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9번 귀 인식표를 단 암소
캐스린 길레스피 지음, 윤승희 옮김 / 생각의길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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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 <1389번 귀 인식표를 단 암소>

 

생명의 보편성에 대하여 생각하게 하는 책.

우리가 먹는 고기 음식에 대해, 그 근원을 깨우치게 하는 책.

 

2001<워싱턴포스트>에 실린 조비 워릭의 <그들은 한 조각 한 조각씩 죽어간다>라는 기사는 수많은 소 도축시설의 비인도적인 실태를 고발하며 인도적인 도축방식이라는 이름으로 저지르는 폭력을 보여준다. 기사에서 소들은 산 채로 가죽이 벗겨지고 아직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다리와 꼬리가 잘리고 배가 갈린다. 기사는 이러한 폭력이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 사실은 지극히 통상적인 관행임을 폭로했다. (74)

 

, 우리 인간이 태어날 때 귀에 구멍을 뚫고 번호표를 단다고 생각을 해 보자. 아이는 처음부터 이름없이 하나의 번호로 불리다 번호로 세상을 떠날 것이다.

 

동물이라면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는가? 동물은 단지 우리가 먹을 음식일 뿐이니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가?

 

우리가 먹는 다양한 고기 음식에 대하여 지금까지 아무런 생각없이 맛있게 먹는 데 집중했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기 원한다.

 

우리가 아침에 우유 한 잔을 먹는 즐거움이 어디에서부터 도래했는지.

젖소는 우리에게 아침 한 잔의 우유를 갖다 바치기 위해 어떻게 평생동안 임신을 하고 송아지와 헤어지는지.

지금까지 한 번도 생각하지 않고, 완전식품 우유와 계란을 찬양하며, 젖소는 당연히 우유를 생산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암탉은 날마다 계란을 낳도록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이 책을 읽어보면 좋겠다.

 

연구하는 내내 사람들이 낙농업에 대해 흔히 품고 있는 오해와 마주했다. 암소는 그냥 우류를 만든다.”라는 오해였다. 나는 수많은 우유 소비자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가볍게 나누곤 했는데 그들은 최근에 출산한 소만이 우유를 생산할 수 있고, 소의 몸이 우유를 생산하는 것은 송아지를 위해서라는 점을 모르고 있었다. (239)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태어나고 먹고 살고 죽는 한 생명이었지만, 사실은 그런 생명으로 여겨지지 못하고 끝내 상품으로 삶을 마감한 동물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은 고기도 아니고 가죽도 아니지만, 철저한 자본주의 논리에 의해 하나의 소유물, 상품의 가치로만 태어나 사육되고 처리된다.

 

물론 이 책을 읽는다고 갑자기 그날부터 우유를 끊고, 치킨을 멀리하고, 스테이크와 돈까스, 소시지와 스팸을 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가녀린 도시 여성이 논문연구를 위해 수많은 농장을 접촉해 방문을 요청했지만 모두 거절당하고 마음씨 좋은 단 한 곳에서 허락받는다. 그렇게 시작된다. 허락을 했다는 것은 그만큼 감추고 비밀을 유지하려는 다른 농장에 비해 사육환경이 좋다고 농장주 스스로 자신하는 바가 있었겠지만,

 

사실, 둘러보고 인터뷰하는 것만으로 얼마나 속사정을 깊이있게 알 수 있겠는가. 이 책의 저자는 그런 부족함을 수많은 자료를 뒤적거려 보충해나간다. 그래서 이 책은 방문과 인터뷰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그녀는 농장 방문 이후 소 경매장을 찾아간다. 소 경매장은 도축하여 고기를 만들려고 사가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거기에서 1389번 귀 인식표를 단 암소를 만난다. 암소는 아무에게도 선택받지 못하다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만다. 집에 돌아온 저자는 마음에 걸려 다음날 전화를 걸어보지만 이미 죽었다는 대답을 듣는다.

