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완전 - 거룩한 삶을 갈망하는 그리스도인의 신앙고백서
프랑소아 페넬롱 지음, 김창대 옮김 / 브니엘출판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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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소아 페넬롱의 [그리스도인의 완전]

 

어렴풋한 그리스도인의 성화가 구체적인 실체로 다가오는 책.

 

17세기에 활동한 종교인으로 1675년에 서품을 받고 1689년부터 1697년까지 루이 14세의 손자 버건디 공작의 가정교사를 지냈다. 1695년 캄브래의 대주교가 되었으며, 현재까지 전 그리스도인에게 영적인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인 그리스도인의 완전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 불리면서 세상을 살아갈 때, 어떻게 살아야 참 그리스도인이 되는지, 어떻게 성화된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이야기한다.

 

프랑소와 페넬롱은 성화를 크게 네 개 파트로 나누었는데 이를 단계적으로 밟고 올라가는 성화의 단계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첫 번째 성화의 단계는 하나님을 알고 순종하는 삶으로서의 성화이다. 두 번째 성화의 단계는 십자가의 능력과 말씀을 체험하는 삶으로서의 성화이다. 십자가의 능력과 말씀을 체험하고 나면 세 번째 단계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삶으로서의 성화를 실천할 수 있다. 그리고 날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삶을 살게 되면 더욱 자기를 내려놓는 성화의 삶으로 다가갈 수 있게 된다.

 

프랑소와 페넬롱이 책을 통해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부분은 자기부정이다. 책을 다 읽고 느낀 점은 프랑소와 페넬롱이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자기부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성화는 어느 계단에서 더 이상 올라오지 못하고 멈춰버릴 것이라는 것이다.

 

자기부정자아에 대한 완전한 버림을 뜻한다. 그는 파트3의 네 번째 꼭지에서 단순함에 대하여 이야기하는데, 성경에서 어린아이와 같이 되라는 말씀으로 그간 내가 가지고 있던 성화의 개념을 모두 무너뜨렸다. 어린아이와 같이 된다는 것은, 자아를 완전히 없애는 것이다. 어린아이는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부모의 품 안에서만 완성된다.

 

사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이 기준을 처음 읽었을 땐, 모든 사리분별을 할 수 있고 다 큰 자녀를 둔 성인으로서, 거의 50년 가까이 오랜 기간 신앙생활을 해 온 내 영적 자존심을 가진 자로서 백 퍼센트 수용하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겉으로는 수용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그래도 그럴 순 없지, 라는 영적 교만함이 머리를 들었다.

 

하지만, 책을 점점 읽어가면서, 나는 내 모든 것을 내려놓는 연습을, 날마다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을 소유해야 함을, 그것만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올바른 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소유함에 있어서, 오직 아버지만 믿고 따르는 어린아이여야 함에도 내 것을 너무 많이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다.

 

쉽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다시 한번 책을 더 읽으면서, 교만한 내 자아를 낮추고 없애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서문에서 이 책을 성경처럼 읽어야 한다고 말했던 이유를 책을 펼쳐 첫 장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깨달았다. 내 모든 것을 무너뜨릴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책이다. 래디컬이 현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의 실천을 강하게 요구하는 책이라면, 그리스도인의 완전은 현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영적인 실천을 완성시켜 주는 책이다. 그것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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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만 헤어져요 - 이혼 변호사 최변 일기
최유나 지음, 김현원 그림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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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전문변호사 최유나의 우리 이만 헤어져요



 

그녀는 대한변호사협회의 전문분야 등록증을 받은 이혼전문그리고 가사법전문변호사이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겠지만 그녀는 이 타이틀을 얻기까지 꽤 고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그녀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다.



 

우리 이만 헤어져요.”

매우 위험한 제목이다. 이 대화를 하는 사람이 그냥 연인 사이가 아니라 부부라면 말이다. 부부 사이라면 홧김에 결코 꺼내서는 안 되는 말이다. 이 말은 이제 진짜 당신과 사는 것이 힘들다. 이혼하자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

 

시저가 루비콘 강을 건너는 것처럼,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한 것처럼, 부부라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한 마디 말이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독서모임을 운영하고 있는데, 지난 모임에서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올해 초에 결혼한 남자 직원이 아직 미혼인 다른 직원에게 절대로 결혼하지 마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아직 1년도 안 지난 신혼이면 깨가 쏟아져도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우수수 떨어질 때인데, 벌써 결혼반대론자로 돌아서다니. 그에게 신혼 6개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책을 읽다 보면 조금은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장면들이 나온다. 저자는 책에서 우리나라는 명절이 끝난 뒤 유난히 이혼 상담이 많다고 했다. 명절 뒤 이혼소송이 많다는 말은 그저 지나가는 우스개 소리처럼, 카더라 통신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회사 직원도 얼마 전 추석 명절을 치르고 난 뒤 두 사람만의 결혼이 아니라 두 가족간의 결혼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체험한 것처럼 보였다.

