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통찰 - 위대한 석학 21인이 말하는 우주의 기원과 미래, 그리고 남겨진 난제들 베스트 오브 엣지 시리즈 4
앨런 구스 외 지음, 존 브록만 엮음, 이명현 감수, 김성훈 옮김 / 와이즈베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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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스트 오브 엣지' 시리즈는 엣지 재단 소속의 지식인들이 특정 대주제에 대해 제각기 지니고 있는 지식의 파편을 모아 하나로 엮어내는, 말하자면 종합선물세트 같은 책이다. 지금껏 다뤄진 주제로는 Mind, Culture, Thinking, Life가 있고 이번 책, Universe는 시리즈의 5번째 주자이다.

   나는 우주에 대해 아는 게 없다. 정말로 그렇다. 한국 교육과정에서 가르치는 딱 그 정도, 과장을 조금 보태 지구가 자전하며 태양 주변을 공전하고 있다는 그 정도를 알고 있을 뿐이다. 반 세기가 지나 아인슈타인이 옳았다는 게 증명되었다는 뉴스를 봐도 우와, 대단하다, 그렇게 솔직하게 감탄할 뿐 어떤 깊은 공감을 느끼지 못하는 건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인터스텔라'를 보러 가기 전에는 영화를 이해하지 못하면 어쩌나 겁이 났고 다행히 영화의 큰 줄기를 이해하며 영화관을 나섰을 때에는 역시 순수과학은 나랑은 아니야, 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야 했다. 이 책에 기꺼이 손을 번쩍 들어본 건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우주의 통찰이라니, 나한테 이보다 더 필요한 게 대체 뭐가 있나 싶었다.

   내 선택이 어떤 의미에서는 완벽히 옳았고, 어떤 의미에서는 완벽히 틀렸다는 걸 깨달은 건 책을 받아들고 저자 목록을 훑었을 때였다. 익숙한 이름이 단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엣지 재단에서 글을 집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특정 분야에서 베스트셀러를 한두개쯤 출판하거나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이론을 펼치거나 유명 대학 강단을 지키는 인물들이다. 즉, 그 분야에 조금만 관심을 가진다면 그 중 적어도 한둘은 아는 게 당연한 수순이다. 실제 같은 시리즈의 '마음의 과학'을 살펴보면 저자 16인 중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주요 이론을 곧바로 떠올릴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스티븐 핑커, 필립 짐바르도, 빌라야누르 라마찬드란, 마틴 셀리그먼. 심리학 전공서적에서 얼마나 자주 봤던 이름들이던지 반가울 지경이었다. 반대로 말하면, 내가 굳이 '마음의 과학'을 통독하며 그들이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짤막하게 이어나가는 릴레이 같은 글을 다시 읽을 필요는 굳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었다. 그런데 '우주의 통찰'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 중 어디서 흘러가듯 들어본 사람이 단 한명도 없다는 건, 내가 정말로 무지한 분야에 대한 훌륭한 입문서를 골랐다는 기쁜 소식인 동시에 이 책을 읽는 게 세상 어떤 일보다 어려울 수도 있다는 암울한 암시이기도 했다.

   다행히 책은 어렵지 않다. 정확히 말하자면 우주에 대한 책 치고는 어렵지 않다고 해야겠다. 사실 읽으며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고민하다 그냥 에라, 하는 심정으로 넘긴 페이지들도 적지 않았다. 수학에 대한 기본기조차 없는, 이 책에 실린 작가들이 고교 시절 사랑했다는 미적분을 20대 중반이 된 지금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나에게는 애초에 응용수학과 우주과학을 넘나드는 이 책이 무리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제각기 우주와 연관된 자신만의 주특기를 풀어내는 이 책의 공동저자들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눈높이를 맞춰주기 노력하고, 그래서 고행일 줄만 알았던 이 독서는 예상 외로 즐거웠다.

