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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몰 자이언츠가 온다 - 세상을 바꾸는 완전히 다른 패러다임
보 벌링엄 지음, 김주리 옮김 / 넥스트북스 / 2019년 8월
평점 :
절판
작은 기업들의 살 떨리는 생존기.
책 제목만 본다면 뭔가 성공한 기업들이, 작지만 탄탄한 기업들이 희부연 흙을 튕겨내며 우두두두 몰려 오는 느낌도 든다. ‘온다’를 ‘몰려 온다’로 착각해서 읽은 것일까.
이 책은 작은 거인들의 화려한 성공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이 거대 기업 틈바구니에서, 글로벌 경쟁기업들 사이에서 어떻게 망하지 않고 지속적인 생존을 영위해 나가고 있는지를 가감없이 밝히는 치열한 생존기에 가깝다.
이 책은 저자의 전작 ‘스몰 자이언츠’의 10주년을 맞아 개정판을 낸 것인데 이름을 바꾸고, 그 뒤 10년간의 변화를 추적해 더 실감나는 책이 되었다. 마지막 챕터 10장은 그렇게 부록처럼 덧붙여진 부분인데 저자는 ‘비즈니스에서 유일하게 변하지 않고 지속되는 속성은 오로지 변화 그 자체뿐’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들 가운데 10년 전과 똑같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회사는 단 한 곳도 없으며, 이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418쪽)
이 책이 작지만 강한 기업들의 성공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은, 저자가 고심 끝에 선별한 14개 기업 가운데 ‘레엘 프리시전 매뉴팩처링’은 간신히 파산을 면했고, ‘리듬 앤 휴스’는 파산하고 말았다. 창업자들은 떠나갔고 죽었으며 그렇게 사라진 회사들도 많았다.
이 책 이전에도 수많은 책들이 기업의 성공신화를 추적하여 성공의 원리를 찾아내고, 공식을 만들어내고 그것만이 성공의 지름길인 양 초보 기업가들을 현혹했다. 하지만 알다시피 기업이란 인간처럼 살아있고 복잡하여 하나의 이론으로 이끌어갈 수가 없다. 생각지도 못한 무수한 변화와 장애물들이 있다. 회사 대표의 리더십은 물론이고, 초기 자금 부족으로 공동으로 회사를 세운 경우 공동창립자들의 의견 일치, 회사가 커감에 따라 만들어 나가야 하는 조직문화, 세금 문제, 윤리 문제, 의사소통 문제, 이사회, 주주들, 경쟁기업, 인원감축, 급여삭감 등 처리하고 해결하고 풀어나가야 할 문제들은 싱크대를 가득 채운 설거지 그릇들만큼이나 지치게 하는 요인이다. 그렇다고 어느 하나 만만하게 볼 수도 없다. 하나하나의 판단과 결정에 따라 회사의 존망이 왔다갔다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저자가 고심하여 고른 14개 작은, 단 2명이 전부인 회사부터 1,000이 넘는 규모로 성장한 회사까지 고루 선별한, 기업들에 대한 흥망성쇠, 고군분투를 진지하면서도 적나라하게 다룬다.
기업의 목적은 성장과 이윤 추구가 아닌가? 이러한 가장 기본적인 명제부터 의문부호를 붙이고 개별 기업들의 속내를 들여다본다. 어떤 기업은 성장을 목표로 두지 않았다. 앵커 스팀 맥주 회사는 미국 최초로 소규모 앵조장 맥주로 미국 전지약에서 높은 인지도를 얻은 미국 글로벌 맥주 기업이 되었다. 사방에서 맥주 주문이 밀려들었고 이제 고생 끝 행복 시작만 남은 것 같았다. 그러나 창립자 메이태그는 막 찾아온 대규모 거래 제안을 고심 끝에 포기했다. 날마다 찾아오는 도매거래업자들에게 공급을 제한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만약 무리한 성장을 감행했다면, 사업에서 자신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063)
그 회사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옛날 방식으로 힘겹게 소량의 맥주를 만들고 있다. 그 방식으로 만든 맥주가 최고는 아닐지라도 그들은 기계식으로 확장하여 대규모로 전통을 잃기보다는 그 지역에서 내려오던 오래된 방법으로 그들만의 전설을 만들어가고 있다. 아직까지는 망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맥주 맛이 최고라고 자부하고 있다.
이 책은 다양한 기업들을 분석하면서 진정 회사의 주인은 누구인지를 묻는다. 외부 자본이 들어오는 순간 기업은 주주들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그래서 여기 작은 기업들은 끝까지 비상장을 지켜나간다고 했다. 적당히 성장했을 때 외부 대기업의 제안으로 자신의 주식을 팔고 넘기면 평생 먹고 살 이윤을 남기며 잘 살 수 있음에도, 여기 기업의 대표들은 끝내 발걸음을 돌린다. 해고 당할 수도 있는 직원들에게 미안하고, 자기의 잇속만 챙기는 것도 같아 미안하고, 회사의 정신이 사라질 것도 같아 미안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에게 굴러들어온 복을 스스로 찼다.
