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감정에 관한 생각 - 동물에게서 인간 사회를 읽다
프란스 드 발 지음, 이충호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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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같은 작가의 책 동물의 생각에 관한 생각을 읽은 지 2년 만에 읽게 된 책이다. 전작이 동물의 생각 즉 그들의 똑똑함, 지식을 알아보는 책이었다면 이번에는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 동물의 감정을 알아보는 책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저자는 유명한 영장류 학자로 대부분의 사례는 침팬지를 연구한 것으로 설명된다. 물론 코끼리나 원숭이 등 다른 모든 동물에 대한 소개가 간헐적으로 나오긴 하지만 그의 전공은 영장류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약간은 확대되어 있음을 인지하고 있는 게 필요하다.

 

어린 시절을 강아지와 함께 보냈던 나는 이 책을 읽기 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굳이 연구를 하지 않더라도 동물을 키워본 사람이라면 대부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동물에게도 당연히 생각이 있고 감정이 있다는 것을.

 

그렇더라도 연구가 필요한 이유는 연구를 통해 기존 이론을 뛰어 넘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동물학자 사이에서는 동물에게 감정이 없다는 이론이 우세했기 때문에 동물에게도 인간과 비슷한 감정이 있다라는 가설을 세우고 관찰과 통제 실험을 통해 이를 증명함으로써 기존 이론이 틀렸고 새로운 이론인 동물감정론을 주류 이론으로 내세울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사실 동물의 생각에 관한 생각의 전작에서 8가지로 분류한 지능 관찰 항목 가운데 자아개념’, ‘공감 능력’, ‘기억’, ‘협력’, ‘얼굴 인식의 다섯 가지 항목은 이번 책 동물의 감정에 관한 생각에서 중복 확장되어 설명된다. 겹치는 부분이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동물의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저자는 동물의 지능을 검사할 때 늑대의 지능은 늑대가, 고양이의 지능은 고양이가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인간의 기준으로 검사하는 것은 엉터리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제 동물을 그 사진의 생물학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테스트를 하고 인간 중심 접근법에서 벗어나야 할 때가 되었다. ... 유인원을 사용해 유인원을 테스트하고, 늑대를 사용해 늑대를 테스트하고, 인간 어른을 사용해 아이를 테스트해야만 그 종의 고유한 진화적 맥락에서 사회인지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 (동물의 생각에 관한 생각, 250)

 

저자는 이번 책에서도 비슷한 주장을 펼쳤다. 가령 강아지에게 쇼파에 앉으면 안 돼같은 규칙이 과연 적절하게 이해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모든 규칙은 인간중심적 태도로 진행되기 때문에 왜 그것을 하는 것이 잘못된 행동인지 동물은 알 수 없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강요하는 이 금지들은 정말 기묘하지 않은가! 싱가포르에서 왜 껌을 씹으면 안 되는지 내가 이해하기 어렵듯이, 동물의 입장에서는 이런 규칙들이 과연 적절한지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동물의 감정에 관한 생각, 233)

 

저자는 나와 마찬가지로 동물에게 감정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에는 전혀 의문을 품지 않았는데 지금까지 과학이 그것을 간과하고 약소하게 평가해 왔기 때문에 다소 분노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분노는 때로 창작열을 북돋우는데 저자의 이 책이 바로 그 결실이라고 보면 되겠다.

 

신경과학자인 팡크세프는 동물은 제한된 반응을 가진 입력-출력 시스템으로 간주할 때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는 개념을 참아내지 못했다. 동물의 생각에 관한 생각애서와 마찬가지로 저자의 이론에 가장 걸림돌이 된 학파는 스키너의 행동주의 학파였다. 스키너 학파는 동물의 감정에 대하여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감정이 뇌와 연결되어 있고, 뇌가 수천 수만 수억 개의 신경망으로 신체와 연결되어 있으며, 감정은 신체 감각에 의해 일어난다고 하면, 오히려 우리 인간보다 훨씬 더 예민한 신체 감각을 갖고 있는 동물이 더 풍부한 감정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이 생각은 저자보다 한 걸음 앞서 필자가 책을 읽으며 생각한 것이다. 동물이 인간보다 감정이 단순하거나 없다고 생각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문제는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 또는 인간의 특성 중 하나로 동물에 비해 감정이 있다는 사실을 앞세우는 이론이다.

 

인터넷 두산백과 사전에 따르면 감정이란 어떤 현상이나 사건을 접했을 때 마음에서 일어나는 느낌이나 기분이다. 공포심, 분노, 쾌감, 웃음, 고통 등은 생리적이거나 신체적인 원인에 의해 일어난다. 그밖에 심리적 원인에 의한 성취감, 실패감이 있고 사회적 원인에 의한 열등감, 애증 등이 있다.

