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한 초보 투자자
야마구치 요헤이 지음, 유주현 옮김 / 이콘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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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5] 현명한 초보 투자자
- 야마구치 요헤이 -

저자는 m&a업계에 있는 기업분석 전문가이다. 제목 그대로 초보투자자를 위해 기본서에 해당하는 내용으로, 주식 투자를 해야하는 이유부터 어떻게 기업의 가치를 평가해야 하는지까지 차근차근 설명하고 있다. 아주 평이하고 쉬운 문체로 씌여졌기 때문에 읽는데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는다. 가까운 곳에 꽂아두고 기본을 다지기 위해 열어볼 필요가 있겠다.
저자가 제시한 가치평가 툴에 따라 내가 보유한 기업들의 평가시트를 작성 해 보았다. 무엇을 사고 무엇을 팔아야 할지 판단이 쉽지는 않다. 결국 계산으로 도출된 숫자를 어떻게 해석하는지는 투자자 본인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저자는 내가 가지고 있던 가치투자에 대한 생각과는 또 조금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어 새롭기도 하다. 주가가 기업가치에 빨리 수렴하는 종목을 찾아야하고, 그런 의미에서 회전율을 높게 가져가는 프로모터식 투자도 나쁘게 보지 않는 관점인 듯 하다. 존리라든지 버핏같은 전문 투자가가 아닌 일반 독자를 위한 현실적 제안에 해당한다. 이 부분만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다른 위대한, 따라서 역설적으로 쫓아가기 쉽지 않은 투자자들과는 다른 현실적 의견이 곳곳에 보인다. 아무튼 초심자에게 좋은 책임에는 틀림없다. 특히 기업의 본질 가치를 평가하기 위한 관점 제시 부분은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핵심 요약.
인과의 매트릭스.

1. 그 기업은 무엇에서 돈을 벌고 있나?
- 사업별
- 지역별
- 고객별

2. 왜 벌 수 있었나?
- 기업가치의 원천은 보통 딱 한가지 밖에 없음
- 결정적으로 중요한 포인트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 `그 회사의 강점을 한마디로 말하면...`
1) 시장의 매력도(수요의 성장 = 시장 규모 확대, 기사 검색 등으로 파악, 치열하지 않은 경쟁 = 진입장벽, 경제적 해자... 인프라 기업 등)
2) 비즈니스 모델의 유망도
ㄱ. 많은 일을 잘하는 기업(프로세스적 강점, 영업이익율이 업종 평균 상회, 신한금융)
ㄴ. 남에게 맡기는 기업(프랜차이즈, 네트워크, 레버리지적 성격의 사업, BGF리테일)
ㄷ. 다른 기업은 할 수 없는 것을 하는 기업(지적 재산권, 특허, 제약회사...)
ㄹ. 신뢰가 두터운 기업(브랜드 로열티, 아모레 퍼시픽?)

3. 앞으로 돈을 버는 구조에 변화는 있는가?

4. 이제부터 `얼마나` 돈을 벌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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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무선본) -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이태수 감수 / 김영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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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이제 수십억년 자연선택의 역사를 지구에서 종결시키고, 마침내 지적설계의 시대로 향하고 있다. 생명공학, 사이보그, 인조지능을 통해 인간은 정말로 다른 살아있는 존재를 설계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 이 부분을 읽기 전 생각해 본, 우리 세대가 정말로 사피엔스의 마지막 세대가 될 것인가?라는 질문에 이르렀다. 미래를 누가 알 것인가? 그러나 인류가 역사상 가장 중요한 갈림길에 섰음은 틀림이 없다. 우리와 아예 다른 종이 되어있을 후손들... 아이작 아시모프의 소설 "최후의 질문"이 생각났다.
 이 책은 총균쇠 이후 읽은 가장 흥미로운 문화인류학 서적이다. 역자 후기를 통해 저자 스스로가 총균쇠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이야기 한 것을 확인했다. 읽는 내내 저자의 흥미로운 분석과 관점에 감탄했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 이후 기계와 인공지능의 발전이 인류를 불행하게 만들지 모른다는 비관적 분위기와, 노동으로부터 해방된 인류에 대한 기대감이 동시에 느껴지고 있는 시점이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현생 인류 자체가 스스로의 선택으로 인해 다른 종이 됨으로써 사라지게 될 것을 조심스럽게 예견하고 있다. 사피엔스는 마침내 신이 될 수 있는 지점에 서 있다.

