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이 답이 되는 순간 - 어떤 세상에서도 살아가야 할 우리에게 김제동과 전문가 7인이 전하는 다정한 안부와 제안
김제동 외 지음 / 나무의마음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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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야 미안해...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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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 아니어도 오를 곳은 오른다 - 수도권.지방 부동산의 미래 가치 분석
김학렬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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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 이하. 그냥 guide 수준. 기대이하란 말은 물론 기대가 없는 사람에겐 괜찮은 책일수도 있다는 말임. ex) 부동산의 ‘부‘자도 잘 모르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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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쓴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 세상에서 가장 쉬운 임승수의 마르크스 자본론 강의 원숭이도 이해하는 시리즈
임승수 지음 / 시대의창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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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0]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 임승수 -

 30년전만 해도 이런 책을 이렇게 쉽게 읽을 수 있었을까 싶다. 이 책은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아주 쉽게 풀어서 설명하고 있다. 강사와 학생이 주고 받는 대화 형식으로, 14개의 챕터(강의)로 구성되어 있다. 자본론 원전을 읽어보지 않았으므로 그 내용을 얼마나 충실히 반영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자본론이 주로 지적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문제점과 소위 '노동자에 대한 착취', '자본주의의 필연적 종말' 등에 대해 경제학적, 논리적 관점에서 접근한 근거를 확인할 수 있어 좋았다.
 이 책의 저자는 자본주의를 혐오한다고 볼 수 있다. 책속에 약간 포함된 진보정치에 대한 희망(노동자에게 권력을) 등의 정치적 서술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많은 젊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저자의 관점을 그대로 취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분배의 정의 등 사회적 관점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지극히 약한 개개인의 관점에서 본다면 말이다.
 자본론에서는 상품의 가격을 '노동시간'으로 환산한다. 어떤 상품의 가치는 그것을 만들기 위해 투입한 노동자의 노동시간(표준시간)을 기준으로 한다는 것이다. 이 가정이야 말로 자본론의 핵심이다. 이를 통해 자본가가 어떻게 이윤을 남기고, 노동자는 어떻게 착취되는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주류 경제학에서도 생산에 관한 함수는 다음과 같이 표현 하는데, Y = F(L, K), 생산에는 노동과 자본이 투입된다는 말이다. 마르크스는 이 과정을 다음과 같은 프로세스로 표현했다. M-C(LP, MP)-P-C'-M' : M=투입자본, LP=노동력, MP=생산수단, P=생산, C'=산출물(상품), M'=판매대금(증가한 자본). 마르크스의 가정에 따르면 상품(C)의 가격은 모두 노동시간으로 표현되기 때문에, 결국 잉여가치(M'-M)은 모조리 노동자의 노동력을 착취한 결과라는 것이다. 이는 사실이다. 노동자는 자산이 투입한 노동시간에 비해 적은 대가(임금=LP)을 받고 일하며, 이 차이가 바로 자본가의 이윤에 해당한다.
 저자는 (감정적 표현은 상당히 자제하고 있지만) 이에 분개한다. 생산수단을 자본가가 독점하는 자본주의에서, 필연적으로 착취당하는 몸뚱아리 밖는 노동자에게 분노할 것을 요구한다.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우선, 모든 상품의 가치를 노동시간으로 산정하는 가정까지 동의한다고 해도, 생산수단이 없는 노동시간은 그야말로 무의미한 것이다. 자본가가 제공한 생산수단과 결합하지 않은 노동력은 아무것도 아니다. 따라서 자본가는 잉여자본에 대한 소유권을 행사할 수 있다. 다만, 노동자와 어떻게 나눠야 하는 분배의 정의에 대한 논의만이 필요할 뿐이다.
① 저자는 자본주의에서는 자본가끼리도 서로 생존 경쟁을 하므로, 잉여자본을 높이기 위해서 서로 노동자를 더 착취할 방법만 찾게 된다고 한다. 마르크스가 살았던 19세기, 혹은 20세기 초반에는 이에 따른 극단적 노동착취가 이루어졌었다. 현대에도 (특히 우리나라는) 이런 경향은 여전히 남아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자본의 유기적 구성(C:불변자본/V:가변자본)이 높아지며, 이에 따라 노동자 1인당 생산성이 높아지므로 노동자의 몫도 늘어나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산업의 고도화로 노동자 중심의 고용시장이 형성되면 노동자의 구입(LP) 또한 힘들어진다. 현대에서 이러한 경향은 더 강해진다. 우수한 생산성을 가진 노동자(aka 고급노예)는 자본가가 서로 데려가기 위해 경쟁한다. 물론 고임금을 받는 이러한 '인재'의 경우에도 저자의 관점에 따르면 저임금 노동자에 비해 더 착취받는 더 불쌍한 노동자에 불과하지만...
