많은 도움이 되었다. 사람의 아주 자연스런 욕구 중 하나는 좋던 나쁘던 타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 하는 것이라 한다. 수십년 간 현장에서, 그리고 엄청난 독서량을 통해 익힌 지식과 통찰을 공유하는 분은 정말 고마운 사람이다. 저자의 여우같은 이코노미스트의 모습을 닮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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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의 경제학
폴 크루그먼 지음, 안진환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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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 불황의 경제학

- 폴 크루그먼 - 


 1930년 대공황 이후 경제학자들은 수많은 가설과 현실 실험을 통해 거시경제의 큰 화두인 경기순환에 대해 알고자 노력 해 왔다. 로버스 루카스, 밀턴 프리드먼 같은 자유주의자는 여전히 시장경제에 대한 신뢰를 주장하기도 했고, 폴 새뮤앨슨은 "공짜 점심은 없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저자의 생각은 다르다. 필요하다면 금융기관을 (한시적으로) 국유화 할 수도 있고, 어떤 의미에서는 공짜 점심이 있을 때도 있다는 것이다. 

 도입부에 나오는 캐피톨 힐 육아 조합의 이야기는 거시경제의 처방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고, 또 상당히 설득력 있는 모형이다. 육아기 자녀를 둔 조합원 간에 외출이 필요할 때 아이를 맡기는 대신 "쿠폰"을 지급하고, 쿠폰을 받은 부모는 또 자신의 외출이 필요할 때 그 쿠폰을 활용하여 누군가에게 아이를 맡길 수 있는 SYSTEM에서, 쿠폰은 통화에 해당하고, 외출하는 부모는 소비자, 보육하는 부모는 근로자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부모들의 공통된 생각 중 하나는 어떤 이유로 인해 연속해서 외출해야할 경우를 대비하여 쿠폰을 최대한 많이 쌓아두고자 한다는 점이다. 이 경우, 소비성향(외출)은 낮고 저축성향(보육)은 높아, 서로 쿠폰을 쌓기 위해 보육을 하려고만 할 뿐(구직 증가) 맡기려는 사람은 없는(소비 감소) 악순환이 반복되어 쿠폰의 유통이 일어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이 상황을 해결하는 간단한 방법은 조합 차원에서 쿠폰을 '공짜로' 풀어버리는 것이었다. 적정 수준의 쿠폰을 확보한 부모들은 그제서야 보육하는 대신 외출하기 시작했고, 수요 공급의 적정 지점에서 쿠폰의 유통이 정상화 되었다는 것이다. 이 사례에 사실상 저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많은 것들이 다 담겨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통화를 공급함으로써 불황의 문제가 아주 쉽게 해결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좀 더 복잡한 현실 경제에서는 인플레이션 등의 문제점이 있겠으나, 전반적으로 저자는 이런 것들을 "공짜 점심"에 가깝다고 보는 것 같다. 활용할 수 있는 수단임에도 쓰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적용하기만 하면 공짜에 가깝게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또한 이 이야기에서 주목해야할 점은 불황의 원인(쿠폰이 유통되지 않은 원인)이 각 부모들의보육의 질이 떨어졌거나, 아이를 차별했거나, 쿠폰을 비이성적으로 많이 모으고자 하는 탐욕이 있거나 하는 등의 도덕적, 사회적 문제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단지 특정한 원인으로 인해 유효수효가 발생하지 못했던 것 뿐이라는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를 겪은 우리는 당시 IMF의 구제금융을 받으며 겪은 혹독한 구조조정 등의 기억으로, 당시의 경제위기가 개인인 소비자의 낭비, 그리고 기업의 무분별한 확장 등 "비도덕성"에 기인한 것으로 자책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경제학적 관점에서 사실이 아니다. 불황은 낭비가 아니라 오히려 소비가 부족해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재벌기업의 부도덕이 경제 위기로 이어지는 직접적 연결고리도 약하다. 그것보다는 오히려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범 아시아권 신흥국에서 촉발된 신뢰의 붕괴가 외국인 투자자에게 심리적으로 같은 "band"로 엮여 있는 우리나라에까지 전이되어 일어난 현상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심지어 구조조정을 요구한 IMF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다만 그런 도덕적 사회적 현상을 바로잡고자 하는 모습이 바로 외부의 "신뢰"를 회복시키기 위한 조치임을 직접 이야기하기도 했다. 일종의 투자심리 회복을 위한 쇼에 가깝다는 말로 들린다. 태국에서 외환 위기가 촉발된 경위도 마찬가지이다. 정경유착 등 도덕적 판단을 벗어나, 당시 위기는 화폐적이며 현상이었던 것이다. 바트화 가치를 무리하게 방어하려 했던 외환 당국의 노력(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등 경제팀의 잘못된 판단과 시기를 놓친 행동 등이 그 원인이었던 것이다. 