 

20198월에 초판 1쇄를 찍은 뒤 20일 만에 3쇄를 찍은 이 책은 이미 인터넷에서 메리지 레드(marriage red)라는 신조어를 만들고 공감웹툰으로 16만 명의 독자를 가지고 있던 어마무시한 책이었다. 절반은 김현원 그림의 웹툰으로 절반은 최변호사의 에세이로 꾸며져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인간세상 상황이 주는 안타까움과 저자의 개인적 이야기가 버무려지면서 슬프지만 희망을 보게 하는 책으로 탄생하였다. 친구 결혼식에 화환을 보냈더니 이혼전문 변호사타이틀이 리본에 커다랗게 박힌 꽃이 배달되어 친구의 결혼식을 망쳤다거나, 결혼도 안 해본 변호사가 어떻게 이혼자의 마음을 헤아리며 변호를 할 수 있냐며 타박을 들은 이야기들은 약방에 감초처럼 책 읽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그녀는 상담하기를 좋아해 변호사가 되었다고 하는데,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을 쓰는 나도, 오래 전 일이지만, 2년 가량 가정상담센터를 운영한 적이 있었다. 그때 참 많은 상담을 했는데 오전에 한 건, 오후에 두 건 상담을 하고 나면 온 몸에 진이 다 빠져버려 개인적인 일은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상담은 그만큼 영적인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이었다. 책에서 저자가 밝히기도 했지만, 이혼 하기 전 확실하게 결정하지 못하고 갈등이 있을 때 가보라고 조언하는 그 상담소였다. 외도 상담, 의처증/의부증 상담, 가정폭력 상담 등을 했는데 정말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 책을 읽다보면 부부들이 힘들어하는 갈등의 원인이 얼마나 다양한지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다양함만큼이나 서로의 생각이 다름 또한 알 수 있다. 결혼을 하고 나서도 여전히 양가 부모이나, 양가 가족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하고 갈등을 촉발하는 요인이 되어 결국 이혼하게 되는 사례들은 한국이라는 특수성을 생각해도 많이 안타까웠다.

 

이혼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던 그녀도 정작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다보니 양육 문제에 있어 잘 도와주지 않는 남편과의 갈등도 생기고 아이와의 실랑이에 육체적 힘듦을 어찌 할 수 없었나보다. 그래서 그녀도 결혼하지 않은 후배를 만난 자리에서 결혼 하지 마라고 폭탄 발언을 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 말은 해석이 필요하다. 직설적으로 받아들이는 문장이 아니라 은유적인 표현으로 약간의 해석이 필요한 말이다. 저자가 해준 해석은 이랬다.

 

결혼한 이들의 결혼하지 말라는 말은, 결혼하면 불행해질 거라는 뜻이 아니다. 혼자일 때보다 훨씬 더 행복해질 수 있지만, 그 행복을 얻으려면 상상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 그러니까, ‘각오하라는 말 아닐까. (313)



 

30년 이상 따로 살아온 두 사람이 하나로 합쳐져 살아가는데 서로의 가치관이 다르고 살아온 문화와 환경이 다르니 이를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결혼 전에는 몰랐던 많은 성격들이 드러날 것이다. 부부는 이때 상대를 향해 비난하고 자신과 다름을 틀리다고 지적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한 걸음의 양보와 배려를 시도해야 한다. 그래서 어렵고 힘들다. 부부는 서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주고 채워주는 사람이다. 내가 채워주는 능동체가 먼저 되어야 한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앞으로 결혼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보다 실체적으로 이해하는 책이 될 것이다. 이미 결혼한 사람이라면, 그리고 약간의 갈등이 있는 부부라면 이 책을 읽으며 좀 더 많은 사색과 대화를 통해 긴장과 갈등이 더 커지기 전에 이를 풀어내야 할 것이다.

