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미스터리 스토리콜렉터 39
리 차일드 외 지음, 메리 히긴스 클라크 엮음, 박미영 외 옮김 / 북로드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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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추리소설가협회의 창립 70주년을 기념하여 발간된 이 추리소설 앤솔러지는 그야말로 뉴욕을 통째로 씹어삼킨 느낌이다. 제각각 뉴욕에 대한 기억을 간직한 협회 소속 작가들이 뉴욕의 특징적인 장소 하나씩을 골라 거기에 관련된 이야기를 풀어낸 작품 17편이 실려있다. 더불어 각 단편마다 해당 장소의 간략한 지도와 소개, 그리고 그 장소를 강렬하게 표현하는 흑백사진이 더해진다. 책을 읽고 있노라면 정말 뉴욕 한복판을 거닐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나는 2012년의 첫날을 뉴욕에서 맞았다. 낯설었던 필라델피아에서 반년을 보낸 후 가족이나 다름없던 룸메이트가 막 텔아비브로 돌아간 후였다. 나는 외로움이 싫었고, 미국도 싫었고, 그저 하루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만 싶었다. 뉴욕에서 2주나 지내도록 스케줄을 짠 과거의 내가 정말이지 미웠고, 여행 즐겁게 하라며 먼저 돌아가는 친구들이 너무도 부러웠다. 그렇게 기대나 설렘 없이 뉴욕에 와서일까, 나는 별다른 계획없이 14일간 매일 뉴욕의 거리를 쏘다녔다. 2주간 신세를 진 친구의 집을 나서 방향을 정하면 그저 한없이 걸어가곤 했다. 그러다 뉴욕의 랜드마크를 마주하면 사진을 찍기도 하고, 미술관을 발견하면 들어가서 구경하고, 어느 한국 블로그에서 스치듯 봤던 맛집 간판이 눈에 들어하면 사람들이 제일 많이 시키는 메뉴를 시켜 먹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지내면서 뉴욕이 점점 좋아졌다. 매일 걸으며 익숙해진 거리가 정겨웠다. 이 길을 따라 가면 모퉁이에 플랫아이언이 버티고 있고 저 사거리를 넘어가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보일 거라는 걸 몸이 기억할 즈음,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며 나는 내가 뉴욕을 평생 좋아하게 될 거라고 확신했다.

   그래서일까, 이 책을 읽는 내내 오래된 앨범을 뒤적이는 기분으로 즐겁고 들떴다. 뉴욕의 특징적인 장소 열일곱 군데라 해서 여행객들이 즐겨 찾는 뻔한 곳들만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의 지명들이 튀어나와 나를 더욱 신나게 했다. 친구의 집이 있던 바로 그 동네, 알파벳 시티의 이름을 목차에서 확인했을 때에는 소리를 지를 뻔했다. 그리고 책을 읽을수록 어째서 이토록 많은 기억이 생생히 살아나는지, 어째서 뉴욕이 과거에 주었던 행복감에 흠뻑 심취할 수 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분명 이 이야기들을 쓴 작가들도 나만큼 뉴욕을 사랑하는 게 분명했다. 자신이 고른 장소를 가장 특별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그 곳의 아주 작은 비밀도 놓치지 않으려는 치밀한 다정함이 느껴졌다. 이 뉴욕 앤솔러지에서는 그렇게 70년 어치의 애정이 뚝뚝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뉴욕을 즐겁게 방문했던 사람이라면 나처럼 추억에 빠져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싶다. 반대로 뉴욕을 방문할 예정인 사람이라면 어떤 여행서보다도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더불어 이야기 자체도 미스터리로서 훌륭한 존재감을 과시한다. 17개의 이야기가 있다 보니 제각각 작품색이 달라서 골라 읽는 재미도 있다. 장소만큼 각 단편의 시대적 배경도 달라 2차 세계대전 중 배급제가 실시되던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아름답고 세련된 현재의 어퍼 웨스트 사이드까지 이야기를 타고 넘나들다 보면 시간여행을 하는 기분마저 든다. 여러모로 사랑할 수밖에 없는 책이다.