 

우리는 경매가 끝난 동물들이 빠져나가는 출구 바로 옆 맨 앞줄에 앉아있었다. 그래서 매번 소들이 링을 떠날 때마다 소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 자리에 앉아 소 하나하나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나는 스스로가 인간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153)

 

근래에 고기로 도축되기 위해 사육되는 동물에 대한 유사한 다른 저작을 읽은 터라 이 책은 연구논문을 위해 접근한 젊은 여성의 노력과 서술이 직접 수 개월씩 관련 농장에서 노동하며 쓴 타 도서에 비해 일견 가벼운 느낌이 들긴 했다. 하지만 저자는 이 부분을 매우 다양하고 전문적인 자료들로 보충하여 타 도서에서는 설명되지 않은 많은 부분이 오히려 차별적으로 설명되고 있다.

 

이 책을 읽고 채식주의자가 되건, 동물보호주의자가 되건 그건 개인의 자유다. 다만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오직 상품의 가치로만 판단되고 길러지고 팔려나가는 동물들에 대해서 우리는 조금 더 많이 알고 있을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바로 우리와 우리 자녀들이 날마다 먹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이 책 이전에 좀더 지독한 책을 읽었음에도, 그리고 아침 저녁 출퇴근 시간에 이 암소에 대한 책을 읽었음에도 여전히 오늘 아침에는 계란 후라이를 먹었고, 점심은 갈비탕을 먹었다. 무엇을 먹거나 무엇을 끊는 건 개인의 기호에 관한 문제이다. 그러나, 동물들이 태생적으로 중요한 삶의 주체라서가 아니라, 동물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동물의 상품 가치가 결정되는 (242) 이 세계에 대해서는 우리가 좀더 생각을 해봐야 한다. 그것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적 의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동물은 우리에게 지구를 함께 누비며 사는 공동체인가, 아니면 오직 인간을 위해 상품으로 태어나고 죽어나가는 그저 음식물인가.

 

얼마 전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 주화면에 직업 관련 글들이 배치된 적이 있었다. 거기에 병아리 감별사가 전문직이고 고임금을 받는 직업임에도 사람이 부족하다는 글이 있었다. 그 글 아래에 댓글로도 달았지만 병아리 감별사는 병아리가 태어나면 병아리가 수놈인지 암놈인지를 수초 안에 감별해내는 사람이다. 문제는 수평아리다. 수평아리로 감별된 병아리는 생명체가 아니라 즉시 쓰레기로 처리되어 쓰레기 컨테이너에 산 채로 압착된다. 계란을 낳지 못하는 닭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명체로 살아남지 못한다. 우리 사회가 그렇게 되어 버렸다는 사실이 너무 슬프다. 날마다 계란을 먹고 있지만 참으로 슬퍼 어찌 할 바를 모르겠다.

 

미국에서 달걀을 낳는 암탉의 95퍼센트는 너무 좁아서 날개를 펼 수도 없는 밀집형 닭장에서 지내며, 이렇게 좁은 공간에서 서로 무참하게 공격하지 않도록 부리를 잘린다. (117)

 

이제는 좀더 채식에 가까워진 먹거리를 생각해본다. 나를 좀더 이런 책으로 채찍질할 필요가 있다. 그들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가슴이 아플 줄 뻔히 알지만 더 많은 분들이 이런 책을 읽어보면 좋겠다. 강아지와 고양이만 사랑하지 말고.

 

 

생각도 하고, 느끼기도 하지만 동물이 소비되는 물건이라는 틀 안에 놓일 때, , “귀여우니까 한 마리 가질래.”라고 말할 수도, 실제로 가질 수도 있게 될 때, 식품으로서 동물의 소비는 완벽하게 정상적인 행위가 된다. 이러한 소비는 살았든 죽었든 동물은 소유할 수 있는 물건이라는 이해에 근거한다.

 

애완동물이나 사육 동물을 마음대로 죽일 수 있다는 사실로 인해 이 살아있는 존재들은 계속해서 소비의 대상으로 살아가게 된다. (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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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에게만 친절합니다 - 독일인에게 배운 까칠 퉁명 삶의 기술
구보타 유키 지음, 강수연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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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에게만 친절합니다]

표지부터 까칠한 책 -일본인의 까칠한 독일 생활기

 

 

표지와 제목이 친절하지 않았다.

