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잔의 칼럼 - 남무성, 볼륨 줄이고 세상과 소통하기
남무성 글.그림 / 북폴리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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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걸 놔두고 하기 싫은 걸 열심히 하는 거야말로 정말 지리멸렬한 인생살이지."


책을 덮고 보니 작가가 내내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이거였구나, 싶었다. 제각기 다른 시기에 쓰여진 서로 다른 주제의 짤막한 글들은 얼핏 보면 아무런 방향성도 없어 보인다. 그저 같은 사람이 썼다는 것 외에는 공통점이 그닥 없어 보이는 칼럼과 만화들. 어떤 글은 아는 사람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고, 어떤 글은 재즈에 대해 이야기하며, 어떤 글은 제법 사회비판적 성격을 갖추기도 한다. 그렇게 읽어가다 보면 쉽게 읽히는 글에 페이지를 넘기면서도 뭐가 남는 게 있으려나, 싶었다. 그러다 마지막 만화에 이르러 저 문장을 발견하고는 그렇구나, 했다. 이 이야기가 하고 싶었던 거구나.


재주 많은 사람


바로 그 마지막 만화에서 작가는 '재주 많은 조영남이 부럽다'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남무성 역시 그 못지 않게 가진 재주가 많은 사람이다. 재즈평론가라는 직함을 달고 있지만 그는 글도 쓰고, 책도 내고, 잡지도 만들고, 음악감독으로 활동하는가 하면 영화도 만들고 강연도 다닌다. 그냥 이것저것 건들기만 하는 건 아닌가 싶을 수도 있지만 각 분야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뭐하나 빠짐없이 잘 해내고 있다. 에세이집을 읽어 보니 겪은 일을 풀어내는 글솜씨도 재밌다. 그게 다 하고 싶은 일을 그때마다 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재주가 많다고 했지만, 곰곰히 들여다 보면 그가 하는 모든 일에는 음악이라는 공통분모가 있다. 그가 아주 어린시절부터 들어왔던 바로 그 음악 말이다. 수능 준비를 하면서도 몰래 LP판을 사모았던 소년은 그렇게 성장하고 나이를 먹도록 음악에 대한 애정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아낌없이 퍼부었던 애정이 그에게로 돌아와 그의 직업이, '먹고 살 수 있는 일'이 되어주었다. 그러니 어찌 보면 그는 타고나길 재주가 많은 사람이기도 하지만 여심히 노력한 사람이기도 하다.


쉽게 읽는 음악 이야기


비틀즈 정도는 알지만 나는 음악에 거의 문외한이다. 그래서일까, 책을 읽으며 새로 알아가는 내용들이 많아 즐거웠다. 노래도 모르는 밴드의 뒷이야기가 뭐가 재밌을까 싶지만 음악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듬뿍 담겨 있어서인지 나까지 애정어린 시선으로 글을 훑게 되었다. 그러다 하루키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반가운 아는 사람 이야기에 또 눈을 반짝일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내용이 어려워지지 않도록 군데군데 작가 자신이 직접 겪었던 일들, 함께 음악을 듣는 주변 사람들의 재미있는 에피소드, 그리고 음악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삶의 소소한 단면을 보여준 덕분에 지루해질 틈이 없었다. LP판 세대도 아니고, 재즈를 즐겨 듣지도 않는 나에게 이 정도인데 음악을 좋아하는 마니아들에게 남무성이라는 평론가가 어떤 존재일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물론 모든 부분들이 쉽게 읽혔던 건 아니다. 어떤 칼럼들은 읽기에 다소 불편하기도 했고, 민감한 주제를 너무 단순하게 풀어썼다고 여겨지는 순간도 있었다. '오타쿠와 마니아'가 그랬고, 비틀즈 마니아들이 정확한 팩트에 대한 검증을 요구하는 것을 잘못된 일처럼 다룬 부분이 그랬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 보면 이 책은 그저 작가의 개인적인 생각, 삶의 편린들을 담은 것일 뿐이다. 그 중 나와 맞아 공명하는 글이 있는가 하면 파장이 어긋나는 글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이 모두 그렇듯이.


심야식당


'글에서 전하려는 생각의 크기도 딱 소주잔만 한 정도'라며 에세이집의 이름을 '한잔의 칼럼'으로 정했다던 작가는, 지금 이 시각에도 양평의 심야식당에서 소주 한 잔을 기울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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