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9번 귀 인식표를 단 암소
캐스린 길레스피 지음, 윤승희 옮김 / 생각의길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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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 <1389번 귀 인식표를 단 암소>

 

생명의 보편성에 대하여 생각하게 하는 책.

우리가 먹는 고기 음식에 대해, 그 근원을 깨우치게 하는 책.

 

2001<워싱턴포스트>에 실린 조비 워릭의 <그들은 한 조각 한 조각씩 죽어간다>라는 기사는 수많은 소 도축시설의 비인도적인 실태를 고발하며 인도적인 도축방식이라는 이름으로 저지르는 폭력을 보여준다. 기사에서 소들은 산 채로 가죽이 벗겨지고 아직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다리와 꼬리가 잘리고 배가 갈린다. 기사는 이러한 폭력이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 사실은 지극히 통상적인 관행임을 폭로했다. (74)

 

, 우리 인간이 태어날 때 귀에 구멍을 뚫고 번호표를 단다고 생각을 해 보자. 아이는 처음부터 이름없이 하나의 번호로 불리다 번호로 세상을 떠날 것이다.

 

동물이라면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는가? 동물은 단지 우리가 먹을 음식일 뿐이니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가?

 

우리가 먹는 다양한 고기 음식에 대하여 지금까지 아무런 생각없이 맛있게 먹는 데 집중했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기 원한다.

 

우리가 아침에 우유 한 잔을 먹는 즐거움이 어디에서부터 도래했는지.

젖소는 우리에게 아침 한 잔의 우유를 갖다 바치기 위해 어떻게 평생동안 임신을 하고 송아지와 헤어지는지.

지금까지 한 번도 생각하지 않고, 완전식품 우유와 계란을 찬양하며, 젖소는 당연히 우유를 생산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암탉은 날마다 계란을 낳도록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이 책을 읽어보면 좋겠다.

 

연구하는 내내 사람들이 낙농업에 대해 흔히 품고 있는 오해와 마주했다. 암소는 그냥 우류를 만든다.”라는 오해였다. 나는 수많은 우유 소비자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가볍게 나누곤 했는데 그들은 최근에 출산한 소만이 우유를 생산할 수 있고, 소의 몸이 우유를 생산하는 것은 송아지를 위해서라는 점을 모르고 있었다. (239)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태어나고 먹고 살고 죽는 한 생명이었지만, 사실은 그런 생명으로 여겨지지 못하고 끝내 상품으로 삶을 마감한 동물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은 고기도 아니고 가죽도 아니지만, 철저한 자본주의 논리에 의해 하나의 소유물, 상품의 가치로만 태어나 사육되고 처리된다.

 

물론 이 책을 읽는다고 갑자기 그날부터 우유를 끊고, 치킨을 멀리하고, 스테이크와 돈까스, 소시지와 스팸을 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가녀린 도시 여성이 논문연구를 위해 수많은 농장을 접촉해 방문을 요청했지만 모두 거절당하고 마음씨 좋은 단 한 곳에서 허락받는다. 그렇게 시작된다. 허락을 했다는 것은 그만큼 감추고 비밀을 유지하려는 다른 농장에 비해 사육환경이 좋다고 농장주 스스로 자신하는 바가 있었겠지만,

 

사실, 둘러보고 인터뷰하는 것만으로 얼마나 속사정을 깊이있게 알 수 있겠는가. 이 책의 저자는 그런 부족함을 수많은 자료를 뒤적거려 보충해나간다. 그래서 이 책은 방문과 인터뷰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그녀는 농장 방문 이후 소 경매장을 찾아간다. 소 경매장은 도축하여 고기를 만들려고 사가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거기에서 1389번 귀 인식표를 단 암소를 만난다. 암소는 아무에게도 선택받지 못하다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만다. 집에 돌아온 저자는 마음에 걸려 다음날 전화를 걸어보지만 이미 죽었다는 대답을 듣는다.