표지를 크게 장악하고 있는 살아있는 듯한 커다란 선인장을 보고, 살짝 눈을 들어 나는 나에게만 친절합니다라는 제목을 본다. 표지를 무슨 색이라 불러야 할까. 흰색은 아니지만 연한, 아주 연한 아이보리 색 바탕에 초록빛 선인장이 다섯 갈래로 비쭉 왼쪽에서부터 중앙쪽으로 나아오며 화면을 크게 차지한다. 강렬하다. 제목은 오른쪽 선인장 가시가 하늘을 향하고 있는 살짝 윗부분에 짙은 아이보리색, 그래서 약간 금색빛이 도는 반짝이는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전체적으로는 표지가 너무 선명하고 단아하다. 제목도 거기에 걸맞아, 이거 가벼운 심리도서가 아닐까. 아니면 자기계발 에세이? 하며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그러나 금빛 선인장 가시 두 개로 붙여놓은 부제는 독일인에게 배운 까칠 퉁명 삶의 기술이다. 그제야 이 책의 정체를 아이보리색 마냥 연하게 파악할 수 있다. 고개를 아래로 내리니 동그란 원 안에 철학의 나라 독일에서 찾은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라는 또 다른 소제목이 보인다. 그러니까 이건 독일의 라이프 스타일에 관한 책이로군. 그렇다면 굳이 나는 나에게만 친절합니다라는 최근 유행하는 심리 에세이 같은 제목을 붙인 건 뭐람? 하며 작가를 본다. 작가는 구보타 유키일본사람이다.

 

그렇게 친절하지 않은 표지를 분석하고 겨우 책 안으로 들어간다. 잡지사 편집인이었던 구보다 유키는 한국처럼 야근을 밥 먹듯이 했단다. 너무 힘에 겨워 회사를 때려치우고 잠시 휴식을 취할 요량으로 그는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 베를린으로 간다. 1년만 쉬다 오려고. 그랬던 것이 그녀는 독일이 너무 좋아, 일본을 다시 올 것을 생각하니 머리가 지끈거려 그냥 독일에 눌러앉았단다.

 

그런 책이다. 그녀가 일본으로 돌아오지 않고 독일에 눌러앉게 된 이유. 그 이유가 책에 빼곡하게 적혀 있다. 물론 편집의 미를 살려 책은 빼곡하게 구성되어 있지 않고 독일의 여유로운 사진들이 여백의 미를 살려 낭창낭창 배열되어 있다.

 

그녀는 독일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기업을 탐방하여 일본의 잡지에 기고하는 일을 하는 프리랜서로 살아간다. 일본의 문화에 익숙해져 있던 그녀는 독일의 무신경한 대응에 분노하고 진을 뺀다. 이메일을 보내도 읽었다는 답장도 보내지 않는다. 전화를 걸어도 저기로 걸어보라 하고 자기들은 뒤로 빠진다. 택배를 보내기 위해 신청을 하면 아침 7시부터 저녁 6시 사이에 가져갈 예정이라고 연락이 와 하루종일 아무것도 못한 채 자리를 지켰는데, 결국 오지 않는다. 일본이었다면 상상도 못할 일이라고 그녀는 궁시렁거린다. (한국과 일본이 어찌 그리 닮았는지)

 

그러다가 서서히 독일을 알아간다. 독일 직장인들은 여름에 최소 3주의 휴가를 쓴다. 그 휴가를 위해 일을 한다. 야근을 하고 주말 근무를 해서 돈을 많이 벌어 나중에 여유를 가져보는 스타일이 아니라. 지금 조금 적게 일하고 돈을 적게 벌더라도 지금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집중력을 가지고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빨리 마치려고 한다. 그러다보니 다른 사람 일을 챙겨서까지 해주지 않는다. 자기에게 주어진 일. 그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메일도 자기와 상관이 없으면 답장을 보내지 않는다. 거기에 시간을 빼앗기기 싫기 때문이다.

 

독일인들은 그래서 아침 일찍 출근하고 오후 서너 시가 되면 퇴근을 한다. 일요일에는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는다. 그들도 쉬어야 하니까. 그래서 그들은 토요일에 주말 장까지 같이 봐놓는다.

