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ners in Crime (Paperback, Reissue)
Signet / 200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1. Partners in Crime

미스터리소설광인 젊은 부부 Tommy와 Tuppence에게 Scotland Yard(런던 Metropolitan Police를 이르는 명칭)의 비밀 임무가 주어진다. 러시아 범죄조직의 숨은 연락책으로 의심되는 International Detective Agency을 맡아 운영하며 정보를 수집해달라는 것. 원래 탐정소를 운영하던 Mr. Blunt가 경찰에서 심문을 받고 있는 동안, 그렇게 Tommy는 명탐정 Mr. Blunt로, Tuppence는 그의 비서인 Miss Robinson으로 활약하게 된다.
단일한 사건을 여러 챕터에 걸쳐 파헤치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다른 소설들과 달리, ˝Partners in Crime˝은 옴니버스식 구성을 취한다. International Detective Agency로 숫자 16을 이용하여 비밀리에 연락을 취하는 러시아 요원을 쫓는 보다 큰 스토리는 여러 챕터에 걸쳐 이어지지만, 각각의 챕터에서는 탐정소에 사건을 의뢰한 의뢰인들의 개별 사건을 다루기 때문이다. 즉, 어떤 의미에서는 최근 유행하는 BBC 시리즈 `셜록`이나 탐정만화의 정석인 `명탐정 코난`과 유사한 전개방식인 셈이다. 그래서 호흡이 짧고 각각의 사건은 다소 깊이가 없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한 챕터, 길면 두 챕터에 걸쳐 해결되는 사건들인만큼 애거서 크리스티 특유의 허를 찌르는 반전까지는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점은 반대로 색다른 매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Tommy와 Tuppence는 전문적인 탐정이 아니다. 오히려 셜록 홈즈나 에르큘 포와로 등을 흉내내며 즐거워하는 모습에선 책을 읽는 독자가 쉽게 공감할 만한 추리광의 면모가 더 돋보인다. 두 사람은 지금껏 읽어온 방대한 양의 추리소설을 바탕으로 나름의 추리를 펼치고, 그들이 가진 전문적인 경험에 의존하여 사건을 해결해 나가지만, 그 과정에서 실수하기도 하고 때로는 실망하기도 하며 한번씩 바보같은 짓을 했다고 부끄러워하기도 한다. 포와로나 미스 마플이 등장하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들이 지나치게 똑똑하고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탐정들로 인해 독자에게 다소 소외감을 안겨줬다면, Tommy와 Tuppence는 독자들로 하여금 함께 추리하고 함께 고민하며 사건을 풀어나갈 수 있는 즐거움을 느끼게 한다.

2. 최고의 파트너

Tommy와 Tuppence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 5권에 등장한다. 그 중 두번째이자 유일한 단편모음집인 ˝Partners in Crime˝에서 두 사람은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20대 후반의 부부로 그려진다. 그들이 처음 등장하는 ˝The Secret Adversary˝에서는 오랜 시간 친구였던 두 사람이 처음 사랑에 빠지는 모습이 드러나기도 한다. 이후 실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두 사람도 점점 나이를 먹는 것으로 묘사되어 애거서 크리스티가 집필한 마지막 소설인 ˝Postern of Fate˝에서는 70대 노부부로 등장한다고 한다.
˝Partners in Crime˝을 읽으며 추리소설다운 면 외에도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며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을 쫓아가는 것도 색다른 재미로 다가온다. 적극적이고 열정적이며 새로운 모자를 사들이는 것과 여자들의 수다를 좋아하는 Tuppence와 이성적이고 다소 무뚝뚝하며 한번씩 Tuppence의 상상력에 기겁하는 Tommy는 매일 크고 작은 싸움을 반복하지만, 그 속에서도 서로를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만큼은 숨겨지지 않는다. 두 사람의 대화를 보고 있으면 이렇게 살면 평생 심심할 일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특히 애거서 크리스티는 오마쥬처럼 각 챕터에서 기존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서로 다른 탐정을 흉내내는 Tommy와 Tuppence를 묘사하는데, 그 때마다 서로 탐정 역할을 하겠다고 싸우는 두 사람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웃음이 난다(내가 셜록 홈즈를 할테니 네가 왓슨 역할을 맡으라는 식의 싸움이다).

3. 아마추어지만 멋지게

Tommy와 Tuppence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추리소설만 읽고 탐정이 되면 저렇겠구나, 싶은 순간들이 있다. 손에 버스 티켓을 쥐고 있는 의뢰인을 보고 버스에 사람이 많아 힘들었겠다고 말했다가 택시를 타고 왔고 티켓은 길에서 주웠다는 대답에 순간 무안해져버리거나, 셜록 홈즈 흉내를 내겠답시고 킬 줄도 모르는 바이올린을 켜다가 Tuppence에게 시끄럽다고 세차게 얻어맞는 Tommy의 모습이 특히 그렇다. 반면 Tuppence는 International Detective Agency에 손님이 없으면 자기가 범죄를 저지를테니 해결해서 실적을 올려달라는 위험한 발언을 함으로써 추리소설광의 또다른 문제적 소지를 드러낸다. 그러나 그렇게 위태롭고 어설프면서도 두 사람은 하나 하나 사건을 해결해나간다. 그것도 살인, 화폐위조, 마약밀매 등의 어려운 사건들을 말이다. 물론 행방불명된 줄 알았던 의뢰인의 약혼녀가 알고보니 의뢰인 몰래 살을 빼기 위해 다이어트시술소에 입원해 있는 것을 발견하는 어이없는 사건도 중간에 끼어있지만, 대체로 Tommy와 Tuppence는 그들이 그토록 존경하는 다른 탐정들과 비교하여 전혀 뒤처지지 않는 훌륭한 업적을 남긴다. 그리고 International Detective Agency의 배후로 지목되는 러시아 요원이 체포되면서, 두 사람은 영예롭게 은퇴한다. 물론 Mr. Blunt와 Miss Robinson으로서만 말이다.
˝Partners in Crime˝을 덮고 나면 두 사람의 이야기를 더 보고 싶은 마음이 자꾸만 고개를 든다. 이 사랑스러운 부부가 어떻게 늙어갈지, 그 과정에서 어떤 사건을 맞닥뜨리고 어떻게 해결해나갈지가 계속 보고싶어지는 것이다. 실제로 후속작들에서는 두 사람이 아이를 낳고, International Detective Agency에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하는 Albert가 집사가 되어 함께하는 모습까지 그려진다고 하니 그 책들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Partners in Crime˝을 제외한 모든 Tommy & Tuppence Mystery들은 장편소설이라고 하니 이 책이 남긴 아쉬움 역시 넘치게 메울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