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고래 K-포엣 시리즈 7
정일근 지음, 지영실.다니엘 토드 파커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름이 친근한 시인. 어디서 그를 봤을까? 그의 시가 교과서에 실려 있다.

 

 

<바다가 보이는 교실>

 

참 맑아라

겨우 제 이름밖에 쓸 줄 모르는

열이, 열이가 착하게 닦아놓은

유리창 한 장

 

먼 해안선과 다정한 형제섬

그냥 그대로 눈이 시린

가을 바다 한 장

 

열이의 착한 마음으로 그려놓은

아아, 참으로 맑은 세상 저기 있으니

 

(정일근, 바다가 보이는 교실, 전문)

 

이 시는 지금은 창원으로 통합된 경남 진해 출생인 그가 처음 국어 선생님으로 근무했던 진해 남중학교 첫 발령지에서 쓴 시다. 마치 동시 같은 그의 이 시는 그의 첫시집 바다가 보이는 교실에 실려 있다.

 

나도 결혼하고 첫 삶의 보금자리를 진해에 두었으니, 어쩐지 낯이 익더라,는 첫 느낌이 어쩌면 가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의 신작시집 저녁의 고래는 고래를 사랑하는 고래시인 정일근의 새로운 시 20편이 부부 번역가 지영실과 다니엘 토드 파커에 의해 영어로 번역되어 한국 최초 한영대역 시집으로 발간된 작품집이다. 아시아 출판사는 통 큰 기획으로 [K-포엣] 시리즈를 발간하여 곁에 두고 읽고 싶은 한영대역 한국 대표 시선을 발간하고 있는데 정일근 시인의 신작시집 저녁의 고래가 첫 번째로 발간되었다.

 

달랑 스무 편의 시로 시집을 만들어 좀 빈약하다는 생각이 들긴 하나 나란히 놓인 영어 번역본을 생각하면 결코 얇은 책은 아니다. 굳이 영어로 번역된 시를 다 읽지 않더라도 특유의 한국적 표현이 들어간 시어들이 나오면 영어로는 어떻게 번역해 놓았지? 하며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가령 두 번째 시 눈의 바다같은 경우에는 영어 제목을 ‘Sea of Snow / Sea of Eyes’로 번역해 놓고 주를 달아 한국의 이 두 가지 뜻을 가진다고 자세히 설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연은 우리가 읽는 그 시적 언어의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할 것 같아 번역문을 보면서도 괜히 마음이 달아 오른다.

 

기다렸던 눈은 아니지만, 참 푸짐한 눈이다

청어 떼들 헤엄쳐 돌아오는 눈의 바다다

 

‘Not the snow she was waiting for, but remarkably abundant eyes

A sea of snow where a school of herrings swim back home.‘

(정일근, ‘눈의 바다에서)

 

시는 전체를 읽으면서도 파도처럼 밀려오는 바다를 느낄 수 있지만, 어떨 땐 부분만 떼어놓고 읽어도, 발끝을 적시는 바다의 내밀함을 느낄 수 있다. 가령, ‘어머니의 문장이란 시에서 아래의 시를 읽을 때처럼.

 

어머니란 주어가 잠시 비운 사이

먼지 한 톨 끼어들 틈 없는 긴장에

간장종지 하나라도 위치를 바꾼다면

이 문장 와장창 깨어져 비문이 될 것 같다

어머니 혼자 주무시던 이부자리에서

(정일근, ‘어머니의 문장에서)

 

시는 한 번 읽고 밀쳐버리는 그런 책이 아니다. 짧은 만큼 시간을 두고 곱씹어야 한다. 시는 산문보다 더 감정을 지닌 글이다. 뒤늦게 가슴을 울린다. 코끝을 울리고 심장을 벌렁거리게 한다.

 

고래를 사랑하고, 자연과 생태를 사랑하는 정일근의 마음은 이 시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그래서 좋다. 아무렴. 시인이라면 그래야 한다. 사랑할 것들을 사랑해야 한다.

 


 

시를 다 읽고 나자 시 같은 산문이 하나 부록처럼 붙어 있다. ‘가을, 겨울, , 여름, 다시 가을이라는 수필이다. 부족한 졸시집 봄부신 날,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으로 이어진 것을 생각하면 그의 계절, 가을로부터 시작하는 그 어긋남은 실로 기막히다. 그리고 그의 글 속에서 또 아름다운 시 한 편 발견하고 조용히 글갈피로 만들어 본다. 그의 마음이 오롯이 담긴 시 한 편과 같다. 그렇게 생각한다. 이 시집의 모든 것은 바로 이 한 문장에 담겨 있다.