 

독일에는 상점 폐점법이라는 법률이 있어서 음식점이나 벼룩시장 등 일부를 제외하고 일요일과 휴일에는 어느 가게든 쉰다고 정해져 있어요. 슈퍼마켓도 마찬가지고 편의점은 독일에 없어요. 따라서 일요일에는 쇼핑을 즐길 수 없죠. (96)

 

그런데 신기하게도 일요일에 대부분의 가게가 영업을 안 하는 독일 생활에 익숙해지자, 지금까지 왜 귀중한 휴일에 굳이 쇼핑을 하며 보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97)

 

저자는 독일에서의 생활을 일하기쉬기살기먹기입기의 다섯 챕터로 나누어 설명한다그녀는 100 넘은 건축물알트바우라는 곳에서 살고 있다독일에서는 신축건물보다 이렇게 오래된 건축물이  인기가 많고 가치가 높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소비를   브랜드보다 기업의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한단다. 노동자를 착취하거나, 소비자와 신뢰를 깨뜨리거나, 기타 등등 기업의 윤리가 땅에 떨어지면 그들은 불매운동을 한다. 아무리 브랜드가 있어도 안 산단다.

 

그렇게 독일인의 라이프 스타일을 이해하고 나니, 그제야 책 제목이 눈에 다시 들어온다. 선인장의 가시가 눈에 들어온다.

 

그래. 나와 가족에게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 위해 너를 위해서는 시간을 만들 수 없어. 미안. 나도 그러니까 네가 나에게 그렇게 하는 것도 이해해. 우리 서로 쿨하게 서로 자기를 지키며 살자.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아주 오래 전에 독일에 간 적이 있었다. 저녁 여덟 시만 되면 거리의 상점들은 문을 닫았다. 근면 검소한 사람들이었다. 몸집은 컸는데 자동차는 대부분 소형차를 타고 다녔다. 운적석에 앉기 위해 몸을 비틀어야 했다. 그렇지만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책에도 나온다. 독일 사람들은 일찍 집에 와서 가족들과 보드게임을 한다고 한다. 대다수의 국민이 그렇게 한다니 그들의 성정이 충분히 예측되고 남는다.

 

그러다가 베를린에 와서 깨달았어요. 사람들의 걷는 속도가 느리다는 것을. 다리 길이의 차이도 있겠지만, 저처럼 서두르며 걷는 사람은 소수예요. 걷는 속도뿐 아니라 모든 동작이 느긋해요. 그러다보니 제 템포도 그들에 맞춰 점점 느려졌어요. 그러자 짜증을 내는 일이 줄어들었죠. (105)

 

거의 날마다 야근을 하는 나로서는 그들의 까칠한 삶이 부럽다. 나도 눈치보지 않고 그렇게 하고, 그렇기 때문에 너도 그렇게 해도 된다는 쿨한 국민적 합의. 그것이 오히려 서로의 행복지수를 더 높여준다. 그렇지만 선인장은 좋아하기 어렵다. 물이 없어도 견디고 자라는 그 인내는 인정하지만, 가시는 너를 타인으로 남게 한다. 우리, 함께가 될 수 없다. 하지만 단점보다는 장점이 더 많은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구보타 유키가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도 이해가 된다. 나도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베를린에서 1년쯤 살아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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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만큼 거룩하라 - 더 나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는 법
찰스 피니 지음, 임종원 옮김 / 브니엘출판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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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만큼 거룩하라>

 

살아생전 온전한 성화를 이룰 수 있을까?

성화에 이르는 길을 제시해주는 완벽한 가이드북

 

이 책은,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성화에 대하여, 그것이 예수님이나 되면 가능할 것이라는, 성화의 실현불가능성에 대하여 조목조목 반박하는 변증론적 책이다. 그렇지 않다고. 모든 그리스도인은 이 땅에서 성화가 가능하다고 저자는 반박한다. 이 책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 작업을 수행한다. 증명한다. 우리에게 교훈한다.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고 건국한 1776년 이후 20년 가량이 지난 1792년에 미국 코네티컷 주에서 농부로 태어난 저자 찰스 피니 목사는 1821년 회심 이후 변호사를 포기하고 목회자가 되었다. 그는 아무것도 섞지 않은 순백의 복음만으로 강력하게 설교하여 5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그리스도로 돌아오도록 만들었다.

