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에게만 친절합니다 - 독일인에게 배운 까칠 퉁명 삶의 기술
구보타 유키 지음, 강수연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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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에게만 친절합니다]

표지부터 까칠한 책 -일본인의 까칠한 독일 생활기

 

 

표지와 제목이 친절하지 않았다.

표지를 크게 장악하고 있는 살아있는 듯한 커다란 선인장을 보고, 살짝 눈을 들어 나는 나에게만 친절합니다라는 제목을 본다. 표지를 무슨 색이라 불러야 할까. 흰색은 아니지만 연한, 아주 연한 아이보리 색 바탕에 초록빛 선인장이 다섯 갈래로 비쭉 왼쪽에서부터 중앙쪽으로 나아오며 화면을 크게 차지한다. 강렬하다. 제목은 오른쪽 선인장 가시가 하늘을 향하고 있는 살짝 윗부분에 짙은 아이보리색, 그래서 약간 금색빛이 도는 반짝이는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전체적으로는 표지가 너무 선명하고 단아하다. 제목도 거기에 걸맞아, 이거 가벼운 심리도서가 아닐까. 아니면 자기계발 에세이? 하며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그러나 금빛 선인장 가시 두 개로 붙여놓은 부제는 독일인에게 배운 까칠 퉁명 삶의 기술이다. 그제야 이 책의 정체를 아이보리색 마냥 연하게 파악할 수 있다. 고개를 아래로 내리니 동그란 원 안에 철학의 나라 독일에서 찾은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라는 또 다른 소제목이 보인다. 그러니까 이건 독일의 라이프 스타일에 관한 책이로군. 그렇다면 굳이 나는 나에게만 친절합니다라는 최근 유행하는 심리 에세이 같은 제목을 붙인 건 뭐람? 하며 작가를 본다. 작가는 구보타 유키일본사람이다.

 

그렇게 친절하지 않은 표지를 분석하고 겨우 책 안으로 들어간다. 잡지사 편집인이었던 구보다 유키는 한국처럼 야근을 밥 먹듯이 했단다. 너무 힘에 겨워 회사를 때려치우고 잠시 휴식을 취할 요량으로 그는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 베를린으로 간다. 1년만 쉬다 오려고. 그랬던 것이 그녀는 독일이 너무 좋아, 일본을 다시 올 것을 생각하니 머리가 지끈거려 그냥 독일에 눌러앉았단다.

 

그런 책이다. 그녀가 일본으로 돌아오지 않고 독일에 눌러앉게 된 이유. 그 이유가 책에 빼곡하게 적혀 있다. 물론 편집의 미를 살려 책은 빼곡하게 구성되어 있지 않고 독일의 여유로운 사진들이 여백의 미를 살려 낭창낭창 배열되어 있다.

 

그녀는 독일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기업을 탐방하여 일본의 잡지에 기고하는 일을 하는 프리랜서로 살아간다. 일본의 문화에 익숙해져 있던 그녀는 독일의 무신경한 대응에 분노하고 진을 뺀다. 이메일을 보내도 읽었다는 답장도 보내지 않는다. 전화를 걸어도 저기로 걸어보라 하고 자기들은 뒤로 빠진다. 택배를 보내기 위해 신청을 하면 아침 7시부터 저녁 6시 사이에 가져갈 예정이라고 연락이 와 하루종일 아무것도 못한 채 자리를 지켰는데, 결국 오지 않는다. 일본이었다면 상상도 못할 일이라고 그녀는 궁시렁거린다. (한국과 일본이 어찌 그리 닮았는지)

 

그러다가 서서히 독일을 알아간다. 독일 직장인들은 여름에 최소 3주의 휴가를 쓴다. 그 휴가를 위해 일을 한다. 야근을 하고 주말 근무를 해서 돈을 많이 벌어 나중에 여유를 가져보는 스타일이 아니라. 지금 조금 적게 일하고 돈을 적게 벌더라도 지금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집중력을 가지고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빨리 마치려고 한다. 그러다보니 다른 사람 일을 챙겨서까지 해주지 않는다. 자기에게 주어진 일. 그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메일도 자기와 상관이 없으면 답장을 보내지 않는다. 거기에 시간을 빼앗기기 싫기 때문이다.