 추가. 책을 읽던 중 재미난 구절이 나왔다. 오늘날의 소비지향주의 속에, 가난한 사람은 소비가 미덕이라는 신화에 빠져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마구 사들이고 부자는 자산과 소유물을 더욱 지극히 조심스럽게 관리한다는 것이다. 부자의 지상 계율은 "투자하라!"이고 나머지 사람들 모두의 계율은 "구매하라!"라고 표현했다. 저자는 부자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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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필요 없다 - 인공지능 시대의 부와 노동의 미래
제리 카플란 지음, 신동숙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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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4] 인간은 필요 없다.(Humans need not apply: a guide to wealth and work in the age of artificial intelligence)
- 제리 카플란 -

이 책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로봇, 인공지능이라 부르는 인조노동, 인조지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대단히 과학적이거나 기술적인 설명은 없으며, 오히려 미래에 대한 윤리적, 법적, 사회적, 노동적 의미와 대비책, 정책 전망 등을 이야기하는 사회과학 서적에 가깝다.
인조지능을 사실상 처음 개발한 50여년 전 IBM에서는 '설계된 업무만 수행함'이라는 말을 통해 인공지능의 가능성을 의도적으로 축소하여 표현하고자 했다. 로봇과 인공지능에 대한 대중의 두려움을 키우고 싶지 않아서였겠지만 저 말은 이제 사실이 아니다. 최근의 신경망, 머신러닝 등을 통한 인조지능이 판단 매커니즘은 사실상 인간도 표현이나 설명할 방법이 없다고 한다. 기계가 극도로 짧은 순간에 수 없이 많은 계산을 수행안 끝에 거의 직관적으로 답을 도출 해 내기 때문에, 이제 그 답이 어떤과정을 통해 나온 것인지 인간이 이해하고 따라갈 수가 없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인조지능이 생각을 할 수 있냐고 묻는 것은 잠수함이 (수상)항해를 할 수 있냐고 묻는 것과 같다.'고 표현했다. 그 방식의 차이일 뿐 이제 기계는 확실히 생각을 하는 존재이고, 인간이 이를 완전히 통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사례는 금융시장에서 확인된 적이 있다. 1초에 수천번 매매하는 초단타 프로그램 매매에서, 인간간의 거래였다면 현상을 보고 판단 하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연 되었거나 거의 일어나지 않았을 폭락사태 발생한 것인데, 기계 간의 초단타 거래를 통해 거의 몇분만에 미국 증시가 10퍼센트나 폭락한 것이었다. 기계의 이러한 비이성적(사실은 그 상황에 한정해서만은 과도하게 이성적인) 매매를 멈추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지 1초 간의 거래정지였다. 단 1초가 기계에게는 영겁과 같은 시간이라 이 시간을 통해 상황이 진정되었다는 것이다. 이 사례를 통해 '인간이 프로그램한대로만 움직이는 인조지능'이란 허구이며, 기계가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하는지 예측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임이 밝혀졌다.
저자는 인조노동과 인조지능의 출현에 따른 소득의 재분배나 일자리 문제에 많은 지면을 할애 했다. 자동화, 기술의 발전이 특정 일자리를 없애는 현상은 사실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예를 들어 19세기 초 농업에 종사하는 미국인의 비율과 현대를 비교해보면 기계가 얼마나 많은 일자리를 농업 섹터에서 대체했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과정을 통해 인간은 오히려 더 많은 양질을 일자리를 갖게 되었음을 동시에 파악할 수 있는데, 즉 문제는 사라지는 일자리 자체이기보다는 그 속도라는 것이다. 사라지는 일자리를 대체할 다른 일자리가 생겨나기 시작하면 사회는 그에 대한 교육을 준비하고 되고, 지금까지는 이전세대에서 다음세대로의 시대의 이행에 따라 자연스럽게 일자리 비중의 교체가 일어났던 것인데 앞으로는 사람이 미처 적응하기도 전에 일이 완전히 바뀌어버린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현상에 대응하기 위한 다양한 사회정책적 솔루션을 제안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기계로 노동력이 거의 완전히 대체된다면 과연 인간의 노동이 필요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다소 낙관적 전망에 기반한 것이기도 한데, 실제로 사람은 지난 수백년간 지속적으로 일하는 시간을 줄여왔다는 것이다. 