 책에서는 멕시코, 아르헨티나, 태국 등 아시아, 한국, 일본, 영국, 미국 등 다양한 시기 다양한 원인으로 일어난 불황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이 모든 상황을 관통하는 용어는 "자기실현적 예언"이 아닐까 싶다. 경제, 특히 금융은 내 생각에도 합리적일 때 만큼이나 비이성적일 때가 많은 것 같다. 조지 소로스는 이러한 불안 심리를 직접 조장해 파운드화를 공격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파운드화를 유럽 화폐 통합에서 떼어놓기까지 했다. 불안한 심리에 따른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전이되고, 모두가 발을 빼는 상황에서 건전하고 합리적 생각을 하는 사람이 오히려 최악의 손실을 입게 되는 상황, 그래서 마지막까지 합리적인 사람도 도망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는것, 그것이 많은 불황을 지나치게 큰 경기침체로 이어지게 만드는 원인인것 같다.

 더이상의 대침체는 없을 것이라 자신했던 2000년대. 2007년~2009년으로 이어진 미국발 세계 경제 위기는 거시경제가 새로운 국면에 와 있음을 보여주었다. 1930년의 bank run과 똑같은 상황이 발생한 것인데, 이번에는 은행이 아닌 "그림자 금융" 부문에서 일어난 인출 사태가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고,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를 위험에 빠트렸다는 점이 달랐다. 다만, 밴 버냉키의 과감하고 신속한 결단으로 은행을 구제하고 유동성을 공급함으로써 대공황까지 가지는 않았던 점도 다른 것 같다. 지급준비금 등 중앙은행의 통제를 받는 은행에 비해, 은행과 사실상 유사한 기능을 하면서도 거의 통제를 받지 않았던 "그림자 금융". 그리고 각국의 투자자가 서로 다른 나라에 투자하면서 위험을 예전보다 더 빨리 전이시킬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 주목해야할 불황의 진원지는 중국일 것으로 생각된다. 부동산 부실, 그림자 금융, 지나친 관치 금융과 이에 따른 부실 대출, 은행 재무제표의 신뢰성 등 RISK로 간주할 부분들이 엄청나다. 게다가 올 초에는 조지 소로스 등 헷지펀드의 대가들이 이미 몇 번 건드려 보기도 했다. 중국의 신용 리스크가 급격히 터진다면 2008년의 사태를 능가할 것이라는 이야기들도 가끔 들린다. 중국 공산당이나 은행 당국이 아무쪼록 미리미리 잘 대처하기를 바라야겠다. 


2016.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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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증권거래소 - 가장 유용하고 공정하며 고귀한 사업의 역사
로데베이크 페트람 지음, 조진서 옮김 / 이콘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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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 세계 최초의 증권거래소(가장 유용하고 공정하며 고귀한 사업의 역사)
- 로데베이크 페드람 지음. 조진서 옮김 -

신생 공화국 네덜란드의 운명을 지고 출범하여 황금의 17세기를 이끈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 이 회사는 인도네시아 바타비아(자카르타)에 거점을 잡고 인도, 중국, 대만, 일본 등 아시아 교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본국으로 돌려보냈다. 이 거대한 회사를 세우기 위해 일종의 '국민 모금운동'이 진행되었으며, 누구라도 지분투자를 할 수 있었다. 이것이 사실상 세계최초의 주식회사가 출범하게된 계기이다.
이전에도 모금으로 배를 출항시키고, 배가 돌아오면 이익을 나누는 프로젝트들이 있었지만 대부분 단기성(3~5년)이었고, 입항 후에는 배 자체까지 팔아버리는 말 그대로 '청산'에 들어간 것에 비해, VOC는 그 연한이 정관에 의해 최소 21년으로 규정되었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었으며 이것이 증권거래의 시발점이 되었다. 21년이라는 기간(실제로는 매 청산시점에 정관이 변경됨으로써 200년 가까이 존속했다)이 당시 사람들에게는 사실상 영원에 가까운 기간이었으므로, 자연스레 그 수익을 배당받고 청산하기를 기다리기보다 중간중간 지분을 거래할 수요가 발생한 것이다.
이 책은 VOC 지분 거래의 역사에 관한 것임에도, 현재 금융시장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상당한 유사한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얻어낸 생각들은,

1. 회사의 성장 초기에는 배당이 드물고 대부분 인프라, 가격경쟁 등 요소를 위해 회사에 재투자되며, 이 과정은 배당처럼 직접 현금이익을 투자자에게 주지는 않지만 실제로는 회사의 내재가치를 증가시키는 중요한 활동이다. 이 기간 회사의 주가는 상당기간 부진할 가능성이 있다(VOC의 경우에도 초기 10년이상 주가 변동의 크지 않았다.)

