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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바 1 - 제152회 나오키상 수상작 ㅣ 오늘의 일본문학 14
니시 카나코 지음, 송태욱 옮김 / 은행나무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아쿠쓰 아유무는 이란에서 '세상에 왼발부터 등장했다'. 어머니를 빼다 박은 귀여운 외모에 어려서부터 본의 아니게 깨우친 기척을 지우고 조용히 살아가는 기술로 그의 어린시절은 평탄하다. 늘 반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아이의 가장 친한 친구 자리를 손에 넣고, 여자아이들은 아유무가 지나갈 때 뒤를 돌아보며, 주변 어른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한다. 그런 아유무에게 유일한 걸림돌은 아쿠쓰가의 여자들이다. 한번 정한 의견은 절대 굽히지 않고, 고집이 세며, 어머니로서의 자신보다는 여자로서의 자신이 우선시되는 사교계의 꽃 같은 어머니. 어머니를 전혀 닮지 않은 외모로 어릴 때부터 크게 사랑받지 못한, 그래서 온몸으로 '나 좀 봐줘!'라고 소리를 지르는 듯 기행을 일삼는 누나. 두 사람은 아유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집안 전체를 흔들 만한 갈등을 반복하고, 그 사이에서 아유무는 점점 없는 듯한 아이가 되어간다. 누구의 마음도 상하게 하지 않도록, 어떤 갈등에도 불을 지피지 않도록, 자기 의견을 죽이고 자기 색깔을 지운 채 조용히 주변에 녹아드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한 것이다.
어린시절의 아쿠쓰 남매를 보면 그들의 운명은 예견된 것처럼 보인다. 비록 부모님의 이혼이라는 공통의 상처를 겪고 가장 행복했던 카이로 생활을 뒤로 한 채 일본으로 돌아왔지만, 아유무는 여전히 학교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반면 누나 다카코는 돌아와서도 따돌림을 당하고, 결국 학교에 가지 않게 되며, 종국에는 고등학교 진학을 거부한다. 그리고 사토라코몬사마 등 여러가지를 믿다가 배신당해 상처받는 일을 반복하며 점차 자신의 안으로 틀어박힌다. 그런데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에 다시 오사카의 집에 모인 남매의 모습은 예상 밖이다. 유일한 안식처였던 야다 아줌마의 죽음 후 유언대로 아줌마의 유해를 뿌리기 위해 전세계를 여행하며 스스로 믿을 것을 찾았던 누나는 결혼하여 돌아온다. 그것도 무척 건강하고 안정적인 모습으로. 한때 자유기고가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던 아유무는 머리가 빠지기 시작한 어느 시점부터 사회생활을 완전히 포기한다. 그리고 끊임없는 자기혐오에 빠져 어째서 자기 인생이 이렇게 되었는지, 같은 생각을 반복할 뿐이다. 머리숱이 적고 배가 나왔으며 안정적인 수입이 없어 애인에게 기대 살아야 하는 삼십대 중반의 남자. 샌프란시스코에서 남편과 함께 생활하며 아침마다 요가를 하는 날씬하고 당당하며 사랑받고 있음을 온몸으로 내보이는 삼십대 후반의 여자. 아유무에게는 누나와 자신의 이 간극이 무엇보다 견디기 어렵다.
'사라바'는 아주 어린아이였던 아유무가 사십을 눈앞에 둔 아저씨가 되기까지를 그린다. 그에게 세상이 '유독 상냥했'던 시절부터 그가 완전히 혼자가 되어 도서관에 고립되는 때까지, 그리고 카이로에 돌아가 다시 일어설 결심을 하기까지 조용히 그의 뒤를 밟는다. 아유무의 인생에는 풍파가 많다. 어릴 때부터 기 센 여자들이 불꽃 튀기며 싸우는 한가운데 놓여 있었던 데다 아버지는 그런 그를 남자의 세계로 끌어들여 보호하기에는 지나치게 다정하고 조용한 사람이었다. 아버지의 주재원 생활로 어릴 때부터 이란, 일본, 이집트 같은 나라들을 떠돌며 생활한 데다 결국 부모님의 이혼으로 아버지 없는 생활을 하게 된다. 아이들을 맡은 어머니는 아이를 잘 양육해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자신의 행복에 집착하고, 누나는 별다른 의지가 되지 않는다. 그런 와중에 아유무는 집을 벗어나겠다는 일념만으로 공부해서 사립고등학교에 가고, 도쿄의 대학에 간다. 그리고 거기에서 새 인생을 찾은 것처럼 보인다.