작은 기업들의 성공 요인 가운데 하나는 지역사회 속에서의 위치였다. 그들은 글로벌로 나가기보다는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남기를 희망했다. 지역주민들이 기억해주는 기업, 그 속에서 존재감을 나타내는 기업, 그래서 어떤 식당 기업은 파산보호 신청을 하게 되었을 때 지역주민들에게 솔직하게 편지를 보낸다. 우리는 곧 망하게 되었다고, 회사 직원들은 회사의 평판만 나빠지고 더 악화될 것이라고 말렸지만 대표는 더 이상 잃을 것도 없었고, 할 수 있는 것도 없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지역주민들의 신뢰를 느껴보고 싶기도 했다. 편지 이후 식당에는 지역주민들의 예약이 밀려들었고 은행에서도 회생의 기회를 허락했다.
14개 기업들이 이렇게 한 순간에 생사를 경험하기도 하지만, 처음에는 모두 성공을 경험한 기업들이었다. 성공의 규모나 속도는 다를지언정 이들은 규모가 커졌고 소비자들로부터 인정을 받았으며, 내부적으로도 결속이 단단해진 기업들이었다. 무엇이 이들을 성공하는 기업으로 만들었을까. 시티스토리지의 일화는 좋은 예가 된다.
“그들과 저희 사이에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파악하셨나요?”
고객이 대답했다.
“네. 당신 회사의 직원들은 모두 웃으며 즐겁게 일하더군요. 저에게 밝게 인사도 건넸습니다. 이런 밝은 분위기의 회사는 거의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직원들이 일하는 모습이 하나같이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렇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사실은 그 점 때문에 시티스토리지와 거래하고 싶습니다.” (168)
이 부분을 읽을 때 사실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나는 나와 상관없는 다른 고객이 회사를 방문했을 때 나를 찾아온 손님인 것처럼 환하게 웃으며 응대한 적이 있는가를 자문해보았다. 불쾌한 표정을 짓지는 않았지만 환하게 웃으며 맞이한 기억은 별로 없었다. 무관심한 표정을 지었다고 할까.
뭐 그까짓 것 가지고, 하며 기업의 성공요소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비현실적이고 추상적인 거 아냐,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저자가 밝힌 일화는 하나의 예시일 뿐이다. 그 속에는 글로 담지 못한 기업의 정신, 직원의 신뢰, 일에 임하는 자세, 삶을 바라보는 가치관 등 다양한 요소들이 숨어있고 이것들이 모두 모여 농축되고 표출될 때 성공이라는 하나의 결과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저자는 말한다.
성공이나 성장은 목표가 아니다. 그것은 결과다.
이 책을 처음 접하고는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비윤리적인 기업 행태를 참지 못하고 직접 회사를 차려 고군분투하고 있는 작은 기업인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에게 이 책을 선물하면 좋겠다.
마침 초반부에 기업윤리로 고민하는 장면이 나왔다. 엔지니어였던 그는 자신이 의뢰받은 개발제품이 아이들이 보기에 불건전한 곳에 사용될 수 있음을 알고 고민하였다. 수익만을 생각한다면 경영자는 당연히 개발 지시를 내렸겠지만 회사는 이 문제를 다양한 사람들과 토의한 뒤 개발자의 의견을 따라 거래를 취소했다.
회사의 지시에 부당함을 느끼고 거부했던 그가 이 책을 읽고 자신의 결정에 대한 부담을 덜고, 이 책에서 세세하게 지적하는 요소들을 공부하듯 기억하면 좋겠다. 죽음이나 질병으로 언제든지 회사를 떠날 수도 있기 때문에 회사의 승계 문제까지도 고민하고 대책을 세우는 모습이 책에 나온다. 참으로 구석구석 짚어주는 책이다. 사람은 영원할 수 없고, 기업도 영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왜 기업을 꾸려나가는지 많은 생각을 하게 하고, 무엇 때문에 성장해야 하는지 깊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기존의 성공신화를 답습하는 책이 아니라, 진짜 기업이란 어떠해야 하는지를 재무의 입장에서, 기획의 입장에서, 리더의 입장에서, 직원의 입장에서, 그리고 소비자와 독자의 입장에서 다양하게 고민하게 하는 훌륭한 책이다. 작은 기업을 운영하는 기업인이라면 한번 읽어보길 권해본다. 회사의 외면 성장은 물론 내면성장, 지속성장에 큰 도움이 되는 책이라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