 

우리는 경매가 끝난 동물들이 빠져나가는 출구 바로 옆 맨 앞줄에 앉아있었다. 그래서 매번 소들이 링을 떠날 때마다 소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 자리에 앉아 소 하나하나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나는 스스로가 인간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153)

 

근래에 고기로 도축되기 위해 사육되는 동물에 대한 유사한 다른 저작을 읽은 터라 이 책은 연구논문을 위해 접근한 젊은 여성의 노력과 서술이 직접 수 개월씩 관련 농장에서 노동하며 쓴 타 도서에 비해 일견 가벼운 느낌이 들긴 했다. 하지만 저자는 이 부분을 매우 다양하고 전문적인 자료들로 보충하여 타 도서에서는 설명되지 않은 많은 부분이 오히려 차별적으로 설명되고 있다.

 

이 책을 읽고 채식주의자가 되건, 동물보호주의자가 되건 그건 개인의 자유다. 다만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오직 상품의 가치로만 판단되고 길러지고 팔려나가는 동물들에 대해서 우리는 조금 더 많이 알고 있을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바로 우리와 우리 자녀들이 날마다 먹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이 책 이전에 좀더 지독한 책을 읽었음에도, 그리고 아침 저녁 출퇴근 시간에 이 암소에 대한 책을 읽었음에도 여전히 오늘 아침에는 계란 후라이를 먹었고, 점심은 갈비탕을 먹었다. 무엇을 먹거나 무엇을 끊는 건 개인의 기호에 관한 문제이다. 그러나, 동물들이 태생적으로 중요한 삶의 주체라서가 아니라, 동물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동물의 상품 가치가 결정되는 (242) 이 세계에 대해서는 우리가 좀더 생각을 해봐야 한다. 그것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적 의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동물은 우리에게 지구를 함께 누비며 사는 공동체인가, 아니면 오직 인간을 위해 상품으로 태어나고 죽어나가는 그저 음식물인가.

 

얼마 전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 주화면에 직업 관련 글들이 배치된 적이 있었다. 거기에 병아리 감별사가 전문직이고 고임금을 받는 직업임에도 사람이 부족하다는 글이 있었다. 그 글 아래에 댓글로도 달았지만 병아리 감별사는 병아리가 태어나면 병아리가 수놈인지 암놈인지를 수초 안에 감별해내는 사람이다. 문제는 수평아리다. 수평아리로 감별된 병아리는 생명체가 아니라 즉시 쓰레기로 처리되어 쓰레기 컨테이너에 산 채로 압착된다. 계란을 낳지 못하는 닭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명체로 살아남지 못한다. 우리 사회가 그렇게 되어 버렸다는 사실이 너무 슬프다. 날마다 계란을 먹고 있지만 참으로 슬퍼 어찌 할 바를 모르겠다.

 

미국에서 달걀을 낳는 암탉의 95퍼센트는 너무 좁아서 날개를 펼 수도 없는 밀집형 닭장에서 지내며, 이렇게 좁은 공간에서 서로 무참하게 공격하지 않도록 부리를 잘린다. (117)

 

이제는 좀더 채식에 가까워진 먹거리를 생각해본다. 나를 좀더 이런 책으로 채찍질할 필요가 있다. 그들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가슴이 아플 줄 뻔히 알지만 더 많은 분들이 이런 책을 읽어보면 좋겠다. 강아지와 고양이만 사랑하지 말고.

 

 

생각도 하고, 느끼기도 하지만 동물이 소비되는 물건이라는 틀 안에 놓일 때, , “귀여우니까 한 마리 가질래.”라고 말할 수도, 실제로 가질 수도 있게 될 때, 식품으로서 동물의 소비는 완벽하게 정상적인 행위가 된다. 이러한 소비는 살았든 죽었든 동물은 소유할 수 있는 물건이라는 이해에 근거한다.

 

애완동물이나 사육 동물을 마음대로 죽일 수 있다는 사실로 인해 이 살아있는 존재들은 계속해서 소비의 대상으로 살아가게 된다. (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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