② 생산 기술의 혁신으로 노동생산성이 증가하면 노동자가 착취되는 비율이 더 커진다고 한다. 이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노동생산성이 증가하면 상품가격(=노동시간)이 떨어지므로, 동시에 소비자이기도 한 노동자의 생활 수준 또한 자본주의 성숙도에 따라 지속적으로 높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③ 성과급 제도 또한 착취를 위한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생산성과 무관하게 동일 임금을 지급했을 때 보다, 생산성에 따라 노동자의 성과급을 차등 지급하면 자본가의 잉여(노동착취)가 절대적으로 증가한다. 이 또한  사실이지만 동시에 생산성 향상과 그에 따른 성과급 지급으로 노동자의 잉여 또한 절대적으로 증가했다. 책에서는 심지어 자본/노동 분배율이 동일하다고 가정한 후에, "어쨌거나 자본가의 절대적 이익이 늘었으므로 나쁘다."는 식으로 서술하고 있는데, 동시에 노동자의 절대적 소득이 늘어난 것은 왜 무시하는지 모르겠다.
 결정적으로, 생산수단은 자본가가 독점하는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 중 하나는, 자본 역시 거래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자본시장에서는 생산수단(주식회사)에 대한 지분이 거래된다. 주식회사의 지분 일부를 소유함으로써 노동자 역시 생산수단을 보유할 수 있다. 물론 리얼 자본가인 대주주가 얻는 편익이나 생산수단 활용 결정 권한에 비해서는 얻을 수 있는 이익에 한계가 있다.
 결론적으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자가 노동력을 제공하는 자의 이익을 편취한다. 노동력 자체만으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므로 이는 당연하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자본가/노동자의 수익 배분이 어느 정도가 적당한가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있었고, 지금까지는 대체로 노동자의 수익과 생활 수준 또한 절대적으로는 증가 해 왔다(물론 비율적으로는 자본가의 이익이 더 늘어났을 것이다 : 부익대부 빈익소부...). 그러나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공평하게 나눠가지려 했는데 나눠가질것 자체가 아예 없어져버렸다. 즉, 아무리 나쁘게 보려 해도 이윤동기는 혁신의 동력임에 틀림없다. 자본주의 역시 영원하지 않다. 마르크스는 천재임에 틀림없다. 기술 혁신 등으로 생산성이 계속 향상되면 착취율(=이윤)이 계속 줄어들게 되므로, 필연적으로 자본주의는 종말을 맞을 것이라는 걸 이미 19세기에 설명했다니. 그러나 그 종말이 사회주의로 귀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은 '한계비용 제로 사회'에서 이와 비슷한 미래를 그려보기도 했다. 특히, 로봇 기술의 발달로 노동이 종말을 맞는다면, 자본가는 더 이상 노동자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이 때는 얼마나 착취하냐가 문제가 아니라, 말 그대로 생산수단을 보유하지 못한 사람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의미에 한정하면...) 노동을 사 줄 사람이 없으므로 살아갈 자격이 없게 된다. 어떻게 될까? 많은 나라에서 이에 대한 정책적 논의가 진행 중이다. 북유럽에서는 이미 '기본 소득'의 도입을 시험 해 보고 있다. 자본주의는 영원하지 않지만, 그게 언제가 될지, 그래서 어떤 체제가 우리 경제 생활을 지배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개인이라면, 사회를 뒤집어 엎어 사회주의를 만들려 노력하거나 자본주의 혐오 감정에 고립되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나도 생산수단을 소유하여 노동 착취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먼저 해 보는게 좋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노동력을 어떻게 하면 자본가에게 좀 더 비싼 값에 팔아먹을까(고급 노예가 될까) 하는 고민 또한 도움이 될 것이다. 내 노동력을 비싸게 팔수록 생산수단을 소유할 기회는 더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말을 쓰고보니 자괴감이 들고 분노가 생기긴 한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나약한 한 개인이 ㅎㅎ


2017.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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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기다리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3
사무엘 베케트 지음, 오증자 옮김 / 민음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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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7] 고도를 기다리며(En attendant Godot)
- 사뮈엘 베케트 -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황량한 초원의 언덕에서 고도를 기다린다. 고도가 누구인지 무얼하는 사람인지는 이미 잊어버렸다. 그들은 기다림에 지쳐 그저 이런 저런 말장난을 하며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다. 에스트라공은 자꾸만 "이제 가야겠다"라는 말을 꺼낸다. 블라디미르는 그때마다 "안돼, 우리는 고도를 기다려야지"라며 둘이 '고도를 기다리는 중이었음'을 일깨워 준다. 

