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북소리

먼 북소리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2004년 1월

이 책은 기행문이다. 오래간만에 기행문 다운 기행문을 읽었다. 요즘의 기행문이라하면, 하나같이 사진들이 꽉꽉 들어찬데다 이야기로써의 재미가 뛰어나지가 않은데, 이 책은 사진 한 장 들어 있지 않지만 생생한 묘사와 자세한 설명 덕분에 본적 없는 어떤 것들이 눈에 보이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물론, 듣도 보도 못한 어떤 지역이나 음식등이 사진으로 보여진다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지만, 머릿속에서 상상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 책, 꽤나 유명한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리스, 이탈리아를 주로 하여 3년간 유럽을 체류하며 써내려간 이야기다. 일단 머무른 기간부터가 한달짜리가 아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점수를 줄 수 있을 정도.(요즘은 한달짜리 여행으로도 책을 내더라구!) 

 

 

무라카미 하루키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게 <상실의 시대>인데, 그걸 읽은게 고1때였으니 당시에도 어떤 감흥을 받지 못했던듯 책에 관한건 아무런 기억이 남아 있지도 않고, 그때 짝한테 빌려서 읽었다는 기억만이 남아 있다. 그래도 분위기가 절대 코믹하진 않았는데, 이 책은 대체 어떻게 된건지 너무 웃기다. 그냥 미소 짓는 정도가 아니라 박장대소를 하고 웃었다. 하루키는 전혀 웃기려는 목적이 있어보이지 않는데, 그 상황 자체가 너무 웃겼다. 그리고 원래 진짜 웃긴 사람은 본인은 웃지도 않고 다른 사람을 웃기는 이들인데, 이 책의 글들이 딱 그런 느낌을 준다. 절대 웃길 의도가 없는듯 하지만 독자들은 그냥 박장대소.

 

 

어느날 문득 멀리서 들려오는 북소리 때문에 여행을 결정하게 되었다고 시작되는 이 책은 꽤나 허세스럽고, 중간중간 지루해지기도 하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의 개그 덕분에 한참동안이나 배를 잡고 웃었다. 몇 개의 에피소드가 있는데, 그리스에서 담을 쌓는 이야기라든지, 이탈리아에서 개를 상대로 다툰 이야기(는 이 부분만을 오빠한테 읽어줬는데, 읽다가 읽다가 내가 웃겨서 숨통이 끊어지는 줄 알았다ㅋ) 또 어느 호텔에 갔다가 자물쇠가 열리지 않아 수리공을 불렀더니 돌멩이를 든 여자가 와서 벽장을 다 부순 이야기에서 난 거의 기절. 또, 버스를 탔는데 운전수와 차장이 포도주와 치즈를 얻어와 음주 운전 한 것, 일기예보 하는 사람이 비오는 날엔 우울한 표정 짓는 것 등등등 진짜 박장대소할만한 이야기들이 많이 있었다. 아~ 다시 생각해도 격하게 웃김. 하하하.

 

 

요즘 힘들다. 어렵다.고들 한다, 스튜어디스인 친구는 경기가 안 좋아서 비행이 없을 지경이라고 하더라. 뭐, 까짓. 꼭 비행기 타고 떠나야만 맛인가?! 이렇게 재미난 책 한권이면 이 세상 다 날아다닌 것 보다 더 기분이 좋을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