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이면
이승우 지음 / 문이당 / 199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길이 막혔을 때 '끊긴 길 앞에서 주저앉는 대신 수렁에 빠지는 쪽을 택한다'는 작가의 말이 가슴을 쳤다. 길을 포기하지 못하는 미련과 집착……. 내게도 그런 경험이 있었다. 그 길을 확신에 차서 정신없이 달려갔는데 낭떠러지가 나타났다. 길이 뚝, 끊겨있었다. 그 길이 내가 찾는 길이 아니라는 사실을 뒤늦게야 알았다. 우리에게 '깨달음이란 언제나 너무 빠르거나 너무 늦게온다.' 그러나, 난 주저앉지 않았다. 마지막 발짝을 마저 내딛었다. 예상대로 수천킬로미터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자괴감에 몸부림쳤다. 내 의식에 난 상채기에서 쉬지않고 고통의 핏물이 베어나왔다. 하지만 견딜 수 없을 만큼은 아니었다. 고통의 임계점(臨界點)을 지나면 자신의 고통을 즐기게 되는 것일까. 체념이나 자포자기라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의식의 진공상태가 시작되었고 난 생각보다 담담히 그 시기를 넘겼다.

이 소설의 책장을 다 넘겼을 때 온 몸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어린 박부길의 고통스런 유년의 모습이 촘촘히 가슴에 들어와 박혔다. 그 모습은 또한 나의 이전의 모습으로도 오버랩되어 의식을 압박해왔다. 부길의 모습에서 헤세의 데미안에 나오는 싱클레어가 떠올랐다. 아버지를 죽였다는 것을 알고 자신의 눈을 찌르는 오이디프스왕과 광기와 신경증에 에 휩싸인 도스토예프스키의 주인공들이 차례차례 떠올랐다. 병적인 자의식의 과잉으로 세상과 불화하는 어린 자폐아의 계보를 이어받은 우리의 박부길. 그러나 그가 먼저 세상을 향해 문을 닫아버린 것이 아니다. 세상이 먼저였다. 그 결과로서 그는 더욱더 자신의 햇볕 한 줌 들지 않는 습기찬 골방으로 숨어들었을 뿐이다.

자신의 아버지가 정신병에 걸려 차꼬가 채워진채 뒤란 감나무 옆 움막에 갇혀있다는 사실을 아버지가 죽어서야, 그것도 자신이 가져다준 손톱깍기로 자살한 사실을 알게 된 아들. 엄마마저 집안어른들의 무언의 압력으로 집에서 내쫓겨간 아이. '그러면 이제 안녕, 내 치욕의 시간들이여. 다시는 너에게로 돌아가지 않는다'며 아버지의 무덤을 불태우고 집을 나간 아이. 제임스조이스의 '이 세상에서의 삶은 우리가 빠져 나오려고 발버둥치는 악몽'이라고 비유한 글 밑에 붉은 밑줄을 그은 아이. 자신에게 유년기가 없다고, 아버지의 매나 어머니의 품을 기억의 층에서 불러내지 못한다고 절규하는 너무 일찍 늙어버린 아이. 그 아이가 박부길이다.

이 소설은 동료작가인 '나'를 화자로 내세운 액자소설의 형식으로 박부길의 유년시절, 그 속에서 구원을 찾아 헤메다 자신의 고립된 세계-그러나 이전과는 다른, 아버지를 시인하게되는-로 회귀하는 얘기를 하고 있다.

어린 부길이는 성장기 내내 자신과 동질의 원형질을 가진, 자신과 같은 세계에 있는 사람을 찾아 헤매다 '그처럼 편안하고 놀랍게 안락'한 종단을 운명적으로 만난다. 그러나 그의 사랑은 '감정이라는 바다에 키나 돛도 없이 둥둥 떠 다니는 풍선(風船)과 같았다' 얼토당토 않은 상상과, 엉뚱한 비약, 터무니없는 과잉반응등으로 불같은 집착을 보인다. 싱클레어의 에바부인에 대한 숭배처럼 그에게 종단은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신성으로서의 숭배의 대상이었다. '그녀를 통해 골방의 어둠을 벗어나지만, 그가 그녀를 택한 것은 실은 그녀 역시 어둠이기 때문이다. 자기를 비춰주는 거울인 그녀에게 거울인 그녀에 비친 자기 자신에게 그는 사랑을 퍼부었다. 그러니까 그의 그녀에 대한 몰두는 나르시스의 자기애일 뿐'이었다.

그녀는 결국 떠난다. 그리고 그는 다시 자신의 골방으로 들어간다. 이제야 그는 아버지의 엄연한 존재를 시인하게 된다. 이제야 자신의 유년시절의 기억의 층위를 제대로 바라보게 된다. 그럼 그에게 있어 글쓰기는 무엇일까. 마지막에 화자의 입으로 대답이 주어진다. '지금까지의 그의 글쓰기가 전략적인 드러냄'이며, 그는 사실은 '감추기 위해 드러낸다'는 것이다. 바로 그 이유로, 동서고금의 작가들이 자신의 상처를 대면하며 치열하게 글을 쓰는 것이 아닐까?

-길이 막혔을 때 우리는 수렁에 빠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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