 

그는 실제로 자신의 삶 속에서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해 완전한 성화에 이를 수 있다는 확신과 함께 성화를 체험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확신을 이 책 속에 녹여냈다. 바울이 완전한 성화를 맛본 것처럼 그도 완전한 성화를 성취했으며, 이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수많은 그리스도인에게 삶 속에서의 성화를 얘기하며 하나님의 약속을 깨우치는 전도자가 되었다.

 

그는 사람들이 성화에 실패하는 이유를 분석하고 맨 처음 성화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지레 겁을 먹고 있다고 판단하였다. 그는 맨 처음 그리스도인에게 성화가 무엇인지, 성화의 제대로 된 개념을 정의하는데 긴 시간을 할애하였다.

 

온전한 성화란 하나님께 모든 존재를 성별하여 올려드린다는 뜻인데 하나님 자신과 그분을 섬기는 일에 모든 것을 헌신하는 상태를 말한다. (18) 사람은 한동안 하나님께 전적으로 성별하여 올려드릴 수 있지만 그 이후 세속적으로 사용하거나 다른 목적으로 타락할 수 있기 때문에 영속적인 성화가 필요하다.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누가복음 1027절 말씀)

 

어쩌면 성화의 모든 것은 이 성경말씀 하나로 정의를 내리고 실천의 모든 것을, 성취의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성화가 무엇인지 규칙을 하나하나 열거하며 설명한다. 그리고 무엇이 성화가 될 수 없는지 그 반대편의 사례도 꼼꼼하게 살펴 우리에게 알려준다. 이 책은 에세이 형식이거나 설교 형식의 책이 아니라 성화에 대한 기준과 규칙을 설명해주는 완벽한 가이드북이다. 그의 규칙에 대한 설명이 얼마나 집요하며 꼼꼼한지는 규칙 9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규칙 9. 어떤 요구조건과 또 다른 조건이 서로 조화되지 않는 방향으로 어떤 법을 해석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예를 들어 만약 첫째 계명이 하나님을 유일한 생각, 주목, 애정의 대상으로 삼도록 우리에게 요구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면 우리는 자기 이웃을 사랑하라고 요구하는 둘 째 계명에 절대 순종할 수 없다. (24)

 

사실 이 부분을 읽을 때 나는 눈에서 비늘 하나가 벗겨지는 시원한 통찰의 기쁨이 있었다. 대부분 크리스천은 하나님을 사랑하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사랑하라는 말씀에 대해 도대체 어느 정도로 사랑하라고 얘기하는 것인지, 목숨을 다하여 사랑하라니, 사실은 거의 실천 불가능한 정도를 요구하는 게 아니냐는 다소 의심스런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성화에 대하여 현실의 삶에서는 죄인인 인간이 실현하기에는 불가능한 상태가 아니냐는 판단을 내리고 만다.

 

그러나 저자는 만약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외에 다른 어떤 것도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계명이라면,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저자는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해석할 때는 그렇게 조화되지 않는 방향으로 어떤 법을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규칙을 미리 알려주고 설명해준다. 그런 성경해석에 대한 규칙이 1장에서만 16개가 설명되어 있다. 그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온전한 성화에 대한 개념을 바로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16개 규칙에 대한 설명이 끝나고 나면 2장에서는 온전한 성화가 아닌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부분을 다룬다. 우리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다양한 사례들을 제시하며 실천적인 성화를 돕도록 한다.

 

온전한 성화란 하나님께 모든 역량을 현재 있는 모습 그대로 완전히 성별하는 것이다. 온전한 성화란 그런 역량 자체의 어떤 변화를 의미하기보다는 단지 그것을 원래 모습대로 올바로 사용한다는 뜻이다. 온전한 성화란 자연스러운 열정이나 충동처럼 타고난 성품을 이루는 체질적인 특징을 완전히 없앤다는 의미가 아니다. (30)

 