아유무는 피해자처럼 보인다. 실제 야다 아줌마는 아유무에게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야 했다'고 말하기도 하고, 내내 독자의 눈앞에 그려지는 것은 안정감이라고는 찾기 힘든 가정환경에서 애써 자신의 자리를 만들려고 고군분투하는 어린아이의 모습이다. 그저 어린시절만이 아니라, 일찍 겪은 가족의 상황은 아유무의 성격 자체를 형성한다. 누나처럼 지나치게 튀어서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되지 않기 위해 철저하게 자신을 숨기면서도, 누나처럼 따돌림당하지 않기 위해 늘 가장 인기있는 곳을 파고들어간다. 그리고 거기에서 조용히 자리를 지킨다. 아유무는 살면서 한번도 강하게 자기 의견을 주장한 적이 없다.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은 속으로 삭이기에 바쁘다. 어리광도 계산을 해서 피운다. 철이 들기 전부터 어머니의 관자놀이를 보고 어머니가 화난 정도를 가늠하는 법부터 배운 아이인 것이다.
그런데 다 큰 어린이 되어 오사카의 집에서 만난 아유무에게, 함께 산책을 가자고 권한 누나 다카코는 오히려 '믿을 것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마치 지금껏 아유무의 인생이 꼬인 것이 아유무 본인의 탓이라는 듯. 너는 늘 너를 남과 비교하기 바빴다고, 이제는 스스로 믿는 것을 찾아야 한다는 누나의 말에 당연히 아유무는 분노한다. 내가 누구 때문에 이런 삶을 살게 된건지 알기는 하냐고, 미안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퍼붓고 도망치듯 도쿄로 돌아온다. 하지만 돌아오면서도 그 말을 했던 순간 누나가 자신을 깊이 사랑하고 있었다는 느낌에 혼란스럽다. 그리고 드디어 아유무도 스스로 뭔가를 찾아낼 결심을 한다. 세상에 주장할 스스로의 무언가를.
이 소설은 세상의 아유무들에게 건네는 응원과도 같다. 아유무가 분노하기는 했어도 다카코의 뜻은 아유무를 책망하려는 게 아니었다. 소설 전반에 걸쳐 아유무를 가장 감동시키는 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있는 그대로 '힘들었겠다'고 말해주는 것이다. 네가 뭔가 더 해볼 수 있었던 것 아니냐고 탓하지 않고, 가족들도 사정이 있었을거라고 두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그의 괴로움을 인정하는 말. '사라바'는 그런 말들로 가득하다. 네 잘못이 아니야, 많이 힘들었겠다. 소설 내내 누군가 그런 말을 해주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마지막, 다카코의 강하지만 다정한 목소리를 빌려 '하지만 스스로 믿는 것을 찾아야 한다'고 가만히 이야기한다. 이대로 멈춰서는 안된다고, 자꾸 걸어나가야 한다고. 거기에는 오늘보다 빛나는 내일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살아 숨쉬는 시간 속에서
'사라바'의 가장 큰 장점은 생생함에 있다. 그토록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데도 누구 하나 작위적이지 않고 실제 어딘가에서 숨을 쉬며 살아가고 있을 것만 같다. 이란의 하녀 바츨, 운전기사 에브라힘부터 시작해서 카이로에서 만났던 제이납과 야곱, 아유무의 동급생들, 대학에서 들어간 영화 동아리의 구성원들, 스구와 고가미, 아키라와 사치코, 스미에. 거기다 빼놓을 수 없는 아버지 아쿠쓰 겐타로와 어머니 이마바시 나오코, 아유무와 다카코 남매까지. 각 인물이 너무도 정교해서 어느덧 내 자신이 자말렉 지구를 걷고 있는듯, 사토라코몬사마 제단을 앞에 두고 있는듯한 생각이 들곤 했다. '사라바' 속 세계는 실존하고 있었다. 아유무와 스구가 소설을 만났던 세계들이 그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래서 때로는 마음이 아팠다. 다카코의 부서진 마음이 손에 잡힐 듯 느껴졌고 아유무의 표현하지 못한 감정들이 스며왔다. 꼭 아는 누군가의 이야기 같아서 두 사람이 붕괴할까봐 조마조마하기도 했다. 더불어 어머니의 삶도, 아버지의 결심도 나중에 모든 이야기를 들은 후에는 이해할 수 있었다. 때로는 어른도 미숙하다. 아이들의 마음까지 헤아리기엔 내 자신의 일만으로도 벅찬 순간이 있다. 그것이 아이에게 상처를 입히는 일이라고 해도, 십수년이 지나서야 사과할 수 있을 때도 있는 것이다.