 

빠름의 선물은 편리이고, 느림의 선물은 사유입니다.

천천히 걸을 때 좋은 생각이 찾아옵니다. (81)

 

이제 시작하는 가을, 시집 읽기 딱 좋은 계절이 왔다.

천천히 걸으며, 좋은 생각하며, 좋은 시들을 많이 읽어 보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음식은 어떻게 신화가 되는가
황교익 지음 / 지식너머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독서후기 [음식은 어떻게 신화가 되는가]

 

한국 음식전통과 문화에 대한 날선 비평서

 

이 책의 경계를 어디에 두어야 그의 자리를 찾아가 잘 어울릴까. 음식을 매개로 한 인문학 책으로 부르기에는 인문학적 접근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아니고, 그렇다고 전국 팔도 음식을 다루고 있지만 맛집을 소개하는 음식 책도 아니고, 강한 정치적 신념으로 음식의 정치화를 경계하고 있으나 그렇다고 정치서적도 아니다.

 

네이버에서 이 책은 교양인문으로 분류되어 있다. 제목과 작가를 보고 유추할 수 있는 장르적 접근이 그 정도면 양호하다 할 것이다. 어쩌면 가장 근접한 분류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음식을 다 먹고 난 뒤 음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것처럼 궁시렁거려본다면, 이 책은 인문학적 교양도서라기보다는 비평서에 가깝다. 그것도 아주 날이 서 있는 비평서다. 단 그 대상이 음식일 뿐이다. 음식맛이 확 달아날지도 모른다. 이 책은 각오하고 읽어야 한다. . 저자가 각오하고 썼기 때문이다.

 

이 책은 따뜻하거나 친절하지 않다. 그동안 맛 컬럼니스트로 활동하면서 자신의 이야기에 딴지를 걸었던 많은 사람들에게, 방송이어서 차마 더 이상 반론을 펼치지 못했던 그것에 대하여, 작심하고 붓을 든 채 나는 내 할 말을 하겠노라며 책을 쓴 것처럼 보인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고 있던 우리나라 음식에 대한 신념, 전통에 대한 자부심 등을 하나하나 격파해 나가며 깨부신다. 그래서 아프다. 이 책은 우리를 아프게 한다. 몰랐던 새로운 사실들을 하나씩 알게 되면 지식의 향연과 앎에 대한 자부심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얼마 되지도 않았던 세월 동안, 우리가 치장했던 화려한 이력들을 하나씩 벗겨 그것이 아니었노라고, 우리가 알던 그 음식이 아니었노라고 알게 될 때 우리는 부끄러움과 민망함 그리고 아쉬움에 입맛을 다실지도 모른다.

 

그가 나온 텔레비전을 잘 보지 않아 그가 방송에서 어떤 말을 하고 다녔는지는 모른다. 다만 최근에 유명한 백종원 씨와 설탕에 대한 논쟁이 있었고, 그는 컬럼니스트이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할 수 있다고 당당하게 말한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난다. 그래서 그때부터 나는 마음속으로 그를 응원했다. 그는 자신의 주장에 대해 확신이 있었고 근거를 가지고 있었다.

 

책은 1. 갑과 을의 밥상, 2. 한식 세계화 네버다이, 3부 옹녀는 마늘을 먹지 않았다. 4부 맛 컬럼니스튼 정치를 이야기하는 사람이다의 구성을 가지고 있다. 3부 옹녀와 마늘 부분만 빼면 전체가 정치적인 제목을 달고 있다.

 

김치부터 칼국수까지 그의 날선 비평은 우리를 아프게 하지만 다시 우리를 되돌아보게 한다. 이대로 계속 가다간 진짜가 진짜 없어질 것만 같은 위기감을 느끼게 한다. 우리 후손들에게 계속 가짜를 진짜라고 속여서는 안 되는데, 애국심에, 정치적으로 뒤범벅된 가짜 전통을 우리 것인 양 전수할까봐 걱정이 된다.

