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사 헤리엇이 사랑한 동물들 수의사 헤리엇의 이야기 7
제임스 헤리엇 지음, 김석희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수의사 헤리엇이 사랑한 고양이를 읽은 지 일 년 반이 지났다. 그때 책장을 덮고 밀려오는 따뜻한 감동을 잊지 못해 헤리엇의 다른 책들을 주섬주섬 카트에 담았었는데, 이제야 그의 또다른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아시아출판에서 만드는 헤리엇의 저작물 시리즈 중 마지막 일곱 번째 작품이라고 하니 더욱 소중한 책이 되었다.

 

수의사 헤리엇의 동물 이야기는 파브르의 곤충기, 시튼의 동물기를 잇는 동물 문학의 고전으로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파브르의 곤충기가 관찰에 초점을 두었고, 시튼의 동물기가 창작에 초점을 두었다면, 1916생인 수의사 헤리엇의 작품은 인간과 가장 가까이에서 인간과 함께 생활한 가축동물에 초점을 둔 작품이다. 시튼의 동물기가 대부분 비극으로 끝나는 반면 헤리엇의 작품은 마치 한 편의 수채화를 보는 듯한 따뜻함과 인간적 아름다움이 묻어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파브르와 시튼의 동물문학 계보를 잇는 것을 넘어선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새로운 동물문학의 경지, 생명사랑의 경지를 이룩하고 있다는 경이로움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단 열 편의 이야기와 열 마리 동물들이 등장하지만 한 권의 책으로 엮인 이야기들은 얇은 책의 분량을 벗어나 생명을 가진 모든 동물, 숨을 쉬고 있는 모든 가축, 생명을 잉태하고 있는 모든 어미를 대표하는 거대한 지구촌에 대한 이야기다.



가축이 아프다고 새벽에 울면서 전화하는 농부들의 사랑을 외면하지 않고, 옷을 꿰입으며 쿠당탕 전등을 떨어뜨리며 가족을 깨우고 달려나가는 젊은 수의사 헤리엇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이 놈은 별로 가망이 없는 것 같군요.” 로브가 투덜거렸다. “선생님이 해줄 수 있는 일이 더 있나요?”

몸속에 페서리를 좀 넣어주고 주사를 놓겠지만, 가장 필요한 것은 돌봐줄 새끼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이런 상태의 암양들은 돌봐줄 새끼가 없으면 대개 삶을 포기해버리거든요.” (42)

 

항생재가 발명되기도 전인 1939, 암양 한 마리가 출산 후 삶의 의미를 잃어버릴 처지에 놓였다. 동네의 못된 사람이 풀어놓은 사냥개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암양은 결국 유산하고 말았다. 새끼들은 모두 죽은 채 세상으로 나왔다. 헤리엇은 의료적인 처치 외에도 동물의 입장에서 생존을 생각했다. 죽은 새끼가 마음을 아프게 하지만, 살아있는 암양은 비관하여 죽지 않도록 해주어야 했다. 그리하여 농부와 수의사의 어미 암양 살리기 대작전이 벌어진다. 고아가 된 양새끼 허버트를 암양의 새끼인 것처럼 꾸민 것이다. 이 작전은 대성공을 거둔다. 허버트도 풍족한 젖을 먹고, 암양도 허버트틑 자기 새끼로 받아들여 삶의 의욕을 되찾는다.

 

헤리엇은 공부를 하면서 수의사라는 직업이 그다지 큰 부자가 되지 못하는 직업임을 알았다. 나이 든 교수가 그 사실을 적나라하게 얘기해주었기 때문이다. 헤리엇은 그 말을 듣고도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변화가 풍부한 생활. 그것이 바로 헤리엇이 바라는 생활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밤 9시에 송아지를 받으러 가는 길에 투덜댈 수밖에 없었다.

 

왜 이런 직업을 택했을까? 좀더 쉽고 평온한 직업을 택할 수도 있었을 텐데. 광부나 벌목꾼도 수의사보다는 나을 거야. (119)

 

데이킨 씨가 늙고 병든 18년생 암소 블로섬을 파는 이야기는 마음의 흔들림 없이 담담하게 읽기 어려웠다. 글을 쓰는 헤리엇도, 가족과 같은 정든 소를 어쩔 수 없이 팔아야 하는 농부 데이킨 씨도, 그 이야기를 읽는 독자인 나도 같은 마음이었다. 한 마디로 가슴이 미어졌다.

 

농담조로 말하긴 했지만, 늙은 암소를 바라보는 그의 눈은 조금도 웃고 있지 않았다. 웃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의 뒤에는 열린 문 너머로 푸른 언덕과 강물이 보이고, 수심이 얕고 포기 넓은 강에서는 무수한 잔물결이 봄의 햇살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

경치가 아름다우면 뭐해요. 배를 채워주는 것도 아닌데” (147)

 

우리는 자본주의 시대의 무자비한 폭력 앞에 무방비로 서 있는 것과 같다. 1910년대의 농촌도 마찬가지였다. 20년 가까이 함께 생활했던 블로섬은 가족에서 다시 가축으로 돌아가 있었다. 아무리 블로섬과 정이 들었어도, 아무리 아름다운 경치를 보면서 살아도, 배를 곯을 수는 없었다. 소는 원래부터 가축이었지 가족이 될 수는 없었다.

 

저게 뭐지?”

언덕 쪽에서 달각거리는 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이 농장으로 들어오는 길은 두 개인데, 발굽 소리는 넓은 길보다 1킬로미터쯤 위에서 간선도로와 만나는 좁은 오솔길 쪽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우리가 그 소리를 듣고 있을 때 암소 한 마리가 불쑥 튀어나온 바위를 돌아서 이쪽으로 달려왔다.

 

블로섬이었다. 녀석은 커다란 젖통을 흔들면서, 우리 뒤쪽에 있는 외양간 문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데이킨 씨가 소리를 질렀지만 늙은 암소는 우리 옆을 지나 녀석이 오랫동안 살아온 외양간 안으로 거침없이 들어가버렸다. 그러고는 텅 빈 여물통에 코를 들이박고 킁킁거리다가 고개를 돌려 주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151)

 


브라보. 나는 책을 던져놓고 박수를 쳤다.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기쁨의 탄성이 터져나왔다. 블로섬을 샀던 가축상이 곧 헐레벌떡 뒤쫓아왔지만 농부는 소의 의견을 존중했다. 블로섬의 뜻을 외면할 수 없었다. 블로섬은 다시 가족이 되었다. 이 얼마나 우주적인 감동인지, 이야기의 힘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어찌보면 가족도 쟁취해야 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이 책이 더욱 감동적인 것은 이야기와 함께 어우러지는 레슬리 홈스의 아름답고 세련된 수채화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그림을 보면서 이야기의 주인공을 떠올린다. 얼마나 아름다운 동물들인지. 눈에서 책을 뗄 수가 없다. 아름다운 책이다. 이야기도 그림도, 그런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