어떻게 일본 작가가 이란과 이집트에서의 삶을 이토록 생생하게 그려낸 걸까 궁금했는데 작가의 약력을 보고서야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1977년 이란 테헤란에서 태어나 이집트 카이로와 일본 오사카에서 자랐다는 니시 가나코. 어쩌면 그녀에가 아쿠쓰 아유무는 스스로의 분신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유무의 주변 사람들도 언젠가 한번쯤 그녀 곁에 있었던 인물들일 수도 있다. 두번째로 카이로에 다녀와 아유무는 소설을 쓰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지금껏 읽어온 이야기가 바로 그 소설이라고 말한다. 거기에 아유무는 여기에 있는 것 중 일부는, 혹은 전체가 거짓일지도 모른다며 '내게는 누나 따윈 없고 내 부모님은 이혼하지 않았으며 애초에 나는 남자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쓴다. 잠깐 작가 자신의 얼굴을 엿본 듯한 기분이 드는 대목이었다.
작품을 생생하게 하는 또 하나의 요소는 바로 실제 있었던 사건들을 이야기에 섞어 풀어내는 작가의 능력이다. 이 작품에는 고베 대지진, 사린 살포 사건, 도쿄의 쓰나미, 아랍의 봄 등이 등장한다. 그리고 각 사건은 작품 속 등장인물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고베 대지진으로 아유무의 가장 큰 친구이자 살아가는 힘이었던 스구는 깊은 우울의 바다로 빠져들고, 사린 살포 사건 이후 사토로코몬사마교가 사람들의 비난을 받게 되면서 누나 다카코는 다시 한번 산산이 부서진다. 도쿄에 지진과 쓰나미가 덮치며 아유무는 무언가를 할 결심을 한다. 그리고 아랍의 봄은 그에게 다시 이집트를 떠올리는 계기가 된다.
책을 덮고 나니 다정하고 외로움 많은 이집트 사람들을 만나러 카이로에 가고 싶어졌다.
사라바!
벚나무 가로수 길을 어머니와 걷는 이 시간은 무척 평온했을 텐데도 나는 멋대로 어머니의 기색에 눌려 긴장하고 있었다. 다양하게 온화한 모습인 다른 가족들을 보고 처음으로 우리가 좀 이상한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기보다는 마음속 좀 더 깊은 곳에서 나는,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어떻게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미 태어나고 말았던 것이다.
내게는 이 가능성 외에 없었다.
- 1권 p. 77
도라에몽은 비틀비틀 걸으면서 우리를 엘리베이터로 데려갔다. 버튼을 누르고는 후우, 후우 하고 거친 숨소리를 내며 우리를 돌아보고 무슨 말을 했다.
"뭐라고 한 거야?"
아버지에게 묻자 "신의 가호가 있기를" 하고 대답해주었다.
난생처음 듣는 말이었다. 의미는 몰랐지만 아마 지금까지 들어본 말 중에서 가장 예쁜 말이었을 것이다.
- 1권 p. 152
지금도 기억하는 헤어질 때 하는 말이 있다.
"사라바(안녕)."
우리가 헤어지는 것은 늘 우리 플랫 앞이었다. 우리는 손을 들어 "사라바!" 하고 외쳤다. 처음에는 '안녕'이라는 뜻의 아라비아어인 '맛살라마'를 썼다. 그런데 내가 장난스럽게 "맛사라바!"라고 했던 것이 시작이었다.
아라비아어인 '맛사라마'와 일본어인 '사라바'를 조합한 '맛사라바'를 나는 무척 마음에 들어 했지만 야곱은 단순히 '사라바'라고 하는 걸 마음에 들어 했다.
"무척 예쁜 말이야."
내가 아무리 '맛사라바'라고 해도 야곱은 완강하게 '사라바'를 고집했다.
실제로 야곱이 말하는 '사라바'는 아름다웠다.
마치 '안녕'이라는 의미가 아닌 말처럼 들렸다. 빛나는 가능성을 내포한 반짝이는 세 글자로 여겨졌다.
어느덧 나도 야곱을 흉내 내어 '사라바'라고 말하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의 '사라바'는 '안녕'이라는 의미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의미를 내포한 말이 되었다. '내일도 만나자' '잘 있어' '약속이야' '굿 럭' '갓 블레스 유', 그리고 '우리는 하나야'.
'사라바'는 우리를 이어주는 마법 같은 말이었다.
