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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장소 - 작은 카페, 서점, 동네 술집까지 삶을 떠받치는 어울림의 장소를 복원하기
레이 올든버그 지음, 김보영 옮김 / 풀빛 / 2019년 7월
평점 :
내게는 독서하는 내내 책 읽는 맛을 느끼게 해준 책이었다. 지금까지 접해보지 못했던 주제인 ‘제3의 장소’는 처음 책 제목을 접했을 때 가졌던 호기심의 크기만큼이나 책을 읽는 동안 신선하고 큰 즐거움을 안겨 주었다. 한마디로 지적 유희의 극치를 느끼게 해 주었다.
굳이 장르를 학문적으로 접근한다면 도시생태학 정도가 될 듯하다. 저자는 집, 회사를 벗어나는 제3의 장소에 대한 역사적 유래와 현대 사회에서의 필요성까지 다양한 사례를 주제별로 접근하고 있다. 국내 출판사는 책 제목으로 장소의 중요도를 기준으로 ‘제3의 장소’라고 세 번째 계급을 허여했지만 원제는 ‘The Great Good Place’이다. 세 번째 장소가 아니라 ‘대단하고 좋은 곳’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마케팅 측면에서 보면 ‘제3의 장소’가 구독자가 더 늘어날 것 같은 생각은 든다. 명확하게 ‘이게 뭐지?’ 하는 호기심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자극적인 제목이다.
미국의 도시사회학자인 저자 레이 올든버그는 이 책에서 처음으로 ‘제3의 장소’ 라는 용어를 세상에 개념적으로 소개했다. 이 책은 책이 처음 나온 1989년 <뉴욕 타임스 북 리뷰>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우리나라에 이제야 번역이 되다니... 벌써 30년이 지났는데 ㅠㅠ)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분이 있었다. 내년에 작은 교회를 개척하는 목사님이시다. 도시선교를 목표로 준비 중인데, 동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제3의 장소’를 기획한다면 이 책이 어쩌면 영감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 읽었으니 선물로 드리고 싶다. 밑줄을 많이 그어 좀 지저분하겠지만)
‘제3의 장소’를 굳이 우리말로 바꾼다면 ‘사랑방’ 정도가 되지 않을까. 아직 동네라는 개념이 살아있고 동네 안에서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만나 정보를 나누고 하루의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곳.
저자는 1부에서 ‘제3의 장소’가 왜 중요한지, 어떤 특징과 기능이 있는지를 설파한 뒤, 2부에서 지구촌의 역사를 훑어 영국의 펍, 프랑스의 비스트로, 미국의 태번, 독일의 대형 비어 가든, 클래식 커피하우스 등의 변천사를 맛깔나게 재현한다. 학자들일지라도 책을 쓰려면 약간의 이야기꾼이 되어야 한다.
벌써 20년도 더 지난 옛일이지만 독일에 간 적이 있었는데 이 책에서 설명한 대규모 비어 가든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아마도 뮌헨의 호프브로이하우스로 기억하는데 그곳은 화려한 양식의 건물의 위용과 함께 4000여 명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자랑한다. 상공회의소 주관으로 특허 담당자들이 세미나 겸 12박으로 유럽 탐방을 갔었는데, 한국 촌놈인 나는 난생 처음 보는 어마어마한 광경에 입을 쩍 벌린 채 압도당하고 말았다. 물론 술을 마시지 못해 나 홀로 비어가 아니라 오렌지 쥬스를 시키느라 애를 먹었는데, 지금도 그때의 충격은 생생하게 뇌리에 남아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웃고 떠들고 즐겁게 소란을 피우는지 누구라도 그 곳에 함께 앉아 있으면 엔돌핀이 마구마구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라거 비어 가든은 아이들과 여성, 비독일인에게도 열려 있었고, 그 안에서 사회적 계급은 대체로 잊혔다. … 포용성은 라거 비어 가든의 좋은 분위기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161쪽)
저자는 마지막 3부에서 이들 ‘제3의 장소’들이 아이들이 같이 참여했는지, 남녀 성별간에는 어떠했는지, 남편들이 태번에 가는 걸 아내들이 좋아했는지, 정치적으로는 어떤 의미가 있어 금지령을 내렸는지 등에 대하여 설명해 준다.