 

물론 그의 모든 이야기에 수긍을 하지는 않는다. 그 역시 역사적 공백과 자료적 공백 앞에서는 인문학적 상상력을 덧붙여 이야기를 완성하지만 어떤 것은 주관적이기도 하다. 일반화의 오류가 가끔 나타난다. 자신의 생각이 객관적이고 일반적이라는 생각 역시 위험한 생각이다. 우리나라 치킨은 맛이 없다는 그의 주장은 개인적인 맛 컬럼니스트의 의견으로는 수용할 수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다시 따지고 든다면 충분히 그의 이론을 뒤집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개인적으로 치킨을 매우 좋아하는데, 음식은 기호식품이기 때문에 닭의 크기나 조리법 등으로 객관화시켜 일반화를 만들 수는 없다. 맛은 철저하게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그의 고증학적 지식에 따른 웅녀의 마늘 이야기는 신선했다. 마늘이 고려시대에 전래되었으므로 삼국사기에 적힌 단군신화의 한자 해석은 그가 주장하는 대로 달래로 해석해도 좋을 듯 하다.

 

이 책을 읽고 날선 비평서라 평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음식 이야기다. 우리나라의 다양한 음식 주제를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은 차갑지만 따뜻하다. 칼국수 이야기가 차가운 정치색을 가졌다면 그 이면에 떠올리게 하는 수제비는 구수하다. 어린 시절, 뜨거운 물을 솥으로 팔팔 끓이면서 밀가루 반죽을 손으로 뜯어 물에 풀어 넣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를 사랑한다면, 우리나라 음식을 즐거이 먹는다면, 이 책은 자신이 무엇을 먹고 있는지 진정 깨닫게 해주는 소중한 음식 정체성에 관한 책이 될 것이다. 무엇을 잃어가고 있는지, 무엇을 되찾아와야 하는지를 알게 해 줄 것이다. 소중한 음식 책이다. 우리나라 음식의 정체성을 깨닫게 해준다. 그의 정치적인 음식 이야기에 건투를 빈다.

 

자아(自我)에 대한 인식은 타아(他我)와의 대립에서 탄생하고 또 분명해진다. ‘조선에 대한 인식은 와의 대립에서 탄생하고 또 분명해진 것이다. 한국인의 민족적 자아는 그러니 그 대립의 자리에 있던 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자아와 대립하는 타아가 가 아니라 중국이나 미국, 프랑스 등이었다면 조선이라는 자아는 다르게 인식되었을 것이다. 일제강점기 그때 한국인의 자아는 왜에 의해 뒤죽박죽 엉켜버렸다. (13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광야를 살다 - 광야의 삶을 버티고 견디고 이겨 내는 방법 광야 시리즈
이진희 지음 / 두란노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광야의 삶을 살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자신의 삶이 광야의 삶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사람이라도 광야라는 말을 듣는 순간, 고개를 주억거릴 것이다. 광야의 삶이 아닌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감히 단언할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실 광야를 물리적 실체로 접할 가능성이 매우 적다. 일부러 광야를 찾아가지 않는 이상, 광야라는 공간이 어떻게 배치되고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리고 광야에서 살아보지 않는 이상 광야에서의 삶이란 것이 어떤 것이구나 하고 명확히 이해할 수 없다.

 

광야라고 하면 막연히 황폐한 곳, 사막이 펼쳐져 있고 바위와 돌만 가득한 곳이라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나무는 물론 풀 한 포기조차 찾아볼 수 없는 곳, 바람이 불면 뿌연 흙먼지가 공간을 점령해버리는 곳. 사람이 걸어서는 갈 수 없는 곳이고 사람이라면 결코 살 수 없는 곳이 바로 광야다. 밤에는 춥고 낮에는 더워 하나님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막아주고 보호해주지 않으면 결코 생존을 담보할 수 없는 곳이다.

 

성지순례를 가서 이스라엘의 유대 광야를 체험해 볼 순 있지만 그곳에서 살 수는 없다. 그런데 성경에는 실제 광야에서 살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많다. 모세의 광야 40, 다윗의 광야 13년 삶은 온전히 몸으로 살아내고 버텨낸 기적 같은 삶이다. 세례요한도 광야에서 낙타 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면서 성령 충만함을 받았다. 예수님도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광야에서 40일간 금식기도를 했다.

 

광야는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께 버려진 것 같은 장소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사람으로 훈련시키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광야 같은 삶을 살더라도 우리는 높으신 하나님을 뜻으로 자신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

 

이진희 목사님의 책 광야를 살다는 그렇게 광야에서 삶을 버텨낸 성경 인물들을 조망하며 우리의 삶을 이야기한다. 돌이켜보면 눈물 없는 삶이 없고, 광야 아닌 삶이 없기에 우리는 이 책을 쉽게 외면하지 못한다. 책이 눈이 들어온 이상, ‘광야라는 단어가 두 눈에 포착된 이상, 우리는 이 책을, 광야의 삶을 견디고 버텨낸 것처럼 읽어낼 수밖에 없다.

