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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뚫고 시가 내게로 왔다 - 소외된 영혼을 위한 해방의 노래, 라틴아메리카 문학 ㅣ 서가명강 시리즈 7
김현균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0월
평점 :
시가 궁금하다면-라틴 아메리카로
라틴아메리카 최고 시인 4인방을 가장 근접하게 묘사한 수작.
김현균 서울대 교수의 명강의 <어둠을 뚫고 시가 내게로 왔다>
시는 그래야 한다.
최소한 어둠 정도는 뚫어줘야 시라는 대접을 받을 수 있다.
이 책은 21세기북스 출판사에서 <서가명강>이라는 별도 브랜드를 만들어 시리즈물로 편찬하고 있는 책의 일곱 번째 명강으로 소개되는 책이다. 그동안 서울대 의과대학 법의학교실 교수, 사회학과 교수, 생명과학부 교수, 철학과 교수, 수학과 교수, 산업공학과 교수까지 두루두루 서울대학교에서만 들을 수 있는 강의들을 모아 책으로 펴냈다.
이번 책은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교수인 김현균 교수의 라틴아메리카 문학에 대한 이야기다. 서가명강 시리즈에서 문학 책이 일곱 번째로 소개된 것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크다. 하지만 문학 관련 책이 라틴 아메리카를 시발점으로 했다는 것은 그 아쉬움을 달래주기에 충분하다.
위키백과 사전에 따르면, 라틴 아메리카문학은 에스파냐어를 사용하는 중남미 국가와 푸에르토리코, 포르투갈어를 쓰는 브라질 문학을 통칭한다고 되어 있다. 라틴 아메리카 문학은 19세기 초 라틴 아메리카의 독립운동이 한창일 때 탄생했지만 무엇보다 1950년 이후 소설가들이 갑작스럽게 세계의 주목을 끌었다고 소개하고 있다.(책에서는 ‘붐 세대’를 1960년대에 갑자기 붐을 이루며 등장한 라틴 아메리카 문학세대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때 작가들이 발표한 수많은 작품들을 “붐 소설”이라고 불렀는데 붐 소설가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1982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르시아 마르케스이다. 그의 작품 『백 년 동안의 고독』은 라틴아메리카 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체코 작가 밀란 쿤데라는 서구 문학가들에게 이렇게 일갈했다고 한다.
“서가에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 년 동안의 고독』을 꽂아놓고 어떻게 소설의 죽음을 말할 수 있겠는가.” (31쪽)
<어둠을 뚫고 시가 내게로 왔다>는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전반적인 흐름과 역사를 개괄적으로 짚어주지만 무엇보다도 네 명의 시인을 선정해 그들의 작품과 삶을 들여다봄으로써 라틴 아메리카 문학, 그 중에서도 시의 흐름을 이해하고 라틴 아메리카를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1부에서 전체적인 흐름을 읽고 난 뒤, 2부에서부터는 각 시인의 시와 삶 한 가운데로 들어간다. 2부는 시인들의 시인, ‘슬프게도 저는 시인입니다’라고 고백한 <루벤 다리오>를, 3부는 잉크보다는 피에 가까운 시인으로 소개한 <파블로 네루다>를, 4부는 영혼을 위무하는 시인 <세사르 바예호>를, 4부는 반시라는 장르를 만들어 기존 시를 파괴하고 저항한 시인 <니카노르 파라>를 이야기한다.
350쪽에 달하는 묵직한 책이지만 김현균 교수의 이야기를 따라 가다보면 우리는 어느새 소외된 영혼들의 라틴 아메리카 문학에 흠뻑 빠져들게 된다. 책을 읽고 나서 다시 각 시인들의 개별 문학작품집을 사서 읽지 않고는 못 배기게 될 것이다.
쿠바의 사상가이자 시인이었던 호세 마르티는 그의 나이 스물넷이던 1877년에 아메리카에 대하여 이렇게 소리쳤다.
아메리카의 장엄한 문명은 정복에 의해 중단되었지만, 유럽인들의 도래와 함께 새로운 민중이 창조되었다. … 비록 상처 입었지만, 우리는 아직 죽지 않았다. 이제 다시 살아날 것이다! (24쪽)
시란 무엇이고 시인은 어떤 사람인가.
시인은 세상에서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가.
시인이라는 직업으로 굶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시인들의 기준이 된 위대한 시인 루벤 다리오는 <시인과 왕>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시인을 노래했다.
“자네는 이름이 있는가?”
“없습니다. 폐하.”
“혹 조국은 있는가?”
“세상이 저의 거처입니다.”
“자네의 목구멍에선 왜 그토록
비애가 솟아나는가?“
“자네는 자유인인가, 노예인가?”
“자유인입니다. 하지만 폐하,
저는 슬프게도 저는 …
시인입니다!”
(97쪽)
시인과 시를 추방하는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
바로 물질이 지배하는 사회다. 시는 어둠을 뚫을 수 있기 때문에 물질의 총합을 뛰어넘는다. 결코 죽음 따위가 시의 광휘를 가로막을 수 없다. 실제로 칠레에서 광부 33명이 지하 700미터에 매몰되었을 때 그들은 삶에 대한 끈을 놓지 않기 위해 네루다의 시를 돌려 읽었다고 한다. 시는 희망이고 봄이다. 어둠을 뚫고 달려오는 따뜻한 빛이다.
당신들은 세상의 모든 꽃을 꺾을 수 있다.
그러나 봄이 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14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