 

간만에 좋은 책을 만났다. 저자의 따스함. 가정 그리고 각 의뢰인에 대한 애정이 곳곳에 묻어난다. 이 땅에 더 이상 힘들어하는 부부가 없었으면 좋겠다.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는 아름다운 부부가 되었으면 좋겠다. 자녀는 부모를 보고 자라 다시 부모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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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는 질문, 사는 대답 - 사명자를 향한 열여덟 가지 질문
황덕영 지음 / 두란노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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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은 자녀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우리 부모처럼 학교에서 뭘 배웠니?’가 아니라 학교에서 뭘 질문했니?’라고 물어본다고 한다. 하부르타 교육방식이라고도 알려진 유대인 교육은 질문과 토론으로 이루어진다. 유대인 도서관엘 가면 삼삼오오 모여 토론하느라 시장통처럼 떠들썩하다. 우리나라처럼 떠든다고 해서 쫓겨나지 않는다. 이집트를 탈출한 날을 기념하는 유월절이 되면 아이들은 가족의 최고 어른에게 반드시 왜 이 날은 누룩 없는 빵을 먹어야 하는지질문하는 절차가 있다. 질문은 유대인이 유대인이 되도록 하는 힘의 원천 중 하나이다.

 

저자인 황덕영 목사님은 소명과 비전에 관한 책을 다수 집필한 소명 전문가다. 이땅에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를 삶의 한복판에서 어떻게 체험해야 하는지, 우리의 가정, 직장, 삶의 현장에서 어떻게 구현되어야 하는지 고민하면서 사명자를 향한 하나님의 질문 열여덟 개를 간추렸다.

 

질문은 크게 1부와 2부로 나뉘어지는데, 1부 질문은 여덟 개의 질문으로 먼저 성도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질문이 담겨 있다. 우리는 사명자 이전에 모두 성도이기 때문에 성도로 부르신 그 질문에 먼저 답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래야 사명자의 관계로 넘어갈 수 있다. 2부 질문은 나머지 열 개로 사명자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질문을 담고 있다.

 

지금까지 많은 기독교 서적을 읽어보았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을 기초적 신앙의 토대로 정리한 책은 처음이었다. 그만큼 질문이 내게 던지는 무게와 의미는 매우 컸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구체적으로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심각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성경말씀을 읽으면서, 큐티를 하면서 간헐적으로 하나님과의 교제는 있었지만 저자가 정리한 열여덟 개의 심오하면서도 매우 직설적인 이 질문들을 거울처럼 마주한 적은 없었다.

 

질문은 하나님이 던지지만, 나는 책을 읽으며 내 거울 앞에 서 있는 느낌을 받았다. 동화 백설공주에서는 왕비가 날마다 거울 앞에 서서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라고 묻는다. 이런 질문은 제자들이 천국에서는 누가 가장 크니이까라고 묻는 것과 같다. 질문의 내용이 욕망과 탐심의 덩어리로 포장되어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창조 시절부터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뒤 다시 승천하시기 전까지 우리에게 성도로서, 또 사명자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

는지를 질문으로 이미 답을 구해 놓으셨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거울 앞에 서야만 한다.

하나님이 인류 조상 아담에게 던진 첫 질문은 바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과 같다.

 

네가 어디 있느냐

 

우리는 날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삶의 현장에서 이 질문을 생각하며 생활해야 한다. 그것이 성도된 자로서의 첫 번째 의무요 책임이다. 첫 거울이다.

 

저자는 말한다. “네가 어디 있느냐는 질문은 바로 너는 누구냐하는 정체성의 질문이라고. ‘어디는 장소에 대한 표현이지만, 장소가 바로 네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를 묻는 관계의 질문이요, 가치관의 질문이고, 세계관의 질문이다.

 

이렇게 창세기의 첫 질문에서 출발한 하나님의 질문은 야고보서, 마가복음, 민수기, 요한복음, 출애굽기, 사사기, 시편 등 성경 전반을 훑으며 우리에게 다가오신다.

 

네가 어디 있느냐로 시작한 질문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로 마감한다. 마침 이 부분을 읽을 때 주일 설교가 바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였다. 저자는 이 질문에 하나님의 두 가지 메시지가 있다고 한다. 첫째는 주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이고, 둘째는 주님의 사랑을 경험한 우리는 이제 주님의 사랑에 반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잡혀 돌아가시던 날,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는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을 세 번이나 듣게 된다. 그리고 그 이후 그는 죽음을 불사하는 사명자가 된다. 죽음이 두려워 예수님을 모른다고 대답했던 그가 이제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제자가 되었다. 참 제자가 된 것이다.

