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
와타야 리사 지음, 정유리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4년 2월
평점 :
품절


1. 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

아쿠타가와상 최연소 수상작에 빛나는 이 소설은 얄팍한 두께에 활자는 큼지막해서 마음 먹으면 한 시간만에 읽어낼 수 있는 비교적 가벼운 분량을 자랑한다. 실제 이야기 자체도 굉장히 짧고 단편적이며 그다지 스케일이 큰 편이 아니다. 누군가는 대체 왜 그런 책이 일본문학계에서는 가장 영향력 있는 상 중 하나인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것인지 의문을 가질지도 모른다. 사실 책을 반납한 지 한달 여가 지난 지금까지도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이 책은 막연하고 모호하고 어쩐지 종잡을 수가 없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사건에 어떤 동력이 존재하는지 뚜렷이 정의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이 책의 매력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이 다루는 청소년기 자체가 곧 그런 때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듯한, 잡히지도 않고 잡을 수도 없는 시기.
이 책의 주인공인 소년소녀는 일본 청춘소설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인물들과 확연한 대비를 이룬다. 일본문학을 수식하는 특유의 블링블링함이 단 0.1%도 존재하지 않는 게 바로 하츠와 니나가와이다. 아마 낯선 사람이 두 사람이 속한 반에 처음 방문한다면 거의 눈치채지 못하고 넘어갈 법한, 동년배와 공유하는 공간에서 존재감이 희박한 아이들. 게다가 하츠는 그 나이 특유의 고집스럽고도 유치한 자기만의 세계를 정립한 채 `너희가 나를 따돌리는 게 아니라 내가 너희 모두를 따돌리는 것`이라는 신념을 몸소 실천하고, 니나가와는 자신의 온 삶을 바쳐 모델인 올리짱을 동경하며 소위 `덕후`의 기운을 온몸에서 내뿜는다. 각각 독특한 형태로 생애 가장 예민한 시기에 소외를 경험하는 둘은 그렇게 흔한 허구적 인물과 다르고, 그렇기 때문에 실재적인 인물에 한없이 가깝다. 어딘가에는 반드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인물인 것이다. 어떤 고등학교의 어떤 교실에서도 한 명쯤은 찾아낼 수 있는, 고유한 사연을 안고 무리에게 등을 돌린 아이. 와타야 리사는 그런 모습을 예리하고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비웃음이 아닌 애정과 관심을 듬뿍 담아서.

2. 자발적 외톨이들의 가랑비 같은 성장기

첫 몇 장을 읽다 보면 그렇고 그런 왕따소설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조를 짜는 가운데 어느 조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남겨진 두 명, 하츠와 니나가와. 그 사건을 계기로 두 사람은 점점 가까워지지만, 그 양상은 결코 두 외톨이가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는 이상적 해피엔딩도, 서로의 숨은 매력을 발견하여 연애를 시작한다는 로맨틱한 전개도 아니다. 제각기 강렬한 색채를 지닌 둘은 둘만의 관계 안에서도 부딪히기를 반복하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건 동지애와 깊은 이해가 아닌 `나도 이상하지만 쟤는 좀 더 심하다`는 깨달음 뿐이다. 그러나 그 시간을 통해 두 사람 모두 외부 세계와 관계하는 방법에 대해 조금씩, 하지만 꾸준히 배워가게 된다.
`그렇고 그런` 왕따소설과 이 책의 차이는 거기에서 나온다. 하츠와 니나가와는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비웃음 당하고 배척당하며 타의에 의해 혼자가 되는 아이들이 아니다. 반 아이들을 한심하게 여기며 그들로부터 멀어지는 걸 최고의 긍지로 생각하는 하츠는 악의 없는 친구들의 손길을 삐딱하게 해석하고 밀어내기 일쑤다. 그녀의 눈에 비친 세상은 가식적이고 허위로 가득차 역겨울 따름이다. 그런 하츠의 모습을 쫓다 보면 어느 순간 한숨이 푹 나온다. 얘는 왜 이렇게 꼬였니, 싶은 생각도 든다. 그러나 이런 삐딱하고 시니컬한 시각은 어찌 보면 사춘기를 거치며 누구나가 한번쯤은 지니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니나가와에 대한 호감조차 잔뜩 웅크린 그의 등짝을 발로 걷어차는 것으로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하츠. 그러나 니나가와를 괴롭히고 미워하고 무시하는 그 모든 과정을 거치며, 하츠는 그 방법이 어쩌면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워간다. 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이 사실은 무척이나 사랑스러운 존재라는 것, 그리고 거기에 필요한 건 있는 힘껏 킥을 날리는 발이 아니라 따뜻하게 감싸안는 손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하츠는 자신이 겪는 사춘기만큼이나 경계 없이 막연하게 알게 된다.
하츠가 최소한 주변 인물들에 대해 능동적으로 평가를 내리고 스스로 멀어지는 타입이라면, 니나가와의 세계에는 처음부터 다른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세계는 올리짱에 의해서 정의되고, 올리짱에 의해 존재한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면 니나가와의 세계에는 `소외`라는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소외당할 집단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니나가와의 세계에 올리짱을 직접 본 적이 있다는 하츠가 성큼 들어온다. 온통 삐딱하고 폭력을 행사하기 일쑤에 니나가와로써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여자아이지만, 아무튼 하츠는 그의 생활에서 올리짱 이후 최초로 공간을 차지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하츠와 함께 실재하는 올리짱을 쫓고, 만나고, 화려하게 거절당하며 니나가와 역시 처음으로 세상에게 마음 한 구석을 내주게 된다. 조금 많이 아픈 방법이긴 하지만, 그렇게 상처 받으며 마음을 연 니나가와의 옆에는 하츠가 있다. 서툴어서 발길질밖에 못하지만, 마음만은 따뜻한 `친구`가. 그렇게 두 사람은 알게 모르게 자란다. 스며들듯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3. 그 등짝을 붙잡아야 하는 이유

지금 학창시절을 돌이켜봤을 때 생각만 해도 오그라드는 기억이 하나쯤 떠오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는 책. 우리 모두 성장의 어느 한 순간에는 하츠였고 또 니나가와였을 것이다. 세상 모든 게 한심하고 우습게 여겨지고, 거기에 발을 안 담그는 게 깨끗하게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이라 여기던 때가 있었을 것이고, 나만의 세계에 고립되어 다른 누구도 발을 들이지 못하게 했던 때가 있었을 것이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라도 말이다. 그리고 그 시기를 벗어나 주변 사람들을 좀 더 따뜻하고 편견 없는 시선으로 바라보고, 사랑하며, 마음을 열 수 있게 된 바로 그 순간들이 모여 어른을 만드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지금 당장은 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이라 해도, 조금쯤 사랑스럽게 생각하고 발 대신 손을 내밀어보려고 노력하는 건 어떨까. 바로 그 등짝이 하나의 껍질을 깨고 다음 세계로 나아가는 소중한 계기가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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