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기 좋은 날 - 제136회 아쿠타가와 상 수상작
아오야마 나나에 지음, 정유리 옮김 / 이레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2007년 1월 일본 문단계에서는 깜짝 놀랐단다. 일본 최고의 문학상인 아쿠타와상의 수상자로 만 23세의 아오야마 나나에가 선정되었다는 소식때문에 말이다. 그 책이 바로 이 책인데, 압도적인 지지로 수상하게 되었다는 점과, 우리나라 사람에게도 잘 알려진 무라카미 류와 이시하라 신타로의 동시 추천으로 선정된것도 주목할 만한 일이었단다. 한국의 문단계 얘기도 모르는 판에 일본 문단계의 이야기같은건 더더욱 모르지만 그래도 어린 나이에 그런 큰 상을 받았다고 하니 나도 관심이 생긴건 사실이다.

 

 

그렇게 기대를 걸고 책을 봤기 때문인지 실망이 컸다. 아니, 실망이 컸다는 말이 맞는건지, 가깝고도 먼 일본이라는 나라와 우리와의 가치관이 달라 그런건지 구별하기 쉽지 않지만 어쩃든 공감하기 쉽지 않은 부분들이 있었다. 뭐 이런 비행소녀스럽고, 버르장머리없는 아이의 일상에 대해 쓴 소설이 일본 문학계를 놀라게 했단 말이냐?!라고 생각했다. 주인공 치즈의 그런 비행스럽고 불량스러운 행동들이 책의 말미에 있는 '옮긴이의 말' 을 읽으면서 조금은 이해가 되었지만, 여전히 고개는 갸우뚱~

 

 

주인공 치즈는 엄마가 원하는 대학따위를 가지 않고 도쿄에 가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100만엔을 모으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도쿄로 떠나는 그녀가 못미더운 엄마는 사돈의 팔촌만큼이나 겁나먼 어느 할머니네 댁에서 그녀를 머물게 한다. 그리하야, 그녀는 그녀보다 대략 50세가 많은 노인네와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원래도 책을 읽기전에 누군가의 리뷰를 먼저 읽는 편은 아니지만, 유명한 상을 받았다는것 외에 이 책의 내용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알지 못한 상태로 읽어나가다 보니 그냥 열이 좀 받쳤다. 스무살밖에 안된 처자가 70세나 된 노인한테 말하는 꼬라지가 아주 엉망이었고, 손버릇마저 나빴으며, 할머니가 없는 틈을 타 남자친구를 집으로 데려와 거사를 치르고 난뒤 깜빡 잠이들었다가 일어나보니 할머니가 부엌에서 요리를 하고 있어 옷을 입고 기어 나왔다는 뭐 그런... 일반적인 대한민국 국민으로써는 상상하기 쉽지 않은 일들을 보면서 아, 이책은 일본의 젊은 세대들의 바람직하지 못한 행실을 꼬집고,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라는 교훈을 주려는 책인가 싶었다.

 

 

헌데,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드는데. 함께 사는 70세의 할머니 깅코씨도 보통 내공이 아닌것이었다. 사소한 물건들을 훔치는 치즈를 진작부터 알고 있었고, 치즈가 남자친구와 헤어진 와중에 댄스교실에서 만난 남자친구 할아버지를 보란듯 집으로 데리고 와서 본의 아니게 치즈의 질투심을 유발하고, 치즈는 그에대한 일종의 복수로 할아버지의 은단을 훔치곤 한다.

 

 

전혀 내 예상과는 다르게 그렇게 이야기가 흘러가다 치즈가 직장을 잡으면서 깅코씨네 집에서 떠나게 되는데, 치즈가 깅코씨네 집을 떠나기 전 즈음과 떠난 후에 나오는 둘의 대화들 중에는 인상적인것이 많았다. 70년 인생을 살아오신 할머니에게 치즈가 아무리 투정부리고 떼를 써도 내공이 딸렸고, 할머니는 그런 그녀를 한편으로는 모른척 하기도 하지만, 가끔 툭툭 한마디씩 던지는 말들에서 지난 세월에서 오는 연륜으로 깨달음을 주기도 한다.

 

 

 

 

 

"세상 밖은 험난하겠죠? 저 같은 건 금방 낙오되고 말겠죠?"

"세상엔 안도 없고 밖도 없어. 이 세상은 하나밖에 없어"

 

 

 

위의 대사 한마디로 치즈의 버릇없음, 되바라짐, 무개념 등등 내가 분노했던 그녀의 행동들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서부터 비롯된것이라 볼 수 있겠다. 표현방식이 조금 과격했기에 내가 반감을 나타낸건 사실이지만, 그녀의 불안감은 나도 십분 이해한다. 초등학교 다음엔 중학교, 또 그다음엔 고등학교, 다음엔 당연히 대학교. 그 다음엔... 뭐가 있을 줄 알았는데, 너무나 당연한 길들을 걸어오면서 그 다음에 무엇을 해야하는지, 나는 어디로 가야하는지에 대해 생각조차 못하고 살았던 거다. 방황하고 있는 내 모습에 낙오자가 된것 같기도 하고, 또 내가 노력한것에, 내가 생각했던것에 비교해서, 세상이 훨씬 험난하고 치열한 곳이라는 것을 알고 나니 한걸음 나아가기가 너무나 힘이 들었고, 지금도 여전히 힘이 들고 있다.

 

 

하지만, 마지막장에서의 치즈처럼, 너무도 일상적이고 평온한 하루를 보내게 될 어느날이 내게도 올 것이라는 것을 믿어보자.

 

 

 

 

 

 

 

 

* 깨끗하게 연을 끊고, 누구도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또다시 새로운 관계가 생겨나겠지. 그리고 문득 깨닫고 보면, 파국을 맞이하고 있겠지. 그 의미 따윈 생각하지 않고 그저 되풀이하고 있다 보면 인생도 결국 끝이나게 될까? 
 

* 애인도 없고 친구도 없고 안정적으로 살 집도 없다. 의지할 거라곤 내 심신 하나뿐이지만, 이것도 그다지 미덥지 못하다. 그래도 어떻게, 혼자서 어떻게든 부딪혀 나가지 않으면 안되겠지.

 
* 그렇게 아는 사람들을 교체해간다. 낯선 사람들 속에 자신을 내던져본다. 낙관적이지도 비관적이지도 않다. 그저 눈을 뜨면 닥쳐오는 그날그날을 혼자서 어떻게든 헤쳐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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