 

예수님의 질문 앞에 우리는 대답을 해야 한다. 베드로가 세 번의 질문에 세 번의 답을 한 것처럼, 우리도 이 질문 앞에서 자신만의 대답을 해야 한다. 그 대답이 우리를 살릴 것이다. 우리를 진짜 사명자로 만들어줄 것이다.

 

책을 읽으며, 하나님의 열여덟 개 질문을 하나하나 받으며, 내 모습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 ‘두려움을 이기는 사랑예수님의 사랑이 있어야 우리는 두려움을 이기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네가 있는 바로 이곳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다.

 

내년에는 작은 교회를 섬기게 될 것 같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네가 어디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될 수도 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묻는 예수님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한편에는 두려움의 마음도 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마지막 질문을 생각하며, 두려움을 이기는 주님의 사랑으로, 나를 다시 거울 앞에 세워 본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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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에 읽는 서양철학 - 쉽게 읽고 깊게 사유하는 지혜로운 시간 하룻밤 시리즈
토마스 아키나리 지음, 오근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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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을 하룻밤에 읽다니 그게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 시간적인 요인은 그렇다 쳐도 과연 그 방대한 서양철학을 하룻밤에 읽어버리면 수많은 철학자들에게 미안하지는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이런 종류의 책을 선호하지 않는다. 적당히 짜깁기해서 만들어 놓은 기획도서라는 생각이 들고, 지금까지 그런 책들로 인해 약간의 피해망상증 비슷한 것도 생긴 터였다.

 

고백한다면 나는 대학시절 동양철학 개론과목에서 A+를 받았다. 당시 나는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있던 공학도였고, 누군가에게는 필수과목으로 누군가에게는 교양과목으로 신청한 동양철학은 수강자가 200명이 넘어 대강당에서 수업을 해야만 했다. 교수님은 A+은 딱 세 명에게만 준다고 공포를 했다. 200명 중 공대에서 수강신청을 한 학생은 단 세 명이라고 했다.

 

나는 그 수업을 들으며 다시 뼈저리게 느꼈다. 나는 문과생인데 어쩌자고 기계공학을 공부하고 있을까. 하지만 내게 그 수업은 너무 재미있었다. 그 수업시간이 기다려질 정도였다. 물론 지금은 그때 공부한 내용을 거의 다 잊었지만 내게 철학자의 피가 흐르고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서양철학에 대한 관심 역시 지대한데, 삶의 궤적이 어쩔 수 없이 전공에 맞춘 기계쟁이 쪽이다 보니 철학이니 하는 쪽에 큰 관심을 쏟고 깊이 있게 들어갈 수가 없었다. 소크라테스의 대화나 데카르트의 존재론 따위를 주섬주섬 과자 먹듯 몇 개 집어먹은 수준을 넘어설 수가 없었다. 한 명씩 깊이 들어가려면 일단 서양철학의 계보가 어떻게 되고, 어떤 사람들이 왜, 어떤 이유로 자신의 사상을 주장했는지 거시적으로 알아보는 시간이 있어야 했다.

 

하룻밤에 읽는 서양철학은 결코 하룻밤에 읽을 수 없는 방대한 양을 담고 있지만, 제목을 보면서 일단 책을 펴들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게 된다. 부제로 적힌 쉽게 읽고 깊게 사유한다는 글귀는 뭔가 살짝 낚이고 있다는 의심을 가지게 하지만, 깊게 생각하지 않는 독자들은 무심히 넘길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하지만 이 부제목 쉽게 읽고 깊게 사유한다는 말은 쉽게 읽고 쉽게 넘겨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 책은 진짜 쉽게 읽을 수 있지만, 반드시 깊게 사유하는 과정을 통해서만 자기 것으로 치환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 나 책 한 권 읽었어. 하는 자기 만족 수준을 벗어날 수가 없을 것이다.

 

저자는 일본 사람이다. 학교 홈페이지에서 행동하는 지성이라고 소개하고 있는, 주오(中央)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고, 조치대학에서 신학부를 졸업했다. 그런 때문인지 저자의 19개 철학 사조는 큰 틀에서 보면 을 찾아가는 여정처럼 보인다. 독자에 따라 다르겠지만 중반부까지 철학자들은 내내 이 문제를 안고 씨름하고 있다.