 

저자는 공포심, 분노, 쾌감, 웃음, 고통 같은 신체적인 감각요인에 의해 일어나는 감정의 동질성 외에 동물에게는 없을 것 같은 심리적 원인이나 사회적 원인에 의한 감정들도 영장류의 경우 대부분 나타나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가장 재미있었던 실험은 최후통첩 게임이었다. 최후통첩 게임은 인간의 공정성을 평가하는 황금 기준으로 알려져 있는데, 가령 100달러를 다른 사람과 나눠가지도록 하되, 분배비율은 그 사람이 정할 수 있다. 가령 50 50으로 정할 수도 있고, 자기가 많이 가지기 위해 90 10으로 나눌 수도 있다. 배분비율 주도권은 돈을 가진 사람이 쥐고 있는데 문제는 돈을 분배받는 사람에 의해 일어난다. 만약 상대방이 자신에게 분배되어 오는 금액을 거부하면 둘 다 한 푼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분배자는 상대방의 심리적 임계점을 잘 파악하여 상대방에게서 불평이 나오지 않는 범위 내에서 분배를 해야 하는 것이다. 사람의 경우 어른이나 아이의 경우 많은 사람이 50 50의 비율로 분배했다. 하지만 동물은 어떨까.

 

침팬지에게 실시한 방법은 이렇다. 한 침팬지에게 두 가지 색의 토큰을 선택하게 하는데, 가령 파란색을 선택하면 그 침팬지에게 바나나 다섯 조각을 주고 다른 침팬지에게는 한 조각을 준다. 만약 빨간색 토큰을 선택하면 두 침팬지에게 각각 세 조각씩을 준다. 선택권을 가진 침팬지는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와 자신의 몫이 줄어들지만 상대방에게도 많은 몫이 돌아가는 결과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그 선택에 동의해야 하는 것이다.

 

실험 결과 대부분의 침팬지는 둘 다에게 같은 결과를 주는 토큰을 선택했다. 간혹 이기심을 나타낸 침팬지에게는 상대 침팬지가 창살을 치거나, 입속의 물을 뱉어내는 등의 불쾌한 감정을 표출했다.

 

어쩌면 처음부터 인간과 동물은 생각, 감정 등에 있어서 큰 차이가 없는지도 모른다. 동물이 인간의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알아듣지 못할 뿐이지 그들은 우리와 똑같이 끊임없이 사랑하고, 위로하고, 분노하고, 협력하고, 지지하고 추억한다. 식물들도 잎사귀를 따면 독성물질을 내뿜지 않는가. 그들만의 감정을 표시하는 것이다.

 

나는 어린 시절, 강아지 레오의 슬픈 눈망울을 기억한다. 곧 서평을 쓰려고 벼르고 있는 김성동 작가의 염소를 읽어보라. 인간이 동물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그들에게 어떤 고통을 안겨주고 있는지. 그들의 말을, 그들의 생각을, 그들의 감정을 우리가 인지할 수 있다면 지금과 같은 동물학대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시계 안에서 각각의 부품은 대체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그래서 시계를 분해했다가 다시 조립하더라도 제대로 작동하는 완전체로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난폭한 취급을 견딜 수 있는 생물은 없다.

(동물의 감정에 관한 생각, 403)

 

동물은 시계부품처럼 조립되는 개체가 아니다. 우리가 함부로 다루고 취급할 수 없다. 우리는 고기를 먹기 위해, 좁은 우리에 갇힌 채 자신의 배설물 위에 서서 평생을 보내야 하는 동물의 생각과 감정을 애써 외면한다. 얼마 전에 서평을 쓴 수의사 헤리엇이 사랑한 동물들을 읽어보라. 우리는 동물을 지배하는 자가 아니다. 지구촌에서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청지기다. 우리는 그들이 좋은 환경에서 살아가도록 돌보아야 할 책임이 있다. 문자를 만들고 도시를 건설하고 기술을 발전시켜 지구의 주인인 양 살아가지만, 지구는 인간을 위한 고독한 섬이 아니다. 모든 식물과 동물이 함께 살아가도록 만들어진 섭리 안에 놓여 있는 곳이다.

 

흥미진진한 내용이 가득하다. 간지럼 태우기를 바라는 눈빛의 생쥐를 본 적이 있는가. 생쥐도 즐거움의 감정을 표현한다. 당연히 우리는 강아지들이 드러누워 놀아달라고 간청하는 표정을 기억하고 있다. 사랑스러운 동물이다. 이 책은 동물에 대한 인간의 교만과 오만을 내려놓게 하는 훌륭한 내용을 담고 있다. 두껍지만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감정은 좋은 것이 될 수도 있고,

나쁜 것이 될 수도 있고,

추한 것이 될 수도 있다.

 

이것은 우리뿐만 아니라 동물도 마찬가지다.

