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의 성 스토리콜렉터 51
혼다 테쓰야 지음, 김윤수 옮김 / 북로드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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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솔직해지자면 이 책이 정말 읽고 싶지 않았다.

대학교 3학년 때인가, 학관 서점에서 신간 코너를 둘러보다가 책 한 권을 들고 자리에 앉았다. 등받이도 없는 간이의자에 앉아 그 소설을 다 읽고 일어나면서 헛구역질을 했다. 그게 혼다 테쓰야의 '스트로베리 나이츠'였다. 집에 와서 그 얘기를 하니 엄마가 그런 책을 왜 읽었냐고 타박했다. 나도 그게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마 이건 다 꿈이라거나, 실제로는 누구도 죽지 않았다는 비현실적이지만 희망적인 결론을 기대하고 끝까지 읽어냈는지도 모른다.

그 이후로 혼다 테쓰야의 책은 단 한번도 읽지 않았다. 추리나 미스터리, 공포라고 분류할 수 없는 장르였다. 이건 정말 잔인했다. 신체적으로도 그랬고 정신적으로도 그랬다. 범행을 건조하고도 세밀하게 묘사하는 그 문체에는 속을 뒤집는 힘이 있었다. 사람을 그냥 죽여도 충분히 나쁜 일인데 혼다 테쓰야의 소설에는 언제나 고문이 뒤따랐다. 읽어가면서도 차라리 저 사람을 죽여주었으면, 하게 되는 행위들이었다. 그건 정말이지 내 취향이 아니었다.

떨떠름한 마음으로 집어든 '짐승의 성'은 '스트로베리 나이츠'보다 심했다. 처참한 몰골로 길거리에서 경찰에 구조 요청을 한 여고생, 마야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 사건은 처음에는 여고생을 감금하여 학대한 것으로만 보인다. 그런데 마야가 이야기한 감금 장소를 찾아가니 그 곳에 있는 여성의 몰골은 마야보다 더하면 더했지 나아보이지는 않는다. 그렇게 경찰에 구류되어 심문을 받는 마야와 아쓰코, 두 여자의 입에서 나온 고백은 단숨에 이 사건을 아동학대에서 살인으로 뒤바꾼다. 사라진 마야의 아버지, 그가 죽기 얼마 전 보였던 이상한 행동, 두 여자가 일관되게 이야기하는 범죄의 정점에 있는 한 남자. 그렇게 수사는 시작되고 증거가 점점 모여갈 무렵, 범죄현장으로 생각되는 선코트마치다 맨션 403호의 욕실에서 DNA가 다섯 명이나 발견된다. 그리고 그 중 네 명은 혈연관계로 추정된다.

아동학대로부터 출발하여 파고들기 시작한 이 사건은 상상 이상의 끔찍한 전말을 드러낸다. '요시오'라고 불리운 남자는 처음 '아쓰코'를 꾀어내었고, 신체적 학대와 정신적 지배를 통해 완전히 자기 마음대로 다루게 된다. 그리고 그런 요시오의 지배 아래 아쓰코(후에 본명은 유키에로 밝혀진다)는 새로운 피해자를 물색하고, 그 피해자의 학대와 고문에 앞장서게 된다. 상상 이상의 고문을 통해 그들은 차츰 피해자들 역시 완전한 지배 상태에 두어 착취하고, 학대하며, 끝내 죽음에 이르게 한다. 그렇게 선코트마치다에서 5명이 죽는다. 아니, 어쩌면 6명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중 4명은 아쓰코의 친가족이다. 그녀가 자기 손으로 이 일에 끌어들인, 그녀의 가족들인 것이다.