 

독일인들은 그래서 아침 일찍 출근하고 오후 서너 시가 되면 퇴근을 한다. 일요일에는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는다. 그들도 쉬어야 하니까. 그래서 그들은 토요일에 주말 장까지 같이 봐놓는다.

 

독일에는 상점 폐점법이라는 법률이 있어서 음식점이나 벼룩시장 등 일부를 제외하고 일요일과 휴일에는 어느 가게든 쉰다고 정해져 있어요. 슈퍼마켓도 마찬가지고 편의점은 독일에 없어요. 따라서 일요일에는 쇼핑을 즐길 수 없죠. (96)

 

그런데 신기하게도 일요일에 대부분의 가게가 영업을 안 하는 독일 생활에 익숙해지자, 지금까지 왜 귀중한 휴일에 굳이 쇼핑을 하며 보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97)

 

저자는 독일에서의 생활을 일하기쉬기살기먹기입기의 다섯 챕터로 나누어 설명한다그녀는 100 넘은 건축물알트바우라는 곳에서 살고 있다독일에서는 신축건물보다 이렇게 오래된 건축물이  인기가 많고 가치가 높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소비를   브랜드보다 기업의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한단다. 노동자를 착취하거나, 소비자와 신뢰를 깨뜨리거나, 기타 등등 기업의 윤리가 땅에 떨어지면 그들은 불매운동을 한다. 아무리 브랜드가 있어도 안 산단다.

 

그렇게 독일인의 라이프 스타일을 이해하고 나니, 그제야 책 제목이 눈에 다시 들어온다. 선인장의 가시가 눈에 들어온다.

 

그래. 나와 가족에게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 위해 너를 위해서는 시간을 만들 수 없어. 미안. 나도 그러니까 네가 나에게 그렇게 하는 것도 이해해. 우리 서로 쿨하게 서로 자기를 지키며 살자.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아주 오래 전에 독일에 간 적이 있었다. 저녁 여덟 시만 되면 거리의 상점들은 문을 닫았다. 근면 검소한 사람들이었다. 몸집은 컸는데 자동차는 대부분 소형차를 타고 다녔다. 운적석에 앉기 위해 몸을 비틀어야 했다. 그렇지만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책에도 나온다. 독일 사람들은 일찍 집에 와서 가족들과 보드게임을 한다고 한다. 대다수의 국민이 그렇게 한다니 그들의 성정이 충분히 예측되고 남는다.

 

그러다가 베를린에 와서 깨달았어요. 사람들의 걷는 속도가 느리다는 것을. 다리 길이의 차이도 있겠지만, 저처럼 서두르며 걷는 사람은 소수예요. 걷는 속도뿐 아니라 모든 동작이 느긋해요. 그러다보니 제 템포도 그들에 맞춰 점점 느려졌어요. 그러자 짜증을 내는 일이 줄어들었죠. (105)

 

거의 날마다 야근을 하는 나로서는 그들의 까칠한 삶이 부럽다. 나도 눈치보지 않고 그렇게 하고, 그렇기 때문에 너도 그렇게 해도 된다는 쿨한 국민적 합의. 그것이 오히려 서로의 행복지수를 더 높여준다. 그렇지만 선인장은 좋아하기 어렵다. 물이 없어도 견디고 자라는 그 인내는 인정하지만, 가시는 너를 타인으로 남게 한다. 우리, 함께가 될 수 없다. 하지만 단점보다는 장점이 더 많은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구보타 유키가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도 이해가 된다. 나도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베를린에서 1년쯤 살아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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