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털갈이엔 브레이크가 없지 - 본격 애묘 개그 만화
강아 글.그림 / 북폴리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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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고양이 한마리가 있다. 성은 초요, 이름은 승달이다. 올해 여섯살의 수컷으로, 통통한 살집과 날리는 털에도 불구하고 치명적인 매력의 소유자이다. 그 옆에 고양이 집사로 살아가는 한 여자가 있다. 밥과 반찬에 온통 고양이 털이 붙어 있어도, 승달이가 벽지를 힘껏 긁어내려도, 자는 얼굴에 강인한 앞발로 핵펀치를 날려도 골을 낼지언정 끝끝내 져주고야 마는, 완벽하게 집사다운 삶을 사는 그녀. 이 책은 승달이와 집사 1호, 그리고 집사 2호이자 브로콜리로 불리는 여동생의 평범한 듯 범상치 않은 일상 이야기다.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늘 내 위주로 돌아가던 일상에 어느 순간 더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대상이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려동물에게 사료를 주는 시간에 맞춰 일찌감치 술자리를 빠져나와 귀가하게 되고, 소파에서 빈둥거리는 시간에 일어나 산책을 나가게 되며, 늘 깨끗하던 바닥이 아무리 청소해도 털 투성이가 되는 것도 수용하게 된다. 그건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다. 사람이니까, 때로는 포기하고 싶어진다. 꼭 오래된 연인처럼, 늘 그 자리에 있었던 반려동물이 어느날 구속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도 사랑하니까 괜찮다. 괜찮아야 한다. 그래야만 반려동물과 함께 할 결심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유기동물은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다. 동물의 문제가 아니다. 반려동물을 쉽게 받아들이고 그만큼 쉽게 버리는 인간의 문제다. 전국 방방곡곡의 동물보호소는 자리가 없어 안락사와 씨름해야 한다. 여전히 공장, 펫샵, 그리고 일부 가정에서는 인공적인 생식을 통번식시킨 새끼들을 헐값에 판매하는 일이 이루어진다. 길고양이들은 쓰레기통을 뒤지고 한겨울 식지 않은 자동차 엔진의 온기에 의지하며 근근히 살아가다 잔혹한 죽음을 맞는다. 이 나라에는 동물이 넘치도록 많은데 그들을 책임 있게 거둘 줄 아는 사람의 수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늘 피해는 동물에게 돌아간다. 그들이 피를 흘리고, 고통을 겪으며, 조용히 생을 마감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고양이 털갈이엔 브레이크가 없지'는 그런 현실 속에서 동물과 상생하는 법을 이야기한다. 브로콜리의 회사 앞, 버려진 집에서 나름의 터전을 꾸리고 살아가던 길고양이 가족은 난데없이 집을 철거하기 시작한 사람들에 의해 어딘지도 모를 곳으로 달아난다. 그리고 거기에, 꾀죄죄한 새끼 고양이 한마리가 남는다. 그 고양이는 운이 좋아서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 승달이라는 이름을 얻고 따뜻한 지붕 아래에서 살아가는 삶을 살게 된다. 사람과 고양이가 함께하는 집. 그 집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지만, 그 속에서도 인간과 동물은 각각 서로를 존중하고 인정하며 공존하는 법을 배운다. 비록 터무니없는 비율로 고양이가 존중받는, 그런 삶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승달이의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 봤다. 사진 속 고양이는 행복해보였다. 이따금씩 밥을 챙겨주었던 기숙사 앞 고양이 가족을 생각했다. 때로는 아직 내 손에 들려있는 캔에도 앞발을 뻗을 정도로 늘 굶주렸던 그들은, 그런 여유롭고 나른한 표정을 지을 줄 몰랐다. 늘 무언가에 쫓기듯 불안한 눈빛으로, 내가 내놓은 밥을 허겁지겁 먹어치우고 사라지기 바빴던 고양이들. 그 고양이들을 생각하며, 도시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했다.