 

왜 다윗은 사울에게 쫓기며 광야에서 13년의 삶을 도망자로 살아야 했을까, 왜 모세는 왕자의 신분에서 살인자로 전락하여 미디안 광야에서 40년간 양치기로 살며 목숨을 부지해야 했을까. 그들의 삶에서 광야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나 역시 50년 넘는 삶을 살아오면서 험악한 세월을 살았다고 감히 고백할 수 있을 정도로 광야의 삶을 살아왔다. 그랬기에, 아직도 그 광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 책을 얼른 읽고 싶었다.

 

저자 이진희 목사는 평소에 성경을 읽으며 잘 감지하지 못했던 독특한 광야적 시선으로 우리를 말씀의 세계로 이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하갈의 광야 생활에 관한 이해다. 현재 종교적 대척점에 서 있는 이슬람의 선조가 되는 이스마엘을 바라보는 기독교인의 시선은 곱지 않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광야로 쫓겨난 하갈과 이스마엘의 눈물과 울음소리를 들으시고 친히 천사를 보내신 사건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자신이 광야의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삶이 너무 힘들고 괴로워 죽을 것만 같다고 생각된다면, 하루하루 삶에 감사가 없고 불평만 가득하고, 왜 사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한다면 이 책을 집어들기 바란다. 성경에서 광야적 삶을 산 13명의 인물들이 그들에게 광야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이진희 목사님의 글을 통해 이야기 한다.

 

가인의 광야부터 아브라함의 광야, 하갈의 광야, 요셉의 광야, 모세의 광야,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룻과 나오미의 광야, 다윗의 광야, 엘리야의 광야, 포로기의 광야, 세례자 요한의 광야, 예수님의 광야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약시대의 바울의 광야까지. 바울은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났으나 사도로 부르심을 받지 못하고 고향으로 내려가 13년간 광야 같은 삶을 살아야 했다.

 

이 책은 광야의 삶이 절망의 삶이 아니라, 희망의 삶이고 연단의 삶이고 미래지향적인 삶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지식적이고 문언적인 접근이 아니라, 실제 광야의 삶을 살았던 성경속 인물들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광야의 축복을 발견하게 해 준다.

 

저자는 책 서두에서 말한다.

 

어떤 광야를 지나든 광야는 다 어렵다.

쉬운 광야 같은 것은 없다.

살아오면서 수많은 광야를 지나 이제는 익숙해질 만도 한데, 그런데도 언제나 처음 지나는 것처럼 어렵고 두렵고 생소하게 느껴지는 것이 인생의 광야다. (서문, 11)



광야찬양을 부르는 버스킹 동영상을 봤다. 혼신의 힘을 다해 오직 주님만이 내 도움이 되신다는 고백하는 장면이 계속 눈가에 아른거린다



(https://youtu.be/irqqfMS8Xic)


다윗이 광야의 동굴로 피해다니며 주님만이 내 방패, 내 산성이라는 고백과 찬양이 바로 이 찬양이 아닐까. 광야에서의 삶은 우리를 오직 주님에게만 의지하게 만든다. 우리는 광야를 벗어나는 순간 주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의지하거나 돈을 의지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광야는 우리에게 힘든 곳이면서도 사실은 축복의 장소다. 광야는 믿음의 장소다. 결코 불순종으로 인한 결과가 아니다. 우리가 광야의 삶을 불순종의 결과요, 하나님께 벌을 받는다는 시각으로 접근할 때 우리의 신앙, 우리의 믿음은 오히려 황무지가 되고 말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살다 보면 나오미와 같은 일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이 징벌하신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179)

 

이 책을 읽기 전까지 광야가 어떻게 구원과 연결되는지를 알지 못했다. 그런데 이사야 624절의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될 것이라는 말씀을 책을 통해 다시 읽으며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보다 명징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광야를 지나온 우리는 그 곳이 이제는 예수님과 결혼한 것처럼 되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다시는 황무지라 불리지 않을 것이다. 광야에서 살고 있는가? 그렇게 느끼고 있는가? 그렇다면 주저하지 말고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우리가 광야를 지날 때도 마찬가지다. 불필요한 잎사귀와 나뭇가지들을 버려야 한다. 탐욕을 버려야 한다. 욕심을 버려야 한다. 불필요한 것들을 버리고 자신을 비워야 한다. 최소한으로 살아야 한다. 낮춰야 한다. 그래야 산다. 그래야 광야를 통과할 수 있다. (151)

 

쉬운 광야는 없다. 그러나 축복의 광야다. 다윗은 광야에서 동굴에 숨어 있었기 때문에, 요새에 숨어 있었기 때문에 살아남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동굴이 되어 주셨고 그의 요새가 되어 주셨다. 다윗이 피해 숨었던 곳인 동굴이 아니라 하나님이었다. 우리가 피할 곳은 오직 하나님이다. 그것은 광야의 삶을 살 때만 가능하다.