 

1사색하는 사람들의 기원이라는 제목에서 소크라테스, 플라톤, 예수 그리스도, 바울, 아우구스티누스, 토마스 아퀴나스를 다루고, 2장은 신을 파헤치는 사람들이란 제목으로 데카르트, 스피노자, 로크, 버클리, , 칸트, 헤겔을 다룬다. 3장부터는 현대 사상으로 넘어와 인간에게 존재를 묻다란 제목으로 키르케고르, 니체, 프로이트, 후설, 하이데거, 샤르트르, 메를로퐁티, 비트겐슈타인, 소쉬르, 레비스트로스, 마르크스, 알튀세르, 데리다, 들뢰즈, 제임스, 듀이, 로티를 설명하며 마친다. 그러니까 중세 철학부터 시작하여 마지막 미국의 실용주의까지 19개 영역에서 30명의 철학자 이론을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깊이 있는 책이 아니다. 서양철학을 처음 입문하려는 사람에게 철학의 맛을 보여주는 마중물 책이다. 철학이라고 하면 매우 난해한 이론들이 독서의 몰입을 방해할 수 있는데, 저자 토마스 아키나리는 지금까지 다양한 대중 철학서적을 집필한 경험으로 매우 이해하기 쉽게 철학자들의 이론을 설명해준다. 이 책의 장점이라고 꼽을 수 있는 데. 저자는 하나의 이론에 대해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현대적인 상황에서 이를 설명한다. 그 의지가 대단하고 서양철학을 처음 접하는 입장에서는 매우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유념해야 할 점은 각 철학자와 이론이 매우 간단하게 서술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생각했던 것보다는 짧게 기술되어 있어 그 부분이 장점이 되거나 단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책 분량이 300쪽을 넘기고 있는데, 더 자세히 하면 아무도 책을 사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관심이 가는 철학 사상이나 철학자를 발견했다면 이 책을 마중물 삼아 그 분야로 집중해서 다른 책을 찾아 가는 철학적 여정을 떠나기 바란다. 이 책으로 서양철학을 다 공부했다고 떠벌리고 다니지 않길 바란다. 이 책을 읽다보니 내가 모르던 생소한 철학자들도 만날 수 있었다. 저자가 최대한 쉽게 설명해주었지만 짧은 내 지식과 이해력으로는 그 설명을 다 받아들이지 못한 부분도 있었다.

 

특히 푸코, 라캉, 들뢰즈 철학자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커졌고 피라노, 스키조 같은 용어는 아직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소개한 미국의 실용주의는 기본 개념은 이해했는데, 퍼스의 프래그머티즘과 긍정심리학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도 알아보고 싶다.

 

역시 책은 모두 마중물이다. 길처럼 끝없이 이어진다.

지식이 날마다 새롭다면, 날마다 하룻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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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파는 상점 2 : 너를 위한 시간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75
김선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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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사고 파는 게 과연 가능할까?

무슨 SF 영화에나 나옴직한 시간을 축으로 하는 그런 스토리는 아니다. 과거로 떠나고 미래로 떠나는 그런 이야기는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오롯이 우리가 속한 현실세계에서 벌어지는 사회적 담론을 담고 있다.

 

7년 전이긴 하지만 김선영 작가의 전작 시간을 파는 상점을 워낙 재미있게, 강렬하게 읽었던지라 지금도 서재에는 그 책이 고요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이번에 7년의 세월, 61320시간이 흐른 뒤에 같은 작가의 2집이 나왔다. 이 책을 선택하는 데 망설임이 있을 수 없다.

 

시간을 판다는 개념은 이런 것이다. 자신이 해결하지 못한 어떤 문제를 주인공 백온조가 운영하는 사이트 시간을 파는 상점에 의뢰한다. 그러면 그 문제에 해당하는 몇 시간을 빌려오는 것인데, 나중에 타인의 요청에 자신이 참여할 수 있으면 거기에 참여함으로써 자신이 빌려온 시간을 되갚을 수 있다.

 

책을 읽다보면 자연히 미하일 엔데의 소설 모모가 떠오르는데 어떻게 보면 시간을 모으고 축적하는 기본개념을 차용한 것처럼 보인다.