사람은 단지 더 부자가 되기위해 무조건 더 많은 시간을 일할 것인가? 그것이 사실이 아님은 많은 부분 동의가 되는 것 같다. 따라서 기계에 의해 창출된 부가가치가 적절히 분배되는 상황을 가정한다면, 아마도 많은 사람이 일하는 시간을 더 줄이고, 경제적 섹터보다는 예술이나 학문이나 여가 등 다른 분야에 시간을 많이 쏟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기계가 언젠가 세상을 지배하고 인간을 노예처럼 부릴 것인가? 저자는 앞은 맞지만 뒤는 아닐 것이라고 보고 있다. 기계와 인간 간에 다투는 자원이 다르고, 마치 인간이 여러 이유로 우리보다 열등한 많은 생명체를 그런대로 보호하고자 하는 것과 같이, 물리적 실체가 명확치 않고 세상 어디에나 존재할 수 있는 인조지능은 인간을 어쩌면 지구상에서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서 관리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우리가 현재 인조지능의 발달로 얻게되는 편의가 그 때가 되면 사실 그들이 우리를 관리하는 한 방법이 된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아직 오지않은 먼 미래에 대한 견해일 뿐이나 이것이 유토피아인지 디스토피아인지 분간하기 힘든 상황에 대해 가정하고 있다. 미래를 누가 알 수 있을까?
이 책에서 나오는 사실과 가정들을 잘 이해하면, 단기간에는 분명 빠른 기술적 진보로 인해 사라지는 많은 육체적, 지식적 일자리로 인해 고통받을 계층이 있을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는데, 이를 피할 방법은 스스로가 속한 섹터가 언제 대체될 것인지 잘 판단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단순 육체노동자나 운전기사 등은 자신의 일자리가 사라질 날이 임박했다는 점을 알아야하며, 법률전문가, 회계사, 의사의 경우에는 조금은 시간이 있겠지만 안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사관리자는 어떻게 될 것인가?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상황에서도 인간의 일자리는 정치적 문제 등 다양한 이유로 상당기간 유지될 수 밖에 없지만, 순차적으로 노동조합의 힘은 약해질 것이며 자연스레 카운터파트인 노동관계관리 쪽도 약해질 것 같다(그러나 일시적으로 본다면 이러한 대체과정에서 촉발될 노무 이슈의 해결에 필요한 전문가 수요가 늘어날지도 모른다). 사무직 인사관리에서 중요한 보상, 몰입, 동기부여 이론 등도 결국엔 약화될 수 있다. 로봇이나 인조지능은 저런것들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최대한 인조지능이 대체하기 어려운 업종에 종사한다면 인사관리자로서의 역할을 최대한 오래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다가오는 미래가 생각보다 빠르다 판단된다면 과감히 그에 맞는 새로운 지식을 익힐 준비를 하여야 한다. 요점은 언제나 준비되어있어야 하고, 항상 관심을 기울여야 위기를 피하고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 저자가 제시하는 부의 분배 시스템 중에서, 부가 집중될 기업의 일부를 소유하는 방식이 상당히 유효할 것으로 판단된다. 아마존의 예만 보아도 이제 기술적으로 가장 진보한 기업이 얼마나 큰 이익을 가져가게 되는지는 명확한 것 같다. 심지아 아마존은 같은 매출을 올리면서도 꾸준히 일자리를 줄여가고 있다. 노동 시장에선 나빠보이더라도 투자자가 환영할 이런 좋은 기업을 찾아 꾸준히 투자하는 것은 인조지능이 내 일자리를 대체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초연하게 다른 일을 찾거나, 공부를 좀 더 하거나, 아니면 그냥 노는! 결정을 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투자공부를 계속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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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아 아, 사람아!
다이허우잉 지음, 신영복 옮김 / 다섯수레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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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4] 사람아 아, 사람아!
- 다이 허우잉(戴厚英) 저, 신영복 옮김 -