 

그는 요새에 숨어 있었기 때문에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의 요새가 되어 주셨기 때문에 살아남았던 것이라고 고백한다. 실제적으로 다윗이 피해 숨었던 곳은 마사다(요새)가 아니라 하나님이었던 것이다. 그는 요새에 숨지 않고 하나님에게 피해 숨었다. (20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제3의 장소 - 작은 카페, 서점, 동네 술집까지 삶을 떠받치는 어울림의 장소를 복원하기
레이 올든버그 지음, 김보영 옮김 / 풀빛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게는 독서하는 내내 책 읽는 맛을 느끼게 해준 책이었다. 지금까지 접해보지 못했던 주제인 3의 장소는 처음 책 제목을 접했을 때 가졌던 호기심의 크기만큼이나 책을 읽는 동안 신선하고 큰 즐거움을 안겨 주었다. 한마디로 지적 유희의 극치를 느끼게 해 주었다.

 

굳이 장르를 학문적으로 접근한다면 도시생태학 정도가 될 듯하다. 저자는 집, 회사를 벗어나는 제3의 장소에 대한 역사적 유래와 현대 사회에서의 필요성까지 다양한 사례를 주제별로 접근하고 있다. 국내 출판사는 책 제목으로 장소의 중요도를 기준으로 3의 장소라고 세 번째 계급을 허여했지만 원제는 ‘The Great Good Place’이다. 세 번째 장소가 아니라 대단하고 좋은 곳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마케팅 측면에서 보면 3의 장소가 구독자가 더 늘어날 것 같은 생각은 든다. 명확하게 이게 뭐지?’ 하는 호기심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자극적인 제목이다.

 

미국의 도시사회학자인 저자 레이 올든버그는 이 책에서 처음으로 3의 장소라는 용어를 세상에 개념적으로 소개했다. 이 책은 책이 처음 나온 1989<뉴욕 타임스 북 리뷰>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우리나라에 이제야 번역이 되다니... 벌써 30년이 지났는데 ㅠㅠ)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분이 있었다. 내년에 작은 교회를 개척하는 목사님이시다. 도시선교를 목표로 준비 중인데, 동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3의 장소를 기획한다면 이 책이 어쩌면 영감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 읽었으니 선물로 드리고 싶다. 밑줄을 많이 그어 좀 지저분하겠지만)

 

3의 장소를 굳이 우리말로 바꾼다면 사랑방정도가 되지 않을까. 아직 동네라는 개념이 살아있고 동네 안에서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만나 정보를 나누고 하루의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곳.

 

저자는 1부에서 3의 장소가 왜 중요한지, 어떤 특징과 기능이 있는지를 설파한 뒤, 2부에서 지구촌의 역사를 훑어 영국의 펍, 프랑스의 비스트로, 미국의 태번, 독일의 대형 비어 가든, 클래식 커피하우스 등의 변천사를 맛깔나게 재현한다. 학자들일지라도 책을 쓰려면 약간의 이야기꾼이 되어야 한다.

 

벌써 20년도 더 지난 옛일이지만 독일에 간 적이 있었는데 이 책에서 설명한 대규모 비어 가든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아마도 뮌헨의 호프브로이하우스로 기억하는데 그곳은 화려한 양식의 건물의 위용과 함께 4000여 명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자랑한다. 상공회의소 주관으로 특허 담당자들이 세미나 겸 12박으로 유럽 탐방을 갔었는데, 한국 촌놈인 나는 난생 처음 보는 어마어마한 광경에 입을 쩍 벌린 채 압도당하고 말았다. 물론 술을 마시지 못해 나 홀로 비어가 아니라 오렌지 쥬스를 시키느라 애를 먹었는데, 지금도 그때의 충격은 생생하게 뇌리에 남아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웃고 떠들고 즐겁게 소란을 피우는지 누구라도 그 곳에 함께 앉아 있으면 엔돌핀이 마구마구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라거 비어 가든은 아이들과 여성, 비독일인에게도 열려 있었고, 그 안에서 사회적 계급은 대체로 잊혔다. 포용성은 라거 비어 가든의 좋은 분위기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161)

 

저자는 마지막 3부에서 이들 3의 장소들이 아이들이 같이 참여했는지, 남녀 성별간에는 어떠했는지, 남편들이 태번에 가는 걸 아내들이 좋아했는지, 정치적으로는 어떤 의미가 있어 금지령을 내렸는지 등에 대하여 설명해 준다.