심문을 받는 아쓰코의 입을 통해 알려진 상세한 고문내용은 역겨웠다. 몇 번이나 내가 이걸 왜 읽고 있나, 하는 회의가 들 정도였다. 이런 건 알고 싶지 않았고, 상상 같은 건 더더욱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읽어낸 건 리뷰 때문이기도 했지만 분명 이런 일이 어디선가는 실제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었다. '짐승의 성'은 실화에 바탕을 둔 소설이다. 키타큐슈 감금 살인사건, 1996년에서 1998년 사이 7명이 잔인하게 살해당한 일본 역사상 가장 끔찍한 사건이다. 누군가는 실제로 사람이 겪어서는 안 될 것 같은 일을 겪고 있다면, 그렇다면 누군가는 그에 대해 글을 써야 하고, 누군가는 그걸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마음으로 이 책을 읽었다. 즐겁고 흥미진진해서라기보다는, 그 낯을 보지 못한 어떤 어둠에 대한 부채를 나눠가진다는 기분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반복적으로 스쳤던 의문은 왜, 하는 거였다. 왜 이 사람들은 도망치지 않는가. 아니, 애초에 실질적 가해자는 1명에 피해자는 이토록 많은데다 피해자들은 모두 한 가족인데 왜 맞서지 못하는가. 어떤 선택을 해도 저것보다는 나을텐데, 저들이 당하는 저 짐승만도 못한 고문보다는 나아질텐데. 실제 사건이 세간에 알려졌을 때도 그것이 많은 사람들이 보인 반응이었다 한다. 왜 이들은 그 오랜 시간 복종하며 서로를 죽음으로 몰고 갔는가. '짐승의 성'에서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들은 이에 대해 '학습된 무기력 이론'을 제시하기도 한다. 어떤 행동을 해도 끊임없이 신체적 고통과 좌절에 부딪힌 개체는 결국 모든 의미 있는 행동을 포기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사 과정에서 드러나는, 이 사건의 심리적 본질은 조금 더 복잡하다. '요시오'는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였다. 그에게는 타인의 아픔에 대한 공감도, 일말의 사회적 양심도 없었다. 그는 타인의 고통을 즐겼고 그를 위해 기꺼이 약점을 파고들며 쥐고 흔들었다. 그리고 피해자들은 속절없이 흔들렸다. 사소한 약점을 잡혀 당황했고 당황한 상태에서 '요시오'의 요구대로 각서를 쓰고 돈을 냈다. 그걸 빌미로 더 약점을 잡혀 나중에는 고문마저 받아들였다. 자신에게서 그치지 않고 가족을 끌어들였다. 가족이 엮인 순간 '요시오'는 이간질을 시작했다. 가족 내에 서열을 만들고 가장 아래 서열의 사람이 가장 심한 고문을 당하도록 함으로써 가족끼리 어떻게든 서로를 밟고 올라가게 만들었다. 아쓰코의 언니는 자기 딸을 지키기 위해 거리낌 없이 부모에게 전기 고문을 가했다. '요시오'는 그런 마음을 이용했다.

책을 덮고 오래 마음에 남았던 생각 두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수사 중간에 형사 두 명이 가졌던 불길한 의문이었다. 과연 마야가 도움을 청한 게 이번이 처음이었을까. 이전에도 수상한 장면을 목격한 이웃의 신고가 있었다면, 피해자 중 누군가가 탈출하여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었다면, 그런데 경찰이 어떤 이유로든 그걸 묵살했다면. 이 끔찍한 사건을 막을 수 있었던 소위 '골든타임'을 경찰이 놓친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그들을 감쌀 때 나 역시 서늘한 한기에 어깨를 떨었다. 선코트마치다 403호에서 5명이 죽는 동안, 그리고 그보다 많은 사람이 고문당하는 동안 이웃의 누구도 그걸 알아채지 못했다. 이상한 점이 분명 있었을텐데, 엘리베이터를 탄 여자의 짓무른 손, 수상한 비닐봉지, 한밤중의 쿵 소리. 누군가 한 명만이라도 관심을 가졌다면, 이상하게 여겼더라면, 조금만 오지랖을 부려 경찰을 불렀다면. 나는 그게 소설 속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아서 괜시리 울고 싶었다. 내 주변의 누군가를 나는 구할 수 있을까, 하는 참담한 불안감이었다. 두번째는 소설 속에서 사부로가 고백하는, '사람으로 둔갑했을 뿐' '속은 짐승'인 범죄자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소설 속 '요시오'는 실존인물이었다. 실제로 그렇게 주변 사람을 같은 인간으로서 취급하지 않고 고문하며 학대하는 걸 즐긴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역사는 수많은 잔인한 범죄들에 대해 증언한다. 그 뒤에도, 인간의 탈을 쓴 짐승들이 있다. 그들은 지금도 우리 사이에 섞여 살아간다. 약한 인간을 노리면서. 파고들 공간을 가늠하면서.

키타큐슈 감금 살인사건의 주범, 즉 이 소설의 '요시오'에 해당하는 마츠나가 후토시는 사형을 구형받고 수감되어 있다고 한다. 그렇게 사회는 한 마리의 짐승을 가두는 데에 성공했다. 말간 햇살 아래에서 여전히 거리를 활보하는 나머지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그들로부터 우리를 지킬 방법은 무얼까. 결국 서로가 서로를 지켜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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