 둘은 이미 노인이다. 수십년 동안 고도를 기다렸지만 그는 어제도 오늘도 오지 않았고, 내일도 오지 않을 것이다. 그저 소년을 전령으로 보내 "오늘은 안되지만 내일은 반드시 온대요"라는 말을 남길 뿐이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기다리는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죽음일지도, 어쩌면 기다림으로부터의 해방 그 자체일지도, 아니 이미 그 목적이 무엇인지도 둘은 진작에 잊어버렸다. 그러나 그들은 고도가 오기를 소망하며 또다른 날을 기다린다. 우리가 기다리는 내일은 절대 오지 않는다. 내일이 되면, 내일은 오늘이 되고 또 다시 다른 내일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현재를 느끼지 못하고 다시 내일을 기다리는, 살아가는 것은 이렇게 영원히 어떤 것을 바라고 기다리는 것일까? 등장인물들의 행동과 대화는 아무런 의미없이 흘러간다. 중간에 등장하는 포조와 럭키가 주고받는 대화나 행동 또한 아무것도 의미하는 바가 없다. 결국 사람의 삶이 다 저렇듯 의미없는 행위와 언어 속에 오지 않는 무언가를 기다리며 흘러가는 것인가 하는 허무한 생각을 해 본다.


2017.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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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래를 앞서가는 이유 - 스타트업 1위 천재사업가의 미래 통찰
사토 가츠아키 지음, 양필성 옮김 / 스몰빅인사이트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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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7] 내가 미래를 앞서가는 이유
- 사토 가츠아키 -

 사토 가츠아키의 사업이 무엇일까... 찾아보니 모바일 광고의 플랫폼? 역할을 하는 기업인 것 같다. 한국에도 들어와있나보다. 일본 스타트업으로 사상최대인 5천만달러(600억원)를 투자 받았다고 하는데 고작 600억원이 최대라는게 사실일까? 우리나라만해도 벤쳐연합으로 시너지를 내겠다며 1천억원을 실리콘밸리 VC에서 투자받은 옐로모바일(연합을 통한 시너지가 뭔지 이해가 잘 안되지만)도 있고 조단위 투자를 받은 쿠팡도 있는데... 아무튼  이 책에 대해 좀 부정적 입장을 가지게 되는 이유는, 저자가 좀 심하게 말하면 지나친 "기술뽕"에 취한게 아닌가 싶어서이다. 책에 나오는 내용들은 오리지널리티가 없다. 어찌보면 당연하다. 아직 젊은 비즈니스맨이니 만큼 미래에 대한 좋은 글들을 많이 읽고 거기서 영향을 받은 사고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그냥 미래에 관한 다양한 지식을들 살짝씩 담은 옴니버스 정도로 평가하면 좋을것 같다. 깊은 연구와 고민의 결과가 담긴 미래에 관한 이야기가 알고 싶으면 제리 카플란이나 제레미 리프킨의 책을 읽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이 책에 나오는 내용들의 元典이라고 생각된다). 자본시장이나 시장경제에 대한 이해도 조금 부족해 보인다. 비약이 많아서 거북했다. 정보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면서 "정보를 자본으로 바꾸기만 하면되는데, 그렇게 하고 있지 않다"는 식의 주장이 자주 나온다. 무슨 자신감일까. 사실 IT의 혁신, 혁명이라고 하는데 나는 '광고'와 '수수료' 외에 다른 확실하고 최소한 수년동안 유지가능한 수입원을 창출한 IT기업들을 아직 많이 보지 못한 것 같다(저자의 회사도 광고와 수수료를 결합한 형태의 수익모델을 갖고있는것 같다). 자본주의, 민주주의, 그리고 금융시스템은 생각보다 견고하므로, 단순히 "IT 혁신으로 사용하기 편리해지면 모든게 바뀐다"라는 생각에 나는 동의하지 못하겠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의자와 책상은 수천년간 그냥 의자와 책상이다. 전자책이 나와도 종이책이 아직까지 잘 팔린다. 단순히 편하다고 해서 민주주의의 중요한 의사표시 행위인 선거를 모바일로 해서는 안된다. 기술에 지나치게 취하면 사회시스템을 모조리 기술 관점에서만 해석하게 될 위험이 있다는 점을, 저자를 통해 다시 확인하였다. 미래의 그림을 보는 맛보기로서는 괜찮지만 깊이가 얕고 비약이 많아서 많이 아쉬운 책이었다. 제목이 너무 거창하다.


2017.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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