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이었던 소녀 스토리콜렉터 41
마이클 로보텀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16년 4월
평점 :
절판



   사람의 마음은 보일 듯 보이지 않는 것이다. 어느 순간 아주 명료하게 드러난 진실 같다가도 다음 순간 닿을 수 없는 곳으로 숨어버린다. 조 올로클린은 그런 사람의 마음을 쫓는 일을 한다. 심리학자, 그게 그의 직업이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은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다. 때로는 보고 싶지 않은 감정의 파편들을 오롯이 마주해야 하고, 때로는 우연히 알게 된 진실이 그와 그의 가족을 위험과 파멸로 몰고 간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일을 놓지 못한다. 사람을 마주한 순간마다 그의 눈에는 상대의 마음이 비친다.

   명석한 두뇌와 파킨슨병으로 무너져 가는 몸, 별거 중인 아내 줄리안과 더 이상 이전과 같이 가족이라 부를 수 없는 그의 소중한 사람들. 조의 일상은 우울하다. 사춘기의 딸은 아빠의 작은 말 한마디에도 실망하고, 분노하고, 마음의 문을 걸어잠근다. 그는 여전히 아내를 사랑하지만 줄리안은 자신이 그와 함께할 만큼 강하지 못하다고 말한다. 이 모든 건 어떤 일 때문이다. 큰딸 찰리에게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안긴, 그의 가족을 풍비박산 낸 사건. 그래서 조는 더 이상 경찰과 일하지 않는다. 일하고 싶지 않다. 어두운 마음을 들여다 보고 그 마음이 향하는 곳을 추리하는 일에서 이제는 발을 빼고 싶다.

   그런데 그럴 수가 없다. 이번 일은 외면하기가 너무도 어렵다. 찰리의 가장 친한 친구인 열네 살 소녀, 시에나의 일이기 때문이다.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죄목으로 기소된 아이. 사건의 피해자는 시에나의 친아버지다. 그리고 조는 직감으로 시에나가 범인이 아님을 느낀다. 여기에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고, 진실은 모퉁이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꼭 셋째딸처럼 내내 조의 가족 곁에 머물던, 언제인지 알 수 없던 때부터 어떤 깊은 상처를 숨기고 있는 듯 보였던 그 아이를 조는 도저히 모른체할 수가 없다. 비록 의문의 레인지로버에 쫓겨 목숨을 잃을 뻔하고, 이번 일로 또 한번 자신을 포함한 모두를 위험에 빠뜨릴지도 모른다 해도.

   '내 것이었던 소녀'의 중심이 되는 것은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십대 소녀들이다.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아이들. 그들은 자신들의 세계가 견고하고 단단하다 믿지만, 어른들은 너무도 쉽게 성큼성큼 들어와 그들을 제멋대로 바꾸려고 한다. 그것도 좋은 어른의 얼굴을 한 채,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듯이 말하며, 가장 먼저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 세상 모든 어른들이 등을 돌려도 이 사람만은 내 말에 귀를 기울여준다는 느낌을 준다. 부모라는 어른은 누구보다도 진심어린 마음으로 자식을 걱정하고 아끼며 지켜주고 싶어하지만, 그 방식이 너무도 서툴러서 번번히 아이를 끌어안기는커녕 저 멀리 튕겨내고 만다. 이 어른은 다르다. 멋진 미소를 띤 채 손을 내밀며 고민이 있으면 언제든지 털어놓으라고 말하는 그들은 매혹적이다. 그리고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한 아이들은 너무도 쉽게 그들의 손으로 떨어진다.

   책을 읽기 전, 한글 제목에 거부감을 느꼈던 기억이 있다. '소녀'에 비록 과거형이라 해도 '내 것'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 자체가 싫었던 것 같다.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이 책은 누군가를 소유하고, 조종하고, 멋대로 휘두를 수 있다고 믿는, 그렇게 '내 것인 소녀'를 향한 욕망이 얼마나 뒤틀리고 잘못된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첫인상부터 불편한 이 책의 제목은 어쩌면, 너무도 완벽하게 들어맞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세상 어디엔가 진짜로 존재할지도 모르는, 누군가의 것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소녀들을 생각하며 읽은 소설이었다.