그리고 마지막, 이제 개인주의 때문에 사라져버린 ‘제3의 장소’에 대해 아쉬워 한다. 사람들은 이제 너무 바빠 제3의 장소에 가서 함께 어울릴 수가 없다.
많은 사람들은 “나에게 제3의 장소가 있다고 해도 즐길 시간이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 대다수 사람들은 남는 시간도, 남는 에너지도 없다. (414쪽)
자동차는 동네의 개념을 폐지시켜 버렸고 걸어서 돌아다니는 ‘제3의 장소’는 굳이 필요가 없어져 버렸다. 미국인은 1인당 평균 1.5개의 방을 가지고 있다. 집에 수영장이 있고 당구장이 있고 파티를 열 수 있는 가든이 있으니 더 이상 ‘제3의 장소’는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이러한 집의 확장은 반드시 누군가를 초대해야 하는 조건을 가진다.
도식계획가인 돌로레스 헤이든은 “과거에는 이상적인 도시가 미국인의 좋은 삶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는 공간적인 표상이었는데, 이제는 집에 대한 꿈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게 되었다”라고 지적한다. (316쪽)
나 역시 마찬가지다. 평일에는 도무지 시간을 낼 수가 없다. 가족간에 만나서 대화할 시간을 확보하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래서 생각해보는 것은 토요일과 일요일이다. 마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장소만 확보된다면 옛날처럼 굳이 술이 포함되지 않더라도 일정한 수준으로 ‘제3의 장소’ 역할이 가능하도록 시도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마을의 구심점이 있다는 것은 마을 입장에서 매우 큰 경쟁력이 될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까페가 ‘제3의 장소’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도 생각된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까페’는 그 대안이 될 수 없는 것이 우리는 까페에 갈 때 대화 상대와 함께 가야 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말하는, 미국의 태번이나 영국의 펍은 적당한 시간에 그곳에 가면 언제나 동네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그곳에서 그들은 지위와 격식의 겉치레를 모두 벗고 평등한 모습으로 마주 앉아 얘기할 수 있다. 즉 그곳에 가면 대화 상대를 만날 수 있게 된다. 지금의 까페와는 만남의 결이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저자는 말한다. 장소는 힘이 있다고. 최근 부상하고 있는 환경심리학은 그런 면에서 고무적이다.
인간의 행동은 그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만 알면 설명할 수 있다.
만일 어떤 사람이 교회에 있다면 그는 “교회에 걸맞게 행동할 것이고, 우체국에 있다면 그는 “우체국에 걸맞게 행동할” 것이다. (425쪽)
장소와 행동이 주는 함의는 우리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기 때문인데, 경험은 그 경험을 할 만한 장송서 일어나며, 그런 장소가 없다면 경험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특정한 장소는 추억을 저장하게 하고 사람과 사람간의 기억과 장소를 공유하게 한다.
특정한 장소는 힘이 있다. 나는 명절만 되면 이제는 팔려 버렸지만 내가 어렸을 때 자라났던 그 집을 찾아간다. 한참을 서서 그 작은 방에서 자라난 어린 시절의 나를 추억한다. 장소는 추억이다. 나를 나로 있게 하는, 존재의 뿌리다. 우리는 어느 날 자신이 추억하던 장소가 사라져 버린 것을 알아차렸을 때 얼마나 큰 상실감을 느끼는지 알고 있다.
6년간의 집필로 탄생한 “제3의 장소”는 우리에게 장소의 힘을 느끼게 해준다. 특히 삭막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마을 공동체 사람들이 한데 어울릴 수 있는 공동의 장소가 얼마나 중요한지, ‘제3의 장소’ 회복이 얼마나 필요한지 알려주는 책이다. 책 읽는 재미와 지적 유희와 사회학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유익한 책이다.
행복의 기억은
삶의 공간에서 나온다!
(다른 책, 공간혁명, 광고 카피지만 이 책의 결과에 딱 어울리는 글 같아 살짝 가져와 마무리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