시대의 거대한 흐름은 C시 대학의 동기들 각자의 삶에 개인이 거스를 수 없는 영향을 미쳤다. 문화대혁명의 광기 아래 행해진 공개 비판과 지식인 간 피비린내 나는 설전과 논쟁, 쑨위에, 허징후, 자오젼후안, 씨리우, 쉬허엉종 등 각자의 삶은 뒤집히고 다시 뒤집혔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은 각자의 개성이 그대로 살아있다. 한때는 우월한 지위에 있다 무기력하고 불쌍한 평범한 지식인이 된 쉬허엉종이나, 시대의 변화 대한 갈망만 있을 뿐 결코 그 것을 실천하거나 앞장서 글로써 표현하지 못하는 소설가, 그저 살아남기 위한 계산에 바쁜 보신주의자 요루어쉐이 등 주변인물 조차도 1인칭 시점의 묘사를 통해 그 시대를 살아낸 다양한 인물의 모습을 생생하게 살려냈다. 나는 그 중에서도 감정을 가장 절절히 묘사하는 인물은 자오젼후안이 아닐까 한다. 원죄를 가진 남자의 참회와, 해방을 얻는 과정은 소설의 주제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였으며, 그 과정을 1인칭 시점으로 표현함으로써 큰 울림을 주었다.
자오젼후안이 쑨위에의 편지를 읽는 마지막 장에서, 그는 잃을 것을 잃었고 찾아야 할 것을 다시 찾았다. 그리고 슬픔과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 꿈 속에서 애타게 찾던 소녀는 원래 내 것이 아니었던 쑨위에가 아니라, 사랑하는 딸 한한이었음을 깨달았다. 쑨위에를 배신하고 성공과 쾌락을 쫓은 삶 끝에 나락으로 떨어졌던 그는 참회와 용서 끝에 마침내 위안과 삶의 목적을 찾은 것이다.

「웃으면서 어제와 헤어진다는 것은 무대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이다. 나는 울면서 어제와 헤어지고 싶다.
울어라, 자오젼후안! 네가 잃어버린 것을 위해서, 울어라. 자오젼후안! 네가 얻은 것을 위해서, 울어라. 소리를 지르며 울어라!
˝한한, 친애하는 딸이여. 나는 나의 영혼인 너를 되찾았단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나는 그것을 닦을 생각은 없다. 어떻게 닦을 수가 있단 말인가. 잃어야 할 것을 잃고 되찾아야 할 것을 되찾은 것이다.」

허징후와 쑨위에, 애초에 사랑했던 둘은 대혁명의 격랑 속에 20년간 서로를 좋아하는 마음을 전하지 못해 헤메이었다. 전 중국을 떠돌며 삶의 끝에 이르러서도, 장성 옆에 누워 하늘에 절절한 고통을 소리치면서도 살아남아야 했던 허징후와, 첩이라는 조롱과 남편으로 부터 버림받은 고통 속에 살아온 쑨위에는 결국에 서로를 받아들여야 함을 알고 있음에도 세월의 상처로 인해 다가가지 못했다. 그러나 쑨위에의 마지막 편지를 통해, 그리고 허징후가 쑨위에와의 진전에 대해 묻는 친구들에게 전한 레닌의 말 - 생활은 반드시 생활 자체를 위해서 길을 연다- 을 통해 결국 먼 걸을 돌아 `무에서 무로 돌아가는`것이 아닌, 원래 있었어야 할 서로의 자리에 도착하게 될 것임을 알 수 있다.

