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이 고인다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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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나 책이 읽혀지는게 아까워 억울했던 적이 없었다. 한문장, 한문장이 이 어린 작가의 손을 거쳐 쏟아져 나온 이 문장들의 표현이 얼마나 멋진지...!! 맛있고도 예쁜 음식을 먹기가 아까워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구경만 하고 있는것처럼, 책이 읽혀지는게 아까워 온몸을 베베꼬았다.

아!!! 정말 최고의 작가 김애란이다.

단편집이라, 내 마음에 쏘~옥 든 딱 한작품에만 리뷰해야겠다.

 

 

*자오선을 지나갈때

어젯밤에는 조금 울었다. 슬펐고, 힘들었고, 우울했고, 부모님을 원망했다.

 

외우고 또 외운 단어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고, 열심히 독해를 해서 푼 문제는 모두 틀려버렸다. 남들은 한, 두달만에도 토익 성적을 쑥쑥 잘 올린다는데, 부모님은 내 뇌를 만들다가 잠시 쉬었는지, 두시간쯤 전에 외운 단어는 기억이 나지 않고, 미국식 영어 발음도 알아듣기 어려운데, 호주식은 또 무엇이며, 영국식 발음은 자살 충동을 일으켰다.

 

중국어 단어는 알아갈 수록, 중국 정부에서 기하학적인 한자를 새로이 만들어 내는것만 같았다. 한국말로 해석하면, 모두가 발전하다, 발전하다, 발달하다, 발달하다, 이건만.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구별하여 문장속에 집어 넣으라는 거냐.

 

중국어고 영어고 나발이고, 한국어도 못하는 판에 어디서 굴러들어온 개뼈다구 같은 말들이 내 머릿속에서 윙윙윙하고 맴돌았다. 정말 이러다가 도도 개도 아닌 모가 되어 버려 패를 다시 던지는 날이 오는게 아닐까-_-!! 여기까지 왔는데, 내 인생을 새로이 찾겠다며 다시 패를 던지고 싶진 않단 말이다!!!

 

그래서 울었다. 그런 여차저차한 마음때문에 울었다. 책을 북북 찢어버리고 싶었지만, 돈주고 산 놈이었기에 그럴 수 없었다. 다만,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며, 저능아처럼 콧물도 함께 줄줄 흘려주었다. 소리내어 펑펑 울고 싶었지만, 엄마 아빠는 옆방에서 코골며 자고 있다. 분명 새벽까지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을 줄 알았던 딸래미가 소리내어 울고 있는 내 모습을 본다면 기절 초풍하시겠지. 그래서 소리없는 아우성을 하며 각 티슈의 절반을 써버리곤 울었다.

 

그러다 지쳐 맥주 한캔을 마셨고, 굴러다니고 있던 육포와 과자 한봉지를 새벽 두시에 먹었다. 그러다가 양주장에 외로이 갇혀 있는 산사춘이 미소 짓고 있기에, 그 한병 마저 마셔버렸다. 분리수거 하는날 몰래 살짝 버려야겠다-_-;

 

이깟 토익이 뭐 대수라고, 이깟 중국어가 뭐 대수라고, 발달하다, 발달하다, 발전하다, 발전하다, 구별하지 못하면 취업 안시켜 줄텐가?! 라고 생각은 했건만, 안시켜주겠지....!!

 

여하튼 오늘의 내 감정상태는 엉망진창하고도 곱하기 100배였다. 공부는 안되고, 여전히 울적한 터라 책이나 보자며 책을 펼쳤다. 단편집이라 딱 한편만 읽고 공부하자, 싶어 봤는데, 바로 이 녀석이 튀어나온 것이다 [자오선을 지나갈 때.

 

정말 내 심리상태를 너무다 잘 보듬어줬다. 그 누구에게 받을 수 있는 위로보다 더 따뜻했다. 그건 그냥 소설속 주인공일 뿐이지만, 내 마음을 십분, 아니 백분!! 이해해주었다. 소설속 주인공과 동병상련의 정을 느끼며 다시 한번 눈물 몇방울 흘려줬다. 그리고 김애란에게 박수를 쳐줬다.

 

  

 

 

 

 

지금 내 주위엔 수없이 많은 80년 생이 있지만, 내게 이렇게 힘이 되어주시는 80년생이 없었다. 이렇게 선배같고도, 친구같고도, 내 모든걸 다 이해해주고 위로해주고 보듬어 주는 사람이 없었다. 김애란!!! 언니~(라고 부르고 싶다ㅋ) 진짜 최고다! 평생 함께 할 친구가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부디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때까지 글쓰며 살아주세요, 김애란 언니!!! 완전 반했어요, 언니의 그 화려한 경력!은 익히 알고 있는터라 관심을 가져야할 작가라고는 생각했지만, 지난해 이맘때쯤 읽었던 [달려라, 아비] 보다 백배 천배 쯤은 글빨이 더 좋아진것 같아요.(어디까지나 내 생각이지만!) 앞으로도 더 좋은 작품 기대하며...!!

 

  

 

도 다음엔 레가 오는 것처럼 여름이 끝난 후 반드시 가을이 올 것 같았지만, 계절은 느릿느릿 지나가고, 우리의 청춘은 너무나 환해서 창백해져 있었다. - 도도한 생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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