(동물의 감정에 관한 생각, 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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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사 헤리엇이 사랑한 동물들 수의사 헤리엇의 이야기 7
제임스 헤리엇 지음, 김석희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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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사 헤리엇이 사랑한 고양이를 읽은 지 일 년 반이 지났다. 그때 책장을 덮고 밀려오는 따뜻한 감동을 잊지 못해 헤리엇의 다른 책들을 주섬주섬 카트에 담았었는데, 이제야 그의 또다른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아시아출판에서 만드는 헤리엇의 저작물 시리즈 중 마지막 일곱 번째 작품이라고 하니 더욱 소중한 책이 되었다.

 

수의사 헤리엇의 동물 이야기는 파브르의 곤충기, 시튼의 동물기를 잇는 동물 문학의 고전으로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파브르의 곤충기가 관찰에 초점을 두었고, 시튼의 동물기가 창작에 초점을 두었다면, 1916생인 수의사 헤리엇의 작품은 인간과 가장 가까이에서 인간과 함께 생활한 가축동물에 초점을 둔 작품이다. 시튼의 동물기가 대부분 비극으로 끝나는 반면 헤리엇의 작품은 마치 한 편의 수채화를 보는 듯한 따뜻함과 인간적 아름다움이 묻어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파브르와 시튼의 동물문학 계보를 잇는 것을 넘어선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새로운 동물문학의 경지, 생명사랑의 경지를 이룩하고 있다는 경이로움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단 열 편의 이야기와 열 마리 동물들이 등장하지만 한 권의 책으로 엮인 이야기들은 얇은 책의 분량을 벗어나 생명을 가진 모든 동물, 숨을 쉬고 있는 모든 가축, 생명을 잉태하고 있는 모든 어미를 대표하는 거대한 지구촌에 대한 이야기다.



가축이 아프다고 새벽에 울면서 전화하는 농부들의 사랑을 외면하지 않고, 옷을 꿰입으며 쿠당탕 전등을 떨어뜨리며 가족을 깨우고 달려나가는 젊은 수의사 헤리엇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이 놈은 별로 가망이 없는 것 같군요.” 로브가 투덜거렸다. “선생님이 해줄 수 있는 일이 더 있나요?”

몸속에 페서리를 좀 넣어주고 주사를 놓겠지만, 가장 필요한 것은 돌봐줄 새끼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이런 상태의 암양들은 돌봐줄 새끼가 없으면 대개 삶을 포기해버리거든요.” (42)

 

항생재가 발명되기도 전인 1939, 암양 한 마리가 출산 후 삶의 의미를 잃어버릴 처지에 놓였다. 동네의 못된 사람이 풀어놓은 사냥개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암양은 결국 유산하고 말았다. 새끼들은 모두 죽은 채 세상으로 나왔다. 헤리엇은 의료적인 처치 외에도 동물의 입장에서 생존을 생각했다. 죽은 새끼가 마음을 아프게 하지만, 살아있는 암양은 비관하여 죽지 않도록 해주어야 했다. 그리하여 농부와 수의사의 어미 암양 살리기 대작전이 벌어진다. 고아가 된 양새끼 허버트를 암양의 새끼인 것처럼 꾸민 것이다. 이 작전은 대성공을 거둔다. 허버트도 풍족한 젖을 먹고, 암양도 허버트틑 자기 새끼로 받아들여 삶의 의욕을 되찾는다.

 

헤리엇은 공부를 하면서 수의사라는 직업이 그다지 큰 부자가 되지 못하는 직업임을 알았다. 나이 든 교수가 그 사실을 적나라하게 얘기해주었기 때문이다. 헤리엇은 그 말을 듣고도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변화가 풍부한 생활. 그것이 바로 헤리엇이 바라는 생활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밤 9시에 송아지를 받으러 가는 길에 투덜댈 수밖에 없었다.

 

왜 이런 직업을 택했을까? 좀더 쉽고 평온한 직업을 택할 수도 있었을 텐데. 광부나 벌목꾼도 수의사보다는 나을 거야. (119)

 

데이킨 씨가 늙고 병든 18년생 암소 블로섬을 파는 이야기는 마음의 흔들림 없이 담담하게 읽기 어려웠다. 글을 쓰는 헤리엇도, 가족과 같은 정든 소를 어쩔 수 없이 팔아야 하는 농부 데이킨 씨도, 그 이야기를 읽는 독자인 나도 같은 마음이었다. 한 마디로 가슴이 미어졌다.

