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 무렵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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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건축가인 박민우는 영산읍이라는 시골 출신이다. 군서기를 하던 아버지의 퇴직에 따라 아무 계획도 없이 가족 전체가 '달골'로 불리던 서울의 어느 산동네로 이주를 하게되었고,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후 변해버린 그 동네의 모처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마무리 된다. 이 소설은 지나간 세월과, 시절과, 사람들과, 희미한 옛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어린시절 동경했던 소녀, 그 아련한 첫 사랑이 주인공이 달동네를 벗어나 주류 사회로 건너 간 이후로는 어딘지 마음이 불편해지는 사람이 되고, 하룻 밤 쾌락으로 소진 해버리는 대상이 되는 서글픈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 세월을 생생히 그리며 기억하는 차순아에게는 달골이나, 박민우나 끝내 벗어나지 못한 애틋한 시절이 되었을 것이다.
젊은 김민우의 죽음은 너무나 비참하지만 또한 너무도 무덤덤하게 그려진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어떤 슬픔의 감정도 보인 적이 없고, 심지어 알바 생활을 전전하지만 정우희를 묵묵히 지켜주는 그의 모습은 꽤 건강해보이기까지 한다. 그는 깊은 슬픔에 빠져서가 아니라, 그저 살아갈 이유를 더 이상 찾지 못해서 덤덤하게 세상을 떠나버린 것이다. 더 이상 살아갈 이유를 알지 못한다는 것... 존재 자체의 가치를 제외한다면, 삶과 죽음도 이렇듯 스스로 의 의지로 결정해도 되는 것일까. 반면에 누구보다 밑바닥 인생이었음에도 이를 악물고 살아서 성공하겠다고 버텼던 청년 재명과 또 그 시절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 것인가. 예전엔 있었지만 지금은 없는 것, 많은 것이 풍족해 보이고, 박민우처럼 우리는 낙오하지 않고 새로운 세상으로 넘어온 것에 안도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삶의 이유를 찾아야만 하는 더욱 무기력해지기만 하는 삶을 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박민우를 통해 기성 세대의 황혼을, 정우희와 김민우를 통해서는 흙수저로 태어나 박민우처럼 주류 사회로 편입할 기회조차 박탈 당한 것일지도 모를 지금의 청춘들을 아련하게, 그리고 선명하게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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