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오어 데스 스토리콜렉터 50
마이클 로보텀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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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옥하기에 가장 좋은 때는 언제인가. 우습게도 출소 전날인지도 모른다. 누구도 탈옥을 예상하지 못하는 때, 가장 기민한 간수들마저 긴장의 끊을 놓는 때, 내일이면 이 곳을 벗어나 자유의 몸이 될 죄수에게 드문드문 축하의 말이 건네지는 때. 그 밤이야말로 등잔 밑이 어두워 무엇이든 가능해지는 유일한 기회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밤, 오디 파머는 탈옥한다.

감옥을 벗어나 호수를 가로지르고, 히치하이킹을 하는 등 생판 모르는 남에게 의지하며 어디론가 나아가는 오디를 뒤쫓는 독자는 이내 의아해진다. 그는 어디로 가려고 하는가. 딱 하루만 기다렸으면 이 모든 여정이 더없이 편해졌을 텐데, 굳이 어려운 길을 택할 게 뭐란 말인가. 그런 오디의 모습이 미련하게 느껴질 무렵, 오디를 뒤쫓는 사람들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든다. 세간을 뒤흔든 악명 높은 사건으로 투옥되었던 범죄자가 탈옥했으니 FBI가 나서서 뒤쫓는 건 이해할 수 있다. 무엇보다 키가 작은 것 외에는 어느 면모로 보나 FBI 탑급인 데지레 형사의 수사는 더없이 이성적이고 냉철하다. 그런데 수백 마일 떨어진 지역의 보안관이 오디의 출소날 감옥 앞에서 기다려야 할 이유는 무엇이며, 어째서 오디의 탈옥에 별 관련도 없을 것 같은 법조인 출신 정치인이 날선 반응을 보여야 하는 걸까.

'라이프 오어 데스'의 시간은 일방통행이 아니다. 오디의 기억을 따라 끊임없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요동친다. 형 칼과 어울리던 어린시절이, 처음 사랑에 빠지던 어느 여름날이, 종내 모든 것을 잃어야 했던 날이 스쳐간다. 벨리타, 미겔. 고통스러운 기억을 훑다 보면 어느새 오디의 이야기가 하나로 맞춰진다. 그리고 오디만이 아는 진실과 지금껏 독자를 이끌던 서사의 간극이 선뜩하게 와닿는다. 누가 거짓말을 했는지, 누가 악한 건지, 누가 누구에게 어떤 해를 끼쳤는지 따지고 들기가 두려워질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지독하게 얽힌 이 사건 속에서 오직 오디만이 깨끗하게 서 있다. 너덜너덜해진 몸과 마음으로 필사적으로 아이를 끌어안고 있다.

마이클 로보텀을 말할 때 가장 먼저 따라붙는 수식어는 '범죄소설가'다. '라이프 오어 데스'를 범죄소설이라 말할 수 있을까. 오디는 탈옥수고, 그를 둘러싼 사건은 사실상 로보텀의 전작 무엇과 비교해도 규모 자체가 다른 엄청난 범죄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오디의 여정을 사건의 해결을 위해 증거를 찾으며 나아가는 범죄소설이라 명명하자니 어쩐지 아쉬움이 남는다.

오디는 지독히도 운이 없다. 범죄의 피해자 치고 운이 좋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은, 그래도 오디는 보는 사람이 안쓰러울 정도다. 명문대학의 장학생에서 단숨에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된 것도, 제대로 된 직업을 갖지 못하고 그림자 세계의 심부름꾼 노릇을 하며 지내게 된 것도, 거기서 사랑하게 된 여자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도주를 감행해야 했던 것도, 그리고 그 길에서 결국 모든 걸 잃게 된 것도, 그것도 모자라 그 크나큰 상실을 초래한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되어 온갖 죄를 덮어써야 했던 것까지 수없이 많은 우연의 산물이다. 그 어느 하나 오디가 스스로 의도했던 일은 없다. 만약 오디의 형 칼이 좀 더 제대로 된 인간이었다면, 오디가 칼을 완전히 떨쳐낼 수 있을 정도로 냉정했다면, 하필이면 칼이 그 날 오디의 차를 가져가지 않았더라면... 수없이 많은 '만약'을 따져가다 보면 오디의 기구한 운명이 처절하게마저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디는 좌절하지 않는다. 자신을 사지로 내모는 운명 앞에서 삐딱선을 타지도 않는다. 오디는 순응하는 인간이다. 주어진 바를 겸허히 수용하고 그 속에서 최선을 도모한다. 성실하게, 선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유형의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매 순간 불합리한 쪽의 운명을 떠안아야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리고 '라이프 오어 데스'는 그런 사람에게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것이 생겼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벨리타는 오디의 모든 것이었고, 그런 그녀가 마지막 순간 미겔을 부탁했다. 지금 이 순간, 오디는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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