그 단계가 지나고 나면 그는 온전한 성화를 현실에서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한다. 저자는 온전한 성화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충분히 이룰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성화를 위해 기도하라고 가르치셨고, 성화에 이를 수 있는 풍성한 수단을 제공하고 있으며, 이를 돕는 성령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에 가능하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제시한 약속을 통해서 그 성취는 반드시 가능하다. 저자는 이를 위해 7가지의 원리를 제시하며 꼼꼼한 설명을 이어간다. 그리고 저자는 온전한 성화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라고 외친다.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완전한 성화가 가능하다는 다섯 가지의 약속을 제시한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 따라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첫 번째 계명에 대한 순종은 이웃을 사랑하라는 둘째 계명에 대한 순종을 전제로 한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 없이 하나님을 뜻을 다해, 마음을 다해 사랑할 수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법을 우리 마음속에 깊이 기록해 두겠다고 하셨다. 하나님의 법은 바위에 새긴 글처럼 우리 영에 깊이 새겨져 있다. 그래서 우리는 온전한 성화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

 

저자는 성경에서 온전한 성화를 이루었던 바울의 삶을 조명하며, 우리에게도 가능한 영역임을 설명한다. 이미 이 세상의 삶에서 성화를 이룬 사람이 있는데, 우리가 못하겠다고 거부하거나 포기할 수는 없다. 우리는 현재의 삶, 이생에서만 분명히 사도로, 선지자로, 복음전도자로, 목사와 교사로 섬길 수 있다. 따라서 성화도 이생의 삶에서 가능할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우리를 위하여 얼마든지 이 일을 행할 수 있다. (128)

 

저자는 마지막 장에서 우리는 어떻게 완전한 성화에 이를 수 있는지 설명하며 책을 끝낸다. 성화는 감정이 아니며, 율법도 아니다. 그것으로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다. 성화는 오직 믿음만으로 가능하다. 내가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가능하도록 하신다. 아멘.

 

나도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온전한 성화에 대한 잘못된 이해로 이생의 삶속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나의 죄된 모습으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경지가 아닐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보니 그런 생각은 무지일 수도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무시하는 매우 오만한 생각일 수도 있겠다는 깨달음이 왔다. 성화를 내가 내 힘으로 이루려 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그가 또한 이루시길 원하고 성령 하나님이 친히 나와 동행하시니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이루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성화, 포기하지 말고 가슴에 품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히브리서 116절 말씀)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데살로니가전서 524절 말씀)

 

온전한 성화의 상태는 하나님의 은혜와 상관없이 어떤 율법적인 행위나 자신의 힘으로 수행하는 어떤 종류의 행위로 도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즉 자신 스스로의 힘으로, 또는 하나님의 은혜 없이 기울이는 어떤 노력으로는 결코 이르지 못한다.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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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뚫고 시가 내게로 왔다 - 소외된 영혼을 위한 해방의 노래, 라틴아메리카 문학 서가명강 시리즈 7
김현균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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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궁금하다면-라틴 아메리카로

 

라틴아메리카 최고 시인 4인방을 가장 근접하게 묘사한 수작.

김현균 서울대 교수의 명강의 <어둠을 뚫고 시가 내게로 왔다>

 

시는 그래야 한다.

최소한 어둠 정도는 뚫어줘야 시라는 대접을 받을 수 있다.

 

이 책은 21세기북스 출판사에서 <서가명강>이라는 별도 브랜드를 만들어 시리즈물로 편찬하고 있는 책의 일곱 번째 명강으로 소개되는 책이다. 그동안 서울대 의과대학 법의학교실 교수, 사회학과 교수, 생명과학부 교수, 철학과 교수, 수학과 교수, 산업공학과 교수까지 두루두루 서울대학교에서만 들을 수 있는 강의들을 모아 책으로 펴냈다.

 

이번 책은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교수인 김현균 교수의 라틴아메리카 문학에 대한 이야기다. 서가명강 시리즈에서 문학 책이 일곱 번째로 소개된 것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크다. 하지만 문학 관련 책이 라틴 아메리카를 시발점으로 했다는 것은 그 아쉬움을 달래주기에 충분하다.