 

농담조로 말하긴 했지만, 늙은 암소를 바라보는 그의 눈은 조금도 웃고 있지 않았다. 웃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의 뒤에는 열린 문 너머로 푸른 언덕과 강물이 보이고, 수심이 얕고 포기 넓은 강에서는 무수한 잔물결이 봄의 햇살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

경치가 아름다우면 뭐해요. 배를 채워주는 것도 아닌데” (147)

 

우리는 자본주의 시대의 무자비한 폭력 앞에 무방비로 서 있는 것과 같다. 1910년대의 농촌도 마찬가지였다. 20년 가까이 함께 생활했던 블로섬은 가족에서 다시 가축으로 돌아가 있었다. 아무리 블로섬과 정이 들었어도, 아무리 아름다운 경치를 보면서 살아도, 배를 곯을 수는 없었다. 소는 원래부터 가축이었지 가족이 될 수는 없었다.

 

저게 뭐지?”

언덕 쪽에서 달각거리는 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이 농장으로 들어오는 길은 두 개인데, 발굽 소리는 넓은 길보다 1킬로미터쯤 위에서 간선도로와 만나는 좁은 오솔길 쪽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우리가 그 소리를 듣고 있을 때 암소 한 마리가 불쑥 튀어나온 바위를 돌아서 이쪽으로 달려왔다.

 

블로섬이었다. 녀석은 커다란 젖통을 흔들면서, 우리 뒤쪽에 있는 외양간 문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데이킨 씨가 소리를 질렀지만 늙은 암소는 우리 옆을 지나 녀석이 오랫동안 살아온 외양간 안으로 거침없이 들어가버렸다. 그러고는 텅 빈 여물통에 코를 들이박고 킁킁거리다가 고개를 돌려 주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151)

 


브라보. 나는 책을 던져놓고 박수를 쳤다.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기쁨의 탄성이 터져나왔다. 블로섬을 샀던 가축상이 곧 헐레벌떡 뒤쫓아왔지만 농부는 소의 의견을 존중했다. 블로섬의 뜻을 외면할 수 없었다. 블로섬은 다시 가족이 되었다. 이 얼마나 우주적인 감동인지, 이야기의 힘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어찌보면 가족도 쟁취해야 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이 책이 더욱 감동적인 것은 이야기와 함께 어우러지는 레슬리 홈스의 아름답고 세련된 수채화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그림을 보면서 이야기의 주인공을 떠올린다. 얼마나 아름다운 동물들인지. 눈에서 책을 뗄 수가 없다. 아름다운 책이다. 이야기도 그림도,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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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리아 : 내일의 바람 사계절 1318 문고 120
이토 미쿠 지음, 고향옥 옮김, 시시도 기요타카 사진 / 사계절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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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투성이라도 살아내야 하는 이유



 

아포리아는 그리스어 aporiā 통로가 없는 것’, ‘길이 막힌 것을 뜻한다. 우리는 2011년 일본에서 발생한 지진과 쓰나미의 엄청난 재난을 알고 있다. 바닷물이 몰려와 도시를 삼켜버리는 무시무시한 일이, 영화에서나 봄직한 일들이 실제로 일어났다. 우리나라도 최근 경주 지진을 경험했다. 실제로 지진을 경험한 사람들은 조금만 땅이 흔들려도 공포에 빠진다고 한다. 그만큼 지진의 공포는 실제를 능가한다.

 

이 책은 2011년 리히터 9.0 규모의 동일본대지진 이후 24년이 지난 가상의 2035년을 무대로 하고 있다. 도쿄만의 작은 마을 시오우라는 2011년 이후 일본은 지진과 쓰나미에 대비하여 인공 언덕 위에 방재센터를 구축하고 만반의 준비를 해왔다. 그러나 자연의 위대함 앞에서 인간의 노력이란 게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건지, 지진에 이어 쓰나미가 덮치자 도시는 다시 바닷물에 잠기고 만다.

 

이 책은 재난문학에 속하는 것으로, 구드룬 파우제방의 유명한 핵 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을 연상케 한다. 이 책이 사계절에서 출판된 사실로 알 수 있듯이 청소년 문학에 속하는 책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영화를 볼 때 영상심의등급이 ‘12세 이상 관람가라면 12세 이상 누구나 볼 수 있듯이 이 책 역시 청소년만 보는 책이 아니라 청소년 정도면 이해가 가능한 책으로 누구나 읽을 수 있는 뛰어난 문학작품이다.

 

외톨이 은둔형으로 학교를 가지 않고 집에만 쳐박혀 있는 중학생 2학년 이치야가 주인공이다. 3학년으로 올라가기 전 교사가 엄마와의 상담을 잡아 놓은 날이었다. 혼자 방에서 은둔하던 그는 지진이 일어나자 엄마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들으며 엄마!’라고 소리친다. 암흑이 찾아오고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자 창문에 옆집 담이 넘어와 있고, 욕실도 사라지고 2층 방이 무너져 부엌을 덮어버린 상태였다.