초승달이 반짝이듯이

 

   만화에도 유행이 있다. 뜨는 장르가 있는가 하면 구시대적인 것으로 여겨지며 일부 마니아에게만 사랑받는 장르도 있는 법이다. 그 중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소소한 하루하루를 그리는 일상툰은 롱런하는 장르다.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편안하고 기분 좋게 읽힌다는 장점이 있다. 소셜미디어에 속속 개설되는 반려동물 관련 페이지가 증명하듯, 사람들은 귀엽고 사랑스러운 동물의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낀다. 현실적인 여건으로 반려동물과 함께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그 컨텐츠를 보는 순간만큼은 마치 내 앞에 재롱을 부리는 강아지, 꾹꾹이를 즐기는 고양이가 있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반려동물 일상툰은 한걸음 더 나아가 작가와 동물이 함께하는 일상을 생생하게 그려내며 독자들로 하여금 그 경험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끔 한다. 귀여운 동물 일러스트는 덤이다.

   '고양이 털갈이엔 브레이크가 없지'는 분명 반려동물 일상툰이다. 승달이와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생생히 다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껏 유행했던 컨텐츠들과는 확연히 차별화되는 점이 있다. 일러스트 속 승달이는 마냥 예쁘고 사랑스럽지는 않다. 외모뿐 아니라 행동 역시 그렇다. 때로는 이빨을 드러내고 등을 세우며 위협하고, 때로는 눈을 반쯤 뜬 채 잠이 든다. 집사를 잠에서 깨운 뒤 그 자리를 차지해 배를 내놓고 잠들기 일쑤고, 한번씩 집사의 손을 먹음직한 고깃덩이마냥 힘껏 물기도 한다. 동물이 사는 집이 어쩔 수 없이 티가 나듯 이 집에도 온통 고양이 털이 날려 털이 없었던 날을 기억하기 힘들 지경이다. 그러니까 '고양이 털갈이엔 브레이크가 없지' 속 세상은 마냥 핑크빛은 아니다. 오히려 하도 리얼해서 흠칫흠칫 놀라게 될 정도다.

   하지만 그래서 매력있다. 10초 가량 이어지는, 반려동물의 재롱을 담은 동영상에는 그 순간 그렇게 예쁜 동물이 어떻게 먹고 자고 싸는지는 나타나지 않는다.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삶은 동거다. 생활의 모든 순간이 함께 맞춰가는 과정이다. 그 중 고양이와 함께한다는 것은, 맞춰감에 있어 내가 포기할 것이 많아짐을 의미한다. 왜냐고? 우리는 이러나 저러나 집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때로는 처절하고 때로는 징글맞지만 고양이의 사랑스러움이 모든 부정적인 감정을 이기고야 마는 집사 라이프를 완벽히 담아낸다. 고양이의 애정표현을 무시했을 때의 격한 삐짐, 고양이를 목욕시키는 중노동의 장렬한 서사,  고양이에게 약을 먹이기 위한 칠전팔기 도전기까지, 이 책이 담아내는 에피소드들은 하나같이 실제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만한 것들이다. 그리고 고양이가 아닌 다른 동물을 키우는, 혹은 동물을 아예 키우지 않는 나같은 사람에게도 신선한 즐거움을 제공한다. 많은 이들이 품는 로망과는 좀 동떨어져 있어도, 승달이와 함께하는 시간들은 충분히 반짝이고 있기 때문이다.


승달이를 만나보자



때로는 이렇듯 한없이 귀엽고

(그 와중에도 끊임없이 털은 날리고)



때로는 이렇듯 리얼한 외모를 자랑하며



이따금씩 애교가 넘치지만



그와 비슷한 빈도로 야생의 공격성을 보여주는

승달이를 만나러 가보자

아마 후회없는 결정이 될 것이다


북폴리오 2016 서포터즈 활동으로 도서를 직접 구입하여 작성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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