 

자신의 시간을 가지고 무엇을 하느냐는 문제는 전적으로 스스로 결정해야 할 문제니까. 또 자기 시간을 지키는 것도 사람들 몫이지. 나는 사람들에게 시간을 나누어 줄 뿐이다.” (모모, 249)

 

시간을 파는 상점전편이 시간의 개념과 상점의 개념에 좀더 치중한 작품이란면 이번 2집은 시간을 파는 개념에 대한 이론이 어느 정도 튼튼하게 구축된 뒤에 작업할 수 있는 사회적 문제에 눈을 돌렸다. 그래서 시간을 파는 상점2는 보다 사회파 소설에 가깝게 다가가 있다.

 

작가는 고양국제고등학교 학생들이 보안관 해고 철회 시위를 통해 복직 결정을 이끌어 냄으로써, 같은 처지에 있던 학교의 비정규직 수백 명의 자리를 지켜냈다는 기사를 읽고 소설의 뼈대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시간을 파는 상점2는 학교 지킴이 아저씨의 해고를 철회하고 복직시키기 위한 시위로 시작한다. 시간을 파는 상점은 배경으로 남고, 새롭게 운영자로 올라온 난주, 혜지, 이현과 졸업생 강준이 시위에 참여하면서 이성간의 삼각관계도 살짝 포함된다. 독자층이 청소년인 것을 생각해서인지 이러한 썸타는 이야기가 약간의 재미를 더할 수 있고 현실적인 연결고리가 될 수는 있으나, 이러한 관계로 인해 진행하던 문제에 차질을 일으키는 스토리는 다소 매끄럽지 못한 느낌이 들었다.

 

온조의 엄마가 벌이는 두꺼비 산란장인 방죽 살리기와 새롭게 상점에 의뢰된 숲속의 비단은 또 다른 이야기의 축을 담당한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너무 많은 이야기가 섞이면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무엇인지, 혼란이 생기는 느낌은 어쩔 수가 없다.

 

이현은 숲속의 비단사건을 풀기 위해 찾아간 곳에서 존엄한 죽음을 선택하려는 아저씨의 부탁을 받으면서 삶에 대한 시선을 새롭게 한다. 바로 아저씨가 이현에게 질문처럼 던진 살아 있는 것살아가는 것에 대한 철학적 통찰이다.

 

살아 있는 것살아가는 것에 대한 통찰은 학교 지킴이 아저씨의 복직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행동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한다. 단지 살아만 있는 학생이 아니라, 건강하고 당당하게 살아가는학생들이 되려고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다.

 

시간을 파는 상점2는 전편에 비해 더욱 성숙한 학생들이 나온다. 사회적 문제에 보다 깊숙이 관여하면서 어른이 저지른 부당한 잘못을 청소년들이 바로 잡는 쾌거를 이룬다. 하지만 그들이 이룬 성과는 수많은 모래알 가운데 하나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모래 해변에 올라온 수많은 불가사 중 하나를 겨우 바다에 다시 던져준 것과 같다. 모든 불가사리를 다 살려줄 순 없을지라도 그 한 마리에게는 생명을 다시 살려준 것이기 때문에 그 일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어쩌면 그 행동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여 불가사리를 바다에 던져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 너희들은 해냈잖아. 그리고 너희들의 행동이 앞으로 많은 파급력을 낳을 거야. 세상은 그렇게 더 좋아지기도 더 나빠지기고 하는 것 같아. 나빠지는 속도는 무척 빠른데 한번 나빠진 것을 되돌리는 것은 더디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고 그래. 그런 세상에 점을 찍는 일이 될지라도 누군가는 해야 나빠지는 속도를 늦출 수 있지 않겠어? 어른들이 부끄럽다는 생각을 하게 했으니 그것만으로도 큰 일을 한 거야.” (193)

 

인간은 한 번 태어나면 반드시 죽는다. 그래서 시간의 유한성을 안고 있다. 그 유한성의 시간을 어떻게, 어디에 쓸 것인가는 자신에게 속해 있다. 우리는 대부분 늘 바빠서 어딘가 다른 사람의 일에 시간을 내지 못한다. 그런데 정말 바쁜 것일까? 저자는 책에서 주인공들의 대화를 통해 말한다.

 

그러니까, 시간을 내고 안 내고는 마음에 달려 있는 거란 얘기지.”

오올~ 그러니까, 시간이 없다고 하는 건 마음이 없다는 말과 같은 거네.” (120)

 

시간은 돈이 아니라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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