 

위키백과 사전에 따르면, 라틴 아메리카문학은 에스파냐어를 사용하는 중남미 국가와 푸에르토리코, 포르투갈어를 쓰는 브라질 문학을 통칭한다고 되어 있다. 라틴 아메리카 문학은 19세기 초 라틴 아메리카의 독립운동이 한창일 때 탄생했지만 무엇보다 1950년 이후 소설가들이 갑작스럽게 세계의 주목을 끌었다고 소개하고 있다.(책에서는 붐 세대1960년대에 갑자기 붐을 이루며 등장한 라틴 아메리카 문학세대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때 작가들이 발표한 수많은 작품들을 붐 소설이라고 불렀는데 붐 소설가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1982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르시아 마르케스이다. 그의 작품 백 년 동안의 고독은 라틴아메리카 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체코 작가 밀란 쿤데라는 서구 문학가들에게 이렇게 일갈했다고 한다.

 

서가에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 년 동안의 고독을 꽂아놓고 어떻게 소설의 죽음을 말할 수 있겠는가.” (31)

 

<어둠을 뚫고 시가 내게로 왔다>는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전반적인 흐름과 역사를 개괄적으로 짚어주지만 무엇보다도 네 명의 시인을 선정해 그들의 작품과 삶을 들여다봄으로써 라틴 아메리카 문학, 그 중에서도 시의 흐름을 이해하고 라틴 아메리카를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1부에서 전체적인 흐름을 읽고 난 뒤, 2부에서부터는 각 시인의 시와 삶 한 가운데로 들어간다. 2부는 시인들의 시인, ‘슬프게도 저는 시인입니다라고 고백한 <루벤 다리오>, 3부는 잉크보다는 피에 가까운 시인으로 소개한 <파블로 네루다>, 4부는 영혼을 위무하는 시인 <세사르 바예호>, 4부는 반시라는 장르를 만들어 기존 시를 파괴하고 저항한 시인 <니카노르 파라>를 이야기한다.

 

350쪽에 달하는 묵직한 책이지만 김현균 교수의 이야기를 따라 가다보면 우리는 어느새 소외된 영혼들의 라틴 아메리카 문학에 흠뻑 빠져들게 된다. 책을 읽고 나서 다시 각 시인들의 개별 문학작품집을 사서 읽지 않고는 못 배기게 될 것이다.

 

쿠바의 사상가이자 시인이었던 호세 마르티는 그의 나이 스물넷이던 1877년에 아메리카에 대하여 이렇게 소리쳤다.

 

아메리카의 장엄한 문명은 정복에 의해 중단되었지만, 유럽인들의 도래와 함께 새로운 민중이 창조되었다. 비록 상처 입었지만, 우리는 아직 죽지 않았다. 이제 다시 살아날 것이다! (24)

 

 

시란 무엇이고 시인은 어떤 사람인가.

시인은 세상에서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가.

시인이라는 직업으로 굶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시인들의 기준이 된 위대한 시인 루벤 다리오는 <시인과 왕>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시인을 노래했다.

 

자네는 이름이 있는가?”

없습니다. 폐하.”

혹 조국은 있는가?”

세상이 저의 거처입니다.”

자네의 목구멍에선 왜 그토록

비애가 솟아나는가?“

자네는 자유인인가, 노예인가?”

자유인입니다. 하지만 폐하,

저는 슬프게도 저는

시인입니다!”

(97)

 

시인과 시를 추방하는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

바로 물질이 지배하는 사회다. 시는 어둠을 뚫을 수 있기 때문에 물질의 총합을 뛰어넘는다. 결코 죽음 따위가 시의 광휘를 가로막을 수 없다. 실제로 칠레에서 광부 33명이 지하 700미터에 매몰되었을 때 그들은 삶에 대한 끈을 놓지 않기 위해 네루다의 시를 돌려 읽었다고 한다. 시는 희망이고 봄이다. 어둠을 뚫고 달려오는 따뜻한 빛이다.

 

당신들은 세상의 모든 꽃을 꺾을 수 있다.

그러나 봄이 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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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일터신학 - 무엇으로 일하고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원용일 지음 / 브니엘출판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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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용일 직장사역연구소 소장의 사물의 일터신학

 

왜 일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사물 일터신학

 

 

반성경적인 직업만 아니라면 모든 일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과 동일한 성스러운 일이라는 칼뱅의 직업 소명론을 머리로 이해하고 받아들였지만 그것이 온전히 영적으로 체화되지는 않았다. 그것은 이론으로 암기해야 하거나 이해를 필요로 하는 항목이 아니었다. 날마다 전쟁터와 같은 치열한 직업전선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일하면서 어떤 시간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전혀 느끼지 못하기도 했고, 이 일이 하나님의 사명과 아무런 상관이 없을 것 같다는 불안감에 휩싸일 때가 많았다.