 

그리고 마지막, 이제 개인주의 때문에 사라져버린 3의 장소에 대해 아쉬워 한다. 사람들은 이제 너무 바빠 제3의 장소에 가서 함께 어울릴 수가 없다.

 

많은 사람들은 나에게 제3의 장소가 있다고 해도 즐길 시간이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대다수 사람들은 남는 시간도, 남는 에너지도 없다. (414)

 

자동차는 동네의 개념을 폐지시켜 버렸고 걸어서 돌아다니는 3의 장소는 굳이 필요가 없어져 버렸다. 미국인은 1인당 평균 1.5개의 방을 가지고 있다. 집에 수영장이 있고 당구장이 있고 파티를 열 수 있는 가든이 있으니 더 이상 3의 장소는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이러한 집의 확장은 반드시 누군가를 초대해야 하는 조건을 가진다.

 

도식계획가인 돌로레스 헤이든은 과거에는 이상적인 도시가 미국인의 좋은 삶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는 공간적인 표상이었는데, 이제는 집에 대한 꿈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게 되었다라고 지적한다. (316)

 

나 역시 마찬가지다. 평일에는 도무지 시간을 낼 수가 없다. 가족간에 만나서 대화할 시간을 확보하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래서 생각해보는 것은 토요일과 일요일이다. 마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장소만 확보된다면 옛날처럼 굳이 술이 포함되지 않더라도 일정한 수준으로 3의 장소역할이 가능하도록 시도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마을의 구심점이 있다는 것은 마을 입장에서 매우 큰 경쟁력이 될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까페가 3의 장소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도 생각된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까페는 그 대안이 될 수 없는 것이 우리는 까페에 갈 때 대화 상대와 함께 가야 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말하는, 미국의 태번이나 영국의 펍은 적당한 시간에 그곳에 가면 언제나 동네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그곳에서 그들은 지위와 격식의 겉치레를 모두 벗고 평등한 모습으로 마주 앉아 얘기할 수 있다. 즉 그곳에 가면 대화 상대를 만날 수 있게 된다. 지금의 까페와는 만남의 결이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저자는 말한다. 장소는 힘이 있다고. 최근 부상하고 있는 환경심리학은 그런 면에서 고무적이다.

 

인간의 행동은 그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만 알면 설명할 수 있다.

만일 어떤 사람이 교회에 있다면 그는 교회에 걸맞게 행동할 것이고, 우체국에 있다면 그는 우체국에 걸맞게 행동할것이다. (425)

 

장소와 행동이 주는 함의는 우리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기 때문인데, 경험은 그 경험을 할 만한 장송서 일어나며, 그런 장소가 없다면 경험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특정한 장소는 추억을 저장하게 하고 사람과 사람간의 기억과 장소를 공유하게 한다.

 

특정한 장소는 힘이 있다. 나는 명절만 되면 이제는 팔려 버렸지만 내가 어렸을 때 자라났던 그 집을 찾아간다. 한참을 서서 그 작은 방에서 자라난 어린 시절의 나를 추억한다. 장소는 추억이다. 나를 나로 있게 하는, 존재의 뿌리다. 우리는 어느 날 자신이 추억하던 장소가 사라져 버린 것을 알아차렸을 때 얼마나 큰 상실감을 느끼는지 알고 있다.

 

 

6년간의 집필로 탄생한 3의 장소는 우리에게 장소의 힘을 느끼게 해준다. 특히 삭막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마을 공동체 사람들이 한데 어울릴 수 있는 공동의 장소가 얼마나 중요한지, ‘3의 장소회복이 얼마나 필요한지 알려주는 책이다. 책 읽는 재미와 지적 유희와 사회학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유익한 책이다.

 

행복의 기억은

삶의 공간에서 나온다!

(다른 책, 공간혁명, 광고 카피지만 이 책의 결과에 딱 어울리는 글 같아 살짝 가져와 마무리 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몰 자이언츠가 온다 - 세상을 바꾸는 완전히 다른 패러다임
보 벌링엄 지음, 김주리 옮김 / 넥스트북스 / 2019년 8월
평점 :
절판


작은 기업들의 살 떨리는 생존기.

 

책 제목만 본다면 뭔가 성공한 기업들이, 작지만 탄탄한 기업들이 희부연 흙을 튕겨내며 우두두두 몰려 오는 느낌도 든다. ‘온다몰려 온다로 착각해서 읽은 것일까.