「눈물을 흘리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낡은 것이 끝나고 새로운 것이 시작된 것이다. 눈물을 흘리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눈물이 펼쳐 놓은 편지지 위에 떨어졌다. 그 편지지 위에 나는 썼다.
<쑨위에, 나의 친구여!>」

소설은 위와 같이 자오져후안의 외침으로 끝을 맺었다. 시대 변화를 읽지 못한 씨리우나 천위리에게는 또다른 시련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허징후나 쑨위에 역시 여전히 불편한 주위의 시선에 시달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허징후가 출판하고자 하는 `마르크스주의와 휴머니즘`을 통해 작가는 중국 인민들이 지나간 혁명의 상흔을 치유하고, 쑨위에와 자오젼후안처럼 서로를 용서하고 인정하며, 계급 간 투쟁의 확대를 그만두고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는 메세지를 전하고자 한다. 작가는 `인간`이라는 커다란 문자가 갑자기 눈앞에 떠올랐으며, 이에 분명히 눈떴다는 것을 선언하기 위해 이 소설을 썼음을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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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 무렵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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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건축가인 박민우는 영산읍이라는 시골 출신이다. 군서기를 하던 아버지의 퇴직에 따라 아무 계획도 없이 가족 전체가 '달골'로 불리던 서울의 어느 산동네로 이주를 하게되었고,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후 변해버린 그 동네의 모처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마무리 된다. 이 소설은 지나간 세월과, 시절과, 사람들과, 희미한 옛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어린시절 동경했던 소녀, 그 아련한 첫 사랑이 주인공이 달동네를 벗어나 주류 사회로 건너 간 이후로는 어딘지 마음이 불편해지는 사람이 되고, 하룻 밤 쾌락으로 소진 해버리는 대상이 되는 서글픈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 세월을 생생히 그리며 기억하는 차순아에게는 달골이나, 박민우나 끝내 벗어나지 못한 애틋한 시절이 되었을 것이다.
젊은 김민우의 죽음은 너무나 비참하지만 또한 너무도 무덤덤하게 그려진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어떤 슬픔의 감정도 보인 적이 없고, 심지어 알바 생활을 전전하지만 정우희를 묵묵히 지켜주는 그의 모습은 꽤 건강해보이기까지 한다. 그는 깊은 슬픔에 빠져서가 아니라, 그저 살아갈 이유를 더 이상 찾지 못해서 덤덤하게 세상을 떠나버린 것이다. 더 이상 살아갈 이유를 알지 못한다는 것... 존재 자체의 가치를 제외한다면, 삶과 죽음도 이렇듯 스스로 의 의지로 결정해도 되는 것일까. 반면에 누구보다 밑바닥 인생이었음에도 이를 악물고 살아서 성공하겠다고 버텼던 청년 재명과 또 그 시절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 것인가. 예전엔 있었지만 지금은 없는 것, 많은 것이 풍족해 보이고, 박민우처럼 우리는 낙오하지 않고 새로운 세상으로 넘어온 것에 안도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삶의 이유를 찾아야만 하는 더욱 무기력해지기만 하는 삶을 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박민우를 통해 기성 세대의 황혼을, 정우희와 김민우를 통해서는 흙수저로 태어나 박민우처럼 주류 사회로 편입할 기회조차 박탈 당한 것일지도 모를 지금의 청춘들을 아련하게, 그리고 선명하게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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