나는 어느덧 야곱이 없을 때도 '사라바'라고 말하게 되었다. 위기에 처했을 때나 뭔가 좋은 일이 있었을 때, 즉 생각이 떠오를 때는 늘 그랬다. 그 세 글자를 중얼거리면 옆에 야곱이 있는 것 같았다. 야곱의 체취를, 야곱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를 평온하게 해주었다. 그러므로 나는 집 안에서 가장 많이 '사라바'를 입에 담았다.
'사라바'는 우리만의 말이었다.
- 1권 pp. 256-257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내 특기를 발휘했다.
내 특기? 그렇다, 단념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껏 초연함에 달라붙음으로써 살아올 수 있었다.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한편 어머니는 '아이는 부모가 하는 말을 따르는 것'이라는 생각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우리 두 사람은 성격이 잘 맞았던 것이다.
- 1권 p. 291
"일본으로 돌아가."
내가 이렇게 말하자 야곱은 걸음을 멈췄다.
나와 야곱은 보도 한복판에서 잠시 서 있었다. 보도의 포석은 깨져 나가고 잡초가 자라나 있었다. 어디서 흘러온 건지 카이로 거리 특유의 냄새가 우리를 감쌌다.
야곱은 말을 잃고 있다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신이 그렇게 바란다면."
- 1권 pp. 304-305
아줌마는 다양한 말을 생략했다. 그건 아줌마가 늘 하는 방식이었는데, 나는 그게 기뻤다. 아줌마가 나를 인정해주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내 머리로 생각했다.
뭐든 상관없었다는 아줌마의 그 말 뒤에 있는 의미를.
믿을 수 있는 거라면 뭐든 상관없었다.
온갖 사람들의 수많은 괴로움. 결코 해결할 수 없는 것도 있고,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잔혹한 사건도 있었다. 아마 그런 사람들을 위해 신앙이 존재할 것이다. 우리 인간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일. 우리들 탓으로 해서는 살아갈 수 없는 일.
신앙 그리고 종교는 그걸 한 몸에 짊어지는 존재일 것이다.
- 2권 pp. 142-143
그때 나는 참지 못하고 살짝 떨고 있었다. 그 결과 수백 명을 끌어들여 일대 종교(아줌마는 그런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로서 이 동네를, 그리고 이 지역을 열광시킨 것의 정체가 실은 자토라 고양이의 항문이었던 것이다.
"뭐든지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그거야말로 중요했다. 훌륭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이쪽을 두렵게 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을 '뭐든지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
- 2권 p. 145
"스스로 자신이 믿을 것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 돼."
- 2권 p. 147
자말렉은 지난 몇 달 사이에 나에게 일어난 일로부터, 그리고 이집트와 일본에 일어난 일로부터 엄청나게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떤 사건 뒤에도 일상이 있는 거라고, 언젠가 어디서 읽은 말을 떠올렸다. 자말렉의 일상은 바로 시간을 이기고 있었다.
- 2권 p. 370
이집트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그냥 모여 있을 뿐이다. 이집트 사람은 외로움을 잘 탄다. 잘못 건 척하며 매일 집으로 전화를 해온 남자를, 공항에서 울며 아들의 여행을 전송하는 가족을, 나는 기억하고 있었다.
분명히 급진적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혁명에서는 사망자도 나왔다. 하지만 이집트 사람의 기본적인 성격은 변하지 않은 것이다. 붙임성 있고 외로움을 잘 타며 금방 흥분하고 곧 잊어버리는 사랑스러운 이집트 사람들.
나는 나일 강을 바라보았다. 이집트 사람의 성격이 그런 것은 가까이에 세계 제일의 강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라고 생각했다. 나일 강은 역시 고요하고 탁했다.
- 2권 p. 382
나는 살아 있다.
살아 있다는 것은 믿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계속 살아간다는 것을 내가 믿고 있다는 것이다.
"사라바."
이름을 정했다.
많은 말을 품은 사라바. 많은 시간과 생각을 품은 괴물은 사라바다.
나의 신은 사라바다.
- 2권 p. 405
나는 혼자다. 하지만 나는 믿을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이다.
다시 만나는 우리는 각자 또 거대한 괴물을 짊어지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만난 시간, 만난 사람, 만난 모든 것을.
거대하고 거대한 괴물을 짊어지고 우리는 다시 강가에 설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거다.
"사라바!"
우리는 '사라바'와 함께 살아간다.
- 2권 p. 406
written by. 가비
* 은행나무 출판사의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