2. 회사의 성장이 어느 정도 완성되어(바타비아 거점 구축, 항로 곳곳에 요새를 세우고 일본, 중국 광동에 무역로를 개척하는 등...) 정상 궤도에 올라선 이후에 주가는 급등한다. 요즘 기업들의 성장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구글은 아직도 현금배당을 안하지만 엄청나게 성장했다. 언젠가 할까?)따라서, 성장할 회사를 사서 장기간 보유하고 있는 방법은 현재도 꽤 유효할 것 같다.

3. 그러나 이 경우에도 경영투명성이 개선되고 주주 친화적 정책(배당성향 상향, 이사진 선발 시스템 개선 등)이 시행되어야 주가상승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질 것 같다. 17세기 초반 암스테르담에서도 팜플렛 등 선전도구를 활용한 소액주주 운동이 있었다.

4. 주식 거래량이 증가하고 시장의 관심을 받게되면 소위 투기꾼(혹은 트레이더)들이 몰려들어 갖은 작전을 통해 주가를 조작하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사업의 부진(선박이 나포되었다거나, 일본 막부와의 관계가 나빠졌다는 등의...) 루머를 퍼트리고 자기 자신은 선도계약을 체결해 차익을 챙긴다거나하는 일들이 이때에도 성행했다. '정보'를 통해 이익을 챙기려는 성향이 강해진다. 그러나 정작 '정보'가 너무 많아지면 종합적으로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판단이 어려워지고 이익을 내기 어렵다.

5. 1672년과 1688년 두번의 대폭락을 경험한 후에도 주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제 가격을 찾아갔다. 심지어 1672년은 네덜란드가 영국과 프랑스라는 강대국의 침공을 받아 공화국 존립 자체가 위험했던 시기이다. 물론 실제 네덜란드가 이때 멸망했다면 VOC의 운명도 처참해졌을 확률이 높지만... 저 정도 위기 상황과 비교할때 브렉시트 따위가 얼마나 미미한 일인지 알 수 있다. 증권 거래는 4백년 넘게 이어져온 시장이고, 어떤 충격에도 대부분 수년 내에 회복했다.

6. 결국 작은 정보든 거시적 위협이든 일일이 대응하는 것보다는 바이 앤 홀드 전략이 장기적으로 더 우월한 것으로 생각된다(그리고 정보를 보고 내일 오를지 내릴지 고민하는 등의 쓸데없는 노력이 덜든다... 가성비). 200년이나 이어진 VOC의 주가 차트를 보면 더욱 확실해진다. 책에 나오는 많은 꾼들이 별로 좋지 못한 결말을 맞았으나 장기적 관점에서 그저 보유하기만 한 사람은 때마다 나오는 현금배당과 현물(메이스 등 향신료)을 통해 수익을 얻고 오르는 지분가치를 보며 즐기기만 했으면 됐을 것이다.

7. 코엔라드 반 헤닝엔은 VOC의 이사를 지내기도 했고 프랑스와 스웨덴을 담당한 유능한 외교관이자 암스테르담 시장을 6번이나 지낸 성공한 인생을 살았던 사람인데, 은퇴 후 말년에 무슨생각인지 VOC의 지분 매입에 전재산을 몰빵했다. 빌렘 반 오라녜 3세가 영국침공을 실행한 시점이 반 헤닝엔의 선도 매입계약 시점과 맞물리며 그는 한 순간에 파산했다. 반대 포지션에 선도매매나 옵션 등을 걸어 리스크를 줄일 수도 있었을텐데 오르는 쪽으로 리스크를 키우기만 했다. 자신의 똑똑한 제안이 실행될 경우 VOC의 실적이 개선될 것을 확신했던 것인데, 너무 자신만만한 순간에도 언제라도 외부에서 망하게 할수 있는 리스크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서 방어적으로 사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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