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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상학적 동물들 - 폐허 위에서 다시 인간을 불러낸 네 철학자의 기록
클레어 맥 쿠얼.레이철 와이즈먼 지음, 이다희 옮김 / 바다출판사 / 2025년 11월
평점 :
이 책을 읽는 동안 ‘형이상학’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았다.
형이상학적이다라는 말은
겉으로 드러난 현상이나 사실을 넘어, 그 근본이 되는 구조·의미·존재 조건을 묻는 태도를 뜻한다.
전쟁, 생존, 책임, 그리고 끝까지 남는 감정들. 그건 최근에 읽은 박완서 작가의 소설들, 《나목》과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에서 계속 마주했던 세계이기도 했다.
《형이상학적 동물들》은 전쟁 이후 철학이 어디에서 다시 시작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철학사에서는 한때 형이상학이 끝났다고 했다. 증명할 수 없는 말, 쓸모없는 질문이라는 이유였다. 철학서를 읽으면서 종종 같은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그래서. 이것이 지금 삶에 얼마나 현실적으로 도움이 될까는 그런 생각들말이다.
전쟁중에는 더 하리다.
전쟁은 그 판단을 무너뜨렸다. 아우슈비츠와 히로시마 이후에도 “중립적인 언어”와 “명확한 논리”만으로 인간을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하는 태도는, 오히려 현실을 외면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책에 등장하는 네 명의 여성 철학자들은 바로 그 지점에서 멈춰 서서 다시 묻는다. 무엇이 옳은가 이전에,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무엇을 못 본 척하고 있는가. 이 질문은 놀랍게도 《나목》의 화자가 느끼는 혼란과 닮아 있다. 예술이 중요한지, 살아남는 것이 중요한지, 아니면 그 둘 사이 어딘가가 있는지. 판단은 늘 뒤로 밀리고, 현실은 먼저 몸으로 와 닿는다.
박완서의 소설 속 전쟁은 언제나 개인의 삶 한가운데에 있다. 거대한 역사보다,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사람의 마음에 더 가까이 있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를 읽을 때도 그랬다. 분명 있었던 전쟁과 풍경이 시간이 지나며 기억 속에서 흔들린다. 흐릿해졌다고 해서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애매함 속에서 더 오래 남는다.
이 책이 말하는 형이상학도 그런 느낌이다. 한때 “의미 없다”고 밀려났지만, 인간이 겪은 일이 너무 컸기 때문에 다시 불려 나올 수밖에 없었던 질문들이 있다. 선과 악, 책임, 의도, 타인을 바라보는 태도 같은 것들이다. 네 명의 철학자는 거창한 이론을 세우기보다, 인간이 어떤 존재로 살아가고 싶은지를 끈질기게 질문한다.
철학은 강의실에서만 만들어지지 않았다. 부엌에서, 산책길에서, 서로의 집을 오가며 나눈 대화 속에서 자랐다. 아이를 돌보고, 관계를 유지하고, 일상을 살아내면서 철학을 했다는 점은 박완서 소설 속 여성들의 삶과도 겹쳐 보인다.
AI와 기술의 시대를 사는 지금, 이 책은 묘하게 현재적이다. 우리는 점점 더 빠른 판단에 익숙해지고, 효율과 공정성이라는 말로 많은 것을 정리한다. 이 책은 묻는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철학과 소설은 방식이 다르다. 철학은 개념으로 묻고, 소설은 장면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느낀 건, 결국 둘이 같은 일을 하고 있다. 전쟁 이후에도 우리는 어떻게 인간으로 남을 것인가.
형이상학은 끝난 게 아니라, 이름만 바뀐 채 계속 우리 곁에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박완서의 문장 속에도, 이 네 여성 철학자의 사유 속에도. 이 책은 철학이 여전히 필요하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려준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언제나 아주 사적인 삶의 장면이라는 것도 함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