 

잔해 앞에서 엄마를 찾던 그는 쓰나미 경보 속에서 가타기리라는 청년에게 떠밀려 집을 탈출하게 된다. 갇혀 있는 엄마를 놔둔 채 떠밀려 생존자가 된 그는 방재센터로 가지 못한 채 남아있는 다른 생존자들과 함께 어색한 생존을 하게 된다. 하루 식사는 건빵 여덟 개. 그들은 구조될 수 있을까.

 

거대 서사의 재난문학처럼 보이지만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생존자들의 내면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주인공 이치야가 어머니를 구출하지 못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것처럼, 이치야를 구해준 가타기리, 어린 소년 소타, 간호사 출신 나카니시 등 대부분의 사람들이 쓰나미 이전에 가족을 잃으며 생긴 생채기를 가슴에 안고 속으로 흐느끼고 있다.

 

이야기는 이들 개별 구성원들과의 내면적 심리 갈등과 개인 대 개인의 충돌, 재난 상황에서 음식을 두고 벌어지는 개인 이기주의 등의 다양한 갈등이 수면 위로 표출되며 긴장의 끈을 조인다.

 

가타기리는 건물 바깥에서 함석 지붕 위에 쓰러져 있는 여학생을 발견하고 위험을 무릅쓰며 구해오는데 그 과정에서 죽을지도 모르는 위급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 재난이라면 우리는 세월호라는 국가적 트라우마를 경험한 바 있다. 또다시 그런 재난이 닥친다면 우리는 우왕좌왕하지 않고 지난 아픔을 반면교사 삼아 침착하게 잘 감당해낼 수 있을까?

 

여기서부터는 지탱해 줄 벽이 없다. 힘을 빼, 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며 길게 숨을 내뱉었다.

밖으로 나오자 회청색 구름 사이로 빼꼼 나온 해가 부드럽게 뺨을 어루만져 주었다. 그 따스함에 잠시 긴장이 풀렸다. 하지만 건물 주위에 쌓인 파손된 자동차며 다다미며 방충망, 목재, 원형을 알 수 없는 철골, 물 위에 잔뜩 떠다니는 나뭇조각이며 패트병, 천 조각 등을 보자 와락 공포가 밀려들었다. (67)

 


 

자신을 지탱해 줄 것이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우리는 살아나기 위해 오히려 힘을 빼야 한다. 가능할까?

 

책은 대지진과 쓰나미라는 거대한 재난을 다루면서도 개인의 내면 묘사와 인간 본성의 충돌을 깊이 있게 다루며 독자에게 사유의 공간을 확장시켜 준다. 재난 앞에서 모두 저마다의 패배감과 죄책감으로 협력보다는 자기중심적인 사고가 커진다. 자기중심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삶에의 패배감이라고 해야 할까. 온 도시가 물에 잠긴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 그들은 어떤 구조의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 사람들은 희망의 끈보다 패배의 쓴잔을 먼저 삼킨다.

 

그러나 작가는 주인공의 입을 빌려 독자에게 말한다. 다리에 힘을 꽉 주라고.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야 한다고.

 

다만, 나는 살아 있다.

살아 있다는 사실이 전부다.

그래서 살아간다. 살아가야 한다, 똑바로. 다리에 힘을 꽉 주고.

고맙다. 나는 이렇게 살아 있어.”

이치야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나는 살아가려고 한다.”

가타기리 아저씨

 

이치야는 얼굴을 들고 가타기리를 보았다.

살아갈게요. 저도. 여기서. 지금부터.”

(221, 마지막 문장)

 

 

인간에게 생존이란 무엇일까. 또 가족도 없이 모든 것을 다 잃은 상태에서 산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살아낼 의욕이 있을까. 실제 당사자가 되어보지 않고서 어찌 감히 그 마음을 헤아려 볼 수 있을까. 어림도 없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다.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에스겔 16:6) 과연 우리는 피투성이가 되어서라도 살아야 하는 걸까. 그것은 자명하다. 살아나지 못한 사람들의 몫을, 살아남은 자들은 더 질기게 살아낼 의무와 책임이 있다. 그것이 피투성이가 되어서라도 살아내야 할 이유이다. 이치야가 이를 악물고 살아내야 하는 이유는, 아직 찾지 못한, 엄마를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다. 생명은 자신의 것이지만, 삶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기에.

꼭 살아내길, 누구나 가슴에는 지우지 못할 상처가 있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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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스빌 이야기 - 공장이 떠난 도시에서
에이미 골드스타인 지음, 이세영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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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여전히 희망진행형인 GM폐쇄도시 [제인스빌 이야기]

 


벌써 작년 일이네요. 20183월부터 6월까지 군산의 한 기업체에 매주 출장을 다니며 일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회사는 바다와 관련된 일을 하는 회사여서 군산의 한국GM과는 직접 상관이 없는 곳이었습니다. 일을 마치고 두어 번 식사를 같이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기업체 임원은, 여기 거리를 보라고, 식당들을 보라고 손으로 이곳저곳을 가리켰습니다. 수십 년 일했던 식당들이 계속 문을 닫고 있다고 했습니다. “임대붙은 가게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였습니다. 그는 이런 곳이 사방에 수두룩하다며 혀를 찼습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휑한 새만금만큼이나 도로도, 사람도, 모두 연기처럼 조금씩 그러나 갑자기 증발하듯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요?