   책을 덮으며 우주에 대해 더 알게 된 게 있나 생각해 보니, 우주란 역시 내가 다 알기엔 엄청나게 넓고 지나치게 복잡하다는 결론 뿐이었다. 그러나 그러면 좀 어때서? 코넬에서 응용수학을 가르치고 있는 스티븐 스트로가츠 역시 말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여전히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반딧불이부터 미사일 공격까지

 

   목차를 훑으며 가장 흥미있어 보이는 제목을 고른 게 스티븐 스트로가츠의 '반딧물이가 뭐 중요하다고'였다. 이 장은 스티븐 스트로가츠가 자신의 어린시절과 학창시절을 익살스럽게 소개하며 자신이 현재 연구하는 분야에 왜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나아가 그가 그렇게 발견한 '동기화'라는 현상이 어떻게 자연계 곳곳에 적용되며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무수한 존재들이 어떤 방식으로 자발적 질서를 찾아가는지를 보여준다. 의대전단계 과정을 들으며 힘들었다는 언급을 보고 순간 나와 정반대의 길에 서있는 사람이 아닌가 잠시 뜨끔했지만, 오히려 어떤 학문에 순수한 열정을 불태우는 사람에게 다른 학문은 무척이나 어렵고 지루할 수 있다는 사실을 온 마음으로 이해하는 그를 보니 이 두꺼운 책 속에서 이해받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무엇보다 생물학을 공부해서인지 사람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예시를 통해 동기화를 설명하는 그의 눈높이 설명에 나 역시 쉽게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이라크의 위성유도무기부터 난자를 향해 헤엄쳐 가는 정자, 뇌의 간질발작까지 모든 현상에 통용되는 한가지 설명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게 놀랍고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책을 덮을 때쯤에는 그가 케임브리지의 서점에서 발견했다는 아서 윈프리의 '생물학적 시간의 기하학'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몇년간 관찰한 자기 어머니의 월경주기를 기하학적으로 분석하는 사람이라니, 그런 사람의 책을 그냥 넘기는 건 말도 안되는 일이다.


작은 우주를 만나보자


   질문을 쪼개서 우리가 접근할 수 있는 수준으로 낮추는 데 도움을 줄 또 다른 힌트는 관찰을 통해 얻을 수 있다. 창밖으로 눈을 돌리면 무엇이 보이는가? 여기서 우리가 정말 놀라워해야 할 것은 바로 우리가 본다는 사실 그 자체다. 이것은 밤하늘이 밝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만큼이나 놀랍다. 밤하늘이 밝지 않은 이유라니, 그런 바보 같은 질문이 어디 있나 싶겠지만 깊이 생각해보면 이것은 정말 심오한 질문이다. "왜 우리의 눈길이 닿는 모든 곳에 별이 존재하지 않을까?" 이와 비슷한 질문으로 이런 것이 있다. "우주는 왜 그렇게 클까?" 기초물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우주가 그토록 크다는 것은 정말 너무나 놀라운 사실이다. 우주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작아지지 않기 위해서는 수많은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야 한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우주가 커지기 위해 일어나야 할 일 중 하나는 바로 텅 빈 공간의 에너지가 작아도 아주 작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그저 창문을 열고 몇 킬로미터 밖을 내다보는 행동 자체가 텅 빈 공간의 에너지가 터무니없을 정도로 작아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하나의 실험이라 할 수 있다. 어느 정도로 작은가 하니 0.000 다음에 0이 수십 개나 더 붙은 다음에 1이 나와야 한다. 그냥 창밖을 내다보는 것만으로 이 사실을 알 수 있다.

- p. 393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수백 년 동안, 우리는 그다지 많은 것을 알지 못한 채 지냈다. 그러다 케플러, 코페르니쿠스, 뉴턴이 자신이 본 것을 수학을 통해 설명하고 나서야 위대한 '이해의 시대'가 열렸다. 특정 부류의 수학을 통해 이런 문제들을 풀 수 있었던 것이다. 맥스웰 방정식, 열역학, 양자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물리법칙에 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해준 모든 수학에는 완벽하고 철저한 풀이법이 알려진 특정 부류의 수학 문제가 동원된다. 바로 선형적인 문제(linear problem)들이다. 우리가 비선형적인 문제(nonlinear problem)에 부딪히기 시작한 것은 불과 지난 몇십 년 전부터다. 물론 우리는 이런 문제 중에서 겨우 서너 개의 변수를 사용하는 가장 작은 범주의 문제들만 이해하고 있다. 이것이 혼돈이론(chaos theory)이다. 뇌처럼 변수가 수백 개, 수백만 개, 수십억 개로 늘어나면 우리는 이런 문제들을 전혀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이런 문제들이 바로 복잡계가 다루어야 할 것들인데, 우리가 이런 문제들을 이해하게 되기까지는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가 까마득하게 많이 남아 있다. 이것을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할 수는 있지만, 사실 이것은 그냥 구경만 하는 것과는 별 차이가 없다. 우리는 여전히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 pp. 473-474


북폴리오 2016 서포터즈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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