어째서 심리학자인가

 

   조 올로클린 시리즈는 10년 이상 인기를 끌며 스테디셀러 반열에 올랐다 한다. 파킨슨병의 영향으로 약을 복용하지 않으면 자신의 몸조차 제대로 통제할 수 없는 심리학자. 그러나 그에게는 어떤 사람의 마음이라도 꿰뚫어보는 뛰어난 지능과 날카로운 관찰력이 있다. 그 능력이 때로는 그에게 고난을 안겨주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만둘 수는 없다. 그건 그냥 보이는 거니까. 상대의 작은 표정에서 망설임을, 분노를, 공포를, 누군가를 지키려는 필사적인 마음을 읽어내는 건 조 올로클린에게 있어 본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래서 시에나의 사건을 맞닥뜨렸을 때 조가 말려들고 관여하게 되는 것 역시 선택보다는 불가피한 일이라 보는 것이 더 맞다. 사건이 있기 전부터 조 올로클린의 눈에는 작은 단서들이 들어온다. 시에나의 표정, 말투, 눈빛. 사람이 죽기 전부터, 그는 거기에서 무언가를 본다. 사건이 일어난 후에는 더더욱 그렇다. 관여하지 말아야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무언가를 발견하고 만다. 남들이 알아채지 못하는 무언가를 알기 때문에 더는 물러설 수 없어진다. 그 진실을 위해 싸워야만 한다.

   사춘기의 여자아이의 마음 속은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섬세하다. 딸들을 성적으로 학대하던 아버지가 작은딸의 방에서 피투성이의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는 그 모든 것을 설명해낼 수 없다. 죽은 선배의 체면을 지켜주고 싶어하는 수사 지휘관의 눈에는, 더더욱 무엇도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조 올로클린이 필요하다. 사람들이 지나치는 그 모든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그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사건을 해결할 수 있다. 그래야 시에나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이 책은 소설이고, 세상의 모든 심리학자들이 인간의 밑바닥을 들여다보며 살인사건 해결에 뛰어들지는 않는다. 그러나 '내 것이었던 소녀'는 이 세상에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들의 기저에 깔려있는 심리가 어떤 것인지, 그 깊은 속을 들여다보았을 때 대책없이 꼬인 것처럼 보이던 일들이 어떤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드는지를 이해하게 한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조 올로클린 같은 심리학자인지도 모른다.


사람의 마음

 

   이따금 우리는 자신이 알고 있는지도 모르는 무언가를 알고 있을 때가 있다. 그냥 뭔가 울렁거리는 느낌이나 달랠 수 없는 미심쩍음, 또는 무언가가 일어났다는 설명할 수 없는 확신 같은 것밖에는 못 느낀다 해도.

   그것을 직관이라 부르든 지각이라 하든, 아니면 통찰이라 하든 상관없다. 육감은 없다. 육감이라는 건 사실 단순한 정신적 과정이다, 뇌가 상황을 인식하고, 머릿속 파일들을 급속히 뒤지고, 기억과 지식의 난잡한 배열 속에서 즉각적인 조화를 찾아내는 과정. 그게 바로 첫인상이고, 그게 퀴즈대회 때 머리에 떠오르는 첫 번째 답을 내놓는 게 대체로 가장 효과적인 이유다. 왜냐하면 첫 번째 생각은 무의식적 신호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말로 표현하거나 옹호할 수 없는 지식. 같은 질문을 너무 오래 고민하면 우리의 더 고고하신 뇌 기능들은 증거를 요구하기 시작한다.

   마음이 그 신호를 포착하도록 훈련해야 한다. 첫 반응을 믿을 것. 내 본능은 시에나 헤거티가 자기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다고 말한다. 내 본능은 그녀가 누군가를 보호하고 있다고 말한다. 내 본능은 고든 엘리스가 입밖으로 내서 말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안다고 말한다. 내 본능은 내게 교사와 학생, 그 두 사람 사이에 무언가가 있다고 말한다. 선을 넘은 우정이.

   - pp. 218-219


* 북로드 2016 스토리콜렉터스 활동으로 책을 제공받아 쓴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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