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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키퍼스 와이프
다이앤 애커먼 지음, 강혜정 옮김 / 나무옆의자 / 2017년 9월
평점 :
절판
작은 스라소니를 안고 있는 주인공 여자의 모습이 참 평화롭게 보였다. 사진일까, 그림일까. 사진이라면 영화로 만들어진 것일까. 또 주키퍼스 와이프는 무얼까. 처음 표지를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따뜻해 보이는 책.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슬퍼 보이는 책이었다.
책을 고를 때 가장 많이 참고하는 것은 책 뒷표지에서 보여주는 단편적인 정보들이다. 책을 읽어보지 않은 다음에야 무슨 책인지 알 수가 없는데, 책 뒷 표지는 책을 가장 강렬하게 소개하려는 출판사의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책은 제2차 세계대전 장시 나치의 인종정책에 맞서 수백 명 유대인의 목숨을 구한 바르샤바 동물원장 부부의 감동 실화,라는 한 문장으로 이 책의 정체성을 간명하게 표현했다. 그 뒤에 줄줄이 이어지는 각 신문사들의 호평과 총균쇠 작가의 간략한 평은 이 책을 읽지 않으면 안 되면 사명감을 가지도록 하기에 충분했다.
위대한 소설과도 같은 실제 이야기. 인간적인 공감과 정반대의 감정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진짜 이야기. 특별한 영웅의 놀랍고도 감동적인 삶의 초상을 탁월하게 그려낸 책. 인간과 동물 모두에게 적용되는 고결함에 대한 기록, 우리가 몰랐던 용기 있는 행동에 대한 이야기.
맨 마지막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더 짧고 간명하게 이 책의 가치를 일갈한다.
홀로코스트 문학에 더해진 또 하나의 기념비.
한글로 된 우리나라 책 제목이 좀 맘에 들지 않았다. 주키퍼스 와이프라니, 이렇게 영어를 소리나는 대로 적어 책 제목을 만들다니. 우리말로 번역을 한다면, “동물원장의 아내” 정도가 될 것이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같은 제목으로 지금 전국에서 영화가 상영 중이다. 수많은 동물들이 나오니 영화도 참 따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러나 생각을 해 보라. 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고 독일군의 무자비한 인종청소가 자행되는 곳에서 유대인들을 숨겨주는 일이 어찌 따뜻하게 진행될 것인가. 그것은 무섭도록 긴장되는 일이다. 우리는 일제강점기 아래 독립군들이 어떻게 비밀스럽게 일을 진행해왔는지 많은 영화, 책, 문서들을 통해 익히 알고 있다. 내가 특별히 기억하는 정보는 많은 비밀 계획들이 내부 밀고자들에 의해 대부분 사전이 발각되었다는 것이다. 안중근 의사의 동생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105인 사건도 사전에 발각되어 105명이나 되는 독립운동가들이 줄줄이 붙잡혀간 사건이다. 우리나라에서 보여주는 독립운동 영화들은 밝고 따스하지 않다. 그럴 수가 없지 않은가. 최근에 개봉했던 아나키스트 박열, 밀정 같은 영화들을 봐도 마찬가지다. 결은 좀 다르지만 최근의 택시운전사까지 아우르더라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들은 밝고 따뜻한 면을 많이 부각시켜도 결국 그 본질은 슬프고 어두울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다이앤 애커먼의 저작 능력은 탁월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그는 슬프고 암울하며 어둡고 긴장되고 몸서리쳐지는 잔혹한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말할 수 없이 따뜻하게 그려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2차 세계대전의 나치 잔학상을 또 다른 모습을 읽게 되었다. 그리고 쉰들러 리스트 같은 위대한 용기에 관하여 알게 되었다. 왜 동물원장의 아내일까. 바르샤바동물원은 폐쇄되었고 동물원장인 남편은 다른 직장을 얻어 출퇴근하며 독립운동, 반나치운동을 전개했기 때문에 바르샤바 동물원에서의 안주인이었던 안토니나 자빈스키는 오롯이 돌물원에서의 실질적인 행동가였다. 그녀는 동물원 안에 독일군 무기고를 두고 있으면서도 대담하게 수백 명의 유대인을 숨겨주고 먹여주고 재워주는 일을 맡았다.
주방일을 맡았던 직원이 너무 많은 식사를 한다며, 사람이라면 이렇게 먹을 수 없다고 의심하는 사태에 이르러서도 결코 옷장 속에 숨겨준 유대인들을 포기할 수 없었다. 게다가 게토 지역을 드나들며 직접 유대인들을 빼내오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독일군이 다가왔을 때도 침착하게 웃으며 응대하는 그녀를 보며 참으로 여장부라는 생각을 한다. 나였다면 심장이 벌렁거려 한 마디도 못하고 발각되었을 것 같은데 말이다.
이 책은 나치의 인종정책을 고발하고, 쉰들러 리스트처럼 유대인을 숨겨주는 용기에 대한 이야기로만 그치지 않는다. 책 표지에 나오는 동물처럼, 장소가 만들어주는 동물원이라는 배경이 또 다른 역할을 한다. 동물학자였던 남편 얀 자빈스키의 열정과, 곤충 박사였던 유대인이 숨겨달라고 해서 맡았던 40만점 가까운 곤충 표본과 곤충에 대한 해박한 이야기들, 아들 리시의 애완동물로 함께 했던 아기돼지 이야기 등 수많은 동물 이야기도 책에 함께 녹아있다.
일본도 강점기 동안 한반도 동물에 대한 무자비한 살육으로 한국 호랑이의 씨를 말렸다. 한국의 동물을 어떤 식으로 빼앗아갔는지 그들의 반출 기록을 보면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일본인들은 한국산 호랑이 가죽이라면 침을 질질 흘리며 구해갔다. 1960년대 대구에서 마지막 호랑이가 잡힌 것으로 한반도 호랑이의 맥은 끊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그들이 가져간 동물은 호랑이뿐만은 아니었다. 안타까운 우리네 역사와 맥을 같이하는 폴란드의 아픈 역사가 이 책에서 우리에게 손을 내민다. 동물원장 아내였던 안토니나가 휘갈겨 쓴 회고록을 기반으로 <감각의 박물학> 저자 다이앤 애커먼이 만들어 낸 실화 기반의 따뜻한 다큐멘터리. 일제강점기를 거친 아픈 역사를 가진 한국인이라면 반드시 읽어보아야 할 역사 인문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