 

교회에서 제자반 공부를 하면서 목사님과 함께 열심히 말씀을 읽고 관련된 책을 읽으며 평신도 직업인의 소명에 대하여 공부를 했다. 일터신학은 첫 직장을 가졌던 1991년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명쾌하지 못하게 내 발목을 잡고 있는 영적 아킬레스건이었다. 오스 기니스의 소명부터 방선기 목사님의 크리스천@직장, 폴 스티븐스의 일과 신학그리고 팀 켈러의 일과 영성까지 읽었지만 여전히 확신은 부족했다.

 

그러던 차에 원용일 직장사역연구소 소장의 사물의 일터신학을 만났다. 원용일 소장은 작은 월간지 <일하는 제자들> 편집장을 했다고 한다. 많이 반가웠던 것은 <일하는 제자들>을 정기구독으로 꾸준히 읽기도 했었고, 기억이 희미하긴 하지만 당시 꽤 유명했던 가족신문 원지네<일하는 제자들>에 실린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보관하고 있지 않아 정확히 어떤 내용이 실렸는지 확인을 할 수가 없다.) 정기구독하던 당시 편집장님이 원용일 소장님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일단 무척 반가운 마음으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사물의 일터신학은 상당히 독특한, 개성 넘치는 책이었다. 국내에도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기독교 작가가 있다는 생각이 가슴이 뿌듯해졌다. 책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1. 왜 일하는가?

2. 어떻게 일하는가?

3. 누구와 일하는가?

4. 일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사물의 일터신학은, 성경의 인물들이 어떤 사물을 사용해 하나님의 일을 했는가를 추적하고 분석하고 연구하면서, 이 땅에서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를 알아본다. 직장 일이든 하나님의 일이든, 무슨 일을 하든지 우리는 거의 반드시 어떤 도구를 사용하게 된다. 무의식적으로 하는 일이라 깊이 신경을 쓰지 않지만, 지금 이 독서후기도 컴퓨터 키보드와 마우스를 사용해 작성하고 있다.

 

첫 사례로 나온 엘리사의 열두 겨릿 소는 이제껏 성경을 읽으면서 한 번도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던 부분인데, 열두 마리의 소를 이용해 일을 해야 할 만큼 매우 부자였던 엘리사였음에도 불구하고 하인들과 함께 직접 소를 다루며 열심히 일을 했다는 저자의 분석은 신선함과 함께 큰 도전을 주었다.

 

하나님은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부르신다.

엘리사는 일하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소명의 중요한 요소가 여기에 있다. (021)

 

저자는 성경  인물들이 사용했던 지팡이손수건과 앞치마곡식창고물맷돌곡식물동이나무  묶음창과 수금금송아지돈궤만나와 메추라기박넝쿨  다양한 사물들을 분석하며 하나님의 뜻을 찾았다지금까지 대부분의 책은 성경  인물이 관심 대상이었지만 저자는 인물에서  걸음  들어가 그들이 사용한 사물을 통해 하나님의 숨겨진 뜻, 우리의 자세를 영적으로 분석해 들어갔다.

 

우리는 세상 속에서 어떤 도구를 가지고 일하는가?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신 지팡이처럼, 내게 주신 일터 사물은 무엇인가. 그것으로 어떤 식으로 일하고 있는가. 이 책을 통해 무엇 때문에 일하고, 왜 일하고, 어떻게 일하는지, 그리고 앞으로는 어떻게, 어떤 마음으로 일해야 하는지 좀더 깊게, 깊숙이 알게 되었다.

 

저자는 신학을 이야기하면서도 사물을 객체로 가져와 매우 재미있는 책을 만들었다. 이야기가 재미있고 신선하고 쫄깃쫄깃하다. 색다른 시선으로 자신의 일에 대한 소명을 되돌아볼 좋은 기회인 것 같다. 모든 것은 합력하여 선을 이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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