 

한국GM20184월 한국에 있는 군산공장을 폐업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수천 명의 직원과 1, 2차 하청업체들과 그 모든 가족들의 숫자를 합친다면 직접 연관된 사람들 숫자만 해도 어마어마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산업이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어서, 그 모든 사람들에게 맛난 음식을 제공하던 수많은 식당들이며, 마트며, 편의점이며, 다양한 가게들이 모두 동반자살하듯 함께 문을 닫을 처지가 되었습니다. 사실, 그들만의 비극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큰 공동체의 재앙이었습니다.

 

제인스빌 이야기는 그보다 훨씬 오래 전에 미국에서 일어난 GM의 자동차 공장 폐쇄에 따른 제인스빌 도시와 그곳에서 살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 기자의 끈질긴 추적은 제인스빌 도시에서 살던 수많은 사람들이 GM 공장의 폐쇄로 어떻게 변해갔는지를 소설처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루이틀 작성한 게 아니라, 일이년 작성한 게 아니라, 7년 동안 도시를 관찰하고, 가족을 관찰하고, 사람을 관찰하며 쓴 글입니다. 사람들이 소설처럼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기자 출신인 저자지만 소설책을 무지하게 읽고 글을 써서 책을 읽는 우리들은 참 편하게 제인스빌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한국의 군산 공장이 문을 닫기 10년 전, 2008년 작은 소도시인 제인스빌은 9천 명의 노동자가 하루 아침에 일자리를 잃는 재앙에 직면합니다. 그동안 수많은 경기침체에도 GM에 속해있다는 사실만으로 흔들리지 않고 평화로움을 이어가던 작은 도시, 버락 오바마도 방문하여 자동차 산업의 미래와 함께 가족의 평화를 약속했던 그 작은 도시. 그러나 제인스빌은 거대한 자본주의의 토네이도 앞에 결국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이 책은 퓰리처상을 받았던 에이미 골드스타인 기자가 7년 동안 심층 취재를 하며, 제인스빌이라는 작은 소도시가 그 충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버티고, 어떻게 무너지고, 어떻게 다시 일어서려는 노력을 하는지, 그들의 가족들이 자신들이 더 이상 쌀을 구입할 수 없고, 세제를 구입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는 사실을 눈물을 훔치며 인정하는지, 세밀하고 정교하게 글로 다듬은 책입니다.

 

그들이 받아온 최상의 급여와 휴가 수당은 다른 노동자들에게 질시받는 대상이었다. 그런 갈등이 있었지만 GM은 지역에 반드시 있어야 할 사업장으로 받아들여졌다. GM 공장이 없다면 다른 일자리들이 존재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GM 공장이 문을 닫자 도시 전역에서 일자리들이 빠르게 증발했다. 크리스마스 이틀 전, GM과 리어가 공장 가동을 중단할 때 로지스틱 서비스 주식회사에서 일하던 159명도 일자리를 잃었다.”

 

우리나라도 그랬죠. 대기업 노동자들에게는 황제라는 별칭도 붙여주었습니다. 그것이 오히려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있음으로 인해 도시에 생기가 생기고 다른 일자리가 생기고 함께 살아가게 된 것도 맞습니다. 그러했기에, 그들이 사라지기 시작하자 고구마 줄기가 딸려나오듯 연관된 모든 직종과 사람들이 주루룩 끌려나와 순식간에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실직의 아픔, 실직의 스트레스가 어떠한지는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한 심리전문가의 진단에 의하면, 실직의 스트레스는 배우자가 사망했을 때와 거의 동일한 수준이라고 했습니다. 2007년 하반기부터 2년 동안 제인스빌에서 파산신청을 한 주민 수는 거의 두 배 이상 늘어났습니다. 주택담보 대출금을 감당하지 못해 집을 내놓은 곳이 늘어났습니다. 저 역시 겪었던 일이기에 실직의 아픔이 얼마나 큰지, 얼마나 눈물을 흘려야 하는지, 직장이라는 벽이 얼마나 튼튼한 울타리였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신빈곤층이라는 이름으로 곧바로 중산층에서 파산자로, 빈곤층으로 전락했습니다. 신용카드 한도는 초과했으며, 살던 집에서 나와 친척집에 얹혀 살거나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야 했습니다. 그들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새로운 궁핍함과 불안함의 세계로 들어섰습니다. 학교들은 사상 처음으로 교사들을 해고했습니다. 그리고 가장의 추락한 자존감과 죄의식 그리고 가족에게 아무 쓸모도 없는 사람으로 전락했다는 심리적 패배감은 무엇으로도 다시 끌어올리기가 어려웠습니다.