뉴욕이라는 도시 

 

   미국인이 자랑하는 빅애플, 공연문화가 태동한 브로드웨이와 전세계 증시를 쥐락펴락하는 월스트리트가 있는 곳, 여신이 굽어보는 대도시. 뉴욕은 특별한 곳이고, 그러다 보니 때로는 뉴욕의 모든 것이 아름답게 포장되고 만다. 유명 백화점이 들어선 5번가와 매년 마지막날 엄청난 인파가 몰려 카운트다운을 지켜보는 화려한 타임스퀘어, 녹음이 우거진 센트럴 파크. 그러나 관광지 안내도에는 등장하지 않는 뉴욕의 수많은 거리에서는 그렇게 늘 아름답지만은 않은 이야기를 간직한 사람들이 제각각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 중 누군가는 비밀을 감추고, 누군가는 폭력을 휘두르며, 누군가는 가난과 싸운다. 그것도 뉴욕이다. 아름답기 위해 그조차 지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뉴욕 미스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 이야기들을 통해 리틀 이탈리아는 뉴욕 3대 피자 맛집 중 한 곳이 있는 동네이기도 하지만 언젠가 마피아들이 활개를 치던 구역이라는 것을, 관광객들의 사진 명소가 된 월 스트리트의 황소 동상 앞에는 구걸로 하루하루 연명하는 노숙자들도 모여든다는 사실을, 헬스 키친은 예술의 거리로 변모하기 전 비극적인 사연이 교차하는 장소이기도 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그렇기에 책을 덮고 나면 뉴욕의 그림자를 들여다본 듯한 기분이 든다. 카메라를 목에 걸고 한 손에 지도를 든 채 매그놀리아 베이커리 앞에 줄을 설 때에는 절대 보지 못하는 것을. 그렇게 책을 덮고 나면 어쩐지 뉴욕에 한 걸음 더 다가간 것만 같다. 조금 더 가까이, 전에 알지 못했던 방향으로.


아주 소소한 기억 하나

 

   센트럴 스테이션에 도착하여 택시를 잡아타고 목적지로 알파벳 시티의 애비뉴 D를 이야기했을 때, 택시기사는 진지한 얼굴로 나에게 애비뉴 D의 D가 어디서 온 건지 아느냐고 물었다. 처음 가보는 곳이라고, 잘 모른다고 대답하자 "D for drugs (마약의 D)"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택시에서 내려 친구의 집 문을 찾기까지 한참이 걸렸는데, 문을 포함한 그 건물 외벽 전체가 그래피티로 덮여 있어서였다. 그 집에서 묵은 나와 아이들은 곧 정을 붙인 뉴욕을 밤늦은 시간에도 거리낌없이 쏘다녔지만 정작 집 근처인 알파벳 시티에서는 늘 바짝 긴장하곤 했다. 저녁 9시만 되어도 집에 오는 길에 등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면 집까지 사정없이 달렸다. 알파벳 시티는 관광객들이 절대 발을 들이지 않는 동네였다. 우리 사이에는 할렘도 여기보다는 나을 거라는 말이 농담처럼 오갔다. 그래도 우리는 거기에서 2주를 아주 잘 지냈다. 어떤 범죄에도 휘말리지 않고.

   '뉴욕 미스터리'에 실린 단편들이 그려낸 각 장소에 대한 기억은 대개의 사람들이 가진 기억과는 사뭇 다르다. 아이들이 뛰어놀고 백발 할아버지가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고 있어야 할 것만 같은 센트럴 파크에서는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화려한 중심가로 큰 백화점이 있는 유니언 스퀘어에서는 젊은 여자의 시신이 발견된다. 타임 스퀘어에서는 전직 FBI 요원이 비겁한 사기꾼을 총으로 쏴 죽이고, 부유한 동네인 어퍼 웨스트 사이드와 어퍼 이스트 사이드에서도 가족간의 비틀린 애증이 파국으로 치닫는다. 그런데 유일하게 알파벳 시티만은 소설 속에서도, 내 기억 속에서도 참으로 일관된 모습을 보였다. 골목골목 크고 작은 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곳. 그럼에도 그 거리에서 아이들은 뛰어놀고 연인들은 데이트를 즐긴다. 어느 모퉁이에는 (우리가 처음 봤을 때 놀랐을 만큼) 아기자기하게 예쁜 카페도 있고, 애비뉴 B 쯤에는 작은 공원도 있다. 알파벳 시티는 이름만큼 동화 같은 곳은 아니어도 제 나름의 이야기와 매력을 갖춘, 무엇보다 참으로 뉴욕다운 곳이었다.

   이 소설을 쓴 작가들은 제각각 이런 이야기를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그 동네에 대한 남다른 애착, 잠시 들렀다 지나쳐 가는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어떤 것. 그걸 풀어내기 위해 그 장소를 고르고 이야기를 적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작가라는 직업이 새삼 부러워졌다. 어떤 곳에 대해 자신만의 이야기를 간직할 수 있다는 건, 무척 멋진 일이니까.


written by. 가비

* 북로드 2016 스토리콜렉터스 활동으로 책을 제공받아 쓴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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