 

이 책은 작은 거인들의 화려한 성공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이 거대 기업 틈바구니에서, 글로벌 경쟁기업들 사이에서 어떻게 망하지 않고 지속적인 생존을 영위해 나가고 있는지를 가감없이 밝히는 치열한 생존기에 가깝다.

 

이 책은 저자의 전작 스몰 자이언츠10주년을 맞아 개정판을 낸 것인데 이름을 바꾸고, 그 뒤 10년간의 변화를 추적해 더 실감나는 책이 되었다. 마지막 챕터 10장은 그렇게 부록처럼 덧붙여진 부분인데 저자는 비즈니스에서 유일하게 변하지 않고 지속되는 속성은 오로지 변화 그 자체뿐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들 가운데 10년 전과 똑같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회사는 단 한 곳도 없으며, 이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418)

 

이 책이 작지만 강한 기업들의 성공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은, 저자가 고심 끝에 선별한 14개 기업 가운데 레엘 프리시전 매뉴팩처링은 간신히 파산을 면했고, ‘리듬 앤 휴스는 파산하고 말았다. 창업자들은 떠나갔고 죽었으며 그렇게 사라진 회사들도 많았다.

 

이 책 이전에도 수많은 책들이 기업의 성공신화를 추적하여 성공의 원리를 찾아내고, 공식을 만들어내고 그것만이 성공의 지름길인 양 초보 기업가들을 현혹했다. 하지만 알다시피 기업이란 인간처럼 살아있고 복잡하여 하나의 이론으로 이끌어갈 수가 없다. 생각지도 못한 무수한 변화와 장애물들이 있다. 회사 대표의 리더십은 물론이고, 초기 자금 부족으로 공동으로 회사를 세운 경우 공동창립자들의 의견 일치, 회사가 커감에 따라 만들어 나가야 하는 조직문화, 세금 문제, 윤리 문제, 의사소통 문제, 이사회, 주주들, 경쟁기업, 인원감축, 급여삭감 등 처리하고 해결하고 풀어나가야 할 문제들은 싱크대를 가득 채운 설거지 그릇들만큼이나 지치게 하는 요인이다. 그렇다고 어느 하나 만만하게 볼 수도 없다. 하나하나의 판단과 결정에 따라 회사의 존망이 왔다갔다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저자가 고심하여 고른 14개 작은, 2명이 전부인 회사부터 1,000이 넘는 규모로 성장한 회사까지 고루 선별한, 기업들에 대한 흥망성쇠, 고군분투를 진지하면서도 적나라하게 다룬다.

 

기업의 목적은 성장과 이윤 추구가 아닌가? 이러한 가장 기본적인 명제부터 의문부호를 붙이고 개별 기업들의 속내를 들여다본다. 어떤 기업은 성장을 목표로 두지 않았다. 앵커 스팀 맥주 회사는 미국 최초로 소규모 앵조장 맥주로 미국 전지약에서 높은 인지도를 얻은 미국 글로벌 맥주 기업이 되었다. 사방에서 맥주 주문이 밀려들었고 이제 고생 끝 행복 시작만 남은 것 같았다. 그러나 창립자 메이태그는 막 찾아온 대규모 거래 제안을 고심 끝에 포기했다. 날마다 찾아오는 도매거래업자들에게 공급을 제한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만약 무리한 성장을 감행했다면, 사업에서 자신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063)

그 회사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옛날 방식으로 힘겹게 소량의 맥주를 만들고 있다. 그 방식으로 만든 맥주가 최고는 아닐지라도 그들은 기계식으로 확장하여 대규모로 전통을 잃기보다는 그 지역에서 내려오던 오래된 방법으로 그들만의 전설을 만들어가고 있다. 아직까지는 망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맥주 맛이 최고라고 자부하고 있다.

 

이 책은 다양한 기업들을 분석하면서 진정 회사의 주인은 누구인지를 묻는다. 외부 자본이 들어오는 순간 기업은 주주들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그래서 여기 작은 기업들은 끝까지 비상장을 지켜나간다고 했다. 적당히 성장했을 때 외부 대기업의 제안으로 자신의 주식을 팔고 넘기면 평생 먹고 살 이윤을 남기며 잘 살 수 있음에도, 여기 기업의 대표들은 끝내 발걸음을 돌린다. 해고 당할 수도 있는 직원들에게 미안하고, 자기의 잇속만 챙기는 것도 같아 미안하고, 회사의 정신이 사라질 것도 같아 미안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에게 굴러들어온 복을 스스로 찼다.

