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린다 작가정신 시그림책
함민복 지음, 한성옥 그림 / 작가정신 / 201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 한 편으로

책 한 권을 만들 수 있을까

 

만약, 그렇게 만들 수 있다면

나는 책에다

무얼 담을 수 있을까

어차피 담을 시는 정해져 있는데

 

그렇게 흔들린다,는 내게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다가왔다

도대체, 시 하나로 책을 만든다는 게

시 하나로 독자와 만난다는 게

말이나 돼? 그러면서

 

책을 만지자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이

오른쪽으로 불고 있다는 걸 알았다

무슨 색이라고 해야할까

녹색과 푸른색이 섞인 바람이

위에서 아래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비켜

불고 있었다

 

그리고 나무는

한 그루 나무는

흔들리지 않으려

이를 악물고 흔들리고 있었다

얼마나 바람이 거센지

나무 이파리들은 온몸으로 버티고 있었다

 

시 한 줄이 나오기 전까지

책은 나무를 숲을 바람을

어둠속, 아직 시간을 잉태하기 전 시간으로

깊게 채색했다

바람은 불었으나

흔들림은 없었다

 

책 한쪽면을 가득 채운 푸른 나무는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아

그 크기가 어마어마한 것을 알 수 있었따.

큰 나무였다

 

그 무성했던

단단한 몸통을 가졌던 나무가

바람에

온통 바람에

이파리 몇 개 남긴

쓸쓸한 나무가 되고 말았다

 

너무는 최선을 다해

중심을 잡고 있었구나

가지 하나

이파리 하나하나까지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렸었구나

흔들려

덜 흔들렸었구나

 

시를 읽으며

그림을 보며

이제야 흔들린다는 것의 의미를

깨닫는다

 

내가 그렇게 흔들렸던 것이

흔들리지 않기 위해

중심을 잡기 위해

온 몸통으로 흔들렸었다는 것을

 

이파리 하나

가지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중심을 잡으려고

 

그렇게 이를 부들부들 떨며

온몸으로 흔들렸다는 것을

느낀다

 

이런 책

천천히 천천히

흔들리며 읽는 책이 좋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