 

멧은 죄책감도 쉽게 떨쳐내지 못한다. 다시 혼자서 집안일과 아이들 양육을 도맡고 있기 때문이다. 멧은 가족을 위해 요리도 못 하고, 식기세척기에 그릇을 넣거나 딸들의 숙제를 도와줄 수도 없다. 병원 진료 시간에 맞춰 가족들을 데려갈 수도 없다. 그는 자신이 가족에게 쓸모없는 존재라고 느낀다.” (257)

 

제인스빌은 우리나라 군산시보다 훨씬 도시 공동체적인 성격이 강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따뜻한 도시였습니다. 옛날 우리나라가 옆집 숟가락 개수도 알고 지냈다고 말하던 것처럼, 제인스빌도 얼추 비슷하게 그런 경지의 소도시였습니다.

 

이 책은 슬픔을 초점을 맞추지 않습니다. 무너져가는 거대한 공동체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다시 일으켜 세우고, 희망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힘을 모으는 개미같은 공동체 구성원들의 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7년이 지나도 그 상흔은 여전히 불타버린 잿더미 속 빨간 불씨처럼 남아있지만, 그들은 여전히 희망의 끈을 놓지 않습니다. 직업훈련학교는 재빨리 정부지원금을 최대한 받아내고 실직자들에게 재취업을 위한 실무 교육강좌를 개설했습니다. GM 실직자들은 전력공사에 취직하기 위해 전신주 타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2년의 학위 과정을 다 마치고 실제 취직한 사람은 두어 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들을 덮치고 있는 것은 어떻게 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거대한 두려움입니다.

 

졸업을 사흘 앞둔 날, 마지막 시험을 막 끝내고 주차장에 세워둔 트럭을 향해 걸어가는 마이크에게 거대한 의문 하나가 밀려온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직업학교에서 교정학과를 상위 성적으로 자랑스럽게 이수하고 제인스빌의 성공적인 모델로 신문에 소개된 GM 실직자는, 그러나 안타깝게도 몇 년 뒤 자살로 삶을 마감합니다. 실직자 자녀들은 샴푸가 없어 머리를 감지 못합니다. 유능한 심리교사 에이미는 학생들을 살펴 눈치껏 벽장으로 데려갔습니다. 벽장문을 열면 서로 돕기 위해 누군가 갖다놓은 많은 생필품들이 있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마음껏 가져가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런 환경이 익숙하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서 샴푸를 아야 하는 삶을 살게 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갑자기 추락한 자기 삶을 인정할 수가 없습니다. 슬프고 분하고 수치스럽고 무엇보다 다른 아이들이 알까봐 두렵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죄책감을 느낍니다. 곧 대학에 가야하는데, 대학 학비를 부모에게 부담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파커고등학교에 부임한 이래 그녀는 벽장의 도움을 받는 아이들이 열두어 명이던 첫 해부터 200명에 육박하는 지금까지 데리를 도와 벽장 일을 함께해 왔다. 최근까지도 매년 20여 명의 아이들을 벽장으로 인도했다. 이런 생필품을 받으면 아이들은 자기 삶을 완전히 다른 면에서 이해하게 된다. 바로 궁핍함이다. 한 여자아이는 자기 가족은 도움 같은 건 필요 없다고 화를 내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부모가 이혼한 남자아이 역시 처음에는 도움을 거부했다.”

 

군산 지역에 대한 신문기사를 검색해봅니다. 세금도 감면해준다는 기사도 있고, 가장 최근에는 군산지역 중소자동차 제조업 활성화 방안도 논의 중이라고도 합니다. 폐쇄된 군산공장을 자동차 부품업체 콘소시엄에서 인수한다는 글도 있습니다. 제인스빌과 마찬가지로 군산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많은 생각을 합니다. 우리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우리도 희망을 잃지 않는 작은 도시였으면 좋겠다고. 작년 이후 다시 군산을 가보지 않아 그곳 분위기가 어떤지 이제는 잘 모릅니다. 따스한 날, 출장가면 꼭 들렀던 한가한 돼지국밥집이 떠오릅니다. 손님은 우리밖에 없었는데, 고기를 산처럼 넣어주던 그 식당. 그 식당은 아직 여전히 문을 열고 있을까요?

 

이 책은 제인스빌이 혼자가 아니라는 걸 말해줍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이 부러웠습니다. 한 기자가 생업을 포기하고 이런 글을 쓸 수 있도록 지원해 준 후원자들. 그래서 제인스빌은 여전히 아름다운 공동체, 희망의 공동체였습니다. 우리 군산도 그러했으면 합니다. 그냥 무너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모두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에 너의 아픔은 곧 나의 아픔입니다.