 

작은 기업들의 성공 요인 가운데 하나는 지역사회 속에서의 위치였다. 그들은 글로벌로 나가기보다는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남기를 희망했다. 지역주민들이 기억해주는 기업, 그 속에서 존재감을 나타내는 기업, 그래서 어떤 식당 기업은 파산보호 신청을 하게 되었을 때 지역주민들에게 솔직하게 편지를 보낸다. 우리는 곧 망하게 되었다고, 회사 직원들은 회사의 평판만 나빠지고 더 악화될 것이라고 말렸지만 대표는 더 이상 잃을 것도 없었고, 할 수 있는 것도 없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지역주민들의 신뢰를 느껴보고 싶기도 했다. 편지 이후 식당에는 지역주민들의 예약이 밀려들었고 은행에서도 회생의 기회를 허락했다.

 

14개 기업들이 이렇게 한 순간에 생사를 경험하기도 하지만, 처음에는 모두 성공을 경험한 기업들이었다. 성공의 규모나 속도는 다를지언정 이들은 규모가 커졌고 소비자들로부터 인정을 받았으며, 내부적으로도 결속이 단단해진 기업들이었다. 무엇이 이들을 성공하는 기업으로 만들었을까. 시티스토리지의 일화는 좋은 예가 된다.

 

그들과 저희 사이에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파악하셨나요?”

고객이 대답했다.

. 당신 회사의 직원들은 모두 웃으며 즐겁게 일하더군요. 저에게 밝게 인사도 건넸습니다. 이런 밝은 분위기의 회사는 거의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직원들이 일하는 모습이 하나같이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렇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사실은 그 점 때문에 시티스토리지와 거래하고 싶습니다.” (168)

 

이 부분을 읽을 때 사실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나는 나와 상관없는 다른 고객이 회사를 방문했을 때 나를 찾아온 손님인 것처럼 환하게 웃으며 응대한 적이 있는가를 자문해보았다. 불쾌한 표정을 짓지는 않았지만 환하게 웃으며 맞이한 기억은 별로 없었다. 무관심한 표정을 지었다고 할까.

 

뭐 그까짓 것 가지고, 하며 기업의 성공요소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비현실적이고 추상적인 거 아냐,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저자가 밝힌 일화는 하나의 예시일 뿐이다. 그 속에는 글로 담지 못한 기업의 정신, 직원의 신뢰, 일에 임하는 자세, 삶을 바라보는 가치관 등 다양한 요소들이 숨어있고 이것들이 모두 모여 농축되고 표출될 때 성공이라는 하나의 결과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저자는 말한다.

성공이나 성장은 목표가 아니다. 그것은 결과다.

 

이 책을 처음 접하고는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비윤리적인 기업 행태를 참지 못하고 직접 회사를 차려 고군분투하고 있는 작은 기업인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에게 이 책을 선물하면 좋겠다.

 

마침 초반부에 기업윤리로 고민하는 장면이 나왔다. 엔지니어였던 그는 자신이 의뢰받은 개발제품이 아이들이 보기에 불건전한 곳에 사용될 수 있음을 알고 고민하였다. 수익만을 생각한다면 경영자는 당연히 개발 지시를 내렸겠지만 회사는 이 문제를 다양한 사람들과 토의한 뒤 개발자의 의견을 따라 거래를 취소했다.

 

회사의 지시에 부당함을 느끼고 거부했던 그가 이 책을 읽고 자신의 결정에 대한 부담을 덜고, 이 책에서 세세하게 지적하는 요소들을 공부하듯 기억하면 좋겠다. 죽음이나 질병으로 언제든지 회사를 떠날 수도 있기 때문에 회사의 승계 문제까지도 고민하고 대책을 세우는 모습이 책에 나온다. 참으로 구석구석 짚어주는 책이다. 사람은 영원할 수 없고, 기업도 영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왜 기업을 꾸려나가는지 많은 생각을 하게 하고, 무엇 때문에 성장해야 하는지 깊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기존의 성공신화를 답습하는 책이 아니라, 진짜 기업이란 어떠해야 하는지를 재무의 입장에서, 기획의 입장에서, 리더의 입장에서, 직원의 입장에서, 그리고 소비자와 독자의 입장에서 다양하게 고민하게 하는 훌륭한 책이다. 작은 기업을 운영하는 기업인이라면 한번 읽어보길 권해본다. 회사의 외면 성장은 물론 내면성장, 지속성장에 큰 도움이 되는 책이라 판단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