렛 잇 스노우
존 그린.로렌 미라클.모린 존슨 지음, 정윤희 옮김 / 북폴리오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사실 이 책의 제목은 무척이나 역설적인데, 주인공 중 누구도 눈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렛 잇 스노우'는 되려 갑작스레 쏟아진 폭설 때문에 1년 중 가장 설레야 마땅한 크리스마스에 엄청난 곤경에 처한 사람들의 사연 집합체라고 봐도 무방하다. 기록적인 폭설 속에 기차는 멈추고, 자동차는 언덕에서 굴러 떨어지고, 허리까지 오는 눈을 헤치며 걸어가다 보면 어느새 스타킹까지 흠뻑 젖고 만다. 그런 크리스마스, 누구도 원한 적 없는 게 당연하다.

신기한 건 그렇게 다사다난한 와중에도 어김없이 누군가는 운명의 상대를 만나 눈이 맞는다는 사실이다! 눈에 쫄딱 젖은 몰골로도 주인공들은 그 날 처음 만난 사람과, 오랜 소꿉친구와, 그리고 갈등으로 틀어졌던 옛 연인과 따끈따끈한 로맨스를 피워낸다. 이쯤 되면 이 책의 교훈은 '될 놈은 된다'가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눈이 쏟아지는 크리스마스의 로맨스를 그려낸 연작소설 세 편이 그렇게 낯간지러우면서도 밉지 않은 건, 각각의 이야기를 그려내는 작가들의 재치 덕분일 것이다. 이야기꾼으로 소문난 세 작가가 각각 다른 인물에 초점을 두어 쓴 단편들은 서로 절묘하게 맞물리며 로맨스보다 진한 유머를 빚어낸다. 한 소설에서 스치듯 지나갔던 인물이 다음 소설에서 주인공으로 활약하고, 그렇게 무대 뒤로 퇴장하는 듯 했던 첫 소설의 커플이 마지막 소설의 클라이막스에 절묘하게 등장할 때 서로 다른 작가가 어떻게 이렇게 유기적인 이야기를 꾸렸을까 신기해지고 마는 것이다.

이 소설이 그리는 로맨스는 십대들의 사랑 이야기다. 서툴고, 때로는 이기적이며, 꽤 자주 오글오글하다. 물러설 곳 없이 이십대 후반이 되어가는 요즘, 고등학생들이 내일은 없는 것처럼 사랑에 몸을 던지는 걸 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드디어 마음을 확인한 토빈과 듀크가 스타벅스에서 나란히 잠든 모습에 '엄마 미소'가 지어지는 걸 보면 나이 드는 게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그럼에도 '렛 잇 스노우'가 가벼운 사랑놀음으로만 끝나는 건 아니다. 십대 아이들이 서로 부딪히고 깨지며 때로는 울고 소리를 지르는 그 모든 갈등은 인생의 중요한 교훈들을 곳곳에 뿌려놓는다. 무엇보다 마지막 이야기에서 에디에게 '너는 늘 너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따끔하게 충고하는 도리의 말을 따라가고 있으면 어쩐지 나까지 열심히 혼나는 기분이 든다. 그렇게 책의 마지막에서, 로맨스의 중심에는 이제 막 사랑이 싹트는 커플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둘러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결코 무시되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이 한번 더 부각된다.

'크리스마스에 꼭 이 책을 읽으시라'는 뻔한 제안은 낯부끄러워서 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올해 크리스마스에 역사상 유래없는 폭설이 내린다면, 나는 어쩔 수 없이 이 책을 떠올릴 것 같다.

춤추는 것과 비슷했다. 일할 때만큼은 나를 잊을 수 있었다. 이런 시간에는 내 안의 어두운 골짜기가 입을 쩍 벌리고 있어도 '미안, 지금은 시간이 없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여러분은 얼어붙은 시냇물에 빠져 본 적이 없을 것이다. 경험자로서 그 기분이 어떤지 자세히 소개해 보겠다.
첫째. 정말 차갑다. 얼마나 차가운지 뇌에 있는 온도측정기관이 이렇게 말할 정도다. "너무 추워서 도저히 못해 먹겠네. 그만둬야겠어." 그리고는 '외출 중'이라는 간판을 걸고 모든 책임을 뒤로한 채 나가 버린다.
둘째. 통증을 관장하는 기관이 온도측정기관의 어이없는 행동을 보며 말한다. "우리도 잘 모르는데 어쩌라는 거야." 그리고는 되는대로 아무 버튼이나 눌러서 기묘하고 불쾌한 기분이 온몸에 퍼지게 한다. 그리고.......
셋째. 혼란과 공포를 관장하는 기관에서는 신호가 오면 즉시 이를 감지한다. 적어도 사태를 해결하려고 노력은 한다는 뜻이다. 게다가 통증을 관장하는 기관에서 버튼을 눌러 주는 걸 무척이나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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