 

나에게, 너에게, 우리에게 말해봅니다. 우리, 포기하지 맙시다. 다시 일어섭시다. 너와 나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당신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제인스빌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군산시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 가족, 우리 형제 자매의 이야기니까요.

 

 

"장미 한 송이가 정원이 될 수 있듯,

한 명의 친구는 세계의 전부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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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크 미 위드 유
캐서린 라이언 하이드 지음, 이은숙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8년 11월
평점 :
절판


#독서후기 - [테이크 미 위드 유]

 

저자 : 캐서린 라이언 하이드

역자 : 이은숙

출판 : 세종서적



베스트셀러 트레버의 작가, 캐서린 라이언 하이드가 또 하나의 위대한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책을 읽는 내내, 작가가 펼쳐내는 광대한 서사에 함몰되어 출근길 지하철역을 놓친 적이 몇 번이나 있었다. 퇴근길에는 다른 책을 읽어야 하는 나만의 규칙을 깨고 이 책을 또 꺼내들기도 몇 번.

 

520쪽의 두꺼운 책은, 며칠 만에 나의 감성에 오롯이 달라붙어 낱낱이 해부되고 말았다. 나에게 흡수되고 혈액 속에서 녹아진 채, 책의 주인공이 열아홉 살 아들의 재를 차에 싣고 옐로스톤을 돌아다니는 모든 여정을 따라 머리부터 발끝까지 같이 돌아다니며 또 다른 에너지로 나에게서 방출되었다.

 

작가에 대한 특징적인 한 마디는 이 책의 정체성을 잘 드러내준다.

 

평범한 사람들의 우연한 만남이 어떤 선한 결과물을 만드는지 이야기하는 작가

 

소설은 긴장감을 계속 유지하지만 전체적으로 매우 따뜻하다. 너무 따뜻해서 읽고 싶어지게 만드는 책이다.

 

예상치 못한 타인이 내 삶의 일부를 침범해 들어올 때, 내면의 자아는 방어기제를 펼친다. 하지만 침범하면서 나의 약점을 교묘히 이용하여 협상을 시도할 때, 그리고 그 협상의 내용이 매우 좋아서 달리 다른 선택권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을 때, 우리 인생은 다른 길로 달려가기 시작한다.

 

내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인생이 흘러갈 때 우리는 당황하고 낯설어하고 불편해한다.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고 아들의 재를 뿌리기 위해 긴 여행을 하고 있는 과학교사 주인공 오거스트 슈뢰더는 자동차가 고장 나 잠깐 정비소에 들르게 되는데, 그곳에서 정비 비용을 지출할 경우 여행 일정이 어그러지게 된다. 그때 정비소 주인이 묘한 제안을 한다. 자기 두 아이를 당신의 여행에 동행시켜 주면 정비 비용을 받지 않겠다고.

 

매우 예민한 상태로 슬픔을 감춘 채 여행하고 있는 주인공으로서는 전혀 알지 못하는 두 아이를 맡아 함께 여행한다는 것이 말도 되지 않는 제안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망설인다. 잠시 개와 놀고 온 두 아이들은 주인공을 무척 따르게 된다.

 

아이의 아버지는 감옥으로 들어가고, 두 아이는 아저씨와 함께 어색하고 불편하기 그지없는 여행을 시작한다. 그리고 세 사람에게 놀라운 변화가 찾아온다. 가진 자였던 과학교사와 짐짝처럼 얹힌 채 따라다녀야 했던, 그리고 실어증처럼 말도 하지 않던 어린 아이들이 어떻게 자신의 삶을 그리고 아저씨의 삶을 바꾸어 나가는지 우리는 책을 읽으며 전율한다. 그리고 감동적인 이야기가 끝날 즈음, 전혀 예상치 못한 또 다른 감동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삶은 우리가 죽을 때까지 계속 이어지는 것이니까.

 

첫 장을 펼치는 순간부터 손에서 놓을 수 없는 강렬한 이야기로, 세 사람의 인생을 바꾼 여행으로 독자 여러분을 초대한다.’는 출판사의 책 소개가 결코 거짓이 아님을, 우리는 첫 장을 펼치면서 깨닫게 될 것이다. 나 역시 그렇게 책에 빠져 들었고, 아직 2019년도에 많은 책을 읽어야 하지만, 2019년 내가 읽은 최고의 책 후보로 거침없이 올린다.

 

이 책은 2019년 내가 읽은 최고의 책 후보작이다.

강렬한 감동의 교향곡이 주인공이 아이들을 데리고 찾아갔던 그랜드캐년의 웅장한 폭포만큼이나 거침없이 가슴에 떨어져 깊게 패일 것이다. 책을 읽은 지 꽤 지났지만 아직도 그때의 감동이 심장을 두드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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